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 영업비밀 보호를 위한 비밀유지의무의 범위와 위반 시 구제

19.8 영업비밀 보호를 위한 비밀유지의무의 범위와 위반 시 구제

1. 영업비밀의 법적 정의와 성립 요건

영업비밀의 보호는 「부정경쟁방지 및 영업비밀보호에 관한 법률」(이하 “부정경쟁방지법”)을 중심 법원(法源)으로 한다. 동법 제2조 제2호는 영업비밀을 “공공연히 알려져 있지 아니하고 독립된 경제적 가치를 가지는 것으로서, 비밀로 관리된 생산방법, 판매방법, 그 밖에 영업활동에 유용한 기술상 또는 경영상의 정보“라고 규정한다. 이 정의로부터 영업비밀의 성립 요건으로 비공지성(秘公知性), 경제적 유용성, 비밀관리성의 세 가지를 도출할 수 있다.

비공지성은 해당 정보가 간행물 등의 매체나 일반 공중에 의하여 알려져 있지 아니한 상태를 의미한다. 정보를 보유한 자가 비밀로 유지·관리하고 있더라도 동종 업계의 통상적 지식·경험을 가진 자가 별도의 노력 없이 당해 정보를 입수할 수 있다면 비공지성은 인정되지 아니한다. 경제적 유용성은 해당 정보가 보유자의 경제적 이익을 증진시키거나 경쟁상의 이익을 부여하는 성질을 의미하며, 직접적인 사업화 단계에 이르지 아니한 실패한 연구개발 결과물이라 하더라도 향후 시행착오를 줄여주는 성격이 있다면 경제적 유용성이 인정될 수 있다는 것이 판례의 태도이다. 비밀관리성은 2019년 부정경쟁방지법 개정을 통하여 종전의 “상당한 노력에 의하여 비밀로 유지된” 요건이 “비밀로 관리된“으로 완화되어 영세한 기술기업에 대한 보호 범위가 실질적으로 확대되었다.

2. 비밀유지의무의 발생 근거와 인적 범위

비밀유지의무는 그 발생 근거에 따라 법정 비밀유지의무와 약정 비밀유지의무로 구분할 수 있다. 법정 비밀유지의무는 당사자 간의 명시적 약정이 없더라도 법률 또는 신의성실의 원칙에 의하여 당연히 발생하는 의무를 의미한다. 근로기준법 및 민법상 근로계약의 부수의무로서 인정되는 충실의무(忠實義務)와 성실의무로부터 재직 중 근로자의 비밀유지의무가 도출된다는 것이 통설과 판례의 입장이다. 또한 상법 제17조의 상업사용인의 경업피지의무, 상법 제397조의 이사의 경업금지의무 등 법정 의무 역시 비밀유지의무의 법적 근거를 구성한다.

약정 비밀유지의무는 비밀유지계약(NDA), 근로계약, 취업규칙, 영업비밀 보호서약서 등 당사자의 의사에 기반한 합의에 의하여 발생한다. 약정 비밀유지의무의 인적 범위는 일반적으로 현직 임직원, 퇴직 임직원, 기술 자문 위원, 외주 용역 업체의 인력, 공동 연구 개발의 상대방 기업 소속 인력, 투자 심사를 위한 잠재적 투자자 및 그 자문 인력 등을 포괄한다. 특히 퇴직 임직원에 대한 비밀유지의무의 존속 여부에 관하여 대법원은 명시적 약정이 없더라도 신의칙상 일정 기간 비밀유지의무가 존속할 수 있음을 인정하고 있으나, 그 존속 기간은 영업비밀의 성격, 근로자의 직무, 유출된 정보가 가지는 가치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합리적인 범위 내에서 제한적으로 인정된다.

3. 비밀유지의무의 객체적 범위

비밀유지의무의 객체적 범위는 부정경쟁방지법상 영업비밀의 정의에 부합하는 정보로 한정함이 원칙이다. 그러나 실무적으로는 영업비밀에 해당하지 아니하는 정보일지라도 당사자 간 약정에 의하여 비밀유지의무의 대상으로 포함시킬 수 있다. 다만 약정에 의한 비밀유지 대상이 사회 통념상 보호 가치가 인정되지 아니하거나, 당해 근로자의 일반적 지식·경험·기능에 해당하는 부분까지 포섭한다면, 그 약정은 직업 선택의 자유 등 헌법상 기본권을 과도하게 침해하는 것으로서 민법 제103조의 선량한 풍속 기타 사회질서에 반하여 무효로 판단될 수 있다.

판례는 영업비밀에 해당하는 정보와 일반적 기능·지식의 구별 기준으로 첫째, 정보의 취득에 투입된 비용과 노력의 정도, 둘째, 당해 정보가 사용자에 의하여 특별히 관리되었는지 여부, 셋째, 근로자가 통상적인 업무 수행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습득한 것인지 여부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하고 있다. 기술기업의 경우 소스 코드, 설계 도면, 공정 매개변수, 알고리즘의 가중치, 실험 데이터, 고객 명단, 거래처별 단가 정보, 미공개 특허 출원 명세서 초안, 인수합병 협상 정보 등이 전형적인 영업비밀의 객체로 인정되는 사례가 다수이다.

4. 영업비밀 침해 행위의 유형

부정경쟁방지법 제2조 제3호는 영업비밀 침해 행위를 여섯 가지 유형으로 구체적으로 열거한다. 가목 및 나목은 절취·기망·협박 그 밖의 부정한 수단으로 영업비밀을 취득하거나 사용·공개하는 행위를 부정 취득형 침해로 규정한다. 다목은 영업비밀이 부정 취득된 사실을 알거나 중대한 과실로 알지 못하고 그 영업비밀을 취득·사용·공개하는 행위를 사후적 악의자의 침해로 규정한다.

라목은 계약 관계 등에 의하여 영업비밀을 비밀로서 유지하여야 할 의무가 있는 자가 부정한 이익을 얻거나 영업비밀 보유자에게 손해를 가할 목적으로 그 영업비밀을 사용하거나 공개하는 행위를 신뢰관계 위반형 침해로 규정한다. 이 유형은 비밀유지의무 위반의 가장 전형적인 양상으로서, 임직원의 이직 시 발생하는 영업비밀 유출 분쟁에서 빈번히 원용된다. 마목 및 바목은 라목의 사정을 알거나 중대한 과실로 알지 못하고 영업비밀을 취득·사용·공개하는 행위를 규정하여 영업비밀의 유통 과정 전반에 대한 차단을 도모한다.

2019년 개정 부정경쟁방지법은 영업비밀 침해 행위의 유형에 “영업비밀을 지정된 조건에서 사용할 권한이 있는 자가 부정한 이익을 얻거나 그 영업비밀의 보유자에게 손해를 입힐 목적으로 그 영업비밀을 사용하거나 공개하는 행위“를 추가하여 정당하게 영업비밀에 접근할 수 있는 자의 권한 일탈적 사용 행위까지 포섭하였다.

5. 영업비밀 침해에 대한 민사적 구제

비밀유지의무 위반 및 영업비밀 침해에 대한 민사적 구제 수단은 부정경쟁방지법 제10조 내지 제14조에 규정되어 있다. 첫째, 침해 행위 금지 및 예방 청구권(제10조)은 영업비밀 보유자가 자신의 영업비밀에 관한 권리를 침해하거나 침해할 우려가 있는 자에 대하여 그 행위의 금지 또는 예방을 청구할 수 있는 권리이다. 부수적으로 침해 행위를 조성한 물건의 폐기, 침해 행위에 제공된 설비의 제거 등 그 밖의 침해 금지 또는 예방을 위하여 필요한 조치를 청구할 수 있다.

둘째, 손해배상청구권(제11조)은 고의 또는 과실에 의한 영업비밀 침해 행위로 영업상 이익을 침해받은 자가 그 침해자에게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는 권리이다. 동법 제14조의2는 손해액 산정의 어려움을 완화하기 위하여 침해자가 침해 행위로 양도한 물건의 수량에 보유자가 받았을 단위 수량당 이익액을 곱한 금액, 침해자가 침해 행위로 인하여 받은 이익의 액, 영업비밀 사용에 대하여 통상 받을 수 있는 금액 등을 손해액으로 추정하는 규정을 두고 있다. 2019년 개정으로 도입된 제14조의2 제6항은 고의적 침해의 경우 손해로 인정된 금액의 3배를 넘지 아니하는 범위에서 배상액을 정할 수 있도록 하여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를 도입하였다.

셋째, 신용회복청구권(제12조)은 고의 또는 과실에 의한 영업비밀 침해 행위로 영업비밀 보유자의 영업상 신용을 실추시킨 자에 대하여 손해배상을 갈음하거나 손해배상과 함께 영업상의 신용을 회복하는 데 필요한 조치를 청구할 수 있는 권리이다. 넷째, 부당이득반환청구권은 민법 제741조의 일반 규정에 의하여 인정되며, 영업비밀 침해로 침해자가 얻은 이익에 대한 반환을 청구할 수 있다.

6. 영업비밀 침해에 대한 형사적 제재

부정경쟁방지법 제18조는 영업비밀 침해 행위에 대한 형사 처벌 규정을 두고 있다. 동조 제1항은 영업비밀을 외국에서 사용하거나 외국에서 사용될 것임을 알면서 부정한 이익을 얻거나 그 영업비밀 보유자에게 손해를 입힐 목적으로 영업비밀을 취득·사용·공개하는 행위에 대하여 1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5억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규정하여 국외 유출 사범에 대한 가중 처벌의 근거를 마련하고 있다. 동조 제2항은 국내에서의 영업비밀 침해 행위에 대하여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5억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규정한다.

형사 처벌의 객관적 구성요건으로는 부정한 이익을 얻거나 영업비밀 보유자에게 손해를 입힐 목적이 인정되어야 한다. 이 목적은 미필적 인식만으로도 충족되며, 반드시 현실적인 이익의 실현이나 손해의 발생을 요하지 아니한다. 미수범은 동법 제18조의2에 의하여, 예비·음모는 동법 제18조의3에 의하여 각각 처벌된다. 양벌규정인 동법 제19조에 의하여 법인 역시 처벌의 대상이 되며, 다만 법인이 그 위반 행위를 방지하기 위하여 해당 업무에 관하여 상당한 주의와 감독을 게을리하지 아니한 경우에는 면책될 수 있다.

또한 형법 제356조의 업무상 배임죄, 동법 제355조 제2항의 단순 배임죄가 영업비밀 침해 행위에 적용될 수 있다. 대법원은 회사의 영업비밀을 적법하게 점유하고 있던 임직원이 이를 사적인 용도로 사용하거나 경쟁업체에 유출하는 행위에 대하여 임무 위배 행위로서 업무상 배임죄의 성립을 일관되게 인정하고 있다.

7. 가처분 절차의 실무적 활용

영업비밀 침해에 대한 본안 소송은 상당한 시일이 소요되는 반면, 영업비밀의 가치는 시간의 경과와 함께 급격히 감소하는 성질을 가지므로, 실무에서는 본안 소송에 선행하여 가처분 절차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영업비밀 침해 금지 가처분, 전직 금지 가처분, 자료 폐기 가처분, 사용 금지 가처분 등이 대표적인 신청 유형이다.

가처분의 인용을 위해서는 피보전권리의 존재와 보전의 필요성이 소명되어야 한다. 피보전권리의 소명을 위하여 신청인은 첫째, 자신이 보유한 정보가 영업비밀의 성립 요건을 충족함을 입증하여야 하며, 둘째, 피신청인이 비밀유지의무를 부담하는 자임을 입증하여야 하고, 셋째, 피신청인의 침해 행위 또는 침해 우려가 존재함을 입증하여야 한다. 특히 비밀관리성의 소명을 위하여 사내 보안 등급 분류 체계, 접근 권한 통제 기록, 보안 서약서 징구 내역, 영업비밀 표시 관행 등에 관한 객관적 증거가 요구된다.

8. 비밀유지의무 위반의 입증과 디지털 포렌식

영업비밀 침해 사건의 가장 큰 실무적 난점은 침해 행위의 입증이다. 영업비밀의 유출 및 사용은 은밀하게 이루어지므로, 직접적인 증거의 확보가 곤란한 경우가 빈번하다. 이에 부정경쟁방지법 제14조의6은 영업비밀 침해소송에서의 비밀유지명령 제도를 두어 소송 과정에서 영업비밀이 추가로 유출되는 것을 방지하고 있으며, 동법 제14조의7은 자료 제출 명령 제도를 통하여 침해의 입증 또는 손해액 산정에 필요한 자료의 제출을 법원이 명령할 수 있도록 한다.

디지털 환경에서의 영업비밀 유출은 디지털 포렌식 기법을 통한 입증이 핵심적이다. 퇴직 임직원의 업무용 단말기에 대한 포렌식 분석을 통하여 외부 저장 매체로의 파일 복사 이력, 클라우드 서비스로의 업로드 이력, 개인 전자우편으로의 자료 전송 이력 등을 추적할 수 있다. 다만 디지털 포렌식 과정에서는 개인정보보호법 및 통신비밀보호법의 위반 우려가 상존하므로, 사전에 단말기 사용에 관한 동의를 취득하고 포렌식의 범위와 방법에 관한 절차적 적법성을 확보하여야 한다.

9. 영업비밀 보호 체계의 사전 예방적 관리

영업비밀 침해는 일단 발생하면 그 회복이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우므로, 사전 예방적 관리 체계의 구축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사전 예방 체계는 첫째, 정보 자산의 식별 및 등급 분류, 둘째, 물리적·기술적·관리적 보호 조치의 다층적 적용, 셋째, 임직원에 대한 정기적 보안 교육과 서약서 징구, 넷째, 외부 협력사와의 비밀유지계약 체결 및 이행 점검, 다섯째, 퇴직자 면담을 통한 영업비밀 반환 절차의 실시 등을 포함한다.

특히 한국지식재산연구원과 한국특허정보원이 운영하는 영업비밀 원본 증명 제도를 활용하여 영업비밀의 보유 사실 및 보유 시점을 객관적으로 증명할 수 있는 체계를 갖추는 것이 권장된다. 동 제도에 의한 원본 증명서는 부정경쟁방지법 제9조의2 제3항에 의하여 영업비밀의 보유자가 등록된 전자지문에 상응하는 정보를 그 등록 당시에 보유하고 있었던 것으로 추정하는 효력을 가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