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4 재량 근로시간제의 적용 대상과 노사 합의 절차
1. 재량 근로시간제의 법적 기초와 본질
재량 근로시간제는 업무의 성질에 비추어 업무 수행 방법을 근로자의 재량에 위임할 필요가 있는 경우에 사용자가 근로자 대표와의 서면 합의로 정한 시간을 근로한 것으로 간주하는 제도이다. 대한민국 근로기준법 제58조 제3항은 재량 근로시간제의 법적 근거를 제공하고 있다. 동 조항은 “업무의 성질에 비추어 업무 수행 방법을 근로자의 재량에 위임할 필요가 있는 업무로서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업무는 사용자가 근로자 대표와 서면 합의로 정한 시간을 근로한 것으로 본다“고 규정하고 있다.
재량 근로시간제의 본질적 특성은 실제 근로시간의 측정이 아니라 서면 합의에 의하여 정하여진 간주 근로시간이 해당 근로자의 근로시간으로 인정된다는 점에 있다. 즉, 근로자가 실제로 근무한 시간이 간주 근로시간보다 길거나 짧더라도 법적으로는 간주 근로시간에 해당하는 근로가 이루어진 것으로 평가된다. 이는 업무의 성질상 근로시간의 객관적 측정이 어렵거나 부적절한 경우에 근로시간의 관리 방식을 합리적으로 전환하는 제도이다.
2. 적용 대상 업무
2.1 법정 적용 대상 업무의 열거
근로기준법 시행령 제31조는 재량 근로시간제의 적용 대상 업무를 열거적으로 규정하고 있다. 동 조항에 따르면, 재량 근로시간제를 적용할 수 있는 업무는 다음과 같다.
첫째, 신상품 또는 신기술의 연구개발이나 인문 사회과학 또는 자연과학 분야의 연구 업무이다. 이는 연구개발 업무의 창의적 성격을 고려하여 근로시간의 재량적 운영을 허용하는 규정이다. 둘째, 정보 처리 시스템의 분석 또는 설계 업무이다. 이는 소프트웨어 개발 및 시스템 아키텍처 업무에 적용된다. 셋째, 신문, 방송 또는 출판 사업에서의 기사의 취재, 편성 또는 편집 업무이다. 이는 언론 매체의 특수성을 반영한 것이다. 넷째, 의복·실내장식·공업제품·광고 등의 디자인 또는 고안 업무이다. 이는 창작적 성격을 가지는 디자인 업무에 적용된다. 다섯째, 방송 프로그램·영화 등의 제작 사업에서의 프로듀서나 감독 업무이다. 여섯째, 그 밖에 고용노동부 장관이 정하는 업무이다.
2.2 적용 대상의 열거주의
재량 근로시간제의 적용 대상은 위와 같이 법정 열거 방식으로 규정되어 있으며, 이 범위를 벗어난 업무에 대하여는 원칙적으로 재량 근로시간제를 적용할 수 없다. 이는 재량 근로시간제가 실제 근로시간의 측정 없이 간주 근로시간에 의하여 근로시간을 인정하는 특수한 제도이기 때문에, 그 적용 범위를 명확히 한정할 필요가 있다는 점에 기인한다.
2.3 업무의 실질적 재량성 요구
적용 대상 업무에 해당하더라도, 해당 업무에 종사하는 개별 근로자가 실제로 업무 수행 방법에 관하여 재량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형식적으로는 연구개발 업무에 해당하더라도 근로자가 사용자의 구체적 지시·감독 하에 업무를 수행하는 경우에는 재량 근로시간제의 적용이 부적절하다. 즉, 재량성은 법정 열거 요건과 함께 실질적 요건으로서 충족되어야 한다.
2.4 2022년 고용노동부 고시의 추가 업무
고용노동부는 2022년 재량 근로시간제의 적용 대상 업무를 확대하는 고시를 개정한 바 있다. 동 고시는 기존의 법정 열거 업무 외에 회계·법무·세무·노무·특허·재무·감정 등의 전문 업무, 증권 분석, 투자 자문 업무 등을 추가적 적용 대상으로 명시하였다. 이러한 확대는 전문직 업무의 특성을 반영하여 재량 근로시간제의 적용 범위를 확장하기 위한 것이다.
3. 노사 합의 절차
3.1 서면 합의의 필수성
재량 근로시간제의 도입을 위하여는 사용자와 근로자 대표 사이의 서면 합의가 필수적으로 요구된다. 근로기준법 제58조 제3항은 이를 명시적으로 규정하고 있으며, 서면 합의 없이 재량 근로시간제를 시행하는 것은 법적 효력이 인정되지 아니한다. 서면 합의의 요건은 재량 근로시간제의 남용을 방지하고 근로자 측의 의사를 제도 도입에 반영하기 위한 절차적 장치에 해당한다.
3.2 근로자 대표의 자격
서면 합의의 상대방인 근로자 대표는 근로기준법 제24조 제3항에 따라 해당 사업 또는 사업장에 근로자의 과반수로 조직된 노동조합이 있는 경우에는 그 노동조합, 근로자의 과반수로 조직된 노동조합이 없는 경우에는 근로자의 과반수를 대표하는 자를 의미한다. 근로자 과반수를 대표하는 자의 선출은 사용자의 개입 없이 근로자의 자유로운 의사에 의하여 이루어져야 한다.
3.3 서면 합의의 필수 기재사항
근로기준법 제58조 제3항은 재량 근로시간제에 관한 서면 합의에 다음 사항을 명시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첫째, 대상 업무이다. 재량 근로시간제가 적용되는 구체적 업무의 범위와 내용이 명시되어야 한다. 이는 법정 적용 대상 업무 중 해당 사업장에서 실제로 재량 근로시간제를 적용할 업무를 특정하는 것이다.
둘째, 사용자가 업무의 수행 수단 및 시간 배분 등에 관하여 근로자에게 구체적인 지시를 하지 아니한다는 내용이다. 이는 재량 근로시간제의 본질적 요소로서, 사용자의 구체적 지시·감독의 배제를 명시함으로써 근로자의 재량적 업무 수행을 보장하는 것이다. 이 조항은 재량성을 실질적으로 확보하기 위한 필수 기재사항이다.
셋째, 근로시간의 산정은 그 서면 합의로 정하는 바에 따른다는 내용이다. 이는 간주 근로시간제의 본질을 표현하는 조항으로서, 서면 합의에 의하여 정하여진 시간이 해당 근로자의 근로시간으로 인정됨을 명시한다.
3.4 서면 합의의 유효성 요건
서면 합의는 반드시 서면의 형식으로 체결되어야 하며, 사용자와 근로자 대표 양 당사자의 서명 또는 날인이 필요하다. 구두 합의만으로는 적법한 재량 근로시간제의 도입으로 평가되지 아니한다. 또한 서면 합의의 내용은 구체적이고 명확하여야 하며, 추상적이거나 일반적인 표현만으로는 충분한 효력을 인정받기 어렵다.
3.5 서면 합의의 유효 기간
서면 합의의 유효 기간은 법정 기간이 정하여져 있지 아니하며, 당사자의 합의에 따라 설정된다. 실무상으로는 1년 단위로 갱신되는 경우가 많다. 유효 기간의 경과 시에는 재합의를 통하여 갱신되어야 하며, 갱신 없이 기존 합의를 계속 적용하는 것은 허용되지 아니한다는 해석이 유력하다.
4. 간주 근로시간의 설정
4.1 간주 근로시간의 의미
간주 근로시간이란 서면 합의에 의하여 해당 근로자의 근로시간으로 인정되는 시간을 의미한다. 재량 근로시간제 하에서는 실제 근로시간이 아니라 이 간주 근로시간이 해당 근로자의 근로시간으로 간주된다. 간주 근로시간은 1일을 단위로 설정될 수 있으며, 일반적으로 해당 업무의 평균적 수행 시간을 기준으로 결정된다.
4.2 간주 근로시간과 법정 근로시간의 관계
간주 근로시간은 법정 근로시간의 한도 내에서 설정되는 것이 일반적이나, 법정 근로시간을 초과하는 간주 근로시간의 설정도 가능하다. 간주 근로시간이 법정 근로시간을 초과하는 경우에는 초과 부분에 대하여 연장 근로에 관한 규정이 적용된다. 즉, 초과 부분에 대한 가산 수당이 지급되어야 하며, 연장 근로의 한도에 관한 규정도 적용된다.
4.3 야간 근로 및 휴일 근로의 처리
재량 근로시간제 하에서도 야간 근로와 휴일 근로에 관한 규정은 여전히 적용된다. 즉, 근로자가 재량적 업무 수행 과정에서 야간 시간대에 근로하거나 휴일에 근로하는 경우에는 해당 시간에 대한 가산 수당이 지급되어야 한다. 이는 재량 근로시간제가 실제 근로시간의 산정 방식을 전환하는 제도일 뿐, 근로자 보호를 위한 가산 수당 지급 의무를 면제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5. 재량 근로시간제의 법적 효과
5.1 근로시간 산정의 간소화
재량 근로시간제가 도입되면 대상 근로자의 근로시간은 서면 합의에 의하여 정하여진 간주 시간으로 산정된다. 이에 따라 사용자는 해당 근로자의 실제 근로시간을 일일이 측정하거나 기록할 필요가 없어진다. 근로자의 출퇴근 시간, 업무 수행 시간 등이 임금 산정에 직접적으로 반영되지 아니하므로, 근로시간 관리의 부담이 경감된다.
5.2 연장 근로 가산 수당의 처리
간주 근로시간이 법정 근로시간인 1일 8시간을 초과하지 아니하는 경우에는 연장 근로 가산 수당의 지급 의무가 원칙적으로 발생하지 아니한다. 반대로 간주 근로시간이 법정 근로시간을 초과하는 경우에는 그 초과 부분에 대하여 연장 근로 가산 수당을 지급하여야 한다. 이는 간주 근로시간 자체가 법정 근로시간을 초과하는 근로를 전제로 설정되었기 때문이다.
5.3 근로자의 자율성 확대
재량 근로시간제는 근로자에게 업무 수행 방법 및 시간 배분에 관한 광범위한 자율성을 부여한다. 근로자는 자신의 생체 리듬, 업무의 성격, 개인적 상황 등을 고려하여 자유롭게 근로시간을 배분할 수 있으며, 이는 업무의 질과 생산성의 제고에 기여할 수 있다.
6. 다른 근로시간 제도와의 비교
6.1 선택적 근로시간제와의 구별
재량 근로시간제와 선택적 근로시간제는 모두 근로자의 자율성을 확대하는 제도이나, 본질적 차이가 존재한다. 선택적 근로시간제는 실제 근로시간을 측정하고 이를 기초로 임금 및 가산 수당을 산정하는 제도이며, 정산 기간을 평균한 근로시간이 법정 한도 내에 있어야 한다. 반면 재량 근로시간제는 실제 근로시간이 아니라 서면 합의에 의하여 정하여진 간주 근로시간에 의하여 근로시간을 산정한다.
또한 선택적 근로시간제는 원칙적으로 모든 업무에 적용될 수 있으나, 재량 근로시간제는 법정 열거 업무에 한정된다. 이에 따라 재량 근로시간제의 적용 범위가 더욱 제한적이다.
6.2 사업장 밖 간주 근로시간제와의 구별
근로기준법 제58조 제1항 및 제2항은 사업장 밖 간주 근로시간제에 관하여 규정하고 있다. 사업장 밖 간주 근로시간제는 근로자가 출장이나 기타 사유로 사업장 밖에서 근로하여 근로시간을 산정하기 어려운 경우에 적용되는 제도로서, 소정 근로시간을 근로한 것으로 보거나 업무 수행에 통상 필요한 시간을 근로한 것으로 본다.
재량 근로시간제와 사업장 밖 간주 근로시간제는 모두 간주 근로시간제의 범주에 속한다는 공통점이 있으나, 적용 대상과 요건에 있어 차이가 있다. 사업장 밖 간주 근로시간제는 근로시간의 측정이 곤란한 사업장 밖 근로를 대상으로 하며, 재량 근로시간제는 업무의 성질상 재량적 수행이 필요한 특정 업무를 대상으로 한다.
7. 근로자 보호의 한계
7.1 재량성 남용의 위험
재량 근로시간제는 근로자의 자율성을 확대하는 제도이나, 운영 과정에서 근로자의 실제 근로시간이 간주 근로시간을 현저히 초과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사용자가 재량 근로시간제를 명목으로 근로자에게 과도한 업무를 부과하는 경우, 근로자의 실제 근로시간은 간주 근로시간을 크게 초과할 수 있으며 이에 대한 별도의 보상이 이루어지지 아니할 수 있다. 이러한 재량성의 남용은 재량 근로시간제의 본질적 한계로 지적된다.
7.2 건강 보호의 필요성
재량 근로시간제 하에서도 근로자의 건강 보호를 위한 제도적 장치가 요구된다. 장시간 근로의 누적은 근로자의 신체적·정신적 건강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으며, 과로사 등의 심각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이에 따라 재량 근로시간제를 도입하는 사용자는 근로자의 건강 상태를 주기적으로 확인하고, 필요한 경우 업무 부담을 조정하는 조치를 취할 필요가 있다.
7.3 산업재해의 인정
재량 근로시간제 하에서 근로자에게 업무상 재해가 발생한 경우, 산업재해보상보험법에 따른 보상이 이루어진다. 재해의 업무 관련성을 판단함에 있어서는 간주 근로시간이 아닌 실제 근로 실태가 고려되므로, 과도한 실제 근로시간이 재해의 원인이 된 경우에는 이를 반영한 판단이 이루어진다.
8. 기술 기반 기업의 실무적 함의
8.1 연구개발 직군에 대한 적용
기술 기반 기업에 있어서 재량 근로시간제의 가장 대표적 적용 대상은 연구개발 직군이다. 신상품 또는 신기술의 연구개발 업무, 정보 처리 시스템의 분석 및 설계 업무 등은 법정 적용 대상 업무에 해당하며, 이들 업무에 종사하는 근로자에 대하여 재량 근로시간제를 적용함으로써 업무의 창의성과 자율성을 제고할 수 있다.
8.2 간주 근로시간의 합리적 설정
간주 근로시간의 설정에 있어서는 해당 업무의 평균적 수행 시간을 객관적으로 파악하여 합리적 수준으로 설정하여야 한다. 지나치게 짧은 간주 근로시간은 근로자의 실제 근로시간을 과소 평가하여 부당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으며, 반대로 지나치게 긴 간주 근로시간은 사용자의 부담을 가중시킬 수 있다. 업무의 성격, 난이도, 일반적 수행 시간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한 합리적 설정이 요구된다.
8.3 실질적 재량성의 보장
재량 근로시간제의 도입에 있어서는 서면 합의의 형식적 체결뿐만 아니라 실질적 재량성의 보장이 요구된다. 사용자가 근로자에게 구체적 지시·감독을 계속하는 경우에는 재량 근로시간제의 실질적 요건이 충족되지 아니하며, 사후적으로 제도의 효력이 부인될 위험이 있다. 근로자가 업무 수행 방법, 시간 배분, 업무 우선순위의 결정 등에 관하여 실질적 재량을 행사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어야 한다.
8.4 근로자 건강 관리 체계
재량 근로시간제 하에서 근로자의 건강 보호를 위한 관리 체계가 구축되어야 한다. 정기적 건강 검진의 실시, 업무 부담의 주기적 점검, 근로자의 자발적 휴식 장려, 과중 업무의 식별 및 조정 등의 조치가 포함된다. 이는 재량 근로시간제의 법적 요건은 아니나, 제도의 지속 가능한 운영과 근로자 보호를 위한 실무적 필수 사항에 해당한다.
8.5 제도 도입의 신중한 검토
재량 근로시간제의 도입은 신중히 검토되어야 한다. 적용 대상 업무에 대한 법정 요건의 정확한 확인, 서면 합의 절차의 적법한 이행, 실질적 재량성의 확보, 간주 근로시간의 합리적 설정 등 다양한 요소가 종합적으로 고려되어야 한다. 제도 도입 후에도 운영 상황을 주기적으로 점검하고 필요한 조정을 수행하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