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3 마음의 계산 이론(Computational Theory of Mind)

1. 마음의 계산 이론의 정의

마음의 계산 이론(Computational Theory of Mind, CTM)은 인간의 마음(Mind)이 계산 체계(Computational System)이며, 인지 과정(Cognitive Process)이 내적 정신 표상(Mental Representation)에 대한 계산적 조작이라고 주장하는 인지 과학과 심리철학의 이론이다. CTM은 계산주의(Computationalism)의 가장 체계적인 철학적 정식화이며, 인공지능 연구의 가능성에 대한 이론적 정당화를 제공한다.

2. 포더의 사고의 언어 가설

CTM의 가장 영향력 있는 정식화는 포더(Jerry Fodor, 1935–2017)의 사고의 언어 가설(Language of Thought Hypothesis, LOTH)이다. 포더는 1975년 저서 “The Language of Thought“에서 이 가설을 체계적으로 전개하였다.

2.1 LOTH의 핵심 주장

  1. 정신 표상의 존재: 인지 체계는 세계에 관한 내적 표상을 보유하며, 이 표상은 사고의 매체이다.

  2. 표상의 언어적 구조: 정신 표상은 자연 언어와 유사한 구문적 구조(Syntactic Structure)를 갖는다. 복합 표상은 원자적 표상(Atomic Representation)의 규칙적 결합으로 구성되며, 합성성 원리(Principle of Compositionality)를 따른다.

  3. 인지 과정의 구문적 성격: 인지 과정은 정신 표상의 구문적 성질에 의해 인과적으로 결정되는 형식적 조작이다. 이 조작은 표상의 의미(Semantics)에 민감하되, 직접적으로 의미를 참조하지 않고 구문(Syntax)을 통해 간접적으로 의미를 추적한다.

2.2 LOTH의 논변

포더가 LOTH를 지지하기 위해 제시한 핵심 논변은 다음과 같다.

생산성 논변(Productivity Argument): 인간은 이전에 접하지 않은 무한한 수의 새로운 사고를 생성할 수 있다. 이 생산성은 유한한 원자적 요소와 유한한 결합 규칙으로 무한한 구조를 생성하는 언어적 체계에 의해 가장 자연스럽게 설명된다.

체계성 논변(Systematicity Argument): “존이 메리를 사랑한다“는 사고를 할 수 있는 체계는 반드시 “메리가 존을 사랑한다“는 사고도 할 수 있다. 이 체계적 연관은 사고가 구성 요소의 결합적 구조를 갖는다는 것을 전제해야만 설명된다.

추론의 합리성 논변(Rational Inference Argument): 전제 “모든 인간은 필멸적이다“와 “소크라테스는 인간이다“로부터 “소크라테스는 필멸적이다“를 도출하는 추론은 표상의 구문적 구조에 의존한다. 내적 표상이 구조를 갖지 않으면 이러한 추론의 체계적 성격을 설명할 수 없다.

3. CTM과 튜링 기계의 관계

CTM에서 마음은 추상적으로 튜링 기계(Turing Machine)와 동형(Isomorphic)인 계산 체계로 모델링된다. 정신 상태(Mental State)는 튜링 기계의 내부 상태에, 정신 표상은 테이프의 기호에, 인지 과정은 상태 전이 함수(Transition Function)의 적용에 대응한다.

이 대응의 핵심은 형식적 성격(Formal Character)이다. 튜링 기계가 기호의 형태(Form)에만 의존하여 조작을 수행하듯이, 인지 체계도 정신 표상의 형식적 성질에 의해 인과적으로 결정되는 조작을 수행한다. 의미는 형식에 수반(Supervene)하도록 체계가 구성되어 있다.

4. CTM과 기능주의의 결합

CTM은 기능주의(Functionalism)와 자연스럽게 결합된다. 기능주의에 따르면 정신 상태는 기능적 역할에 의해 정의되며, CTM은 이 기능적 역할을 계산적 역할(Computational Role)로 구체화한다. 정신 상태는 특정한 계산적 관계—어떤 입력에 의해 야기되고, 어떤 다른 정신 상태와 상호작용하며, 어떤 출력을 산출하는지—에 의해 정의된다.

기능주의와 CTM의 결합은 인공지능의 가능성에 대한 가장 강력한 철학적 지지를 제공한다. 정신 상태가 기능적/계산적 역할에 의해 정의되고, 이 역할이 물리적 기질에 독립적으로 실현 가능하다면, 적절한 프로그램을 실행하는 컴퓨터는 원리적으로 진정한 정신적 속성을 가질 수 있다.

5. CTM에 대한 비판과 대안

5.1 설의 중국어 방 논증

설(John Searle)의 중국어 방 논증은 CTM의 가장 유명한 비판이다. 설은 형식적 기호 조작을 수행하는 체계가 기호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할 수 있음을 논변함으로써, 계산이 인지의 충분 조건이 아닐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5.2 연결주의적 도전

연결주의(Connectionism)는 인지가 구조화된 기호적 표상에 대한 규칙 기반 조작이 아니라, 분산 표상(Distributed Representation)과 병렬 처리(Parallel Processing)에 기반한다고 주장하며 고전적 CTM에 도전한다. 그러나 연결주의 네트워크 자체도 계산 체계라는 점에서, 이 도전은 CTM 자체의 부정이 아니라 CTM 내에서 계산의 형태에 관한 논쟁으로 이해될 수 있다.

5.3 체화된 인지와 확장된 마음

체화된 인지(Embodied Cognition) 이론과 확장된 마음(Extended Mind) 가설은 인지가 뇌 내부의 표상 조작에 국한되지 않고, 신체와 환경과의 동적 상호작용을 포함한다고 주장한다. 이 입장은 CTM의 내적주의적(Internalist) 가정에 도전하며, 인지의 경계를 재정의할 것을 요구한다.

6. CTM의 현대적 의의

CTM은 인공지능 연구의 철학적 기반으로서의 핵심적 위상을 유지하고 있다. 현대 대규모 언어 모델이 언어적 능력을 보여주는 현상은 CTM의 관점에서 계산적 과정에 의한 인지적 기능의 실현으로 해석될 수 있다. CTM이 제기하는 근본적 물음—“계산이 인지의 본질인가?”—은 인공지능의 성격과 한계에 관한 가장 근본적인 철학적 물음과 직결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