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제조업의 구조적 붕괴 위기 진단
2026-01-11, G30DR
1. 서론: ’제조업 강국’의 황혼인가, 새로운 균형인가?
대한민국 경제의 근간을 이루어 온 제조업이 복합적인 위기 국면에 진입했다는 경고음이 커지고 있다. 과거의 위기가 일시적인 경기 순환이나 외환 위기와 같은 거시경제적 충격에서 기인했다면, 현재 목격되는 위기는 산업의 기초 체력 자체가 소진되는 구조적인 성격을 띠고 있다. 본 보고서는 미국의 제조업 붕괴를 가속화한 핵심 기제인 ’금융화(Financialization)’가 한국 경제 내에서 어떻게 변용되어 나타나고 있는지 분석하고, 제조업의 혈관이라 할 수 있는 숙련 기술 인재 공급망(실업계고·마이스터고)의 붕괴 실태를 파헤친다. 나아가 정부와 산업계가 유일한 대안으로 제시하고 있는 외국인 숙련공 도입 정책이 과연 붕괴하는 내국인 인력 생태계를 효과적으로 대체할 수 있는지에 대해 면밀히 검토한다.
미국의 경우, 주주 가치 극대화라는 미명 하에 자사주 매입(Stock Buybacks)과 배당 등 금융 기법에 기업의 잉여 현금흐름이 집중되면서 실물 투자(CAPEX)와 연구개발(R&D)이 위축되었고, 이는 ’러스트 벨트(Rust Belt)’로 대변되는 제조업 공동화와 경쟁력 상실로 이어졌다. 한국 역시 대기업을 중심으로 사내유보금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고 있으나, 이것이 생산적 설비 투자로 이어지지 않고 부동산 투기나 금융 자산 축적으로 변질되는 경향이 뚜렷하다. 동시에 노동 시장에서는 학령인구 감소와 더불어 청년층의 제조업 기피 현상이 심화되면서, 과거 ’공고(실업계고)’로 대변되던 기술 인재 공급 파이프라인이 사실상 단절되었다.
본 연구는 이러한 현상들이 개별적인 이슈가 아니라 상호 연결된 거대한 구조적 붕괴의 전조임을 논증한다. 자본은 생산 현장을 떠나 자산 시장으로 이동하고(Capital Flight), 노동은 공장을 떠나 플랫폼 경제로 이동하는(Labor Flight) 이중의 이탈 현상이 가속화되고 있다. 이에 대한 대안으로 제시된 외국인 인력은 낮은 숙련도와 언어 장벽이라는 근본적 한계에 봉착해 있다. 본 보고서는 방대한 데이터와 문헌 조사를 바탕으로 한국 제조업이 직면한 ’퍼펙트 스톰’의 실체를 규명한다.
2. 미국의 제조업 붕괴 메커니즘: 금융화(Financialization)의 역설
한국의 미래를 진단하기 위해서는 먼저 제조업 붕괴의 선행 지표라 할 수 있는 미국의 사례를 철저히 해부할 필요가 있다. 미국 제조업의 쇠퇴는 단순히 인건비가 싼 해외로 공장을 이전했기 때문만이 아니다. 더 근본적인 원인은 기업 경영의 목표가 ’제품 생산’에서 ’주가 관리’로 변질된 데 있다.
2.1 주주 가치 극대화와 자사주 매입의 폭주
미국 기업들의 행동 양식은 1980년대를 기점으로 급격히 변화했다. 과거 ‘보유와 재투자(Retain and Reinvest)’ 전략을 통해 이익을 설비 확장과 인력 양성에 재투자하던 기업들이, ‘다운사이징과 분배(Downsize and Distribute)’ 전략으로 선회한 것이다. 이 변화의 핵심에는 1982년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가 제정한 ’Rule 10b-18’이 있다. 이 규칙은 기업이 자사주를 매입하는 행위를 주가 조작으로 처벌하지 않도록 하는 ’면죄부(Safe Harbor)’를 제공했다.1
2.1.1 자사주 매입 규모와 투자의 구축(Crowding Out) 효과
2025년 미국 기업들의 자사주 매입 규모는 1.2조 달러(약 1,600조 원)에 달할 것으로 추산되며, 향후 수년 내에 1.8조 달러를 상회할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2 이는 미국 전체 주식 시장 시가총액의 2~3%에 해당하는 막대한 규모로, 기업공개(IPO)나 유상증자를 통해 시장에 유입되는 자본보다 시장에서 빠져나가는 자본이 훨씬 많음을 의미한다.
문제는 이러한 자금이 기업의 미래 경쟁력을 갉아먹는다는 점이다. 루즈벨트 연구소(Roosevelt Institute)의 분석에 따르면, 1960~70년대 미국 기업은 1달러를 벌거나 빌리면 그중 40센트를 실물 투자에 사용했다. 그러나 1980년대 이후 이 비율은 10센트 미만으로 급락했다.1 나머지 자금은 주주 환원이라는 명목으로 유출되었다. 이는 반도체, 바이오 등 첨단 산업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예를 들어 암젠(Amgen)과 같은 제약사조차 부정적인 뉴스에 따른 주가 하락을 방어하기 위해 수십억 달러를 빚내어 자사주를 매입하는 행태를 보였다.3
| 구분 | 1960~70년대 | 1980년대 이후 | 비고 |
|---|---|---|---|
| 자금 용도 | 1달러 중 40센트 실물 투자 | 1달러 중 10센트 미만 실물 투자 | 투자의 급격한 위축 |
| 경영 목표 | 기업 성장, 고용 창출 | 주당순이익(EPS) 증대, 주가 부양 | 단기 성과주의 심화 |
| 자사주 매입 성격 | 예외적, 규제 대상 | 일상적, 주가 관리 수단 | 1982년 규제 완화 이후 급증 |
2.1.2 경영진의 도덕적 해이와 단기주의
경영진의 보상 체계가 스톡옵션 등 주가와 연동되면서, CEO들은 장기적인 R&D나 설비 투자보다는 당장의 주가를 띄울 수 있는 자사주 매입을 선호하게 되었다. 이는 기업의 자원을 ’혁신’이 아닌 ’금융 공학(Financial Engineering)’에 소모하게 만들었다. 인텔(Intel)이 기술 리더십을 잃고 파운드리 경쟁에서 밀려나는 동안 막대한 자금을 배당과 자사주 매입에 썼다는 비판은 이러한 맥락에서 제기된다. 이는 단순한 경영 실패가 아니라, 금융화된 자본주의 시스템의 구조적 필연이다.
2.2 금융화가 초래한 노동 시장의 왜곡
금융화는 자본 시장뿐만 아니라 노동 시장에도 심각한 악영향을 미쳤다. 기업 이익 중 노동자에게 돌아가는 몫인 ’노동 소득 분배율’은 지속적으로 하락했다. 딘 베이커(Dean Baker) 경제학자의 분석에 따르면, 노동 소득 분배율이 1979년 수준으로 유지되었다면 현재 중위 노동자의 임금은 약 4.2% 더 높았을 것이다.4
금융화는 기업으로 하여금 인건비를 줄여야 할 ’비용’으로만 인식하게 만들었다. 월스트리트의 애널리스트들은 치폴레(Chipotle) 경영진이 노동 비용을 더 이상 쥐어짤 수 없다고 판단하자 주식 등급을 강등시키기도 했다.4 이러한 압력은 제조업 현장에서 숙련공을 해고하고, 저임금 비정규직이나 아웃소싱으로 대체하는 흐름을 가속화시켰다. 결국 미국 제조업은 기술을 축적할 ’사람’을 잃어버렸고, 이는 되돌릴 수 없는 경쟁력 상실로 이어졌다.
3. 한국형 금융화의 실체: 자사주 대신 ’부동산’과 ‘해외 탈출’
한국의 제조업 위기는 미국의 금융화 경로를 그대로 따르지는 않지만, 결과적으로 제조업의 기반을 잠식한다는 점에서는 동일하다. 한국 기업들은 주주 환원보다는 ’사내유보금 축적’과 ‘부동산 투기’, 그리고 ’해외 직접투자’라는 형태로 자본을 생산 현장에서 이탈시키고 있다.
3.1 사내유보금의 기형적 증가와 실물 투자의 괴리
한국 대기업들은 막대한 이익을 창출하면서도 이를 국내 설비 투자로 환류시키지 않고 내부에 쌓아두고 있다.
3.1.1 사내유보금 1,000조 시대의 그늘
국회 입법조사처와 여러 시민단체의 분석에 따르면, 한국 30대 그룹의 사내유보금은 2010년 330조 원 수준에서 2020년대 초반 약 1,000조 원에 육박하는 수준으로 폭증했다.5 2021년 기준 30대 재벌의 사내유보금은 약 981조 원으로 집계되었으며, 상위 10대 그룹의 증가세가 특히 두드러졌다.6
문제는 이러한 유보금 증가가 실물 투자의 증가와 비례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2010년 사내유보금 대비 실물 투자 비율은 18.9%였으나, 2014년에는 12.9%까지 하락했다.5 이는 기업이 벌어들인 돈을 공장을 짓거나 기계를 사는 데 쓰지 않고, 현금성 자산이나 투자 자산으로 묶어두고 있음을 의미한다.
3.1.2 산업 자본의 부동산 투기화
더욱 우려스러운 점은 기업들이 이 자금을 ‘부동산’ 매입에 대거 투입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한국은 가계뿐만 아니라 기업의 자산 구조에서도 부동산 등 비금융 자산 비중이 기형적으로 높다. 한국 가계의 비금융 자산 비중은 65%로 미국(32%), 일본(36%)의 두 배 수준이다.7 기업 역시 생산 설비 확충보다 수도권 인근의 토지나 빌딩 매입에 열을 올리고 있다.
30대 재벌의 투자 부동산 규모 역시 사내유보금 증가와 궤를 같이하며 급증했다.8 이는 제조업의 수익률이 저하되는 상황에서 부동산 시세 차익으로 기업 가치를 방어하려는 ‘지대 추구(Rent-seeking)’ 행위로 해석된다. 공장을 돌려 버는 돈보다 땅값 상승으로 버는 돈이 더 많아질 때, 제조업의 혁신 동력은 상실된다.
3.2 국내 투자의 공동화(Hollowing Out)와 해외 직접투자(ODI)의 급증
미국 기업들이 자사주를 사느라 투자를 안 했다면, 한국 기업들은 해외에 공장을 짓느라 국내 투자를 줄이고 있다. 자본의 ‘탈국적화’ 현상이 뚜렷하다.
3.2.1 대미(對美) 투자의 쏠림 현상
2024년 한국 기업의 해외 직접투자(ODI) 동향을 보면, 글로벌 고금리와 경기 침체 우려에도 불구하고 투자가 견조하게 유지되고 있다. 특히 반도체, 배터리 등 한국 제조업의 핵심 동력인 첨단 산업의 대미 투자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9 미국의 인플레이션 감축법(IRA)과 반도체 지원법(Chips Act)에 대응하기 위해 삼성전자, SK하이닉스, 현대차, LG에너지솔루션 등 주요 기업들이 천문학적인 자금을 미국 현지 공장 건설에 쏟아붓고 있다.
2024년 미국의 대내 직접투자 유치액 중 상당 부분이 한국 기업에서 나왔으며, 이는 국내 설비 투자 부진의 직접적인 원인 중 하나로 지목된다.10 국내에서는 “투자가 없다“고 아우성이지만, 실제로는 투자가 ‘없는’ 것이 아니라 ‘해외로 나간’ 것이다.
3.2.2 중국 자본의 침투와 기술 종속 우려
반면, 국내로 유입되는 외국인 직접투자(FDI)의 질적 변화도 감지된다. 중국의 대한국 직접투자 신고액은 2024년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11 이는 중국 기업들이 미국의 대중국 제재를 우회하기 위해 한국을 생산 기지나 경유지로 활용하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한국 기업이 빠져나간 자리를 중국 자본이 채우는 형국은, 장기적으로 국내 제조업 생태계가 중국 공급망에 더욱 종속될 위험을 내포한다.
4. 인력 공급 생태계의 붕괴: ’실업계고’의 몰락과 노동의 미스매치
자본의 이탈보다 더 치명적인 것은 제조업을 지탱할 ’사람’이 사라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한국 제조업의 고속 성장을 견인했던 ‘기능공(Technician)’ 양성 시스템은 이제 완전히 붕괴되었다. 이는 단순한 인구 감소의 문제가 아니라, 교육 시스템과 노동 시장의 보상 체계가 완전히 고장 났음을 의미한다.
4.1 직업계고(특성화고·마이스터고)의 형해화
정부는 직업계고 활성화를 위해 마이스터고 지정, 취업 연계 장려금 등 다양한 정책을 쏟아냈으나, 현장의 지표는 정책의 실패를 가리키고 있다.
4.1.1 취업률의 허상과 진학률의 역습
교육부 통계에 따르면 2024년 직업계고 졸업자의 표면적 취업률은 55.3%이다.12 그러나 이 수치에는 단기 아르바이트나 4대 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불안정 노동이 포함되어 있을 가능성이 높다. 보다 엄격한 기준을 적용한 베리타스알파의 분석에 따르면, 직업계고의 ’실질 취업률’은 2024년 25.6%로 6년 내 최저치를 기록했다.13
반면, 대학 진학률은 49.2%로 6년 연속 상승했다.13 “기술을 배워 취업하겠다“는 직업계고의 설립 취지는 무색해졌다. 학생들은 직업계고를 ’취업의 통로’가 아닌 ’대학 진학의 우회로’나 ’일반고 부적응의 도피처’로 인식하고 있다. 마이스터고의 경우 72.6%의 상대적으로 높은 취업률을 보이지만12, 전체 직업계고 학생 중 마이스터고 학생이 차지하는 비중은 극히 일부분에 불과해 전체 제조업 인력난을 해소하기에는 역부족이다.
4.1.2 현장 이탈: “공장은 희망이 없다”
어렵게 취업에 성공한 학생들조차 공장을 빠르게 떠나고 있다. 2024년 직업계고 졸업자의 유지취업률(취업 후 일정 기간 계속 근무하는 비율)을 보면, 1차 유지취업률은 82.2%였으나 불과 몇 달 뒤인 2차 유지취업률은 66.2%로 급락한다.12 3명 중 1명 이상이 1년도 채 되지 않아 퇴사한다는 의미다. 이는 열악한 근무 환경, 낮은 임금, 그리고 사회적 편견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다.
4.2 노동 시장의 가격 기제 붕괴: 공장 vs. 플랫폼
청년들이 제조업을 기피하는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임금 격차’와 ‘노동의 자율성’ 문제다. 시장은 더 이상 제조업 노동에 매력적인 가격을 지불하지 않는다.
4.2.1 제조업 임금의 상대적 박탈감
데이터는 참혹한 현실을 보여준다. 2024년 중소제조업 생산직 신입(사원)의 평균 연봉은 약 2,823만 원 수준이다.14 이를 월급으로 환산하면 세전 약 235만 원, 세후로는 200만 원 초반대에 불과하다. 중소기업 생산직의 평균 일급은 11만 684원, 단순노무종사원은 9만 694원이다.15 최저임금과 큰 차이가 없는 수준이다.
4.2.2 플랫폼 노동의 부상과 인력 흡수
반면, 배달 플랫폼과 같은 기그 이코노미(Gig Economy) 영역의 소득은 제조업을 압도한다. AI 배차 시스템을 도입한 경기 화성시 지역 배달의민족 라이더의 월평균 소득은 424만 원으로 집계되었다.17
상사의 간섭도 없고, 원하는 시간에 일하며, 위험 수당 등을 포함해 제조업 생산직보다 약 1.5~2배의 소득을 올릴 수 있는 상황에서, 청년들이 기름밥을 먹으며 공장을 지킬 유인은 전무하다. 이는 청년 세대가 ’나약해서’가 아니라 ’합리적’이기 때문에 발생하는 현상이다. 시장의 보상 체계가 제조업에 불리하게 기울어진 상황에서 애국심이나 장인 정신을 강요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 비교 항목 | 중소 제조기업 생산직 (신입) | 배달 플랫폼 라이더 (숙련) | 비고 |
|---|---|---|---|
| 월평균 소득 | 약 235만 원 (세전) 14 | 약 424만 원 (경기 화성 기준) 17 | 플랫폼 노동이 1.8배 상회 |
| 일급 환산 | 약 11만 원 15 | (근무 시간에 따라 변동, 고수익 가능) | |
| 근무 환경 | 경직된 조직, 고정된 시간, 위험/오염 | 자율적 시간, 대인 관계 스트레스 적음 | ‘워라밸’ 선호 부합 |
| 진입 장벽 | 기술 습득 필요, 조직 적응 필요 | 오토바이 면허, 앱 설치 | 진입 용이성 높음 |
대졸자들의 제조업 취업 비중 역시 23.5%로 13년 만에 반토막 났다.18 고학력 청년층은 공장을 떠나 서비스업과 사무직, 혹은 공무원 시험 준비로 몰리고 있다. ’탈공업화’는 산업 구조뿐만 아니라 인력 구조에서 더욱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5. 외국인 숙련공 대체론의 허상: 비용은 늘고 효율은 준다
내국인 인력 공급망이 붕괴되자 정부와 산업계는 외국인 근로자(E-9, E-7-4 비자 등) 도입 확대를 유일한 생존 전략으로 채택했다. 법무부는 숙련기능인력(E-7-4) 쿼터를 2024년 35,000명으로 대폭 늘리고 ‘K-point E74’ 제도를 통해 비자 전환을 장려하고 있다.19 그러나 현장의 데이터는 외국인 인력이 ’값싼 대체재’도, ’완벽한 숙련공’도 아님을 보여준다.
5.1 고비용 저효율 구조의 고착화 (Productivity Paradox)
과거 외국인 근로자는 ’싼 맛에 쓰는 인력’이었으나, 지금은 상황이 완전히 달라졌다.
5.1.1 내국인을 뛰어넘는 인건비
중소기업중앙회의 2024년 실태조사에 따르면, 외국인 근로자 1인당 월평균 인건비는 263.8만 원이며, 숙식비를 포함한 총 고용 비용은 302.4만 원에 달한다.20 이는 앞서 살펴본 중소기업 고졸 생산직 신입의 월급(약 235만 원)을 훨씬 상회한다. 심지어 조사 대상 기업의 57.7%는 외국인 근로자가 내국인 근로자보다 더 많은 돈을 받아간다고 응답했다.20
최저임금 적용과 더불어, 외국인 근로자들은 잔업과 특근을 선호하기 때문에 실질 수령액이 내국인을 앞지르는 경우가 빈번하다. 기업 입장에서는 인건비 절감 효과가 사라진 지 오래다.
5.1.2 생산성의 하락과 긴 수습 기간
비용은 급증했지만 생산성은 오히려 뒷걸음질 치고 있다. 2024년 조사에서 입사 1년 미만 외국인 근로자의 생산성은 전년 대비 더욱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20 기업들은 외국인 근로자가 1인분의 몫을 하기까지 평균 4개월의 수습 기간이 필요하다고 호소한다. 이는 제조업 현장의 업무가 단순 반복 작업이라 할지라도, 일정 수준의 숙련도와 한국식 조직 문화 적응이 필수적임을 시사한다. 100%의 기업이 수습 기간의 필요성에 동의했다는 점20은 현장의 절박함을 보여준다.
5.2 결정적 장벽: 언어와 소통의 단절
제조업의 경쟁력은 기계뿐만 아니라, 작업자 간의 정교한 의사소통과 암묵지(Tacit Knowledge)의 전수에서 나온다. 그러나 언어 장벽은 이 모든 것을 가로막는 거대한 벽이다.
5.2.1 급증하는 소통의 어려움
중소기업의 66.7%가 외국인 근로자 활용의 가장 큰 애로사항으로 ’의사소통(낮은 한국어 수준)’을 꼽았다. 이는 전년 대비 무려 17%포인트나 급증한 수치이다.20 한국어 능력이 부족한 근로자에게는 단순 작업 지시 외에 복잡한 공정 개선이나 돌발 상황 대처를 맡길 수 없다.
5.2.2 기술 전수의 단절 (Missing Link)
현재 한국 제조업 현장의 주축인 50~60대 베이비부머 숙련공(공장장급)들은 자신들이 평생 쌓아온 노하우를 물려줄 대상을 찾지 못하고 있다. 내국인 청년은 없고, 외국인 근로자는 말이 통하지 않는다. 이대로라면 베이비부머 세대가 은퇴하는 향후 5~10년 내에 한국 제조업의 뿌리 기술(용접, 금형, 주조 등)은 맥이 끊길 위기에 처해 있다. 외국인 근로자를 ’숙련공’으로 양성하겠다는 정부의 E-7-4 정책은 언어 교육이 선행되지 않는 한 공허한 구호에 그칠 공산이 크다.
6. 결론 및 정책 제언: 붕괴를 막을 골든타임은 얼마 남지 않았다
6.1 종합 진단: 한국 제조업의 ‘트라이레마(Trilemma)’
현재 한국 제조업은 ① 자본의 금융화 및 유출, ② 인력 재생산 구조의 붕괴, ③ 불완전한 대체재의 한계라는 삼중고에 갇혀 있다.
- 자본 측면: 사내유보금 1,000조 원은 부동산과 해외 투자로 흘러들어가며 국내 제조업의 공동화를 가속화하고 있다. 한국판 금융화는 ’혁신의 포기’와 ’지대 추구’로 나타나고 있다.
- 인력 측면: 직업계고의 실질 취업률 25%와 배달 플랫폼의 고수익(400만 원대)은 노동 시장의 가격 기제가 제조업에 사망 선고를 내렸음을 보여준다. 청년들에게 공장은 경제적으로 비합리적인 선택지다.
- 대체재 측면: 외국인 근로자는 고비용-저효율-소통불가라는 3중고를 안고 있다. 이들은 ’숙련된 장인’을 대체할 수 없으며, 단지 공장의 가동을 멈추지 않게 하는 ‘산소호흡기’ 역할에 그치고 있다.
6.2 미래 시나리오
이 추세가 지속된다면 한국 제조업은 다음과 같은 경로를 밟을 것이다.
- 시나리오 1: 샌드위치 붕괴 (유력)
대기업과 1차 벤더는 자동화와 해외 생산 기지 확대로 생존하지만, 이를 뒷받침하는 2~4차 뿌리 산업 생태계는 인력난과 고비용을 견디지 못하고 도산한다. 국내 공급망이 무너진 대기업은 결국 R&D 기능까지 해외로 이전하게 되며, 한국은 ’제조업 공동화’의 완성 단계에 진입한다.
- 시나리오 2: 외국인 하청 기지화
국내 뿌리 산업이 100% 외국인 근로자로 채워진다. 그러나 기술 축적은 일어나지 않으며, 한국은 저부가가치 부품을 생산하는 하청 기지로 전락한다. 핵심 기술은 일본이나 독일, 혹은 기술 격차를 좁힌 중국에 종속된다.
6.3 제언: 패러다임의 대전환
붕괴를 막기 위해 정부와 기업은 기존의 관성을 타파하는 과감한 결단을 내려야 한다.
- 자본의 환류(Re-shoring) 유도: 기업의 사내유보금과 부동산 자산이 국내 설비 투자와 R&D, 그리고 무엇보다 ’사람’에게 투자될 수 있도록 강력한 유인책과 페널티를 동시에 적용해야 한다. 부동산 보유세를 강화하고, 국내 설비 투자 및 고용에 대한 파격적인 세액 공제를 제공하여 자본의 흐름을 부동산에서 공장으로 돌려야 한다.
- 노동 시장 이중 구조 타파 및 임금 현실화: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의 임금 격차를 줄이는 상생 협력 모델을 의무화해야 한다. 납품 단가 연동제 등을 통해 중소기업이 근로자에게 제대로 된 임금을 줄 수 있는 여력을 만들어주지 않으면 인력난은 해결되지 않는다. 또한, 플랫폼 노동과의 형평성을 고려하여 제조업 종사자에 대한 사회적 안전망과 세제 혜택(소득세 감면 등)을 획기적으로 확대해야 한다.
- 외국인 인력 정책의 질적 전환: 단순히 머릿수를 채우는 쿼터 확대(35,000명)에 그쳐서는 안 된다. 한국어 능력이 검증된 인력에게만 비자 전환 기회를 부여하고, 입국 전후로 강력한 직무 및 언어 교육을 의무화해야 한다. 외국인 근로자를 ’값싼 노동력’이 아닌 ’미래의 기술 파트너’로 인식하고 육성하는 시스템이 필요하다.
- 직업계고의 재정의: 대학 진학의 통로로 변질된 직업계고를 ’고숙련 기술인 양성소’로 원상 복구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고졸 취업자가 대졸자 못지않은 대우를 받을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와 임금 체계 개편이 선행되어야 한다. 독일의 마이스터 제도처럼, 기술직이 사회적으로 존경받고 경제적으로 안정된 경로임을 증명해야 한다.
한국 제조업은 지금 골든타임의 끝자락에 서 있다. 금융화의 유혹을 끊고, 사람과 기술에 다시 투자하지 않는다면, 미국의 러스트 벨트가 겪었던 비극은 머지않아 한국의 현실이 될 것이다.
7. 참고 자료
- The Problem with Financialization & Stock Buybacks - Industrial Equipment News, https://www.ien.com/operations/blog/22888092/the-problem-with-financialization-stock-buybacks
- The Impact of U.S. Stock Buybacks: Theory vs Practice - Elm Wealth, https://elmwealth.com/stock-buybacks/
- The Financialization of the US Corporation: What Has Been Lost, and How It Can Be Regained, https://www.ineteconomics.org/uploads/papers/FinancializationUSCorporation.pdf
- The rising financialization of the U.S. economy harms workers and their families, threatening a strong recovery - Equitable Growth, https://equitablegrowth.org/the-rising-financialization-of-the-u-s-economy-harms-workers-and-their-families-threatening-a-strong-recovery/
- 30대 그룹 사내유보금 170조원 증가…실물투자 2.2조원 증가 그쳐 - 시사저널e, https://www.sisajournal-e.com/news/articleView.html?idxno=65970
- 가계부채 3천조인데 ‘30대 재벌사내유보금, 1천조’ 육박 - 참세상, http://m.newscham.net/news/view.php?board=news&nid=106732&page=36
- 한국 가계, 부동산 등 비금융 자산 비중 65% ‘주요국 최고’ - 한겨레, https://www.hani.co.kr/arti/economy/economy_general/1233429.html
- 30대 재벌 사내유보금·투자부동산 1천조원 ‘육박’…순이익으로 역대급 배당금 ‘잔치’, http://www.sisanews.kr/news/articleView.html?idxno=89887
- 24년 해외직접투자는 639.5억 달러로 전년 대비 1.8% 감소, https://www.moef.go.kr/synapView/doc.html?fn=20250314133204_FDC6619D-3C4E-47FD-9DC0-EEA6C298A232.hwpx&rs=/upload/synap
- 최근 설비투자 부진의 원인과 시사점 - 산업연구원, https://www.kiet.re.kr/common/file/userDownload?atch_no=A5iXitH379kwQoH%2BXRHPGg%3D%3D
- 최근 중국의 대한국 투자 증가 배경 및 시사점 - 대외경제정책연구원, https://www.kiep.go.kr/galleryDownload.es?bid=0004&list_no=11963&seq=1
- 교육부, 2024년 직업계고 졸업자 취업 통계 발표…“취업률 55.3% 기록” - 피플스토리, https://peoplestory.net/article/2567
- ‘명색 뿐인 직업계고’ 실질 취업률 올해 25.6% ‘6년래 최저’.. 진학률 …, http://www.veritas-a.com/news/articleView.html?idxno=585158
- 연령, 산업, 직군, 연차별 평균연봉 정리 - 그리팅 블로그, https://blog.greetinghr.com/for-hr-salary-example/
- 1월 11, 2026에 액세스, [https://dgmbc.com/article/G7cH5mSJE2EjzVfuZQwFC#::text=2024%EB%85%84%20%EC%A4%91%EC%86%8C%EC%A0%9C%EC%A1%B0%EC%97%85%20%EC%83%9D%EC%82%B0%EC%A7%81,684%EC%9B%90%EC%9C%BC%EB%A1%9C%20%EC%A1%B0%EC%82%AC%EB%90%90%EC%8A%B5%EB%8B%88%EB%8B%A4.](https://dgmbc.com/article/G7cH5mSJE2EjzVfuZQwFC#::text=2024년 중소제조업 생산직, https://dgmbc.com/article/G7cH5mSJE2EjzVfuZQwFC#:~:text=2024%EB%85%84%20%EC%A4%91%EC%86%8C%EC%A0%9C%EC%A1%B0%EC%97%85%20%EC%83%9D%EC%82%B0%EC%A7%81,684%EC%9B%90%EC%9C%BC%EB%A1%9C%20%EC%A1%B0%EC%82%AC%EB%90%90%EC%8A%B5%EB%8B%88%EB%8B%A4.
- 평균 일급 11만4682원…중소 제조업 임금 3.6% 상승 - 조선비즈, https://biz.chosun.com/industry/business-venture/2025/11/27/4PS4EGE2BZHXDONYTD2VPIXBKU/
- “月 424만원 벌어요” 배민 라이더 월 평균 소득 29% ‘껑충’…무슨 일? - 서울경제, https://www.sedaily.com/NewsView/2H0LRE5ERZ
- 청년층 제조업 이탈 심각…취업 비중 13년 만에 ‘반토막’ - 반론보도닷컴, https://www.banronbodo.com/news/articleView.html?idxno=31489
- 2025년 숙련기능인력(E-7-4) 선발 계획 - 생활법령정보, https://www.easylaw.go.kr/CSP/FlDownload.laf?flSeq=1750035607838
- 중기중앙회, ‘2024년 외국인력 고용 종합애로 실태조사’ 결과 발표 …, http://www.thelisten.co.kr/news/articleView.html?idxno=27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