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9년 AI 및 로봇 연구 동향
1. 서론
1940년대는 인류사에서 가장 파괴적인 전쟁이 절정에 달했다가 종결된 격동의 시기였지만, 동시에 인공지능(AI)과 로봇 공학이라는 새로운 학문 분야의 지적 토대가 마련된 결정적인 10년이었다. 제2차 세계대전이라는 전례 없는 총력전은 과학 기술 연구의 패러다임을 근본적으로 바꾸었다. 대공포 예측기 개발, 적국의 암호 해독, 원자력 에너지 제어와 같은 시급한 군사적 과제들은 기존의 학문적 경계를 허물고 수학자, 공학자, 신경생리학자, 논리학자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을 하나의 목표 아래 집결시키는 강력한 촉매제로 작용했다.1 이 과정에서 이질적인 지식들이 융합되면서, 기계, 유기체, 심지어 사회 시스템을 관통하는 보편적인 원리에 대한 탐구가 시작되었다. 이 시기의 가장 중요한 성과는 물리적인 기계의 제작 그 자체가 아니라, ‘지능’, ‘제어’, ‘학습’, ’생명’과 같은 복잡하고 때로는 형이상학적으로 여겨졌던 현상들을 정보 처리와 계산의 문제로 재정의하고 수학적으로 형식화(formalize)한 데 있었다. 이는 기계가 지능을 가질 수 있다는 주장을 막연한 사변에서 과학적, 수학적 탐구의 영역으로 끌어내린 결정적 전환점이었다.
본 보고서는 1940년대라는 결정적 시기를 다섯 가지 핵심적인 지적 흐름으로 나누어 심층적으로 분석하고자 한다. 첫째, 노버트 위너와 로스 애슈비를 중심으로 한 사이버네틱스의 탄생은 동물과 기계를 아우르는 제어와 통신의 보편 과학을 정립했다. 둘째, 워런 매컬러와 월터 피츠의 연구는 뇌의 신경 활동을 논리 연산으로 모델링하여 인공 신경망의 수학적 기틀을 마련했다. 셋째, 앨런 튜링은 암호 해독의 경험을 바탕으로 기계가 학습을 통해 지능을 획득할 수 있다는 선구적인 비전을 제시했다. 넷째, 존 폰 노이만은 컴퓨터 구조 설계에서 나아가, 기계가 스스로를 복제하고 진화할 수 있는 오토마타 이론을 구상했다. 마지막으로, 원자력 시대의 실용적 요구는 레이먼드 괴르츠의 원격 조작 기술 개발로 이어져 현대 로봇 공학의 실질적인 출발점을 형성했다. 본 보고서는 이 다섯 흐름이 어떻게 독립적으로 발전하면서도 서로에게 지적으로 영향을 주었으며, 이들의 융합이 어떻게 20세기 후반 기술 혁명의 근간이 된 인공지능과 로봇 공학이라는 새로운 대륙을 발견하게 했는지 탐구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1.1 년대 AI 및 로봇 공학 주요 연구 연표
아래 표는 1940년대에 이루어진 주요 연구 발표와 발명을 연대순으로 정리한 것이다. 이 연표는 단순히 사건을 나열하는 것을 넘어, 매우 짧은 기간 동안 다양한 분야에서 핵심적인 아이디어들이 동시다발적으로 폭발하며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지적 생태계가 형성되었음을 시각적으로 보여준다. 예를 들어, 1943년 한 해에 신경망의 논리적 모델과 목적 지향적 행동에 대한 기계적 해석이 동시에 발표된 것은 이 시대의 지적 역동성을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이 표는 보고서 전체의 구조를 안내하는 지도 역할을 하며, 각 장에서 상세히 다룰 핵심 인물, 개념, 그리고 그 학문적 의의를 개괄한다.
| 연도 (Year) | 주요 인물 (Key Figure(s)) | 주요 발표/발명 (Major Publication/Invention) | 핵심 개념 (Core Concept) | 학문적 의의 (Significance) |
|---|---|---|---|---|
| 1940 | W. Ross Ashby | “Adaptiveness and equilibrium” 논문 | 항상성(Homeostasis), 적응적 속성 | 살아있는 유기체의 적응적 속성을 구체적인 물리적 메커니즘으로 설명하려는 초기 시도.5 |
| 1943 | W. McCulloch, W. Pitts | “A Logical Calculus of the Ideas Immanent in Nervous Activity” | 매컬러-피츠 뉴런, 역치 논리 | 뇌의 신경 활동을 이진 논리 연산으로 모델링하여 인공 신경망 연구의 수학적 토대를 마련함.7 |
| 1943 | A. Rosenblueth, N. Wiener, J. Bigelow | “Behavior, Purpose and Teleology” | 음성 피드백(Negative Feedback), 목적론적 행동 | 기계가 피드백 루프를 통해 목적 지향적 행동을 보일 수 있음을 보여 사이버네틱스의 핵심 개념을 제시함.1 |
| 1945 | John von Neumann | “First Draft of a Report on the EDVAC” | 폰 노이만 구조, 내장형 프로그램 | 명령어와 데이터를 동일한 메모리에 저장하는 현대적 컴퓨터 구조를 제시하여 범용 컴퓨터의 기틀을 마련함.11 |
| 1948 | Norbert Wiener | Cybernetics: Or Control and Communication in the Animal and the Machine | 사이버네틱스(Cybernetics), 정보, 제어 | 동물과 기계를 관통하는 제어와 통신의 보편 원리를 제시하며 여러 학문을 통합하는 새로운 과학 분야를 창시함.14 |
| 1948 | W. Ross Ashby | 항상성 장치(Homeostat) 개발 | 초안정성(Ultrastability), 자기조직화 | 환경 변화에 능동적으로 적응하여 내부 평형을 유지하는 기계를 구현하여 적응적 행동의 원리를 물리적으로 증명함.5 |
| 1948 | Alan Turing | “Intelligent Machinery” 보고서 작성 | 비조직화된 기계(Unorganised Machines), 기계 학습 | 신경망과 유사한 기계가 학습(보상과 처벌)을 통해 지능을 획득할 수 있다는 비전을 제시, 현대적 기계 학습의 개념을 예고함.18 |
| 1948-1949 | John von Neumann | “The General and Logical Theory of Automata” 발표 및 연구 | 세포 오토마타, 자기 복제 오토마타 | 기계가 자기 자신을 복제할 수 있는 논리적 조건을 탐구하여 인공 생명 및 진화 연산의 이론적 기초를 수립함.21 |
| 1949 | Raymond Goertz | 마스터-슬레이브 조작기(Master-Slave Manipulator) 개발 | 원격 조작(Teleoperation), 힘 반향(Force Feedback) | 인간의 조작을 원격에서 정밀하게 재현하는 로봇 팔을 개발하여 현대 로봇 공학, 특히 텔레로보틱스의 실질적 출발점이 됨.24 |
2. 사이버네틱스: 제어와 통신의 과학
사이버네틱스는 1940년대에 탄생한 가장 영향력 있는 지적 운동 중 하나로, 기계, 생명체, 사회를 관통하는 ’제어’와 ’통신’의 원리를 탐구하는 학제간 과학이다.10 이 운동의 핵심은 ’기계가 생각할 수 있는가?’라는 막연한 질문을 ’기계가 목적을 가지고 행동할 수 있는가?’라는 더 근본적이고 측정 가능한 질문으로 전환시킨 데 있다. 피드백이라는 공학적 개념을 통해 ’목적’이라는 형이상학적 개념을 ’오차 수정 메커니즘’이라는 수학적 모델로 구체화함으로써, 지능적 행동의 핵심 요소를 계산 가능한 과학의 영역으로 편입시켰다.
2.1 서곡: 목적론적 행동의 기계적 해석
사이버네틱스의 이론적 서막은 1943년, 생리학자 아르투로 로젠블루트, 수학자 노버트 위너, 공학자 줄리안 비글로우가 공동으로 발표한 논문 “행동, 목적, 그리고 목적론(Behavior, Purpose and Teleology)“에서 시작되었다.1 이 논문의 통찰은 제2차 세계대전 중 적 항공기를 격추하기 위한 대공포 예측기 개발 프로젝트에서 비롯되었다.1 예측기는 비행기의 현재 위치를 추적하여 포탄이 도달할 미래의 위치를 예측해야 했는데, 이는 끊임없이 변하는 목표에 대해 자신의 행동을 지속적으로 수정해야 하는 과제였다.
이 과정에서 연구자들은 ’음성 피드백(Negative Feedback)’이라는 개념의 중요성을 깨달았다. 음성 피드백이란 시스템이 자신의 행동 결과를 감지하여 목표 상태(target state)와 현재 상태(current state) 사이의 ’오차(error)’를 계산하고, 그 오차를 줄이는 방향으로 다음 행동을 수정하는 순환적 인과 과정을 의미한다.1 예를 들어, 대공포 예측기는 예측된 비행기의 위치와 실제 포탄의 착탄 지점 간의 오차를 피드백 받아 다음 발사를 보정한다. 이 메커니즘은 과거의 원인이 미래의 결과를 일방적으로 결정한다는 전통적인 인과율을 넘어선다. 대신, 미래의 ’목표’가 현재의 행동을 규정하는 것처럼 보이는 현상을 설명할 수 있게 해준다. 연구자들은 이러한 피드백 원리가 증기기관의 원심 조속기나 가정의 자동온도조절장치 같은 공학적 장치뿐만 아니라, 동물이 체온이나 혈당을 일정하게 유지하는 생물학적 항상성(homeostasis) 과정에도 동일하게 적용된다는 점을 간파했다.1 이로써 ’목적’이라는, 이전까지는 생명체 고유의 신비로운 속성으로 여겨졌던 개념이 공학적으로 분석 가능한 대상이 되었다.
2.2 노버트 위너의 통합: 『사이버네틱스』의 탄생
1948년, 노버트 위너는 이러한 아이디어들을 집대성하여 20세기 지성사에 큰 획을 그은 저서 『사이버네틱스: 또는 동물과 기계의 제어와 통신(Cybernetics: Or Control and Communication in the Animal and the Machine)』을 출간했다.14 이 책은 ’사이버네틱스’라는 새로운 학문 분야의 탄생을 공식적으로 알리는 선언문이었다. 위너는 그리스어 ‘키베르네테스(kybernētēs)’, 즉 ’조타수’에서 이 용어를 가져왔으며, 이는 목표를 향해 시스템의 경로를 조종하고 제어하는 학문의 본질을 상징한다.27
위너의 사이버네틱스는 여러 핵심 개념을 중심으로 구축되었다. 첫째, ’정보(Information)’는 시스템의 불확실성을 감소시키고 질서를 유지하는 핵심 요소로 정의되었다. 그는 통계역학의 엔트로피 개념을 정보 이론과 연결하여, 질서 있는 시스템이란 외부의 무질서(엔트로피) 증가에 맞서 정보를 통해 자신의 구조를 유지하는 시스템이라고 보았다.14 둘째, 시스템의 기능은 ’메시지(Message)’의 품질에 달려 있으며, 통신 과정에서 발생하는 ’잡음(Noise)’은 정보를 손상시켜 시스템의 항상성을 파괴하고 평형을 깨뜨릴 수 있다.14 셋째, ’항상성(Homeostasis)’은 피드백 루프를 통해 생명체나 기계가 변화하는 외부 환경 속에서 자신의 내부 상태를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과정으로, 사이버네틱스가 설명하고자 하는 핵심 현상이었다.14 이 책은 자동항법, 아날로그 컴퓨팅, 신경과학 등 다양한 분야에 이론적 토대를 제공했으며, 특히 인공지능 연구에 있어 기계와 생명체를 동일한 정보 처리 시스템으로 바라볼 수 있는 통합적 관점을 제시했다.15
2.3 적응의 물리적 구현: W. 로스 애슈비의 항상성 장치
노버트 위너가 사이버네틱스의 광범위한 철학적, 수학적 토대를 구축했다면, 영국의 정신과 의사이자 사상가인 W. 로스 애슈비는 그 원리를 구체적인 물리적 메커니즘으로 구현하는 데 집중했다. 애슈비는 1940년부터 독자적으로 적응과 평형에 관한 논문을 발표하며, 생명체의 적응적 행동을 설명할 수 있는 기계를 구상했다.5
그 결과물이 1948년 3월에 완성된 ’항상성 장치(Homeostat)’이다.16 제2차 세계대전 후 남은 영국 공군(RAF)의 폭탄 제어 장비를 재활용하여 제작된 이 기계는 4개의 상호 연결된 전자기 유닛으로 구성되었다.29 호메오스탯의 작동 원리는 다음과 같다: 외부에서 교란이 가해져 시스템의 ’필수 변수(essential variables)’가 미리 지정된 안정적인 범위를 벗어나면, 시스템은 불안정한 상태에 빠진다. 이때 시스템은 자신의 내부 연결 구조를 결정하는 매개변수(parameter)들을 무작위로 변경하기 시작한다. 이 무작위적 탐색을 통해 우연히 시스템 전체를 다시 안정 상태로 되돌리는 새로운 매개변수 조합을 찾게 되면, 그 상태를 유지한다.5
이 기계가 보여준 능력은 단순한 안정성(stability)을 넘어선 ’초안정성(Ultrastability)’이라 불린다.16 이는 시스템이 두 단계의 피드백 루프를 가지고 있음을 의미한다. 1차 피드백 루프가 주어진 환경 내에서 행동을 조절하여 안정성을 유지하는 것이라면, 2차 피드백 루프는 환경 자체가 근본적으로 변하여 1차 루프가 더 이상 작동하지 않을 때, 시스템의 기본 구조(매개변수) 자체를 변경하여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능력이다.31 호메오스탯은 이처럼 환경 변화에 수동적으로 반응하는 것을 넘어, 능동적으로 자신의 구조를 바꿔 새로운 안정성을 찾아가는 학습과 적응의 과정을 기계적으로 증명해 보였다. 이는 인공지능이 어떻게 환경에 적응하며 자율적으로 행동할 수 있는지에 대한 강력한 물리적 모델을 제시한 것이었다.
3. 신경망의 수학적 모델링: 매컬러-피츠 뉴런
사이버네틱스가 유기체와 기계의 거시적 행동 원리를 탐구했다면, 1940년대의 또 다른 중요한 지적 흐름은 지능의 근원인 뇌의 미시적 작동 방식을 수학적으로 모델링하려는 시도였다. 이 분야의 결정적 돌파구는 1943년, 신경생리학자 워런 매컬러와 천재적인 젊은 논리학자 월터 피츠가 발표한 논문 “신경 활동에 내재된 관념의 논리적 계산(A Logical Calculus of the Ideas Immanent in Nervous Activity)“에서 이루어졌다.7 이들의 연구가 가진 진정한 혁신성은 생물학적 뉴런의 복잡성을 그대로 모사하려 한 것이 아니라, 과감한 ’추상화’를 통해 그 논리적 본질을 추출해낸 데 있었다. 이를 통해 뇌는 처음으로 ’계산 장치(computing device)’로 개념화되었고, 신경과학과 논리학, 그리고 갓 태동하던 계산 이론을 잇는 지적인 다리가 놓였다.
3.1 신경 활동의 논리적 계산
매컬러와 피츠의 목표는 “뇌가 어떻게 수많은 단순한 기본 세포(뉴런)들의 상호 연결을 통해 고도로 복잡한 패턴을 생성할 수 있는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에 답하는 것이었다.33 그들은 당시의 신경생리학적 지식과 앨런 튜링의 계산 이론, 그리고 루돌프 카르납의 기호 논리학에서 영감을 얻었다.7 그들은 뉴런의 복잡한 전기화학적 활동을 ’전부 아니면 전무(all-or-none)’라는 이진적(binary) 현상으로 단순화했다. 즉, 뉴런은 특정 순간에 ’발화(fire)’하거나 ‘발화하지 않거나’ 둘 중 하나의 상태만을 갖는다고 가정했다. 이 가정 덕분에, 뉴런의 활동 상태는 기호 논리학의 명제가 ‘참(True)’ 또는 ’거짓(False)’의 진리값을 갖는 것에 직접적으로 대응될 수 있었다.35 이는 뇌의 활동을 생물학의 언어가 아닌, 수학과 논리학의 언어로 기술할 수 있는 길을 열었다.
3.2 모델의 구조와 원리
이러한 개념적 토대 위에서, 매컬러와 피츠는 인공 뉴런의 첫 수학적 모델, 즉 ’매컬러-피츠 뉴런(McCulloch-Pitts neuron, MCP 뉴런)’을 제시했다. 이 모델은 현실의 뉴런을 극도로 단순화하기 위해 다음과 같은 다섯 가지 핵심 가정을 전제로 했다 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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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런의 활동은 ’전부 아니면 전무’의 이진적 과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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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런이 발화하기 위해서는, ’잠재적 합산 기간(period of latent addition)’이라는 짧은 시간 내에 일정 개수 이상의 흥분성 시냅스(excitatory synapse)가 활성화되어야 한다. 이 필요한 최소 개수를 ’역치(threshold)’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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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계 내에서 유의미한 시간 지연은 시냅스에서만 발생하며, 그 값은 일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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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제성 시냅스(inhibitory synapse)가 하나라도 활성화되면, 그 순간 뉴런의 발화는 절대적으로 금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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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망의 기본 연결 구조는 시간에 따라 변하지 않는다(학습을 고려하지 않음).
이 가정들에 기반하여 MCP 뉴런의 작동은 간단한 수학적 규칙으로 표현될 수 있다. 뉴런 j가 시각 t+1에 발화할지 여부(y_j(t+1))는 시각 t에 이 뉴런으로 들어오는 다른 뉴런 i들의 출력(x_i(t))들의 합에 의해 결정된다. 각 입력은 흥분성이며 동일한 가중치(예: +1)를 갖는다고 가정한다. 이 입력들의 총합이 뉴런 j의 고유한 역치(\theta_j)보다 크거나 같을 때, 그리고 억제성 입력이 없을 때 뉴런 j는 1(발화)을 출력하고, 그렇지 않으면 0(비발화)을 출력한다. 이는 헤비사이드 계단 함수(\Theta)를 사용하여 다음과 같이 표현할 수 있다.9
y_j(t+1) = \Theta\left(\sum_{i} x_i(t) - \theta_j\right)
여기서 \sum_{i} x_i(t)는 시각 t에서의 흥분성 입력의 총합을 나타낸다. 이 모델은 모든 뉴런이 동기화된 이산적인 시간 단계(discrete time-steps)에 따라 작동하는 것으로 가정되었다.9
3.3 보편적 연산 능력과 그 의의
MCP 뉴런 모델의 진정한 힘은 개별 뉴런의 단순함이 아니라, 그것들을 연결하여 구성한 ’네트워크’의 계산 능력에서 드러났다. 매컬러와 피츠는 이 단순한 논리적 소자들을 몇 개 조합하는 것만으로 모든 기본적인 불리언 논리 연산(Boolean logic operations)을 구현할 수 있음을 증명했다.37 예를 들어, 두 개의 입력을 받고 역치가 2인 뉴런은 AND 게이트 역할을 하고, 역치가 1인 뉴런은 OR 게이트 역할을 한다. 억제성 입력을 활용하면 NOT 게이트도 만들 수 있다.
모든 논리 연산을 구현할 수 있다는 것은, MCP 뉴런으로 구성된 네트워크가 이론적으로 ’튜링 보편성(Turing completeness)’을 가짐을 의미한다.9 즉, 원리적으로 계산 가능한(computable) 어떤 문제라도 충분한 수의 MCP 뉴런으로 구성된 네트워크를 통해 풀 수 있다는 것이다. 이 발견은 엄청난 함의를 가졌다. 이는 인간의 뇌, 즉 ’정신(mind)’이 수행하는 활동이 본질적으로 ‘계산(computation)’ 과정일 수 있다는 강력한 이론적 근거를 제시했다. 뇌가 신비로운 생명의 기관을 넘어, 정보를 처리하고 논리적 추론을 수행하는 일종의 ’생물학적 컴퓨터’로 이해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 패러다임의 전환은 이후 인공지능 연구가 ‘인공’ 신경망을 통해 지능을 구현하려는 시도의 이론적 토대를 제공했으며, 컴퓨터 과학과 신경과학의 융합을 촉진하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7
4. 기계 지능과 학습의 탐구: 앨런 튜링의 비전
1940년대의 다른 사상가들이 주로 기존 시스템(생명체, 뇌)의 작동 원리를 ’모델링’하는 데 집중했다면, 앨런 튜링은 그들과는 다른 독창적인 길을 걸었다. 그는 초기 상태가 명확히 정의되지 않은 시스템이 환경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어떻게 스스로 지능적인 구조를 ’생성’하고 ’조직화’할 수 있는지에 대한 ’과정’을 설계하고자 했다. 이는 인공지능을 ’완벽한 설계의 문제’에서 ’점진적인 교육의 문제’로 전환시킨 혁명적 발상이었으며, 오늘날 기계 학습 분야의 철학적 원형을 제시한 것이었다.
4.1 전쟁의 유산과 새로운 질문
앨런 튜링의 기계 지능에 대한 탐구는 제2차 세계대전 중 블레츨리 파크(Bletchley Park)에서의 경험에 깊이 뿌리내리고 있다. 그는 그곳에서 독일군의 에니그마(Enigma)와 로렌츠(Lorenz) 암호를 해독하기 위한 기계, 즉 봄브(Bombe)와 콜로서스(Colossus)의 설계에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2 이 기계들은 방대한 양의 데이터를 처리하고 논리적 추론을 수행함으로써 인간 암호해독가들의 작업을 자동화했다. 이 경험은 튜링에게 대규모 전자 계산 기계가 가진 엄청난 잠재력을 직접적으로 보여주었다.39 전쟁이 끝난 후, 튜링의 관심은 ’기계가 복잡한 계산을 할 수 있는가?’라는 이미 해결된 질문을 넘어, ’기계가 인간처럼 지능적으로 행동할 수 있는가?’라는 더 근본적이고 철학적인 질문으로 나아갔다.19
4.2 1948년 보고서 “지능 기계”
튜링의 이러한 사상은 1948년 영국 국립물리연구소(NPL) 재직 시절 작성한 “지능 기계(Intelligent Machinery)“라는 보고서에 집약되어 있다.18 비록 그의 생전에는 공식적으로 출판되지 않았지만, 이 보고서는 1950년에 발표되어 튜링 테스트로 유명해진 논문 “계산 기계와 지능(Computing Machinery and Intelligence)“의 핵심 아이디어를 이미 담고 있는 선구적인 문헌이다.20
이 보고서에서 튜링의 핵심 주장은 명료했다. 그는 인간의 지능이 날 때부터 완성된 형태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유아기의 미숙한 상태에서 교육과 경험을 통해 점진적으로 발달하는 과정에 주목했다. 그리고 이와 유비하여, 기계의 지능적 잠재력 역시 처음부터 모든 것을 완벽하게 프로그래밍하는 방식보다는, 일종의 ‘학습’ 과정을 통해 실현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19 그는 지능 기계를 만드는 가장 유망한 방법이 ’어린아이의 뇌를 모방한 다음, 그것을 교육하는 것’이라고까지 말했다.
4.3 비조직화된 기계와 학습
이러한 비전을 구체화하기 위해 튜링은 ’비조직화된 기계(Unorganised Machines)’라는 개념을 제안했다.20 이는 오늘날의 인공 신경망과 매우 유사한 개념으로, 초기에는 무작위적이거나 단순한 구조를 가졌다가 학습을 통해 특정 작업을 수행하도록 조직화되는 기계를 의미한다.
튜링은 특히 두 종류의 비조직화된 기계를 설명했다 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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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type: 다수의 인공 뉴런(튜링은 모든 논리 연산을 구현할 수 있는 NAND 연산자를 기본 단위로 제안했다)이 무작위로 서로 연결된 네트워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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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type: A-type과 구조는 유사하지만, 뉴런 간의 모든 연결 부위에 ’수정자(modifier)’라는 장치가 추가된 형태이다. 이 수정자는 외부에서 오는 ’학습 신호’에 따라 두 가지 상태로 바뀔 수 있다. 하나는 신호를 그대로 ’통과(pass)’시키는 상태이고, 다른 하나는 신호를 ’차단(interrupt)’하는 상태이다.
튜링이 주목한 것은 바로 이 B-type 기계였다. 그는 이 기계가 “적절한 간섭, 즉 교육을 모방하는 것“을 통해 훈련될 수 있다고 보았다.41 학습 과정은 ’보상과 처벌’의 원리에 따라 이루어진다. 기계가 바람직한 행동을 하면 보상 신호를 주어 그 행동에 기여한 연결들을 강화(통과 상태로 전환)하고, 바람직하지 않은 행동을 하면 처벌 신호를 주어 관련 연결들을 약화(차단 상태로 전환)시키는 방식이다.19 이는 현대 기계 학습, 특히 강화 학습(Reinforcement Learning)의 기본 원리와 정확히 일치한다. 튜링은 더 나아가 “유아의 대뇌 피질이 아마도 이러한 비조직화된 기계의 성질을 가질 것“이라고 추측하며, 생물학적 뇌의 발달 과정과 기계 학습 사이의 깊은 연관성을 꿰뚫어 보았다.19 이처럼 튜링은 1948년에 이미 지능이 고정된 설계도가 아니라, 학습을 통해 스스로를 조직해나가는 동적인 과정이라는, 시대를 초월한 통찰을 제시했다.
5. 오토마타 이론과 자기 복제 기계: 폰 노이만의 구상
1940년대 중반, 존 폰 노이만은 EDVAC 보고서를 통해 명령어와 데이터를 동일한 메모리에 저장하는 ‘내장형 프로그램 컴퓨터(stored-program computer)’ 개념을 정립하며 현대 컴퓨터 아키텍처의 초석을 놓았다.11 그러나 그의 지적 호기심은 단순히 더 빠르고 효율적인 계산 기계를 만드는 데 머무르지 않았다. 1940년대 후반, 그의 관심은 더 근본적인 질문, 즉 기계가 어떻게 생명체처럼 스스로의 복잡성을 유지하고 증가시키며, 궁극적으로 자기 자신을 복제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로 옮겨갔다.22 폰 노이만의 연구는 인공지능의 목표를 ’인간 지능의 모방’에서 ’생명 현상 자체의 논리적 구현’으로 확장시켰으며, 이는 ’인공 생명(Artificial Life)’이라는 새로운 학문 분야의 서막을 연 것이었다.
5.1 계산을 넘어 생명의 논리로
폰 노이만은 자연계의 유기체들이 어떻게 정교한 자기 복제를 통해 종을 유지하고, 돌연변이와 자연선택을 통해 점차 더 복잡한 형태로 진화해 나가는지에 매료되었다. 그는 이러한 생명 현상의 본질이 물리적, 화학적 세부 사항을 넘어선 어떤 ’논리적 구조’에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즉, 자기 복제는 충분히 복잡한 ‘오토마톤(automaton)’, 즉 정해진 규칙에 따라 작동하는 추상적인 기계로 구현될 수 있다는 것이다.37 그는 이 아이디어를 1948년 힉슨 심포지엄에서 “오토마타의 일반 및 논리 이론(The General and Logical Theory of Automata)“이라는 제목의 강연을 통해 공식적으로 발표했다.21
5.2 세포 오토마타와 보편적 구성자
자기 복제라는 복잡한 과정을 모델링하기 위해, 폰 노이만은 그의 동료 수학자 스타니스와프 울람의 제안을 받아들여 ’세포 오토마타(Cellular Automata, CA)’라는 강력하고 우아한 수학적 틀을 고안했다.21 세포 오토마타는 바둑판과 같은 2차원 격자 공간으로 구성되며, 각 격자점, 즉 ’셀(cell)’은 유한한 개수의 상태 중 하나를 가질 수 있다 (폰 노이만이 설계한 모델에서는 29개의 상태가 사용되었다).22 시스템은 이산적인 시간 단계에 따라 진화하는데, 각 셀은 다음 시간 단계에서 자신의 상태를 오직 주변 이웃 셀들의 현재 상태에만 의존하는 간단하고 국소적인 규칙에 따라 결정한다.
이 가상의 물리 법칙이 지배하는 CA 우주 안에서, 폰 노이만은 자기 복제를 수행할 수 있는 정교한 기계를 설계했다. 이 기계가 바로 ’보편적 구성자(Universal Constructor)’이다.22 이 시스템은 크게 세 부분으로 구성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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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계도(Description): 기계를 만드는 데 필요한 모든 정보가 담긴 일련의 명령어. 이는 튜링 기계의 테이프처럼 1차원적인 셀의 나열로 표현된다.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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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편적 구성 팔(Universal Construction Arm): 설계도를 순서대로 읽어 그 지시에 따라 CA 공간 내의 셀들의 상태를 바꾸어 새로운 기계의 물리적 구조를 만드는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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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편적 복사기(Universal Copier): 설계도 테이프 자체를 읽어서 똑같은 사본을 만드는 부분이다.
자기 복제 과정은 다음과 같이 진행된다. 먼저 구성 팔이 설계도 테이프의 지시에 따라 자기 자신의 물리적 구조(설계도 테이프는 제외)를 다른 장소에 똑같이 만든다. 그 다음, 복사기가 원본 설계도 테이프를 복사하여 새로 만들어진 기계의 구조물에 붙여준다. 이로써 설계도까지 완벽하게 갖춘, 원본과 동일한 자기 복제 기계가 탄생하게 된다.22
5.3 정보의 이중성과 개방형 진화
폰 노이만 설계의 가장 심오한 통찰은 ‘정보’, 즉 설계도 테이프가 수행하는 이중적 역할에 있다. 설계도는 첫째, 기계를 만드는 과정에서는 능동적으로 ’해석되는 명령어(interpreted instructions)’로 기능한다. 둘째, 복제 과정에서는 수동적으로 ’복사되는 데이터(passively copied data)’로 취급된다.21 이 정보의 이중적 사용은 생명 복제의 핵심 논리를 정확히 포착한 것이었다. 놀랍게도 이 통찰은 1953년 왓슨과 크릭이 DNA의 이중나선 구조와 그 기능을 발견하기 수년 전에 이루어졌다. 실제로 DNA 역시 단백질을 합성할 때는 유전 정보가 ’명령어’로 해석(전사 및 번역)되고, 세포가 분열할 때는 정보 자체가 그대로 ’데이터’로서 복제된다.
더 나아가, 이 모델은 기계가 어떻게 진화할 수 있는지에 대한 논리적 가능성을 열었다. 만약 설계도 테이프를 복사하는 과정에서 무작위적인 오류, 즉 ’돌연변이’가 발생한다면, 변형된 설계도를 가진 새로운 기계가 탄생할 수 있다. 이 새로운 기계가 원래의 기계보다 환경에 더 잘 적응하거나 더 효율적으로 복제한다면, 자연선택의 원리에 따라 점차 그 수가 늘어나게 될 것이다. 이는 기계의 복잡성이 설계자의 의도에 갇히지 않고, 스스로의 복제와 변이를 통해 끝없이 증가할 수 있는 ’개방형 진화(open-ended evolution)’의 길을 이론적으로 증명한 것이다.22
6. 로봇 공학의 실질적 구현: 원격 조작 기술
앞선 장들이 AI의 ‘정신’, 즉 지능, 학습, 생명의 논리적 원리를 탐구했다면, 마지막 장은 로봇의 ‘육체’, 즉 물리적 세계와 상호작용하는 기계의 실질적 구현에 초점을 맞춘다. 1940년대 로봇 공학의 비약적인 발전은 철학적 사유가 아닌, 원자력 시대의 도래라는 시급하고 구체적인 현실적 필요에서 촉발되었다.43 이 시기의 가장 중요한 성과는 ’완전 자동화’라는 먼 목표 대신, ’인간-기계 협응(Human-Machine Collaboration)’이라는 실용적인 패러다임을 제시한 것이다. 특히, 인간의 감각과 운동 능력을 기계적으로 ’확장’하는 개념은 현대 로봇 공학의 중요한 축을 형성하게 되었다.
6.1 필요는 발명의 어머니: 원자력 시대의 도전
1940년대 맨해튼 프로젝트를 통해 인류는 원자력이라는 새로운 에너지원을 손에 넣었지만, 동시에 치명적인 방사능의 위협에 직면하게 되었다. 원자로에서 사용된 핵연료나 방사성 동위원소는 인간이 직접 접촉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한 방사선을 방출했다. 따라서 두꺼운 납이나 콘크리트 차폐벽 너머에서 이러한 위험 물질을 정밀하게 다룰 수 있는 새로운 기술이 절실히 필요했다.4 이는 단순히 물건을 집어 옮기는 수준을 넘어, 화학 실험을 하거나 기계를 조작하는 등 섬세하고 복잡한 작업을 원격으로 수행해야 하는 과제였다.
6.2 레이먼드 괴르츠의 마스터-슬레이브 조작기
이러한 도전에 대한 해답은 1949년경 미국 아르곤 국립 연구소(Argonne National Laboratory)의 엔지니어 레이먼드 괴르츠(Raymond Goertz)와 그의 팀에 의해 제시되었다.24 그들이 개발한 ’마스터-슬레이브 조작기(Master-Slave Manipulator)’는 로봇 공학의 역사에서 획기적인 발명품이었다.26
이 장치의 기본 원리는 직관적이었다. 작업자는 방사능으로부터 안전한 제어실에서 ’마스터 팔(master arm)’이라고 불리는 조종 장치를 손으로 움직인다. 그러면 차폐벽 너머의 위험 구역에 설치된 ’슬레이브 팔(slave arm)’이 마스터 팔의 움직임을 실시간으로 정확하게 똑같이 재현하는 방식이다.26 이 조작기는 여러 가지 중요한 기술적 혁신을 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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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자유도(Seven Degrees of Freedom): 인간의 팔이 어깨, 팔꿈치, 손목을 움직여 공간 내의 어떤 지점이든 어떤 방향으로든 손을 위치시킬 수 있는 것처럼, 이 기계 역시 3개의 병진 운동(상하, 좌우, 전후)과 3개의 회전 운동(pitch, yaw, roll), 그리고 물건을 집기 위한 집게의 개폐 운동을 합쳐 총 7개의 독립적인 움직임을 구현했다. 이는 기계가 인간의 팔과 유사한 수준의 운동성을 갖게 했음을 의미한다.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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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 반향(Force Feedback) / 양방향성(Bilateral Control): 괴르츠 조작기의 가장 혁신적인 부분은 바로 힘 반향 기능이었다. 이는 슬레이브 팔이 물체를 집거나 밀 때 발생하는 힘과 저항이 기계적 연결을 통해 마스터 팔에 있는 작업자의 손에 그대로 전달되는 기술이다.24 이 양방향 제어 덕분에 작업자는 단순히 시각 정보에만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마치 자신의 손으로 직접 만지는 듯한 ’촉각’과 유사한 감각을 느끼며 작업할 수 있었다. 이 기능은 나사를 조이거나, 깨지기 쉬운 유리 비커를 다루거나, 액체를 따르는 것과 같은 섬세하고 정밀한 작업을 가능하게 하는 결정적인 요소였다. 이는 인간과 기계 사이의 정보 흐름을 일방적인 ’명령’에서 양방향적인 ’대화’로 바꾸어 놓은 혁신이었다.
6.3 텔레로보틱스의 탄생과 그 의의
괴르츠의 마스터-슬레이브 조작기는 현대 ‘텔레로보틱스(telerobotics)’, 즉 원격 로봇 공학의 직접적인 조상이 되었다.46 텔레로보틱스는 인간의 지능과 실시간 판단력은 그대로 활용하면서, 기계의 물리적 힘과 내구성을 인간이 직접 접근할 수 없는 위험하거나(방사능, 심해), 멀거나(우주), 혹은 미세한(원격 수술) 환경으로 확장하는 개념이다.43 괴르츠의 발명은 로봇이 인간을 대체하는 존재가 아니라, 인간의 능력을 증강하고 확장하는 강력한 파트너가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처음으로 실증적으로 보여주었다. 이는 로봇을 단순한 자동화 도구를 넘어, 인간 작업자의 감각-운동 시스템의 일부가 되는 ’확장된 신체(extended body)’로 바라보는 새로운 관점을 열었으며, 오늘날 인간-로봇 상호작용(Human-Robot Interaction, HRI) 연구의 중요한 원점이 되었다.
7. 결론: 1940년대의 유산과 미래를 향한 씨앗
1940년대는 인공지능과 로봇 공학의 역사에서 가히 ’빅뱅’과 같은 시기였다. 전쟁이라는 극한의 상황이 촉발한 지적 융합 속에서, 불과 10년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 미래 기술의 패러다임을 규정할 핵심 개념들이 동시다발적으로 탄생했다. 이 시기의 연구들은 서로 다른 문제의식에서 출발했지만, 결국 하나의 거대한 질문, 즉 ’생명과 지능의 원리는 무엇이며, 이를 기계적으로 구현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향해 수렴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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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버네틱스는 동물과 기계를 관통하는 ’제어와 통신’이라는 통합적 프레임워크를 제공하며, 목적 지향적 행동을 피드백이라는 공학적 원리로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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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컬러-피츠 뉴런 모델은 복잡한 뇌의 활동을 이진 논리로 추상화하여 ’뇌의 계산 가능성’을 처음으로 수학적으로 증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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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런 튜링의 비전은 지능이 고정된 설계가 아니라 학습을 통해 스스로를 조직하는 과정임을 통찰하며 ’기계의 학습 가능성’이라는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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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폰 노이만의 오토마타 이론은 한 걸음 더 나아가 자기 복제와 진화라는 생명의 핵심 논리를 탐구하며 ’생명의 논리적 구현 가능성’을 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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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먼드 괴르츠의 조작기는 이러한 추상적 논의를 물리적 현실로 끌어내려, ’인간 능력의 기계적 확장 가능성’을 실증적으로 보여주었다.
물론, 이 시기의 연구 대부분은 당시 컴퓨터 하드웨어의 기술적 한계로 인해 즉각적인 대규모 구현이 어려운 이론적, 개념적 성과에 머물렀다. 콜로서스나 에니악 같은 초기 컴퓨터는 진공관을 사용한 거대하고 프로그래밍이 어려운 장치였으며 2, 튜링이나 폰 노이만이 구상한 복잡한 네트워크나 오토마타를 시뮬레이션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그러나 바로 이러한 추상적이고 원리적인 탐구가 있었기에, 이후 반도체 기술의 발전으로 강력한 컴퓨팅 파워가 확보되었을 때 인공지능과 로봇 공학이 나아갈 명확한 방향과 풍부한 연구 프로그램을 가질 수 있었다.
1940년대에 뿌려진 이 지적인 씨앗들은 이후 수십 년에 걸쳐 무성하게 자라나 현대 기술 문명의 근간을 이루었다. 사이버네틱스는 현대 제어 공학과 시스템 이론으로 발전했다. 매컬러-피츠 뉴런은 프랭크 로젠블랫의 퍼셉트론을 거쳐 오늘날의 딥러닝 혁명으로 이어졌다. 튜링의 학습 기계 개념은 강화 학습과 커넥셔니즘 연구의 사상적 뿌리가 되었다. 폰 노이만의 자기 복제 오토마타는 인공 생명, 유전 알고리즘, 복잡계 과학의 이론적 토대를 제공했다. 그리고 괴르츠의 마스터-슬레이브 조작기는 산업 현장의 용접 로봇부터 화성을 탐사하는 로버, 수술실의 다빈치 로봇에 이르기까지 현대 로봇 공학의 실질적인 조상이 되었다. 결국, 1940년대의 지적 유산이 없었다면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인공지능과 로봇 공학은 존재할 수 없었을 것이다. 이 시기는 단순한 기술적 전사(前史)가 아니라, 새로운 과학의 탄생을 알린 지적 혁명의 시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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