년 AI 및 로봇 연구 동향
1. 서론
1990년대는 인공지능(AI) 역사에서 중요한 전환기로, 소위 ’AI 겨울(AI Winter)’이라 불리던 연구 침체기를 지나 새로운 가능성이 모색되던 시기였다. 특히 1991년 월드 와이드 웹(World Wide Web)의 등장은 데이터 공유의 패러다임을 바꾸었고 1, 지속적인 컴퓨팅 파워의 증대는 과거에는 불가능했던 계산 집약적 접근법을 현실화하고 있었다. 이러한 기술사적 맥락 속에서 1997년은 인공지능과 로봇 공학 분야에서 극적인 이정표들이 세워진 해로 기록된다. 이 해에는 고전적 상징주의 AI가 대중적 정점에 도달하는 기념비적 사건과, 21세기 딥러닝 혁명의 이론적 초석이 될 핵심 아이디어가 동시에 발표되는 흥미로운 양상이 펼쳐졌다.
한편으로, IBM의 슈퍼컴퓨터 딥블루(Deep Blue)가 세계 체스 챔피언을 꺾은 사건은 기계가 인간 지성의 상징적 영역을 정복할 수 있음을 전 세계에 각인시켰다. 이는 막대한 계산 능력으로 정의된 문제 공간을 탐색하는 기호주의 AI 접근법의 화려한 성공이었다. 다른 한편으로는, 당시에는 크게 주목받지 못했지만 제프 호크라이터(Sepp Hochreiter)와 위르겐 슈미트후버(Jürgen Schmidhuber)가 발표한 장단기 기억(Long Short-Term Memory, LSTM) 모델은 순환 신경망의 근본적인 한계를 극복할 이론적 돌파구를 제시하며 훗날 딥러닝 시대의 서막을 열었다. 여기에 더해, NASA의 소저너(Sojourner) 로버가 인류 최초로 화성 표면을 자율적으로 탐사한 것은 로봇 공학이 지구를 넘어 외계 행성이라는 극한 환경으로 그 활동 영역을 확장했음을 의미했다.
본 보고서는 1997년에 발표된 이 세 가지 핵심 이정표—딥블루, LSTM, 소저너—를 중심으로 각각의 기술적 성과를 심층적으로 분석하고 그 역사적 의의를 탐구한다. 더 나아가, AAAI-97, NIPS 1997, ICRA 1997 등 당시 주요 학술대회에서 논의된 핵심 연구 동향을 조망함으로써, 1997년이 AI와 로봇 공학의 패러다임 전환 과정에서 어떠한 전환점(inflection point)으로 작용했는지 다각적으로 고찰하고자 한다. 이를 통해 1997년이 단순히 개별적인 성공 사례들이 나타난 해가 아니라, 과거의 패러다임이 정점에 달하고 미래의 패러다임이 조용히 잉태된, 역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변곡점이었음을 밝히는 것을 목표로 한다.
2. 상징적 AI의 정점: IBM 딥블루와 카스파로프의 대결
2.1 세기의 대결: 개요 및 역사적 의의
1997년 5월, IBM이 개발한 체스 전용 슈퍼컴퓨터 딥블루가 당시 10년 이상 세계 챔피언 자리를 지키고 있던 가리 카스파로프(Garry Kasparov)를 6번의 공식 대국 끝에 3.5 대 2.5(2승 1패 3무)로 꺾는 역사적인 사건이 발생했다.1 이는 기계가 인간 지성의 최고봉으로 여겨지던 체스라는 영역에서 현존하는 최고의 인간을 이긴 최초의 사례로, 인공지능 역사상 가장 상징적인 순간 중 하나로 평가된다.5
이 대결은 단순한 체스 경기를 넘어, 기계 지능의 잠재력에 대한 전 세계적인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딥블루의 승리는 주요 언론의 1면을 장식했으며 7, AI가 특정 분야에서 인간의 능력을 초월할 수 있다는 사실을 대중에게 명확히 각인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이 사건은 본질적으로 전문가 시스템(expert system)과 기호주의(symbolic AI) 접근법이 거둔 기념비적인 성공이었다. 즉, 인간 전문가의 지식을 정교한 규칙과 평가 함수로 코드화하고, 이를 막대한 계산 능력으로 실행하여 최적의 해를 찾아내는 ‘무차별 탐색(brute-force search)’ 패러다임의 유효성을 극적으로 입증한 것이다.8 딥블루의 승리는 지능이 반드시 인간과 같은 방식으로 작동할 필요는 없으며, 압도적인 계산 능력 또한 지능적 행동을 구현하는 강력한 수단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2.2 딥블루의 아키텍처: 무차별 탐색의 힘
딥블루의 경이로운 체스 실력은 특정 문제(체스) 해결에 극도로 최적화된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의 결합을 통해 가능했다. 이는 알고리즘의 혁신이라기보다는, 기존의 검증된 알고리즘을 하드웨어 수준에서 가속하여 계산 능력의 한계를 돌파하려는 공학적 성취의 정점이었다.
2.2.1 하드웨어: 대규모 병렬 처리와 VLSI 체스 칩
딥블루의 심장은 IBM RS/6000 SP라는 슈퍼컴퓨터를 기반으로 한 대규모 병렬 처리 시스템이었다.8 이 시스템은 30개의 노드(PowerPC 프로세서)로 구성되었으며, 각 노드는 16개의 맞춤형 VLSI(초고밀도 집적회로) “체스 칩“을 제어하는 구조였다.8 총 480개의 체스 칩이 병렬로 작동하며 체스 연산을 수행했다.8
각각의 VLSI 칩은 체스 게임에 필요한 핵심 기능들, 즉 가능한 모든 수를 생성하는 수 생성기(move generator), 체스판의 유불리를 판단하는 평가 함수(evaluation function), 그리고 탐색 과정을 제어하는 탐색 제어 로직(search control logic)을 하드웨어에 직접 구현한 주문형 반도체(ASIC)였다.8 이 특화된 하드웨어 덕분에 각 칩은 초당 200만에서 250만 개의 체스 포지션을 독립적으로 탐색할 수 있었고 10, 시스템 전체적으로는 초당 평균 1억 개, 최대 2억 개의 포지션을 평가하는 압도적인 계산 능력을 달성할 수 있었다.8 이러한 구조는 딥블루의 승리가 순수한 소프트웨어의 힘이 아닌, 특정 목적을 위해 설계된 하드웨어 가속에 크게 의존했음을 명확히 보여준다.
2.2.2 소프트웨어: 알파-베타 가지치기 알고리즘과 평가 함수
딥블루의 소프트웨어는 이러한 막대한 하드웨어 자원을 효율적으로 활용하여 최적의 수를 찾아내는 역할을 수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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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색 알고리즘: 딥블루의 핵심 탐색 알고리즘은 1950년대에 고안된 고전적인 **알파-베타 가지치기(Alpha-Beta Pruning)**였다.7 이 알고리즘은 양쪽 경기자가 최선의 수를 둔다고 가정하는 최소극대화(Minimax) 탐색을 기반으로 하되, 특정 분기를 탐색하는 것이 최종 결과에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이 명백한 경우 해당 분기 전체를 탐색에서 제외하는 ’가지치기’를 수행한다.10 이를 통해 전체 탐색 공간을 극적으로 줄여 더 깊은 수까지 예측하는 것이 가능하다. 딥블루는 이 알고리즘을 대규모 병렬 환경에서 효과적으로 실행하기 위해, 마스터 프로세서가 게임 트리의 상위 레벨을 탐색한 후 ’잎 노드(leaf positions)’를 워커 노드들에게 분배하고, 각 워커 노드는 다시 VLSI 칩을 이용해 트리의 가장 깊은 부분을 탐색하는 계층적 구조를 사용했다.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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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가 함수: 딥블루의 ’체스 지능’은 본질적으로 수많은 체스 지식이 녹아있는 정교한 평가 함수(Evaluation Function)에 있었다. 평가 함수는 특정 체스판의 상태가 각 플레이어에게 얼마나 유리한지를 하나의 수치 점수로 변환하는 역할을 한다.15 딥블루의 평가 함수는 단순히 기물의 점수 합계를 계산하는 수준을 넘어, 킹의 안전성, 폰의 구조, 중앙 장악력, 기물의 활동성, 특정 기물이 갇혔는지 여부 등 수많은 전략적, 전술적 요소를 고려했다.10 이 함수는 수천 개의 그랜드마스터 게임을 통계적으로 분석하여 매개변수를 미세 조정했으며, 최종적으로는 특정 게임 상황에 맞춰진 8,000개 이상의 개별 평가 요소로 구성되었다.8 이는 인간 체스 마스터들의 직관과 경험을 명시적인 규칙과 가중치로 코드화한 전문가 시스템의 결정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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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색 깊이 및 지식 베이스: 이 강력한 하드웨어와 효율적인 소프트웨어의 결합으로 딥블루는 일반적으로 6수에서 8수(ply, 한 플레이어의 한 번의 움직임) 깊이까지의 모든 경우의 수를 탐색할 수 있었으며, 전술적으로 중요한 국면에서는 20수 혹은 그 이상까지도 내다볼 수 있었다.8 또한, 4,000개 이상의 오프닝 포지션과 70만 개 이상의 그랜드마스터 게임 기록을 데이터베이스로 구축하여, 경기 초반에는 이 지식 베이스를 활용해 인간 최고수준의 수를 두었다.8
2.3 딥블루의 승리가 남긴 유산과 지능에 대한 논쟁
딥블루의 승리는 AI가 인간 고유의 지적 영역으로 간주되던 전략적 사고에서 인간을 능가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며 대중에게 큰 충격을 안겨주었다. 그러나 학계와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이것이 ’진정한 지능’인가에 대한 깊은 논쟁을 촉발시켰다. 딥블루는 스스로 학습하거나 새로운 전략을 창조하는 것이 아니라, 사전에 프로그래밍된 방대한 지식과 평가 함수를 기반으로 압도적인 계산을 통해 최적의 수를 ‘찾아내는’ 방식이었기 때문이다.7 즉, 지능을 거대한 ’탐색 문제’로 정의하고 이를 계산 능력으로 정복한 사례였다.
이 역사적 사건의 중요성을 인식한 학계는 AAAI-97 학회에서 “딥블루 대 카스파로프: 인공지능에 대한 중요성(Deep Blue Versus Kasparov: The Significance for Artificial Intelligence)“이라는 특별 워크숍을 개최하여 그 의미를 집중적으로 논의했다.19 이 워크숍은 딥블루의 승리가 AI 연구에 던지는 질문들, 예를 들어 지능에서 계산과 지식의 역할, 인간과 기계의 협력 가능성 등을 탐구하는 장이 되었다.
결론적으로 딥블루는 상징주의 AI의 한계를 명확히 드러냄과 동시에, 복잡한 문제 해결에 있어 계산 능력의 중요성을 부각시키는 이중적인 유산을 남겼다. 이는 지능이 단 하나의 방식으로 구현되는 것이 아님을 보여주었으며, 이후 데이터로부터 스스로 학습하는 머신러닝 패러다임이 부상하는 계기를 마련하는 데 역설적으로 기여했다.
3. 순환 신경망의 혁신: LSTM(Long Short-Term Memory)의 탄생
딥블루가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상징주의 AI의 정점을 과시하던 1997년, 학계에서는 조용하지만 훨씬 더 근본적인 변화의 씨앗이 뿌려지고 있었다. 제프 호크라이터와 위르겐 슈미트후버가 발표한 장단기 기억(LSTM) 모델은 당시 주류였던 순환 신경망(RNN)의 고질적인 문제를 해결하고, 훗날 딥러닝 혁명의 핵심 동력으로 자리 잡게 될 혁신적인 아이디어였다.
3.1 기존 순환 신경망(RNN)의 근본적 한계: 기울기 소실 문제
1997년 이전의 순환 신경망은 시계열 데이터나 자연어와 같이 순서가 있는 데이터를 처리하는 데 있어 이론적 잠재력을 인정받고 있었다. RNN은 네트워크 내부에 순환 연결을 두어 이전 시점의 정보를 현재의 계산에 활용하는 ‘기억’ 능력을 갖추고 있었기 때문이다.20 하지만 실제 응용에서는 입력 시퀀스의 길이가 조금만 길어져도 제대로 학습하지 못하는 치명적인 한계를 보였다.
이 문제의 근원은 기울기 소실(vanishing gradient) 또는 기울기 폭주(exploding gradient) 현상이었다. RNN을 학습시키는 역전파 알고리즘(Backpropagation Through Time, BPTT)은 시간의 흐름을 거슬러 올라가며 오차 기울기(error gradient)를 전파하는데, 이 과정에서 기울기는 각 시점을 지날 때마다 반복적으로 곱셈 연산을 거치게 된다. 만약 곱해지는 값이 1보다 작으면 기울기는 지수적으로 감소하여 0에 수렴하고(기울기 소실), 1보다 크면 지수적으로 증가하여 발산한다(기울기 폭주). 제프 호크라이터는 이미 1991년 그의 독일 디플로마 논문에서 이 문제를 수학적으로 깊이 있게 분석하며, 장기 의존성(long-term dependency) 학습이 어려운 근본 원인을 규명했다.20
기울기 소실 문제는 네트워크가 멀리 떨어진 과거의 중요한 정보(예: 문장의 맨 처음에 나온 주어)를 현재의 학습(예: 문장 끝의 동사 형태 결정)에 반영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이는 RNN이 이름과 달리 ’장기 기억’을 형성하는 데 실패했음을 의미했다.20
3.2 장단기 기억 모델의 제안: 구조와 원리
1997년, 제프 호크라이터와 위르겐 슈미트후버는 학술지 Neural Computation에 발표한 논문 “Long Short-Term Memory“를 통해 이 근본적인 한계를 극복할 새로운 아키텍처를 제안했다.20 LSTM은 더 많은 계산 자원을 투입하는 방식이 아니라, 정보의 흐름을 제어하는 영리한 구조적 해법을 통해 문제를 해결했다.
3.2.1 핵심 아키텍처: 메모리 셀과 게이트 메커니즘
LSTM의 가장 중요한 혁신은 기존 RNN의 은닉 상태(hidden state) 외에 **메모리 셀(memory cell)**이라는 별도의 정보 흐름 경로를 도입한 것이다. 이 셀은 장기 기억을 저장하는 역할을 하며, 네트워크의 주된 정보 흐름과 분리되어 시간에 따라 정보를 거의 그대로 보존할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23
이 메모리 셀에 정보를 쓰고, 읽고, 지우는 과정은 **게이트(gate)**라고 불리는 세 개의 신경망 유닛에 의해 정교하게 통제된다. 1997년 원본 논문에서는 두 개의 게이트를 제안했다.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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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게이트(Input Gate): 현재 시점의 새로운 정보 중 어떤 것을 메모리 셀에 저장할지를 결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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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력 게이트(Output Gate): 메모리 셀에 저장된 정보 중 어떤 것을 현재 시점의 출력과 다음 은닉 상태로 내보낼지를 결정한다.
이 게이트들은 시그모이드(sigmoid) 활성화 함수를 사용하여 0과 1 사이의 값을 출력하는데, 이 값은 정보가 얼마나 통과할 수 있는지를 조절하는 ‘밸브’ 역할을 한다. 예를 들어, 입력 게이트의 출력이 0에 가까우면 새로운 정보는 거의 차단되고, 1에 가까우면 온전히 셀에 반영된다. 이러한 메커니즘을 통해 LSTM은 중요한 정보는 오랫동안 보존하고, 불필요한 정보는 걸러내는 선택적 기억 능력을 학습하게 된다. (참고로, 현재 표준 LSTM 구조의 핵심 요소인 **망각 게이트(Forget Gate)**는 1999년 Felix Gers 등에 의해 추가되어 메모리 셀의 정보를 언제 지울지를 결정하는 기능이 보완되었다 23).
3.2.2 수학적 원리: 불변 오류 회전목마(Constant Error Carousel, CEC)
기울기 소실 문제를 해결한 수학적 핵심은 **불변 오류 회전목마(Constant Error Carousel, CEC)**라는 개념에 있다. 메모리 셀의 상태 c는 이전 시점의 상태 c_{t-1}에 새로운 정보를 더하는 매우 단순한 선형적 연산으로 업데이트된다. 기존 RNN처럼 복잡한 비선형 활성화 함수를 거치지 않고, 가중치가 1.0으로 고정된 자기 순환 연결(self-recurrent connection)을 갖는다.24
시간 t에서의 셀 상태 c_t는 다음과 같이 표현될 수 있다. (여기서 f_t는 망각 게이트, i_t는 입력 게이트, \tilde{c}_t는 새로운 후보 정보이다. 1997년 원본 모델에서는 망각 게이트가 없었으므로 f_t=1로 간주할 수 있다.)
c_t = f_t \odot c_{t-1} + i_t \odot \tilde{c}_t
역전파 과정에서 손실 함수 E를 c_{t-1}에 대해 편미분하면, 연쇄 법칙에 따라 다음과 같이 전개된다.
\frac{\partial E}{\partial c_{t-1}} = \frac{\partial E}{\partial c_t} \frac{\partial c_t}{\partial c_{t-1}} = \frac{\partial E}{\partial c_t} \odot f_t
망각 게이트 f_t가 1에 가까운 값을 갖도록 학습된다면, 오차 기울기 \partial E / \partial c_t는 거의 감쇠 없이 그대로 과거 시점 t-1로 전달된다. 즉, 오류의 흐름이 일정하게 유지되어(constant error flow) 기울기 소실이 발생하지 않는 것이다.20 게이트들은 바로 이 불변의 오류 흐름을 언제 열고 닫을지를 학습하여, 필요한 정보만 장기적으로 보존하고 불필요한 정보는 잊도록 제어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3.3 LSTM의 초기 영향과 딥러닝 시대의 서막
LSTM은 발표 당시 딥블루와 같은 즉각적인 대중적 주목을 받지는 못했다. 그러나 논문에서 저자들은 최소 1000 타임스텝 이상의 시간 간격을 가진 인공적인 장기 의존성 문제들을 기존의 어떤 RNN 알고리즘보다도 빠르고 성공적으로 해결할 수 있음을 실험적으로 증명했다.20
이 연구는 딥블루가 보여준 공학적 성취와는 다른, 근본적인 과학적 돌파구의 성격을 띠었다. 그 진정한 가치는 2010년대에 들어 GPU 컴퓨팅의 발전과 대규모 데이터셋의 등장과 맞물리면서 비로소 폭발적으로 발현되었다. 이후 LSTM과 그 변형 모델들은 음성 인식, 기계 번역, 문장 생성, 감성 분석 등 거의 모든 자연어 처리 및 시계열 데이터 분석 분야에서 최첨단(state-of-the-art) 성능을 달성하며 딥러닝 혁명을 이끄는 핵심 동력이 되었다. 1997년의 이 조용한 논문 한 편은, 미래 AI 기술의 패러다임을 바꾼 가장 중요하고 선구적인 연구 중 하나로 역사에 기록되었다.
4. 로봇 공학의 새로운 지평: 화성 탐사 로버 소저너
1997년은 인공지능의 이론적, 상징적 발전뿐만 아니라 로봇 공학이 인류의 활동 영역을 물리적으로 확장한 기념비적인 해이기도 했다. NASA의 마스 패스파인더 임무를 통해 화성 표면에 성공적으로 착륙하고 임무를 수행한 소저너 로버는, 로봇이 지구를 넘어 미지의 외계 행성을 탐사하는 새로운 시대의 개막을 알렸다.
4.1 인류 최초의 외계 행성 로버: 임무 개요와 목표
1997년 7월 4일, 소저너는 마스 패스파인더 착륙선과 함께 화성의 아레스 발리스(Ares Vallis) 지역에 착륙했다. 이는 지구-달 시스템을 벗어난 행성 표면에서 활동한 최초의 로봇 로버였다.25 무게 10.6 kg의 작은 크기였던 소저너의 주된 임무는 화성의 혹독한 환경에서 로버의 핵심 기술들을 시험하고 검증하는 기술 실증(proof-of-concept)에 있었다.26
소저너는 당초 7솔(sol, 화성의 하루 단위)의 설계 수명을 가졌으나, 이를 훨씬 뛰어넘는 83솔(약 85 지구일) 동안 활동했다. 이 기간 동안 약 100미터의 거리를 이동하며 16개의 암석 및 토양 샘플에 대한 화학적 분석을 수행하고, 550장 이상의 이미지를 전송하는 등 기대 이상의 과학적 성과를 거두었다.28 소저너의 성공은 이후 스피릿(Spirit), 오퍼튜니티(Opportunity), 큐리오시티(Curiosity) 등으로 이어지는 본격적인 화성 로버 탐사의 기술적 토대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큰 의의를 가진다.
4.2 소저너의 핵심 기술 분석
소저너의 성공은 극한의 환경과 엄격한 자원 제약 하에서 다양한 공학 기술을 성공적으로 통합한 결과였다. 특히 기동성과 자율 항법 기술은 후속 로버들에게도 큰 영향을 미쳤다.
4.2.1 기계 시스템: 로커-보기(Rocker-Bogie) 서스펜션
소저너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는 6개의 바퀴에 적용된 로커-보기(Rocker-Bogie) 서스펜션 시스템이었다. 이 독특한 기계적 구조는 한쪽의 3개 바퀴를 ’로커(rocker)’라 불리는 큰 연결부에, 다시 앞바퀴와 뒷바퀴를 ’보기(bogie)’라는 작은 연결부에 묶는 방식이다. 이 설계는 다음과 같은 장점을 제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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험지 주행성: 각 바퀴가 지형의 굴곡에 따라 독립적으로 움직일 수 있어, 매우 거칠고 울퉁불퉁한 지형에서도 6개의 바퀴 모두가 항상 지면과의 접촉을 유지하도록 한다. 이를 통해 로버는 자신의 바퀴 지름(13 cm) 크기의 장애물도 안정적으로 넘어설 수 있었다.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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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성: 차체의 기울어짐을 최소화하면서 장애물을 극복할 수 있어, 전복의 위험을 크게 줄였다.
이 로커-보기 시스템의 뛰어난 성능과 신뢰성은 이후 NASA의 모든 화성 탐사 로버에 표준 기술로 채택될 만큼 성공적이었다.28
4.2.2 자율 항법 및 장애물 회피 기술: 레이저 스트라이프 시스템
소저너는 완전한 자율 주행 로봇은 아니었지만, 제한된 상황에서 스스로 장애물을 감지하고 회피할 수 있는 중요한 자율 항법 기능을 탑재하고 있었다. 이 기능의 핵심은 전방에 장착된 한 쌍의 흑백 스테레오 카메라와 5개의 레이저 다이오드로 구성된 **위험 감지 시스템(Hazard Detection System)**이었다.26
이 시스템의 작동 원리는 구조광(structured light)을 이용한 3차원 인식 기술에 기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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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저 투사: 로버가 이동 중 잠시 멈추면, 5개의 레이저 중 하나가 전방 지형에 얇은 수평선을 투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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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촬영 및 차감: 스테레오 카메라는 레이저를 끈 상태의 이미지와 켠 상태의 이미지를 연속으로 촬영한다.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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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물 인식: 컴퓨터는 두 이미지의 차이를 계산하여 주변광의 영향을 제거하고 밝은 레이저 선만을 정확하게 추출한다. 평탄한 지형에서는 이 선이 직선으로 보이지만, 돌이나 구덩이 같은 장애물이 있으면 선이 왜곡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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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D 맵 생성 및 경로 수정: 스테레오 카메라의 시차를 이용해 왜곡된 레이저 선의 각 지점에 대한 3차원 좌표를 삼각 측량법으로 계산한다. 이를 통해 전방의 지형도를 생성하고, 위험하다고 판단되는 장애물이 있으면 이를 피해갈 수 있는 새로운 경로를 자율적으로 계산하여 움직인다.27
이 과정은 당시 소저너에 탑재된 저성능 8비트 프로세서(Intel 80C85, 2 MHz) 31로 처리하기에 계산적으로 매우 효율적인 방식이었으나, 한 번의 스캔에 약 20초가 소요되고 단 20개의 3차원 지점 데이터만을 생성하는 등 속도와 정밀도에는 명백한 한계가 있었다.30
4.3 원격 조작과 자율성의 균형: 행성 탐사의 근본적 과제
소저너의 임무 수행은 지구와 화성 간의 막대한 거리로 인한 통신 지연 문제라는 근본적인 제약에 직면했다. 신호가 왕복하는 데 최소 8분에서 최대 42분까지 걸리기 때문에, 지구에서 로버를 실시간으로 원격 조종하는 것은 불가능했다.31
따라서 소저너의 운영은 **원격 조작(teleoperation)**과 **자율성(autonomy)**이 결합된 하이브리드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지구의 관제팀은 화성 지형의 3D 모델을 보며 하루 동안 로버가 수행할 일련의 명령(목표 지점, 수행할 과학 임무 등)을 미리 계획하여 전송했다.27 소저너는 이 명령 순서를 따라 이동하다가, 앞서 설명한 위험 감지 시스템을 이용해 예상치 못한 장애물을 만나면 스스로 판단하여 국소적으로 회피 기동을 수행했다.27
결론적으로 소저너의 자율성은 전역적인 경로를 계획하는 높은 수준의 지능이 아니라, 주어진 명령을 안전하게 수행하기 위한 지역적인 위험 회피 기능에 국한되었다. 실제로 임무 기간 동안 자율 기능이 적극적으로 활용되기보다는, 대부분 신중하게 계획된 원격 조작에 의존했다.33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저너의 경험은 행성 탐사와 같은 극한 환경에서 로봇의 자율성이 왜 필수적인지, 그리고 이를 구현하기 위한 기술적 과제가 무엇인지를 명확히 제시했다. 이는 로봇 공학이 추상적인 이론을 넘어, 물리적 세계의 불확실성과 제약 속에서 신뢰성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실용적인 학문임을 보여준 중요한 사례였다.
5. 1997년 학술 지형도: 주요 컨퍼런스 핵심 연구 동향
1997년의 기념비적인 성과들은 진공 속에서 나타난 것이 아니었다. 당시 전 세계의 학술 커뮤니티는 다양한 주제에 대한 깊이 있는 연구를 통해 인공지능과 로봇 공학의 지평을 넓히고 있었다. 그 해에 개최된 주요 학술대회들은 당시 연구의 최전선이 어디였으며, 어떤 아이디어들이 미래를 향해 싹트고 있었는지를 보여주는 중요한 지표이다. 이 시기 학계의 동향은 AI와 로봇 공학이 더 이상 단일한 분야가 아니라, 각자의 방법론과 목표를 가진 여러 전문 분야로 분화하고 성숙해가는 과정을 뚜렷하게 보여준다.
5.1 AAAI-97: 응용 AI와 지능형 시스템의 확장
1997년 7월, 미국 로드아일랜드 프로비던스에서 개최된 제14회 미국 인공지능 학회(AAAI-97)는 AI 기술을 실제 문제에 적용하려는 노력이 확산되고 있음을 보여주었다.35 학회에서 다루어진 주요 연구 주제는 이동 로봇 제어 아키텍처(Mobile Robot Control Architectures), 데이터 마이닝(Data Mining), 신뢰 네트워크 및 결정 이론적 추론(Belief Networks and Decision-Theoretic Reasoning for AI) 등 실용적이고 응용 지향적인 분야들이었다.35
특히 주목할 만한 것은 역대 최대 규모로 열린 **이동 로봇 경진대회 및 전시회(Mobile Robot Competition and Exhibition)**였다. 총 21개 팀이 참가한 이 행사에서는 복도를 돌아다니며 물건을 가져오는 로봇, 도시 탐색 및 구조 임무를 가정한 로봇, 시선 추적기로 제어되는 로봇 휠체어, 음성과 제스처로 명령을 수행하는 로봇 등 매우 다양한 지능형 로봇 시스템들이 시연되었다.36 이는 로봇 공학 연구가 실험실을 벗어나 인간의 실생활 공간과 상호작용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음을 시사했다.
학술적으로도 중요한 성과들이 발표되었다. 그 해의 **최우수 논문상(Best Paper Awards)**은 통계적 기법을 이용한 자연어 구문 분석, 재사용 가능한 컴포넌트를 활용한 지식 표현 구축, 실시간 명제 추론 등 다양한 분야의 연구에 수여되었다.37 이 중 브라운 대학교 유진 차니악(Eugene Charniak) 교수의 “Statistical Parsing with a Context-Free Grammar and Word Statistics” 논문은 훗날 그 중요성을 인정받아 2015년에 AAAI Classic Paper Award를 수상했다.38 이는 규칙 기반 접근법이 주를 이루던 자연어 처리에 통계적, 확률적 방법론이 본격적으로 도입되는 중요한 흐름을 보여주는 사례였다.
5.2 NIPS 1997: 통계적 학습 이론의 심화
1997년 12월, 미국 콜로라도 덴버에서 열린 신경정보처리시스템학회(NIPS 1997, 현 NeurIPS)는 머신러닝 분야의 이론적 깊이가 더해지고 있던 당시 학계의 분위기를 잘 보여준다.39 NIPS는 신경망 연구에서 출발했지만, 이 시기에는 더 넓은 범위의 통계적 학습 이론을 다루는 최고 권위의 학회로 자리매김하고 있었다.40
1997년 학회의 프로그램과 발표 목록을 살펴보면, 단연 핵심 주제는 **서포트 벡터 머신(Support Vector Machine, SVM)**이었음을 알 수 있다.41 SVM의 창시자 중 한 명인 블라디미르 베이프닉(Vladimir Vapnik)이 직접 SVM에 대한 튜토리얼을 진행했으며 42, 베른하르트 슐코프(Bernhard Schölkopf) 등이 발표한 “Prior Knowledge in Support Vector Kernels“와 같은 핵심 논문들이 큰 주목을 받았다.41 SVM은 강력한 수학적 이론(VC 이론)을 바탕으로 높은 일반화 성능을 보였기 때문에, 1990년대 중후반 머신러닝 연구의 패러다임이 경험적인 신경망 설계에서 엄밀한 이론에 기반한 SVM으로 이동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43
이 외에도 강화 학습(Reinforcement Learning) 41, 그래프 모델(Graphical Models) 42, 베이즈 이론(Bayesian Theory) 등 현대 머신러닝의 근간을 이루는 다양한 이론적 연구들이 활발히 논의되었다. 이는 데이터로부터 지식을 추출하고 불확실성을 모델링하는 통계적 접근법이 AI 연구의 주류로 부상하고 있었음을 명확히 보여준다.
5.3 ICRA 1997: 로봇 공학의 핵심 기술과 응용
1997년 4월, 미국 뉴멕시코 앨버커키에서 개최된 IEEE 국제 로봇 공학 및 자동화 학회(ICRA 1997)는 물리적 세계와 상호작용하는 로봇 시스템의 구현에 초점을 맞춘 연구들의 집결지였다.48
발표된 논문들은 로봇 공학의 광범위하고 근본적인 문제들을 다루었다. 주요 연구 분야는 다음과 같다.
-
조작 및 파지(Manipulation and Grasping): 다중 손가락 로봇 핸드를 이용한 물체 파지 및 조작에 대한 운동학, 정역학적 분석.49
-
이동성(Mobility): 산업 현장을 위한 보행 로봇(walking machine) 개발 및 수동적 동적 보행(passive dynamic walking)에 대한 연구.49
-
자율 항법 및 비전(Autonomous Navigation and Vision): 이동 로봇의 자기 위치 추정(localization) 51, 경로 계획(path planning) 51, 스테레오 비전을 이용한 3차원 형상 인식.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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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로봇 상호작용(Human-Robot Interaction): 햅틱 인터페이스를 이용한 가상현실 상호작용 49, 크레인 조작 보조 시스템.49
특히 우주 정거장에서 사용될 수 있는 자유 비행 우주 로봇(space free-flyers)의 제어 알고리즘 52이나, 시각 장애인의 보행을 돕는 컴퓨터화된 지팡이 ‘GuideCane’ 51과 같은 구체적인 응용 연구들은 로봇 기술이 산업 현장을 넘어 우주, 의료, 복지 등 다양한 분야로 확장될 수 있는 잠재력을 보여주었다.
5.4 기타 주목할 만한 연구: 감성 로봇 키스멧(Kismet)의 등장
1997년을 전후하여 MIT 인공지능 연구소의 신시아 브리질(Cynthia Breazeal)은 인간과의 사회적, 감성적 상호작용을 목표로 하는 로봇 **키스멧(Kismet)**을 개발하여 큰 주목을 받았다.3 키스멧은 단순히 물리적 작업을 수행하는 기계를 넘어, 인간과 소통하고 교감하는 사회적 파트너로서의 로봇 가능성을 탐구한 선구적인 연구였다.
키스멧은 과장된 눈, 눈썹, 귀, 입 등을 가진 로봇 헤드로, 내장된 카메라와 마이크를 통해 사람의 표정이나 목소리 톤과 같은 사회적 신호를 인식했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행복, 슬픔, 놀람과 같은 내부적인 감정 상태를 모사하여 표정으로 표현하며 인간과 상호작용했다.3 이 연구는 로봇 공학의 목표가 효율적인 작업 수행뿐만 아니라, 인간과의 자연스러운 소통과 정서적 유대 형성일 수 있다는 새로운 관점을 제시했다. 이는 **사회적 로봇 공학(Social Robotics)**과 **감성 컴퓨팅(Affective Computing)**이라는 새로운 연구 분야를 개척하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표 1: 1997년 주요 AI/로봇 컨퍼런스 개요
| 컨퍼런스 명칭 (Conference) | 개최지 (Location) | 주요 주제 및 특징 (Key Themes & Characteristics) | 주목할 만한 발표/성과 (Notable Papers/Achievements) | 관련 자료 (Source Snippets) |
|---|---|---|---|---|
| AAAI-97 (14th National Conf. on AI) | 프로비던스, 로드아일랜드, 미국 | 이동 로봇, 데이터 마이닝, 신뢰 네트워크, 응용 AI. 역대 최대 규모의 로봇 전시회 개최. | E. Charniak의 통계적 구문 분석 논문 (이후 Classic Paper 수상). ‘딥블루 대 카스파로프’ 워크숍. | 19 |
| NIPS 1997 (Neural Information Processing Systems) | 덴버, 콜로라도, 미국 | 통계적 학습 이론, 서포트 벡터 머신(SVM), 강화 학습, 그래프 모델, 신경망 이론. | V. Vapnik의 SVM 튜토리얼. B. Schölkopf 등의 SVM 커널 논문. T. Hastie 등의 분류 논문. | 39 |
| ICRA 1997 (Int. Conf. on Robotics and Automation) | 앨버커키, 뉴멕시코, 미국 | 로봇 조작, 보행, 비전, 제어, 경로 계획, 햅틱스. 산업, 우주, 의료 등 다양한 응용 분야. | 우주 로봇 제어, 시각 장애인 보조 로봇, 수중 로봇, 다지 핸드 파지 등 다수. | 48 |
6. 결론: 1997년의 재평가 - 전환점으로서의 AI와 로봇 공학
1997년은 인공지능과 로봇 공학의 역사에서 단순한 한 해를 넘어, 과거의 패러다임이 그 정점에서 마지막 불꽃을 태우고 미래를 이끌 새로운 패러다임이 조용히 싹을 틔운, 매우 독특한 이중성을 지닌 전환점이었다. 이 해에 일어난 상징적인 사건들과 학술적 흐름을 종합적으로 분석함으로써 우리는 기술 발전의 복합적인 본질과 그 장기적인 궤적에 대한 깊은 통찰을 얻을 수 있다.
6.1 년의 이중성: 상징주의의 마지막 불꽃과 연결주의의 새로운 씨앗
1997년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서로 다른 두 AI 패러다임의 공존이다. 한편으로, IBM 딥블루의 승리는 계산 능력에 기반한 상징주의 AI가 도달할 수 있는 기술적, 대중적 정점을 상징했다. 이는 인간 전문가의 지식을 명시적으로 부호화하고, 이를 막대한 컴퓨팅 파워로 실행하여 복잡한 문제를 해결하는 접근법의 화려한 성공이었다.
다른 한편으로, 학계의 깊숙한 곳에서는 데이터 기반 학습 패러다임, 즉 연결주의(Connectionism)가 새로운 부활을 준비하고 있었다. 제프 호크라이터와 위르겐 슈미트후버의 LSTM 논문 발표는 그 결정적인 증거였다. 이는 계산 능력의 증대가 아닌, 신경망의 구조적 혁신을 통해 학습의 근본적인 한계를 돌파하려는 시도였다. 또한 NIPS 학회에서 SVM과 같은 통계적 학습 이론이 주류로 부상한 것은, AI 연구의 무게 중심이 규칙 기반에서 데이터 기반으로 이동하고 있음을 명확히 보여주었다.
이러한 상징주의와 연결주의의 교차점 위에서, NASA의 소저너 로버는 또 다른 차원의 과제를 제시했다. 소저너의 성공은 이론적 우아함이나 단일 알고리즘의 성능이 아닌, 기계, 전자, 소프트웨어, 통신 등 다양한 기술을 극한의 제약 조건 하에서 통합하는 시스템 엔지니어링의 중요성을 일깨워주었다. 이는 AI와 로봇 기술이 현실 세계의 불확실성과 상호작용하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할 실용적 구현의 문제를 상징했다.
6.2 각 기술적 성과가 후속 연구 및 산업에 미친 영향 분석
1997년의 주요 성과들은 각기 다른 방식으로 후속 연구와 산업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
딥블루는 AI의 능력을 대중에게 각인시키고, 체스와 같은 복잡한 게임을 AI 성능의 표준 시험대(benchmark)로 활용하는 전통을 확립했다.8 또한, 딥블루 개발에 사용된 대규모 병렬 처리 아키텍처와 기술은 이후 금융 모델링, 신약 개발, 데이터 마이닝 등 막대한 계산을 요구하는 다른 산업 분야의 발전에 기여했다.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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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STM의 영향력은 보다 장기적이고 근본적이었다. 발표 초기에는 소수 연구자 커뮤니티 내에서만 그 중요성이 인식되었으나, 10여 년 후 GPU 컴퓨팅과 빅데이터 시대가 도래하면서 그 진가가 발휘되었다. LSTM은 2010년대 딥러닝 혁명을 촉발한 핵심 알고리즘으로 자리 잡았으며,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음성 비서, 실시간 번역기, 챗봇 등 거의 모든 순차 데이터 처리 응용의 기반을 이루고 있다.
-
소저너는 후속 행성 탐사 로버 임무들의 기술적 청사진을 제시했다. 로커-보기 서스펜션과 같은 핵심 하드웨어 기술의 유효성을 입증했으며, 원격 조작과 자율성의 균형이라는 행성 탐사 로봇의 기본 운영 패러다임을 정립했다. 소저너의 성공은 인류가 로봇을 통해 태양계의 다른 행성을 물리적으로 탐사하는 시대를 본격적으로 열었다.
6.3 미래를 향한 통찰: 1997년의 성과가 21세기 AI 혁명을 어떻게 예비했는가
1997년은 AI가 ’무엇을 할 수 있는가’에 대한 대중의 상상력을 자극한 해였으며, 동시에 ’어떻게 학습해야 하는가’라는 학문적 질문에 대한 새로운 해답을 제시한 해였다. 딥블루가 보여준 ‘계산의 힘’, LSTM이 제시한 ‘학습의 힘’, 그리고 소저너가 증명한 **‘현실 적용의 힘’**은 당시에는 서로 다른 길처럼 보였다.
그러나 21세기의 AI 혁명은 이 세 가지 요소가 분리된 것이 아니라, 서로 융합될 때 비로소 완성된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즉, 강력한 계산 능력(GPU/TPU) 위에서 정교한 학습 알고리즘(딥러닝)을 실행하여, 실제 세계의 복잡한 문제(자율 주행, 의료 진단, 과학적 발견)를 해결하는 것이 현대 AI의 핵심이다.
그런 의미에서 1997년은 미래를 향한 여러 갈래의 길이 동시에 열린, 진정한 의미의 전환점이었다. 딥블루의 시대가 저물고 LSTM의 시대가 잉태되었으며, 소저너는 그 모든 기술이 궁극적으로 나아가야 할 물리적 현실의 도전을 상징했다. 1997년의 유산은 오늘날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AI 혁명의 근원에 깊숙이 자리하고 있다.
표 2: 1997년 주요 기술 성과 비교 분석
| 구분 (Dimension) | IBM 딥블루 (IBM Deep Blue) | LSTM (Long Short-Term Memory) | NASA 소저너 로버 (NASA Sojourner Rover) |
|---|---|---|---|
| 주요 AI 패러다임 (Primary AI Paradigm) | 상징주의 AI (Symbolic AI), 전문가 시스템 | 연결주의 (Connectionism), 순환 신경망 | 하이브리드 시스템 (Hybrid System), 자율 에이전트 |
| 핵심 기술 혁신 (Key Technical Innovation) | 대규모 병렬 탐색 하드웨어, 정교한 평가 함수 | 기울기 소실 문제 해결을 위한 게이트 구조 및 메모리 셀 | 로커-보기 서스펜션, 레이저 기반 실시간 위험 회피 |
| 하드웨어 의존성 (Hardware Dependency) | 매우 높음 (VLSI 체스 칩 필수) | 낮음 (알고리즘 중심, 범용 하드웨어에서 실행) | 높음 (특수 제작된 로버 시스템 및 센서) |
| 즉각적 영향 (Immediate Impact) | 대중적 충격, AI 인지도 급상승 | 학문적 (소수 연구자 커뮤니티 내) | 과학/기술적 실증, 행성 탐사의 새 시대 개막 |
| 장기적 중요성 (Long-term Significance) | AI 능력에 대한 인식 전환, 계산 능력의 중요성 입증 | 딥러닝 시대의 핵심 알고리즘으로 부상 (음성, 언어) | 후속 행성 탐사 로버의 기술적 토대 마련 |
7. 참고 자료
- The Most Significant AI Milestones So Far | Bernard Marr, https://bernardmarr.com/the-most-significant-ai-milestones-so-far/
- 1997: Deep Blue Beats Human - The rise of machines: Timeline of the evolution of Artificial Intelligence | The Economic Times, https://m.economictimes.com/tech/ites/the-rise-of-machines-timeline-of-the-evolution-of-artificial-intelligence/1997-deep-blue-beats-human/slideshow/77198604.cms
- The History of AI – Part 1: From Vision to Reality - GovTech Singapore, https://www.tech.gov.sg/technews/the-history-of-ai-part-1
- The Evolution of AI - From Historical Milestones to Modern Applications - B EYE, https://b-eye.com/blog/evolution-ai-milestones-modern-applications/
- 10 Key Milestones That Shaped the History of Artificial Intelligence - Ask Mona, https://www.askmona.ai/blog/article-dates-cles-intelligence-artificielle
- Deep Blue Beats Kasparov in Chess | Research Starters - EBSCO, https://www.ebsco.com/research-starters/sports-and-leisure/deep-blue-beats-kasparov-chess
- When AI Made its First Major Public Breakthrough: The Deep Blue Victory of May 11, 1997, https://www.reddit.com/r/history/comments/1kkijzm/when_ai_made_its_first_major_public_breakthrough/
- Deep Blue (chess computer) - Wikipedia, https://en.wikipedia.org/wiki/Deep_Blue_(chess_computer)
- Deep Blue - IBM, https://www.ibm.com/history/deep-blue
- Deep Blue Algorithm: A Detailed Guide - Professional-AI.com, https://www.professional-ai.com/deep-blue-algorithm.html
- Deep Blue - Chessprogramming wiki, https://www.chessprogramming.org/Deep_Blue
- Deep Blue - IJRASET, https://www.ijraset.com/research-paper/deep-blue
- Alpha-Beta - Chessprogramming wiki, https://www.chessprogramming.org/Alpha-Beta
- Deep Blue in Chess: Unleashing the Power of Artificial Intelligence | by Anote | Medium, https://anote-ai.medium.com/deep-blue-in-chess-unleashing-the-power-of-artificial-intelligence-117a7867fe8d
- How does the Deep Blue algorithm work? - Chess.com, https://www.chess.com/blog/Rinckens/how-does-the-deep-blue-algorithm-work
- How did Deep Blue manage to beat human champions in chess, and what does that say about the limits of AI in gaming? - Quora, https://www.quora.com/How-did-Deep-Blue-manage-to-beat-human-champions-in-chess-and-what-does-that-say-about-the-limits-of-AI-in-gaming
- AlphaGo vs Deep Blue : r/MachineLearning - Reddit, https://www.reddit.com/r/MachineLearning/comments/4a7lc4/alphago_vs_deep_blue/
- Shall We Play A Game: The Story of Deep Blue - USC Viterbi School of Engineering - University of Southern California, https://illumin.usc.edu/shall-we-play-a-game-the-story-of-deep-blue/
- AAAI Workshop Papers 1997 Archives - The Association for the Advancement of Artificial Intelligence, https://aaai.org/proceeding/aaaiw-97/
- Long short-term memory - PubMed, https://pubmed.ncbi.nlm.nih.gov/93772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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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ONG SHORT-TERM MEMORY 1 INTRODUCTION, https://www.bioinf.jku.at/publications/older/2604.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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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DF) Long Short-Term Memory - ResearchGate, https://www.researchgate.net/publication/13853244_Long_Short-Term_Memory
- The history of robotics in a nutshell - ESSERT Robotics, https://www.essert.com/blog/robotics/history-robotic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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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onomous Planetary Exploration - CMU School of Computer Science, http://www.cs.cmu.edu/~rll/overview/reids_01
- Overview of the Mars Exploration Rovers’ Autonomous Mobility and Vision Capabilities - JPL Robotics, https://www-robotics.jpl.nasa.gov/media/documents/mer_autonomy_icra_2007.pdf
- AAAI-97: Fourteenth National Conference on Artificial Intelligence, https://aaai.org/conference/aaai/aaai97/
- The 1997 AAAI Mobile Robot Exhibition, https://ojs.aaai.org/aimagazine/index.php/aimagazine/article/view/1390/1290
- AAAI–97 Best Paper Awards, https://aaai.org/wp-content/uploads/2023/01/aaai97bestpaper.pdf
- AAAI Classic Paper Award - The Association for the Advancement of Artificial Intelligence, https://aaai.org/about-aaai/aaai-awards/aaai-classic-paper-award/
- Neural Information Processing Systems 1997 (NIPS*97) - Carnegie Mellon University, http://www.cs.cmu.edu/Groups/NIPS/NIPS97/nips97.html
- Advances in Neural Information Processing Systems 10: Proceedings of the 1997 Conference - Google Books, https://books.google.com/books/about/Advances_in_Neural_Information_Processin.html?id=M55BL-GvQ8IC
- Advances in Neural Information Processing Systems 10 (NIPS 1997), https://proceedings.neurips.cc/paper/19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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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pport Vector Machine - Encyclopedia.pub, https://encyclopedia.pub/entry/29353
- Support vector machine - Wikipedia, https://en.wikipedia.org/wiki/Support_vector_mach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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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7-Reinforcement Learning with Time, https://cdn.aaai.org/AAAI/1997/AAAI97-090.pdf
- [PDF] Reinforcement Learning: A Survey - Semantic Scholar, https://www.semanticscholar.org/paper/Reinforcement-Learning%3A-A-Survey-Kaelbling-Littman/12d1d070a53d4084d88a77b8b143bad51c40c38f
- Proceedings, 1997 International Conference on Robotics and Automation, April - Google Books, https://books.google.com/books/about/Proceedings_1997_International_Conferenc.html?id=Ol6zzwEACAAJ
- Proceedings of the 1997 IEEE International Conference on Robotics and Automation, Albuquerque, New Mexico, USA, April 20-25, 1997 - Researchr, https://researchr.org/publication/icra-1997
- 1997 IEEE International Conference on Robotics and Automation - OneSearch, https://onesearch.library.wwu.edu/discovery/fulldisplay?docid=alma9992376439301453&context=L&vid=01ALLIANCE_WWU:WWU&lang=en&adaptor=Local%20Search%20Engine&tab=Summit_Plus_Articles&query=creator%2Cexact%2CIEEE%20Robotics%20and%20Automation%20Society%20Staff&facet=creator%2Cexact%2CIEEE%20Robotics%20and%20Automation%20Society%20Staff&offset=0
- Showing papers presented at “International Conference on Robotics and Automation in 1997” - SciSpace, https://scispace.com/conferences/international-conference-on-robotics-and-automation-27g6ts5l/1997
- Proceedings of the IEEE International Conference on Robotics and Automation, April 21-27 1997, Albuquerque, NM. On the Control of Space Free-Flyers Using - ResearchGate, https://www.researchgate.net/publication/2861636_Proceedings_of_the_IEEE_International_Conference_on_Robotics_and_Automation_April_21-27_1997_Albuquerque_NM_On_the_Control_of_Space_Free-Flyers_Using
- Most Influential NIPS Papers – Resources - Paper Digest, https://www.paperdigest.org/2021/05/most-influential-nips-papers-2021-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