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 원칙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 원칙

1.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 원칙의 개념과 역사적 의의

1.1 개요

‘동일노동 동일임금’ 원칙은 노동 시장의 공정성을 담보하는 핵심 기제로 인식된다. 그러나 이 원칙의 역사적 전개 과정을 살펴보면, 초기 ’동일노동(equal work)’이라는 제한적 개념에서 출발하여 ’동일가치노동(work of equal value)’이라는 보다 포괄적이고 정교한 패러다임으로 진화해왔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개념의 확장은 단순히 동일한 직무에 종사하는 남성과 여성 간의 직접적인 임금 차별을 금지하는 것을 넘어, 노동 시장에 구조적으로 고착된 성별 직종 분리(occupational segregation) 문제에 대응하기 위한 필연적 귀결이었다.

초기의 ‘동일노동’ 원칙은 남성과 여성이 나란히 동일한 작업을 수행함에도 불구하고 임금에서 차이가 발생하는 명백한 차별을 시정하는 데 초점을 맞추었다. 그러나 이러한 접근은 ’여성의 일’과 ’남성의 일’이 명확히 구분되고, 전통적으로 여성 집중 직종의 가치가 사회적, 경제적으로 체계적인 저평가를 받아온 현실을 해결하는 데 근본적인 한계를 드러냈다. 예를 들어, 남성이 다수인 생산직과 여성이 다수인 돌봄 서비스직은 수행하는 업무의 내용이 상이하여 ’동일노동’으로 볼 수 없으므로, 두 직종 간에 상당한 임금 격차가 존재하더라도 기존의 원칙으로는 이를 차별로 규율하기 어려웠다. ‘동일가치노동’ 원칙으로의 발전은 바로 이러한 구조적 문제를 정면으로 다루려는 시도이며, 이는 현대 노동법 및 차별 시정 정책의 핵심 과제로 자리 잡게 되었다.

1.2 국제적 규범의 형성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 원칙을 국제 노동 기준으로 확립하는 데 가장 선도적인 역할을 수행한 기구는 국제노동기구(ILO)이다. ILO는 1951년 채택한 제100호 협약, 즉 ’동일가치노동에 대한 남녀 근로자의 동일 보수에 관한 협약(Equal Remuneration Convention)’을 통해 이 원칙의 국제적 표준을 제시하였다. 이 협약은 단순히 선언적 의미에 그치지 않고, 각 회원국에 국내법 체계를 정비하고 원칙을 실현할 구체적인 의무를 부과하는 법적 구속력을 지닌 문서라는 점에서 그 의의가 크다.

ILO 협약 제100호의 핵심은 두 가지 개념적 확장에 있다. 첫째, ’보수(remuneration)’의 개념을 통상적인 임금이나 급료뿐만 아니라, 근로의 대가로 직간접적으로 지급되는 현금 또는 현물상의 모든 추가적인 급부를 포함하는 포괄적인 개념으로 정의하였다. 이는 사용자가 기본급 외의 수당, 상여금, 복리후생 등 다양한 항목에서 차별을 행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장치이다. 둘째, 비교의 대상을 ’동일노동’에서 ’동일가치노동’으로 확장하였다. 이는 서로 다른 직무라 할지라도 그 직무를 수행하는 데 요구되는 기술, 노력, 책임, 작업조건 등을 객관적인 기준에 따라 평가했을 때 그 가치가 동등하다고 인정된다면 동일한 보수를 지급해야 함을 의미한다. 이 국제 규범은 이후 유럽연합(EU)을 비롯한 여러 국가의 입법 및 사법 과정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으며, 본 안내서에서 다룰 한국의 법제와 판례 해석의 중요한 준거점이 된다.

2. 법적·경제학적 토대: 이론적 고찰

2.1 법적 기반 분석

2.1.1 국제법 및 비교법적 접근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 원칙은 ILO 협약 제100호를 필두로 국제 규범으로서 확고히 자리 잡았다. 특히 유럽연합(EU)은 이 원칙을 역내 법질서의 핵심 요소로 발전시켜왔다. EU의 기능에 관한 조약(TFEU) 제157조는 동일노동 또는 동일가치노동에 대한 남녀 간 동일임금 원칙을 명시하고 있으며, 이를 구체화하기 위한 다수의 지침(Directives)을 채택하였다. 특히 2006년의 ’고용 및 직업 분야에서 남녀 간 동등한 기회와 대우의 원칙 이행에 관한 지침(2006/54/EC)’은 동일가치노동의 개념을 명확히 하고, 성별을 이유로 한 직접·간접 차별을 포괄적으로 금지한다. 유럽사법재판소(ECJ)는 판례를 통해 직무 분류 체계 자체가 성차별적 편견을 내포하고 있다면 그 체계에 근거한 임금 격차는 간접차별에 해당할 수 있다고 판시하는 등, 원칙의 실효성을 확보하기 위한 법리를 지속적으로 발전시켜왔다. 이처럼 EU는 국제 규범을 국내법화하고 사법적 판단을 통해 그 기준을 구체화하는 모범적인 사례를 보여준다.

2.1.2 국내법적 근거와 사법적 해석

대한민국 헌법 제11조는 평등권을, 제32조는 근로의 권리와 근로조건의 기준이 인간의 존엄성을 보장하도록 법률로 정할 것을 규정하고 있다. 이를 구체화한 근로기준법 제6조는 “사용자는 근로자에 대하여 남녀의 성을 이유로 차별적 대우를 하지 못하며“라고 선언한다. 그러나 이 조항은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을 명시적으로 규정하고 있지는 않아, 문언적 해석에만 기댈 경우 그 적용 범위가 ’동일노동’에 한정될 수 있다는 한계를 지닌다.

이러한 입법적 공백을 메운 것은 사법부의 적극적인 해석이었다. 대법원은 다수의 판결을 통해 근로기준법 제6조가 금지하는 ’차별적 대우’란 합리적인 이유 없이 남녀라는 성을 이유로 근로자를 불리하게 취급하는 것을 의미하며, 이때 비교 대상이 되는 노동은 ’동일가치노동’을 포함한다고 일관되게 판시해왔다. 특히 대법원은 ‘동일가치노동’ 여부를 판단하는 구체적인 기준으로 ILO 협약의 정신을 반영하여, 해당 직무를 수행하는 데 필요한 ‘기술(skill), 노력(effort), 책임(responsibility) 및 작업조건(working conditions)’ 이라는 네 가지 요소를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고 명확히 하였다. 이는 비록 법률에 명시되지는 않았으나, 사법 해석을 통해 국제 기준에 부합하는 원칙이 국내법 체계에 실질적으로 수용되었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진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법의 실효성 측면에서는 심각한 문제가 남아있다. 현행 민사소송법 체계 하에서 임금 차별의 존재와 그것이 성별에 기반한 것임을 입증해야 할 책임은 원칙적으로 소를 제기하는 근로자에게 있다. 그러나 임금 구조, 직무 평가, 인사 고과 등 차별을 입증하는 데 필요한 핵심 정보는 대부분 사용자가 독점하고 있다. 근로자가 이러한 정보에 접근하는 것은 매우 어려우며, 설령 일부 정보를 확보하더라도 복잡한 임금 체계 내에서 차별의 인과관계를 명확히 증명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이처럼 원고에게 과도하게 부과된 입증 책임은 사법적 구제를 사실상 봉쇄하는 높은 장벽으로 작용하여, 법 조항의 선언적 의미를 무색하게 만드는 주된 원인이 되고 있다.

이러한 상황은 ’법제화의 역설’이라 부를 만한 현상을 낳는다. 한국은 근로기준법을 통해 성별 임금 차별을 명백히 금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수년째 가장 높은 수준의 성별 임금 격차를 기록하고 있다. 이 명백한 모순은 법의 존재 자체가 문제 해결을 보장하지 않음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문제의 근원은 법의 해석 및 적용 방식과 한국 노동 시장의 구조적 특성이 맞물려 돌아가는 데 있다. 법이 주로 ‘동일한’ 노동에 초점을 맞추어 협소하게 적용되고, 사법 구제의 문턱이 지나치게 높은 현실 속에서, 남성과 여성이 애초에 다른 직종에 종사하는 성별 직종 분리 현상이 만연한 구조는 법의 영향력 밖에 놓이게 된다. 대법원이 ’동일가치노동’이라는 진일보한 법리를 제시했음에도, 이것이 개별 소송에서 사후적으로 판단될 뿐 기업 현장에서 직무 가치를 사전에 평가하고 임금 체계를 설계하는 보편적 제도로 정착되지 않은 것이다. 결국 법은 존재하지만, 그 법이 효과적으로 작동하기 위한 전제 조건(보편적 직무평가 시스템)이 부재하고 법 적용의 문턱(입증 책임)이 높아, 법의 존재가 오히려 구조적 문제를 가리는 착시 효과를 낳는 역설적 상황에 처해 있다.

2.2 경제학적 접근

2.2.1 인적자본이론과 정당한 임금 격차

경제학적 관점에서 임금은 기본적으로 근로자의 생산성을 반영하는 것으로 간주된다. 제이콥 민서(Jacob Mincer)에 의해 정립된 인적자본이론(Human Capital Theory)은 이러한 관계를 설명하는 대표적인 틀이다. 민서 임금방정식은 개인의 임금(W)이 교육 수준(S), 노동 시장 경력(X) 등 인적 자본 변수에 의해 결정되는 관계를 수식으로 표현한다.

ln(W) = \beta_0 + \beta_1S + \beta_2X + \beta_3X^2 + \varepsilon

위 식에서 ln(W)는 임금의 자연로그 값, S는 교육 연수, X는 경력을 나타낸다. X^2 항은 경력이 쌓임에 따라 임금 상승률이 체감하는 현상을 반영한다. 이 모델에 따르면, 만약 남성과 여성이 교육 수준이나 경력 등 생산성과 관련된 특성에서 체계적인 차이를 보인다면, 그에 따른 임금 격차는 차별이 아닌 ’정당한 격차’로 설명될 수 있다. 예를 들어, 출산 및 육아로 인한 여성의 경력 단절은 평균적인 인적 자본 수준을 낮추어 임금 격차의 일부를 유발하는 요인이 될 수 있다. 따라서 성별 임금 격차를 분석할 때는 이러한 인적 자본 요인을 먼저 통제하여, 생산성 차이로 설명되지 않는 부분이 어느 정도인지를 식별하는 것이 중요하다.

2.2.2 차별 이론

인적 자본 이론으로 설명되지 않는 임금 격차, 즉 동일한 생산성을 가진 남성과 여성이 서로 다른 임금을 받는 현상은 ’차별’의 존재를 시사한다. 경제학에서는 차별의 원인을 설명하기 위해 여러 이론을 제시해왔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게리 베커(Gary Becker)의 ‘취향 기반 차별(Taste-based Discrimination)’ 이론은 고용주, 동료, 또는 고객이 특정 집단(예: 여성)에 대해 비합리적인 편견이나 선호(taste for discrimination)를 가질 경우, 이들과 함께 일하는 것에 대한 심리적 비용을 느끼고 이를 보상받기 위해 해당 집단에게 더 낮은 임금을 지불하거나 고용을 기피한다고 설명한다. 이 모델에 따르면, 차별적인 고용주는 비차별적인 고용주에 비해 더 높은 비용을 지불해야 하므로 장기적으로는 시장 경쟁에서 도태될 것이라고 예측된다.

반면, ‘통계적 차별(Statistical Discrimination)’ 이론은 차별이 반드시 비합리적인 편견에 기인하는 것은 아니라고 주장한다. 이 이론에 따르면, 고용주는 개별 지원자의 생산성을 완벽하게 파악할 수 없는 불완전한 정보 상황에 놓여 있다. 이때 고용주는 지원자가 속한 집단의 평균적인 특성에 대한 통계적 정보를 개인의 생산성을 예측하는 대리 신호(proxy)로 활용하게 된다. 예를 들어, 고용주가 ’여성 근로자는 남성 근로자에 비해 평균적으로 근속연수가 짧다’는 통계적 관찰에 근거하여, 개별 여성 지원자의 장기 근속 가능성을 낮게 평가하고 채용이나 훈련 투자에서 불이익을 줄 수 있다. 이는 개별 여성의 능력이나 의사와 무관하게 집단의 평균적 특성 때문에 발생하는 차별이다. 특히 이러한 통계적 차별은 출산과 육아 부담이 여성에게 집중되는 현실과 결합하여 ‘어머니됨 불이익(motherhood penalty)’ 현상을 심화시키는 중요한 기제로 작용한다.

2.2.3 임금 격차 분해 방법론

성별 임금 격차의 원인을 계량적으로 분석하기 위해 널리 사용되는 방법론이 오악사카-블라인더 분해(Oaxaca-Blinder Decomposition)이다. 이 방법론은 전체 평균 임금 격차를 두 부분으로 분해한다. 첫 번째는 ’설명 가능한 부분(explained part)’으로, 교육, 경력, 근속연수 등 관찰 가능한 생산성 관련 특성의 집단 간 차이에서 비롯되는 격차이다. 두 번째는 ’설명 불가능한 부분(unexplained part)’으로, 동일한 생산성 특성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발생하는 임금 격차를 의미한다. 이 설명 불가능한 부분은 통상적으로 성별에 따른 차별, 측정되지 않은 생산성 요인의 차이 등을 포함하는 것으로 해석되며, 종종 차별의 크기를 추정하는 대리 지표로 활용된다. 이 방법론을 통해 정책 입안자들은 임금 격차의 원인이 인적 자본 격차에 있는지, 아니면 노동 시장의 차별적 구조에 있는지를 파악하고 그에 맞는 정책을 설계할 수 있다.

이러한 경제학적 분석틀은 임금 차별이 단순한 일회성 사건이 아니라, 개인의 경력 전반에 걸쳐 누적되고 강화되는 동학적 과정(dynamic process)임을 시사한다. 통계적 차별 이론을 동학적 관점에서 재해석하면, 차별의 자기실현적 예언(self-fulfilling prophecy) 메커니즘을 이해할 수 있다. 기업이 ’여성은 출산으로 인해 경력이 단절될 확률이 높다’는 통계적 편견을 가지고 있다고 가정해보자. 이 편견은 기업의 합리적 의사결정, 즉 ’장기적 투자 회수가 불확실한 여성 근로자에게는 비용이 많이 드는 교육·훈련 기회를 적게 제공하자’는 결정으로 이어진다. 그 결과, 여성 근로자는 남성 동료에 비해 기업 특수적 인적 자본을 축적할 기회를 박탈당하게 되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실제 생산성 격차가 발생하거나 확대된다. 이는 다시 임금 격차로 나타나며, 이 관찰된 결과는 “역시 여성은 평균적으로 생산성이 낮아“라는 기업의 초기 편견을 강화하는 근거로 작용한다. 여기에 실제 출산과 육아로 인한 경력 단절이 발생하면, 이 피드백 루프는 급격히 악화되어 격차는 영구적으로 고착화될 수 있다. 따라서 성별 임금 격차는 입사 시점의 차별 문제일 뿐만 아니라, 편견과 실제 결과가 서로를 강화하며 시간이 지남에 따라 격차를 키우는 악순환의 구조를 가지고 있다.

3. 성별 임금 격차의 실증 분석

3.1 임금 격차의 현황과 국제 비교

객관적인 데이터는 한국의 성별 임금 격차 문제의 심각성을 명확히 보여준다. OECD가 발표하는 성별 임금 격차(중위소득 남성 대비 여성의 임금 격차 비율) 통계에 따르면, 한국은 비교 가능한 데이터가 집계된 이래 수년째 부동의 1위를 기록하고 있다. 2022년 기준 한국의 성별 임금 격차는 31.2%로, OECD 평균인 12.1%의 약 2.5배에 달하는 압도적인 수치이다. 이는 한국 남성 근로자가 100만 원을 벌 때 여성 근로자는 약 68만 8천 원을 번다는 의미이다.

임금 격차를 분석할 때는 ’비조정 격차(raw gap)’와 ’조정 격차(adjusted gap)’를 구분할 필요가 있다. 비조정 격차는 남녀 근로자의 평균 임금을 단순 비교한 것으로, 앞서 언급된 OECD 통계가 여기에 해당한다. 반면, 조정 격차는 교육 수준, 경력, 근속연수, 직종, 산업 등 임금에 영향을 미치는 관찰 가능한 요인들을 통제한 후에도 여전히 남는 격차를 의미한다. 한국의 경우, 이러한 요인들을 통제한 후에도 상당한 수준의 조정 격차가 존재한다는 다수의 연구 결과가 있다. 이는 한국의 성별 임금 격차가 단순히 인적 자본이나 직종 선택의 차이만으로는 설명될 수 없으며, 동일한 조건 하에서도 여성이 남성보다 낮은 임금을 받는 직접적인 차별이 노동 시장에 만연할 가능성이 높음을 강력히 시사한다.

3.2 임금 격차의 구조적 원인

한국의 심각한 성별 임금 격차는 단일한 원인이 아닌, 복합적이고 구조적인 요인들이 서로 얽혀 만들어낸 결과이다.

첫째, 산업 및 직종 분리(Industrial and Occupational Segregation) 현상이 매우 심각하다. 여성은 임금 수준이 상대적으로 낮은 서비스업, 보건·복지, 교육 분야에 집중되어 있는 반면, 남성은 임금 수준이 높은 제조업, 정보통신, 금융·보험업 등에 집중되어 있다. 직종별로 보아도 여성은 돌봄, 판매, 사무 보조 등 저임금 직종에 편중되어 있고, 남성은 관리직, 전문가, 기술직 등 고임금 직종에 주로 분포한다. 이처럼 남성과 여성이 종사하는 일자리의 종류 자체가 분리되어 있고, 여성 집중 직종의 가치가 체계적으로 저평가되는 구조는 성별 임금 격차의 가장 근본적인 원인으로 작용한다.

둘째, 경력 단절 및 어머니됨 불이익(Career Interruption and the Motherhood Penalty) 이 여성의 임금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이 막대하다. 한국 여성들은 출산과 육아를 계기로 노동 시장에서 이탈하는 경력 단절을 광범위하게 경험한다. 경력 단절은 그 자체로 인적 자본의 손실과 감가상각을 초래하며, 이후 노동 시장에 재진입하더라도 이전보다 질이 낮은 일자리나 저임금 직종으로 이동할 가능성이 높다. 연구에 따르면, 자녀의 유무는 남성의 임금에는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거나 영향이 없는 반면, 여성의 임금에는 뚜렷한 하락 효과를 가져오는 ’어머니됨 불이익’이 뚜렷하게 관찰된다. 이는 육아 책임이 여성에게 불균등하게 지워지는 사회 구조와 기업 문화가 여성의 경제적 지위를 약화시키는 핵심 기제임을 보여준다.

셋째, 비정규직 문제가 성별 임금 격차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여성은 남성에 비해 시간제, 파견, 계약직 등 비정규직으로 일할 확률이 현저히 높다. 비정규직은 정규직에 비해 임금 수준이 낮을 뿐만 아니라, 사회보험, 퇴직금, 교육 훈련 기회 등에서도 차별을 받는다. 고용 불안정성과 낮은 임금으로 특징지어지는 비정규직 일자리에 여성이 과도하게 집중된 현실은 전체 여성 임금 수준을 하락시키고 임금 격차를 확대하는 중요한 경로가 된다.

넷째, 유리천장(Glass Ceiling) 현상이 견고하게 존재한다. 기업 내 상위 직급으로 올라갈수록 여성의 비율이 급격하게 감소하는 현상은 통계적으로 명확히 확인된다. 이는 여성이 고위 관리직이나 임원으로 승진하는 데 보이지 않는 장벽이 존재함을 의미한다. 승진에서의 차별은 단순히 해당 직급의 임금을 받지 못하는 것을 넘어, 경력 경로 전반에 걸쳐 임금 상승의 기회를 박탈함으로써 임금 격차를 누적적으로 심화시키는 효과를 낳는다.

4. 원칙의 적용과 실제: 직무평가와 법적 쟁점

4.1 ‘노동의 가치’ 측정의 딜레마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 원칙을 법정이나 기업 현장에서 실제로 적용하기 위해서는 ’가치가 동일한 노동’이 무엇인지를 판단할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기준이 필요하다. 서로 다른 직무의 상대적 가치를 체계적으로 평가하는 핵심 도구가 바로 직무평가(Job Evaluation) 시스템이다. 직무평가는 직무를 수행하는 데 요구되는 기술, 노력, 책임, 작업조건 등의 요소를 기준으로 각 직무의 가치를 점수화하고, 이를 통해 직무 간의 서열을 결정하는 방법론이다.

가장 널리 사용되는 점수법(point-factor method)의 경우, 평가 요소를 세분화하고 각 요소별로 등급을 나누어 점수를 부여한 뒤, 이를 합산하여 총점을 산출한다. 예를 들어, ‘기술’ 요소는 학력, 경험, 판단력 등으로, ‘책임’ 요소는 재정적 책임, 감독 책임, 안전 책임 등으로 세분화될 수 있다. 이렇게 산출된 직무평가 점수는 임금 체계 설계의 기초 자료로 활용되어, 직무 가치에 기반한 공정한 임금 격차를 설정하는 데 기여할 수 있다. 캐나다 온타리오 주에서는 공공 부문을 중심으로 직무평가를 의무화하여 여성 집중 직종의 임금을 성공적으로 인상한 사례가 있으며, 이는 직무평가가 임금 격차 해소에 실질적으로 기여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직무평가는 객관성을 표방함에도 불구하고, 그 설계와 운영 과정 자체가 기존의 사회적 편견을 내재화하거나 강화할 위험이 있다는 ’측정의 함정’에 빠질 수 있다. 직무평가의 핵심은 ’평가 요소’를 선정하고 각 요소에 ’가중치’를 부여하는 과정인데, 이는 기술적인 동시에 매우 가치판단적인 과정이다. 이 단계에서 성별에 따른 편견이 개입될 여지가 크다. 예를 들어, 전통적으로 남성 중심적 직무에서 중요하게 여겨지는 ‘육체적 노력’, ‘기계 설비에 대한 책임’, ‘위험한 작업 환경’ 등은 가시적이고 측정하기 용이하여 높은 가중치를 부여받기 쉽다. 반면, 여성 중심적 직무에서 빈번하게 요구되는 ‘감정 노동’, ‘섬세함과 정교함’, ‘복잡한 대인관계 관리 기술’, ‘동시에 여러 과업을 처리하는 능력’ 등은 비공식적이거나 측정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평가 요소에서 아예 누락되거나 현저히 낮은 가치를 부여받을 수 있다.

병원 내 간호사(여성 집중 직종)와 시설관리 기술자(남성 집중 직종)의 직무 가치를 평가하는 가상적인 사례를 생각해보자. 만약 평가 시스템이 ’고가의 의료 장비 관리에 대한 책임’에는 높은 점수를 부여하면서, ’환자의 생명과 안위에 대한 직접적인 책임’이나 ’환자 및 보호자와의 복잡한 의사소통 및 감정적 지원’에는 상대적으로 낮은 점수를 부여한다면, 기술자의 직무 가치가 간호사의 직무 가치보다 높게 평가되는 결과가 나올 수 있다. 이는 두 직무의 본질적 가치를 객관적으로 반영한 결과라기보다는, 사회적으로 형성된 성별 직무 서열과 통념을 평가 도구가 그대로 ’측정’하여 정당화해주는 것에 불과하다. 따라서 직무평가가 불평등을 해소하는 도구가 아니라 기존의 임금 서열을 고착화하는 수단으로 전락할 위험은 상존한다. 성공적인 직무평가는 성 중립적인(gender-neutral) 평가 요소와 가중치를 개발하기 위한 노사 간의 충분한 숙의와 합의, 그리고 사회적 성찰을 반드시 전제해야 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동일노동’과 ’동일가치노동’의 개념적 차이를 명확히 이해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아래 표는 두 개념의 핵심적인 차이를 법적, 실천적 관점에서 비교하여 제시한다.

4.1.0.1 표 1: ’동일노동’과 ’동일가치노동’의 법적 개념 비교
구분 (Category)동일노동 동일임금 (Equal Pay for Equal Work)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 (Equal Pay for Work of Equal Value)
정의 (Definition)동일하거나 실질적으로 유사한 업무 (Identical or substantially similar tasks)기술, 노력, 책임, 작업 조건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했을 때 그 가치가 동등하다고 인정되는 업무 (Tasks considered of equal value based on skill, effort, responsibility, and working conditions)
판단 기준 (Criteria)직무 내용의 유사성, 동일성 (Similarity or identity of job content)직무평가 도구를 통한 객관적 가치 평가 (Objective value assessment via job evaluation tools)
주요 해결 과제 (Primary Target)동일 직무 내 성별에 따른 직접 차별 (Direct discrimination within the same job)성별 직종 분리에 따른 구조적, 간접적 차별 (Structural and indirect discrimination arising from occupational segregation)
법적 근거 예시 (Legal Basis Example)대한민국 근로기준법 제6조 (문언적 해석) (Art. 6 of Korean LSA, literal interpretation)ILO 협약 제100호, EU 지침, 대한민국 대법원 판례
실행의 전제 (Prerequisite for Implementation)남녀가 동일 직무에 혼재되어 근무 (Men and women working in the same jobs)성 중립적 직무평가 시스템의 개발 및 도입

5. 정책적 함의와 미래 전망

5.1 임금 격차 해소를 위한 정책 수단

성별 임금 격차라는 복합적이고 완고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다차원적인 정책적 개입이 필수적이다. 세계 각국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다양한 정책 수단을 도입하고 있으며, 그 효과와 한계를 분석하여 한국적 맥락에 맞는 정책 조합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가장 주목받는 정책 중 하나는 임금 정보 투명성 강화이다. 정보의 비대칭성은 차별이 발생하고 유지되는 핵심적인 조건이다. 근로자가 자신의 임금이 동료나 다른 직무에 비해 부당하게 낮은지조차 알 수 없다면 차별 시정을 요구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 이러한 문제의식 하에 아이슬란드, 영국, 독일 등 여러 유럽 국가들은 기업이 성별 임금 격차 현황을 의무적으로 분석하고 공개하도록 하는 ’임금공시제’를 도입하였다. 아이슬란드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일정 규모 이상의 기업에 대해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을 실현하고 있음을 정부로부터 인증받도록 의무화했다. 이러한 정책은 기업으로 하여금 내부 임금 체계를 스스로 점검하게 하고, 대외 평판과 사회적 압력을 통해 자발적인 개선을 유도하는 효과가 있다.

그러나 임금 투명성 강화 정책이 만병통치약은 아니며, ’투명성의 양날의 검’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유의해야 한다. 정책의 일차적이고 의도된 효과는 기업이 소송 리스크나 평판 하락을 우려하여 격차를 줄이려는 노력을 하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하지만 기업의 위험 회피 전략은 의도치 않은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 소송의 빌미를 주지 않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논란의 여지가 없는, 즉 재량권을 최소화하고 모든 것을 표준화한 경직된 임금 체계를 만드는 것이다. 이는 개인별 성과급이나 인상률 차등을 줄이고 모든 직원을 좁은 임금 밴드(pay band) 안에 묶어두려는 유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그 결과, 성별과 무관하게 뛰어난 성과를 내는 고성과자들이 충분한 보상을 받지 못해 이탈하거나, 기업 전체의 혁신 동력이 저하될 수 있다. 심지어 기업이 낮은 임금을 받는 직원의 임금을 인상하는 대신, 높은 임금을 받는 직원의 임금을 동결하거나 삭감하여 ‘하향 평준화’ 방식으로 격차를 줄이려는 손쉬운 해결책을 택할 수도 있다. 따라서 투명성 정책은 반드시 공정한 직무가치 평가 시스템의 확립, 성과평가의 공정성 확보 등 보완적 정책과 함께 추진되어야만 ’공정성’이 ’획일성’이나 ’하향 평준화’로 변질되는 것을 막을 수 있다.

이 외에도 **적극적 고용개선조치(Affirmative Action)**를 통해 공공 부문과 민간 기업에 여성 고용 및 관리자 비율 목표를 설정하고 이행을 독려하는 정책, 정부가 중소기업 등이 활용할 수 있는 표준화된 성 중립적 직무평가 도구를 개발하여 보급하는 정책 등도 효과적인 수단이 될 수 있다.

5.2 기업의 역할과 미래 기술의 영향

임금 격차 해소는 더 이상 정부의 규제나 사회적 압력에 수동적으로 대응하는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최근 강조되는 ESG(환경, 사회, 지배구조) 경영 패러다임 하에서, 성 평등과 공정한 임금 체계는 기업의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한 핵심적인 전략적 자산으로 인식되고 있다. 공정한 보상 시스템을 갖춘 기업은 우수한 여성 인재를 유치하고 유지하는 데 유리하며, 이는 곧 기업의 경쟁력 강화로 이어진다. 또한, 임금 평등을 위해 노력하는 기업은 긍정적인 사회적 평판을 얻어 브랜드 가치를 높이고, 투자자들로부터 사회적 책임(S)을 다하는 기업으로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다. 따라서 기업은 법규 준수를 넘어, 다양성과 포용(D&I)의 가치를 내재화하고 임금 평등을 경영의 핵심 목표로 설정하는 적극적인 자세를 취해야 한다.

한편, 인공지능(AI)과 플랫폼 노동으로 대표되는 미래 기술의 발전은 임금 평등에 양면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된다. AI 기반의 채용 및 성과평가 시스템은 인간 평가자의 주관적 편견이나 고정관념을 배제하고, 오직 데이터에 기반한 객관적인 의사결정을 내릴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 이는 채용 및 승진 과정의 공정성을 높이는 데 기여할 수 있다. 그러나 동시에 심각한 위험도 내포하고 있다. 만약 AI 알고리즘이 과거의 성차별적 데이터, 즉 남성 중심적인 채용 및 승진 패턴이 담긴 데이터를 학습할 경우, AI는 기존의 차별 구조를 그대로 학습하고 오히려 더 정교하고 은밀한 방식으로 이를 재생산하고 고착화시킬 위험이 있다. ’알고리즘적 차별’은 그 원인을 파악하고 시정하기가 매우 어렵다는 점에서 새로운 정책적 과제를 제기한다. 따라서 기술의 잠재력을 긍정적으로 활용하기 위해서는 알고리즘의 투명성과 공정성을 담보하기 위한 사회적, 기술적, 법적 규제 방안에 대한 깊이 있는 논의가 시급하다.

5.3 결론: 종합적 제언

본 안내서는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 원칙을 법적, 경제학적, 실증적, 정책적 관점에서 다층적으로 분석하였다. 분석 결과, 한국의 심각한 성별 임금 격차는 법 제도의 미비, 노동 시장의 구조적 문제, 사회문화적 편견, 기업의 관행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이며,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단편적인 접근을 넘어선 종합적이고 체계적인 전략이 요구됨을 확인하였다. 지속 가능한 임금 평등 사회로 나아가기 위해 다음과 같은 다차원적 정책 조합을 제언한다.

첫째, 법제도 개선이 시급하다. 근로기준법에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 원칙을 명문화하여 법적 해석의 불확실성을 제거하고, 원칙의 이념을 명확히 해야 한다. 또한, 임금 차별 소송에서 정보 접근성이 취약한 근로자의 입증 책임을 완화하고, 사용자가 합리적인 이유를 들어 차별이 아님을 입증하도록 책임을 전환하는 방안을 적극적으로 검토해야 한다.

둘째, 적극적인 정책적 지원이 필요하다. 정부는 신뢰성 있는 성 중립적 직무평가 모델을 개발하여 중소기업을 중심으로 보급하고 컨설팅을 지원해야 한다. 임금공시제는 기업의 규모와 준비 상황을 고려하여 단계적으로 도입을 확대하고, 실효성 있는 제재 및 인센티브 방안을 함께 마련해야 한다. 근본적으로는 여성이 경력 단절을 겪지 않도록 국공립 보육 인프라를 획기적으로 확충하고, 남성 육아휴직을 의무화하여 돌봄의 책임을 남녀가 함께 나누는 사회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셋째, 기업의 자발적 변화를 유도해야 한다. 정부는 ESG 평가 지표에 성별 임금 격차 항목의 비중을 높이고, 격차 개선 우수 기업에 세제 혜택이나 공공 조달 가점 등 실질적인 인센티브를 제공해야 한다. 기업 스스로도 임금 평등을 단순한 비용이 아닌, 장기적인 성장을 위한 투자로 인식하고, 최고경영진의 리더십 하에 임금 체계를 투명하게 공개하고 개선하려는 노력을 경주해야 한다.

넷째, 사회적 인식 개선을 위한 노력이 병행되어야 한다. ’여성의 일’은 본질적으로 가치가 낮다는 사회적 편견을 해소하고, 돌봄 노동과 감정 노동의 사회적, 경제적 가치를 재평가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성 역할 고정관념을 타파하고, 남성과 여성 모두 자신이 원하는 분야에서 동등한 기회를 갖고 잠재력을 발휘할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한 지속적인 교육과 캠페인이 요구된다.

이러한 법적, 정책적, 기업적, 사회적 차원의 노력들이 서로 유기적으로 결합되고 시너지를 창출할 때, 비로소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 원칙은 법전 속의 문구가 아닌, 모든 근로자의 삶 속에서 실현되는 정의의 원칙으로 뿌리내릴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