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9년 AI 및 로봇
1. 서론
1910년부터 1919년까지의 시기를 인공지능(AI) 및 로봇 공학의 관점에서 분석하는 것은 시대착오적 접근을 전제한다. ’인공지능(Artificial Intelligence)’이라는 용어는 1956년 다트머스 워크숍에서 존 매카시에 의해 처음 제안되었으며 1, ’로봇(robot)’이라는 단어는 1920년 카렐 차페크의 희곡 ’로봇(R.U.R.)’을 통해 세상에 알려졌다.3 따라서 이 보고서의 목적은 해당 시기에 이 용어들이 문자 그대로 사용된 사례를 찾는 것이 아니라, 후향적 관점에서 현대 AI와 로봇 공학 분야의 지적, 공학적 기원을 구성하는 근본적인 연구와 발명을 분석하는 데 있다. 이는 AI의 지적 선구자인 ’자동화된 추론(automated reasoning)’과 로봇 공학의 공학적 선구자인 ’기계 자동화 및 원격 조종(mechanical automation and remote control)’이라는 두 가지 핵심 흐름을 탐구하는 것을 포함한다.
이 보고서는 1910년대에 나타난 세 가지 독특하면서도 궁극적으로는 수렴하는 발전의 축을 중심으로 구성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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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현된 논리(Embodied Logic): 스페인의 공학자 레오나르도 토레스 케베도(Leonardo Torres Quevedo)의 ’엘 아헤드레시스타(El Ajedrecista)’로 대표되는, 규칙 기반의 자율적 의사결정이 가능한 물리적 기계의 창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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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격 행위성(Remote Agency): 제1차 세계대전이라는 군사적 필요성에 의해 촉발된, 직접적인 물리적 조작자의 필요성을 제거하고 원격에서 기계를 제어할 수 있게 한 기술의 발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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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상적 형식주의(Abstract Formalism): 앨프리드 노스 화이트헤드(Alfred North Whitehead)와 버트런드 러셀(Bertrand Russell)의 ’수학 원리(Principia Mathematica)’로 정점에 달한, 수십 년 후 계산 이론과 기호주의 AI의 이론적 언어를 제공하게 될 엄밀한 수리 논리학의 확립.
본 보고서의 핵심 논지는 1910년대가 추상적 이론과 실용적 공학이 뚜렷하게 분기되었던 시기였다는 점이다. 이 두 분야는 당시 거의 상호작용 없이 평행하게 발전했지만, 20세기 중반에 이르러 이들의 합성은 우리가 오늘날 알고 있는 인공지능을 탄생시켰다. 이러한 맥락에서 토레스 케베도의 연구는 이러한 미래의 합성을 예언적으로 보여준, 비록 당시에는 고립되었지만 매우 주목할 만한 초기 사례로 평가될 수 있다. 1910년대는 AI에 대한 통합된 연구가 진행된 시기가 아니었다. 오히려 수학의 논리적 기초를 확립하려는 고도로 추상적이고 철학적인 프로젝트와, 인간의 생명을 위협하지 않고 물리적 장치를 제어하려는 지극히 실용적이고 하드웨어 중심적인 공학 기술이라는 두 개의 독립적인 혁신의 흐름이 존재했다. ’엘 아헤드레시스타’는 형식적 규칙을 물리적이고 자율적인 기계에 구현함으로써 이 두 흐름 사이의 독특한 다리 역할을 수행했다. 따라서 이 시대의 핵심적 특징은 이러한 분기 현상이며, 토레스 케베도의 업적은 그 통합의 가능성을 선구적으로 제시한 사례로 자리매김해야 한다.
2. 자동화된 추론의 여명: 레오나르도 토레스 케베도의 ‘엘 아헤드레시스타’
2.1 발명과 공개
자동화된 추론의 역사는 1912년 스페인의 공학자 레오나르도 토레스 케베도가 마드리드에서 ’엘 아헤드레시스타(El Ajedrecista, 체스 선수)’를 발명하면서 실질적인 서막을 열었다.6 이 기계는 1914년 파리 대학교에서 대중에게 처음 공개되었을 때 엄청난 반향을 일으켰으며, 이듬해인 1915년에는 저명한 과학 저널인 ’사이언티픽 아메리칸(Scientific American)’에 “토레스와 그의 놀라운 자동 장치들(Torres and His Remarkable Automatic Devices)“이라는 제목으로 소개되면서 ’생각하는 기계’라는 개념을 더 넓은 대중에게 각인시켰다.6 ’엘 아헤드레시스타’의 가장 큰 의의는 내부에 인간 체스 마스터를 숨겨 관객을 속였던 ’메커니컬 터크(Mechanical Turk)’와 같은 이전의 자동기계(automaton)들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점에 있었다.9 이 기계는 어떠한 속임수도 없이, 내장된 기계적 및 전기적 논리에 따라 완전히 자율적으로 작동하는 최초의 진정한 게임 플레이 기계였다.6
2.2 기술적 구조 분석
’엘 아헤드레시스타’의 정교함은 그 전기기계적 구조에 있었다. 기계는 두 가지 주요 버전을 통해 발전했다.
1912년에 제작된 첫 번째 버전은 기계적인 팔과 레버를 사용하여 물리적으로 체스 말을 움직였다. 이 기계가 상대방의 수를 ’인식’하는 원리는 독창적이었다. 각 체스 말의 바닥에는 금속 메시가 부착되어 있었고, 체스판의 각 칸에는 전기 접점이 내장되어 있었다. 인간 플레이어가 자신의 킹(King)을 특정 칸으로 옮기면, 말 바닥의 메시가 해당 칸의 접점과 닿아 전기 회로를 완성시켰다. 이 전기 신호를 통해 기계는 상대 킹의 정확한 위치를 감지할 수 있었다.6 이 정보는 내부의 논리 회로로 전달되어 다음 수를 계산하는 데 사용되었다.
1920년에는 토레스의 아들인 곤살로(Gonzalo)에 의해 중요한 기술적 개선이 이루어진 두 번째 버전이 제작되었다. 이 버전은 체스판 아래에 설치된 전자석을 이용해 말을 움직였다. 이 방식은 외부의 기계 팔 없이도 말이 스스로 미끄러지듯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게 하여 훨씬 더 신비롭고 ‘마법 같은’ 효과를 자아냈다.6 더 나아가 이 버전은 축음기(phonograph)를 통합하여, 기계가 ‘체크(check)’ 또는 ‘체크메이트(checkmate)’ 상황을 음성으로 선언하는 기능까지 갖추었다.11 이는 단순히 기능적 완성을 넘어, 인간과 기계 간의 상호작용(human-machine interface)에 대한 초기적인 고민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또한, ’엘 아헤드레시스타’는 기초적인 오류 처리(error handling) 능력을 갖추고 있었다. 만약 인간 플레이어가 체스 규칙에 어긋나는 수(illegal move)를 두면, 기계는 이를 감지하고 램프에 불을 켜서 경고했다. 이러한 잘못된 수가 세 번 반복되면, 기계는 게임을 중단했다.6 이는 오늘날 컴퓨터 시스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입력 유효성 검사(input validation) 및 상태 관리(state management)의 원시적인 형태로, 기계가 단순히 정해진 절차를 따르는 것을 넘어, 외부 입력의 유효성을 판단하고 그에 따라 자신의 작동 상태를 변경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2.3 내장된 알고리즘
’엘 아헤드레시스타’의 ’지능’은 그 회로에 하드와이어링된 결정론적 알고리즘에서 비롯되었다. 토레스 케베도는 기계가 실현 가능하도록 문제 공간을 의도적으로 제한했다. 기계는 전체 체스 게임을 두는 것이 아니라, ’킹과 룩(Rook) 대 킹’이라는 특정한 엔드게임 상황을 해결하도록 설계되었다.6 이러한 문제의 단순화는 복잡한 계산 없이도 기계가 명확한 목표(체크메이트)를 달성할 수 있게 한 핵심적인 설계 결정이었다.
기계의 의사결정 논리는 앙리 비뉴롱(H. Vigneron) 등의 기록을 통해 상세히 알려져 있다. 알고리즘은 체스판을 특정 구역(zone)으로 나누고, 세 개의 말(백의 킹과 룩, 흑의 킹)의 상대적 위치에 따라 순차적인 규칙을 적용하는 방식으로 작동했다.6 예를 들어, 만약 흑의 킹이 백의 룩과 같은 구역에 있다면, 룩은 안전한 구역으로 먼저 이동한다. 그렇지 않다면, 룩은 흑의 킹을 향해 수직 또는 수평으로 접근한다. 이 모든 과정은 전기기계적 릴레이와 접점으로 구성된 논리 회로를 통해 자동으로 계산되고 실행되었다.
주목할 점은 이 알고리즘이 ‘최적의 수’, 즉 가장 적은 수로 체크메이트를 달성하도록 설계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때로는 50수 규칙을 초과하기도 했지만, 어떤 상황에서든 반드시 승리하도록 보장하는 데 초점을 맞추었다.6 이는 효율성보다 견고한 문제 해결 능력을 우선시한 것으로, 초기 인공지능 연구에서 흔히 나타나는 트레이드오프를 보여준다. 기계의 목표는 인간 챔피언처럼 우아하게 이기는 것이 아니라, 논리적으로 실수가 없는 플레이를 통해 필연적인 승리를 증명하는 것이었다.
표 1: ’엘 아헤드레시스타’의 의사결정 알고리즘
| 조건 (Condition) | 행동 (Action) |
|---|---|
IF 흑 킹(BK)이 백 룩(WR)과 같은 구역에 위치 | WR을 a-파일 또는 h-파일로 이동시켜 구역을 벗어남. |
ELSE IF 수직 거리(BK, WR) > 1 | WR을 BK 방향으로 수직으로 한 칸 이동. |
ELSE IF 수직 거리(BK, WR) == 1 AND 수직 거리(백 킹(WK), BK) > 2 | WK를 BK 방향으로 수직으로 한 칸 이동. |
ELSE IF 수직 거리(BK, WR) == 1 AND 수직 거리(WK, BK) == 2 AND 수평 거리(WK, BK)가 홀수 | WR이 a-파일에 있으면 b-파일로, h-파일에 있으면 g-파일로 이동. |
ELSE IF 수직 거리(BK, WR) == 1 AND 수직 거리(WK, BK) == 2 AND 수평 거리(WK, BK)가 짝수 | WK를 BK 방향으로 수평으로 한 칸 이동. |
ELSE IF 수직 거리(BK, WR) == 1 AND 수직 거리(WK, BK) == 2 AND 수평 거리(WK, BK) == 0 | WR을 BK 방향으로 수직으로 한 칸 이동. |
2.4 철학적 함의와 역사적 위상
’엘 아헤드레시스타’의 진정한 역사적 가치는 단순히 최초의 컴퓨터 게임이라는 타이틀을 넘어선다.6 이 기계의 등장은 앨런 튜링의 ’튜링 테스트’보다 수십 년 앞서 기계 지능에 대한 철학적 논쟁을 촉발시킨 최초의 구체적인 사례였다. 토레스 케베도 자신이 이 기계를 만든 동기는 기술적 과시를 넘어선 철학적 증명에 있었다. 그는 기계가 이전까지 “인간 지성의 독점적 영역“으로 여겨졌던 과업을 수행할 수 있음을 보여줌으로써, 인류를 “특정한 부담으로부터 해방“시킬 수 있다고 믿었다.14 이는 기계의 지적 능력을 향상시켜 인간을 돕게 하려는, 현대 AI의 목표와도 일맥상통한다.
이러한 철학적 논쟁의 시작은 1915년 ‘사이언티픽 아메리칸’ 기사에서 명확하게 드러난다.8 이 기사는 “인간의 마음을 기계로 대체하려 한다(substitute Machinery for the Human Mind)“와 같은 도발적인 표현을 사용하며, “기계는 경기장을 둘러보고 다른 가능한 행동보다 하나의 행동을 선택한다“고 기술했다. 또한 “자동기계는 일반적으로 생각과 함께 분류되는 많은 일들을 할 수 있다“고 명시하며, 기계가 수행하는 계산과 인간의 ‘생각’ 사이의 경계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제기했다.
이러한 당대의 분석은 AI 철학의 핵심 질문들—기계가 생각할 수 있는가? 기계가 결정을 내릴 수 있는가? 자동화의 한계는 어디인가?—이 1950년대 다트머스 워크숍에서 처음 탄생한 것이 아니라 1, 1910년대에 이미 구체적인 하드웨어를 마주한 대중과 과학계에서 활발히 논의되고 있었음을 증명한다. 따라서 ’엘 아헤드레시스타’는 단순히 기술사적 유물이 아니라, 인류가 인공적인 생각의 가능성과 처음으로 진지하게 마주하게 만든 최초의 철학적 인공물(artifact)로 평가되어야 한다.
3. 원격 조종과 자동화 기술의 발전: 제1차 세계대전의 유산
3.1 군사적 수요와 기술 혁신
1910년대 후반, 원격 조종 기술은 니콜라 테슬라가 1898년에 선보인 무선 조종 보트와 같은 신기한 발명품의 단계를 넘어, 전략적 군사 목표로 급부상했다.15 이러한 변화의 중심에는 제1차 세계대전이 있었다. 조종사와 선원의 생명을 담보로 해야 하는 위험천만한 정찰 및 공격 임무는 무인 시스템에 대한 절박한 수요를 창출했다.16 전쟁이라는 극한 상황은 원격 조종 기술을 실험실의 호기심에서 전장의 필수 기술로 변모시키는 강력한 촉매제 역할을 했다.
3.2 공중의 개척자: 아치볼드 로우
항공 분야에서 무선 원격 조종의 실질적인 성공은 영국의 발명가 아치볼드 로우(Archibald Low)의 손에서 이루어졌다. 그는 영국 육군 항공대(Royal Flying Corps, RFC)의 비밀 실험 부서를 이끌며 세계 최초의 군사 드론 개발을 주도했다.18
그의 가장 중요한 성과는 1917년에 개발된 ’에어리얼 타겟(Aerial Target)’이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이 무인 항공기는 원래 대공포 사격 훈련을 위한 표적기로 설계되었으나, 그 기술적 의의는 훨씬 더 컸다. 이 항공기는 지상에 있는 조종사에 의해 원격으로 조종되었으며, 당시 조종을 맡았던 인물 중 한 명이 훗날 세계 항공 속도 기록을 경신하게 되는 헨리 시그레이브(Henry Segrave)였다.18 ’에어리얼 타겟’은 단순히 원격으로 이륙하고 비행하는 수준을 넘어, 적의 전파 방해(jamming)에 대응하기 위한 중요한 기술을 포함하고 있었다. 로우의 시스템은 조종 명령을 암호화하여 전송하는 방식을 채택했는데, 이는 적이 조종 신호를 가로채거나 교란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초기 형태의 보안 통신 기술이었다.18 이 기술은 무인 시스템의 신뢰성과 생존성을 확보하는 데 있어 결정적인 진일보였다.
3.3 해상의 혁신가: 존 헤이스 해먼드 주니어
같은 시기, 대서양 건너 미국에서는 발명가 존 헤이스 해먼드 주니어(John Hays Hammond, Jr.)가 해상 무인 시스템 분야에서 독보적인 연구를 진행하고 있었다.18 그의 연구는 단순히 선박을 원격으로 조종하는 것을 넘어, 더 정교하고 지능적인 시스템을 목표로 했다.
해먼드는 무선으로 조종되는 어뢰와 선박을 개발했다. 특히 그의 연구에서 주목할 점은 적의 전파 방해에 대응하는 기술과 환경에 반응하는 시스템을 고안했다는 것이다. 그는 적의 방해 전파를 회피하거나 무력화하는 다양한 anti-jamming 시스템을 개발하여 원격 조종의 안정성을 크게 향상시켰다.18 또한, 그의 시스템 중에는 원격 조종 선박이 스스로 적함의 탐조등 불빛을 추적하여 표적으로 삼는 기능도 포함되어 있었다. 이는 외부의 특정 신호(빛)를 감지하고 그에 맞춰 자신의 행동(항해 방향)을 조절하는 초기 형태의 센서 기반 자율 행동 시스템으로 볼 수 있다.
전쟁이 끝난 후 그의 기술은 1922년, 퇴역한 미 해군 전함 USS 아이오와(USS Iowa)를 원격 조종 표적함으로 개조하는 데 사용되면서 그 가치를 다시 한번 입증했다. 이 거대한 전함이 사람 없이 항해하며 포격 훈련의 표적이 되는 모습은 원격 조종 기술의 성숙도를 대중에게 각인시키는 극적인 장면이었다.18
3.4 기술적 의의와 로봇 공학의 연결고리
제1차 세계대전의 치열한 전장은 현대 로봇 공학의 물리적 ’몸체’가 단련된 용광로였다. 전쟁 이전의 원격 조종 기술이 가능성을 시연하는 수준이었다면, 전쟁은 ’인간 탑승 없이 군사 목표를 달성하라’는 타협 불가능한 요구사항을 제시했다. 이로 인해 기술 개발의 초점은 신뢰성, 보안성(전파 방해 방지), 그리고 적대적 환경에서의 생존성으로 옮겨갔다.
그 결과 탄생한 ’에어리얼 타겟’과 같은 시스템들은 비록 ’지능’을 갖추지는 않았지만, 하나의 완전한 ’행위자(agent)’로서 로봇 시스템의 핵심 구성요소를 모두 포함하고 있었다. 무선 수신기는 ’감각(sensing)’을, 암호화된 통신 링크는 ’소통(communication)’을, 그리고 방향타와 엔진을 제어하는 장치들은 ’행동(actuation)’을 담당했다. 이는 로봇 공학의 근본적인 패러다임, 즉 외부의 명령이나 환경 정보를 감지하여 물리적인 행동으로 옮기는 실체를 확립한 것이다. ’엘 아헤드레시스타’와 같은 기계에서 AI의 ’정신’이 싹트고 있었다면, 전쟁의 포화 속에서는 로봇의 ’신체’를 구성하는 하드웨어와 시스템 통합 기술이 만들어지고 있었다. 이 시기의 연구는 로봇 공학의 실질적인 공학적 혈통이 시작된 지점이라 할 수 있다.
4. 현대 계산 이론의 초석: ‘수학 원리(Principia Mathematica)’
4.1 로지시즘의 야망
1910년부터 1913년에 걸쳐 출판된 앨프리드 노스 화이트헤드와 버트런드 러셀의 3권짜리 저서 ’수학 원리(Principia Mathematica, 이하 PM)’는 20세기 지성사에 거대한 족적을 남긴 기념비적인 작업이다.19 이 프로젝트의 핵심 철학은 ‘논리주의(Logicism)’, 즉 수학 전체가 소수의 순수한 논리적 공리들로부터 연역적으로 도출될 수 있다는 야심 찬 주장이었다.22 그들의 목표는 수학의 모든 개념을 논리로 환원하고 모든 수학적 증명을 논리적 증명으로 변환함으로써 수학의 기초를 그 어떤 의심의 여지도 없는 확고한 토대 위에 세우는 것이었다. 이러한 철학적 목표는 PM이 왜 그토록 엄밀하고 기호적인 형식주의에 집중했는지를 설명해준다.
4.2 형식 체계와 타입 이론
PM의 가장 중요한 공헌 중 하나는 현대 기호 논리학을 대중화하고 체계화했다는 점이다. 이 저서는 부정, 논리곱, 논리합과 같은 논리 연산자와 ‘모든(for all)’, ’존재한다(there exists)’와 같은 양화사를 위한 기호들을 사용하여 복잡한 명제들을 표현하는 포괄적인 형식 언어(formal language)를 제공했다.22 이를 통해 수학적 주장을 모호함 없는 기호의 나열로 변환하고, 엄격하게 정의된 추론 규칙에 따라 단계별로 증명을 전개할 수 있게 되었다.
특히 PM은 ’분기된 타입 이론(ramified theory of types)’이라는 독창적인 개념을 도입했다. 이 이론은 러셀 자신이 발견하여 이전의 논리주의 시도를 좌절시켰던 ’러셀의 역설(Russell’s paradox)’과 같은 논리적 모순을 피하기 위해 특별히 고안되었다.22 역설의 핵심은 ’자기 자신을 원소로 포함하지 않는 모든 집합들의 집합’과 같이 자기 자신을 참조하는 정의에서 발생한다. 타입 이론은 이러한 자기 참조를 원천적으로 차단하기 위해 계층 구조를 도입했다. 이 이론에 따르면, 모든 대상은 특정 ’타입’에 속하며, 한 집합(상위 타입)은 오직 자신보다 낮은 타입의 원소들만을 포함할 수 있다. 이처럼 엄격한 계층 구조는 역설을 회피하고 논리 체계의 무모순성을 보장하는 강력한 장치가 되었다.
4.3 컴퓨터 과학에 미친 잠재적 영향
1910년대에 PM이 인공지능에 미친 가장 중대한 기여는 역설적이게도 완전히 간접적이고 지연된 형태로 나타났다. 수학의 철학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탄생한 이 저서의 엄격한 형식주의는, 저자들의 의도와는 전혀 무관하게, 수십 년 후 등장할 계산 이론, 프로그래밍 언어, 그리고 기호주의 AI 분야에 필수적인 이론적 도구를 제공하는 결과를 낳았다.
화이트헤드와 러셀은 디지털 컴퓨터라는 개념 자체를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들의 목표는 순수하게 철학적이고 수학적인 것이었다.22 그러나 복잡한 수학적 증명을 간단하고 형식적이며 규칙에 기반한 기호 조작의 연속으로 환원하는 데 성공함으로써, 그들은 원리적으로 수학적 추론이 ’기계화’될 수 있음을 증명했다. 이 작업은 앨런 튜링이나 알론조 처치와 같은 다음 세대의 논리학자들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주었고, 그들은 바로 이 형식주의 전통 위에서 ’계산(computation)’이라는 개념 자체를 정의했다.
논리적 역설을 해결하기 위해 고안되었던 ’타입 이론’은 현대 프로그래밍 언어의 ’타입 시스템(type system)’의 직계 조상이 되었다.25 오늘날 프로그래밍 언어에서 타입(예: 정수형, 문자열형)은 프로그램의 정확성을 보장하고 데이터 형식 불일치로 인한 오류를 방지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이는 철학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추상적 개념이 전혀 예상치 못한 실용적 응용 분야에서 재발견된 전형적인 사례다.
역사적 순환은 40여 년이 지난 1956년에 완성된다. 최초의 인공지능 프로그램으로 평가받는 앨런 뉴얼과 허버트 사이먼의 ’로직 시어리스트(Logic Theorist)’는 바로 ’수학 원리(PM)’에 등장하는 정리들을 증명하기 위해 명시적으로 설계되었다.26 이는 PM이 AI의 이론적 ’기반’을 제공했을 뿐만 아니라, AI 프로그램이 다루는 최초의 ’주제’가 되었음을 의미한다. 즉, PM의 기호 체계 자체가 계산 가능한 영역임을 증명한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PM은 1910년대 AI 발전사의 ’암흑 물질(dark matter)’과 같다. 당시에는 실용적인 측면에서 보이지 않았지만, 그 지적인 중력 효과는 훗날 컴퓨팅과 인공지능이라는 우주 전체의 구조를 형성하게 될 운명이었다.
5. 결론: 1910년대의 유산과 인공지능의 통합적 미래
5.1 분기된 경로의 종합
1910년대는 인공지능과 로봇 공학의 역사에서 세 개의 독립적인 강이 발원한 시기였다. 첫째, ’엘 아헤드레시스타’의 구현된 논리는 기계가 규칙에 따라 자율적으로 추론하고 행동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물리적으로 증명했다. 둘째, 제1차 세계대전 시대 기계들의 원격 행위성은 인간의 직접적인 개입 없이 물리적 작업을 수행하는 로봇의 ’신체’에 해당하는 공학적 기반을 닦았다. 셋째, ’수학 원리’의 추상적 형식주의는 훗날 기계가 ’생각’을 수행할 수 있는 언어, 즉 계산의 문법을 자신도 모르게 창조했다. 이 세 흐름은 당시에는 서로의 존재를 거의 인지하지 못한 채 각자의 경로를 따라 흘렀지만, 각각은 미래의 인공지능과 로봇 공학이라는 거대한 바다를 형성하는 데 필수적이고 서로 겹치지 않는 구성 요소를 제공했다.
5.2 기초의 10년
결론적으로 1910년대는 인공지능과 로봇 공학이 ’연구’된 시기가 아니라, 그 존재를 위한 가장 근본적인 전제 조건들이 마련된 결정적인 10년으로 보아야 한다. 이 시기는 기계적 추론이라는 추상적 가능성이 구체적인 현실로 나타났고, 원격 물리적 행동을 위한 공학 기술이 실용성을 입증했으며, 계산의 보편적 언어가 무의식적으로 초안된 순간이었다. ’엘 아헤드레시스타’는 이 세 가지 요소가 어떻게 통합될 수 있는지에 대한 희미하지만 놀라운 청사진을 제시했다.
5.3 지속되는 유효성
1910년대의 핵심적인 질문과 도전들—기계적 사고의 한계를 정의하는 것, 자율 시스템의 견고한 제어를 보장하는 것, 그리고 엄격한 형식적 토대 위에 지능을 구축하는 것—은 한 세기가 지난 오늘날 인공지능 연구의 중심에 여전히 남아 있다. 이 시기의 선구자들은 미래를 정확히 예측하지는 못했지만, 그들이 던진 질문과 그들이 마련한 기초는 현대 기술 문명의 가장 역동적인 분야를 떠받치는 주춧돌이 되었다.
표 2: 1910-1919년 AI/로봇 공학 주요 선구 기술 연표
| 연도 (Year) | 형식 논리 (Formal Logic) | 자동화된 추론 (Automated Reasoning) | 원격 조종/자동화 (Remote Control/Automation) |
|---|---|---|---|
| 1910 | 화이트헤드 & 러셀, ‘수학 원리’ 1권 출판.19 | 토레스 케베도, ‘엘 아헤드레시스타’ 제작 착수.11 | |
| 1912 | ‘수학 원리’ 2권 출판.20 | ‘엘 아헤드레시스타’ 완성.6 | |
| 1913 | ‘수학 원리’ 3권 출판.20 | ||
| 1914 | ‘엘 아헤드레시스타’ 파리에서 공개 시연.6 | ||
| 1915 | ’사이언티픽 아메리칸’에 ‘엘 아헤드레시스타’ 소개.6 | ||
| 1917 | 아치볼드 로우, ‘에어리얼 타겟’ 무선 조종 항공기 시연 성공.18 | ||
| 1918 | 영국 해군, 로우의 시스템을 이용해 해군 함정 원격 조종.18 | ||
| 1919 | 러셀, ‘수리철학 서설’ 출판.19 | 존 헤이스 해먼드 주니어, 원격 어뢰 및 전파 방해 방지 기술 개발 지속.18 |
6. 참고 자료
- The birth of Artificial Intelligence (AI) research | Science and Technology, https://st.llnl.gov/news/look-back/birth-artificial-intelligence-ai-research
- Appendix I: A Short History of AI | One Hundred Year Study on Artificial Intelligence (AI100), https://ai100.stanford.edu/2016-report/appendix-i-short-history-ai
- The Origin Of The Word ‘Robot’ - Science Friday, https://www.sciencefriday.com/segments/the-origin-of-the-word-robot/
- en.wikipedia.org, https://en.wikipedia.org/wiki/Robot#:~:text=The%20term%20comes%20from%20a,1920%20Czech%2Dlanguage%20play%20R.U.R.
- Robot - Wikipedia, https://en.wikipedia.org/wiki/Robot
- El Ajedrecista - Wikipedia, https://en.wikipedia.org/wiki/El_Ajedrecista
- 1911-20 - Chess Playing Machines - Leonardo Torres y Quevedo (Spanish), https://cyberneticzoo.com/not-quite-robots/1911-20-chess-playing-machines-leonardo-torres-y-quevedo-spanish/
- “El Ajedrecista” – an analog chess-playing computer from 1912 - collision detection, http://www.collisiondetection.net/mt/archives/2011/09/el_ajedrecista.php
- Automata, Androids and Robots | World Encyclopedia of Puppetry Arts, https://wepa.unima.org/en/automata-androids-and-robots/
- Mechanical miracles: The rise of the automaton | Christie’s, https://www.christies.com/en/stories/the-history-of-the-automaton-mechanical-miracles-191ab3c1b3c94bde9118321e83ae9537
- El Ajedrecista - Chessprogramming wiki, https://www.chessprogramming.org/El_Ajedrecista
- Leonardo Torres - Computer Timeline, http://www.computer-timeline.com/timeline/leonardo-torres/
- El Ajedrecista - Chessprogramming wiki, https://www.chessprogramming.org/index.php?title=El_Ajedrecista&mobileaction=toggle_view_deskt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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