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파트는 대한민국 주파수 정책의 근간을 이루는 법적, 제도적 프레임워크를 정립한다. 핵심 용어를 명확히 정의하고 주무 기관을 식별함으로써, 정책의 의도와 권한을 이해하기 위한 토대를 마련한다.
대한민국에서 주파수 관리의 기본 법률은 ‘전파법’이다.1 전파법의 제1조는 그 목적을 “전파의 효율적이고 안전한 이용 및 관리에 관한 사항을 정하여 전파이용과 전파에 관한 기술의 개발을 촉진함으로써 전파 관련 분야의 진흥과 공공복리의 증진에 이바지함”으로 명시하고 있다.1 이는 주파수를 단순한 기술적 자원을 넘어, 국가 발전과 국민 편익에 기여해야 할 공공재로 인식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전파법은 정부, 특히 주무 부처인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이하 과기정통부)에 한정된 전파 자원을 공공복리 증진에 최대한 활용하기 위한 시책을 마련하고 시행할 의무를 부여한다.1 제6조는 과기정통부 장관이 “전파자원의 공평하고 효율적인 이용을 촉진하기 위하여” 필요한 조치를 시행해야 한다고 규정하며, 이는 주파수 재배치, 공동사용 촉진, 이용 효율성 평가 등 구체적인 정책 수단을 포함한다. 이러한 조항들은 정부가 주파수 자원의 배분과 이용 전반에 걸쳐 강력한 규제 및 관리 권한을 행사하는 법적 근거가 된다.
최근 정부는 제4차 전파진흥기본계획을 통해 현행 전파법을 규제 중심의 ‘전파이용기본법’과 진흥 중심의 ‘전파산업진흥법’으로 이원화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3 이는 주파수의 공공재적 성격(규제)과 산업적 자산(진흥)이라는 두 가지 측면을 보다 정교하게 관리하려는 정책적 의도를 반영한다. 이 계획은 5G 28GHz 주파수 할당 실패 사례에서 얻은 교훈, 즉 기술 선도라는 산업 진흥 목표와 시장 현실 및 규제 집행 간의 충돌을 방지하려는 시도로 해석될 수 있다.
대한민국의 주파수 관리 체계를 정확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전파법에서 명확히 구분하여 사용하는 세 가지 핵심 용어에 대한 이해가 필수적이다. 이 용어들의 법적 정의는 주파수 관리의 계층적이고 체계적인 구조를 드러낸다.5
이러한 계층적 구분은 정부가 주파수 자원의 전체 생애 주기를 통제할 수 있는 강력한 수단을 제공한다. ‘분배’를 통해 국가 전체의 주파수 이용 청사진을 그리고, ‘할당’을 통해 시장 참여자와 경쟁 구도를 형성하며, ‘지정’을 통해 실제 네트워크 운영을 관리하는 구조이다. 이 체계는 5G 28GHz 주파수 할당 취소와 같은 강력한 규제 집행이 가능했던 법적 기반이 되었다. 이 외에도 전파법은 주파수회수(Frequency Retrieval)와 주파수재배치(Frequency Redeployment)와 같은 용어를 정의하여, 할당된 주파수를 철회하거나 대체하는 절차까지 규정하고 있다.5
표 1: 주파수 관리 핵심 용어 법률적 정의
| 한글 용어 | 영문 번역 | 전파법상 정의 (제2조) | 해설 |
|---|---|---|---|
| 주파수분배 | Frequency Allocation | 특정한 주파수의 용도를 정하는 것.5 | 국가 차원에서 주파수 대역의 큰 용도(예: 이동통신, 방송)를 결정하는 최상위 전략 계획. |
| 주파수할당 | Frequency Assignment | 특정한 주파수를 이용할 수 있는 권리를 특정인에게 부여하는 것.5 | 특정 사업자에게 일정 기간 동안 주파수를 사용할 수 있는 배타적 권리(사업권)를 부여하는 행위. |
| 주파수지정 | Frequency Designation | 허가 또는 신고에 의하여 개설하는 무선국이 이용할 특정한 주파수를 지정하는 것.5 | 할당받은 사업자가 개설하는 개별 기지국이 사용할 구체적인 주파수를 정해주는 운영 단계의 조치. |
| 주파수회수 | Frequency Retrieval | 주파수할당, 주파수지정 또는 주파수 사용승인의 전부 또는 일부를 철회하는 것.5 | 부여된 주파수 이용 권리를 정부가 다시 거두어들이는 행위. |
| 주파수재배치 | Frequency Redeployment | 주파수회수를 하고 이를 대체하여 주파수할당, 주파수지정 또는 주파수 사용승인을 하는 것.5 | 기존 주파수를 회수하고 새로운 주파수를 대신 부여하는 과정. |
대한민국 주파수 정책의 수립과 집행을 총괄하는 주무 기관은 과학기술정보통신부(MSIT, 과기정통부)이다.1 역사적으로 이 역할은 정보통신부, 방송통신위원회 등 여러 조직을 거쳐 변천해왔으나 7, 현행 전파법 체계 하에서는 과기정통부가 주파수 분배, 할당, 회수, 재배치 등 전파 자원 관리에 대한 핵심적인 권한을 보유하고 있다.
과기정통부의 권한은 매우 포괄적이다. 첫째, 전파법 제9조에 따라 국가 전체의 주파수 분배 계획을 수립하고 변경한다.5 둘째, 제10조에 의거하여 기간통신사업자 등에게 주파수를 할당하며, 이때 할당 방식(심사 또는 경매), 할당 조건(예: 망 구축 의무), 이용 기간 등을 결정한다.7 셋째, 제11조에 따라 주파수 할당의 대가를 산정하고 징수하며, 이 대가는 방송통신발전기금 및 정보통신진흥기금의 주요 재원이 된다.10 넷째, 할당받은 사업자가 할당 조건을 이행하는지 감독하고, 위반 시 시정명령을 내리거나 제15조의2에 따라 할당을 취소하는 등 강력한 제재 권한을 행사한다.10 5G 28GHz 주파수 할당 취소는 이러한 권한이 실제로 행사된 대표적인 사례이다.15
이처럼 과기정통부는 주파수 정책의 시작부터 끝까지, 즉 장기 계획 수립부터 사후 관리 및 제재에 이르기까지 전 과정을 관장하는 강력한 규제자(Regulator)이자 시장 설계자(Market Designer)로서의 역할을 수행한다.
대한민국 주파수 정책은 세 가지 핵심 원칙의 상호작용 속에서 발전해왔다.
첫째, 공공복리 증진의 원칙이다. 전파법 제1조와 제3조에서 명시하듯, 주파수는 모든 국민의 자산인 공공재이며, 그 이용은 공공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이루어져야 한다.1 이 원칙은 국방, 치안, 재난구조 등 공공용 주파수의 우선적 확보 5나, 통신사가 할당 조건을 이행하지 않았을 때 공익을 위해 특정 서비스(예: 지하철 와이파이)의 임시 유지를 허용한 사례 16 등에서 구체화된다.
둘째, 경제적 가치 실현의 원칙이다. 과거 행정적 배분에 머물렀던 주파수 관리는 2010년 전파법 개정을 통해 경매 제도를 도입하면서 큰 전환점을 맞았다.12 이는 주파수가 지닌 막대한 경제적 가치를 국가 재정으로 환수하고, 해당 주파수를 가장 필요로 하고 가장 높은 가치를 부여하는 사업자에게 배분함으로써 자원의 효율적 배분을 달성하려는 시도이다.7 수조 원에 달하는 주파수 경매 낙찰가는 이 원칙이 시장에서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명확히 보여준다.
셋째, 효율적 이용의 원칙이다. 한정된 자원인 주파수를 놀리거나 비효율적으로 사용하는 것을 방지하는 것은 정책의 중요한 목표이다. 이를 위해 정부는 주파수 할당 시 망 구축 의무와 같은 구체적인 조건을 부과하고 19, 이용 기간 만료 시 재할당 심사를 통해 그간의 이용 실적을 평가하며 20, 미이용/저이용 주파수를 회수하여 재배치하거나 5, 주파수 공동사용(Spectrum Sharing)과 같은 새로운 제도를 도입하여 이용 효율을 높이려 노력한다.10 5G 28GHz 주파수 할당 취소는 바로 이 ‘효율적 이용’ 원칙을 강제적으로 집행한 극단적인 사례로 볼 수 있다.
이 세 가지 원칙은 때로는 조화를 이루지만, 때로는 서로 긴장 관계에 놓인다. 예를 들어, 높은 경매 대가(경제적 가치)는 사업자의 투자 여력을 위축시켜 망 구축(효율적 이용 및 공공복리)을 저해할 수 있다는 비판이 꾸준히 제기된다.17 따라서 정부의 역할은 이 세 원칙 사이에서 최적의 균형점을 찾아내는 것이며, 이것이 대한민국 주파수 정책의 핵심 과제라 할 수 있다.
본 파트는 주파수가 실제로 사업자에게 배분되는 과정을 해부한다. 두 가지 주요 할당 방식을 설명하고, 특히 고가치 이동통신 주파수의 지배적인 배분 메커니즘으로 자리 잡은 경매 절차를 심층적으로 분석한다.
대한민국 정부는 주파수 할당 시 크게 두 가지 방식을 병행하여 사용한다. 이는 할당 대상 주파수의 특성과 시장의 수요에 따라 유연하게 대처하기 위함이다.
한국의 주파수 경매는 단순한 최고가 낙찰 방식을 넘어, 시장 과열을 방지하고 공정한 경쟁을 유도하기 위한 정교한 규칙과 안전장치를 포함하고 있다.
경매 방식 (Auction Formats):
주로 사용되는 방식은 오름입찰방식(Ascending Clock Auction)이다.11 이 방식은 경매 관리자가 라운드별로 가격을 제시하면, 각 참여자가 해당 가격에 구매할 의사가 있는지를 표명하는 형태로 진행된다. 수요가 공급을 초과하는 한 가격은 계속 상승하며, 이를 통해 참여자들이 지불할 용의가 있는 최대 가격을 점진적으로 탐색할 수 있다.
또한, 2013년 주파수 경매에서는 과도한 경쟁으로 인한 경매 장기화와 승자의 저주(Winner’s Curse)를 방지하기 위해 혼합경매(Mixed Auction) 방식이 도입되었다.24 이는 일정 라운드(예: 50라운드)까지 오름입찰을 진행한 후에도 낙찰자가 결정되지 않으면, 마지막 입찰가를 기준으로 밀봉입찰(Sealed-bid Auction)로 전환하여 최종 승자를 가리는 방식이다.
입찰 규칙 (Bidding Rules):
경매 시작 전, 과기정통부는 각 주파수 블록에 대해 입찰자가 이 가격 미만으로는 낙찰받을 수 없는 최저경쟁가격(Reserve Price)을 설정하여 공고한다.10 이는 주파수의 최소 가치를 보장하기 위한 장치이다. 경매가 진행되는 동안 입찰자는 정부가 정한 입찰증분(Bidding Increment)만큼 가격을 높여 입찰해야 한다. 이 입찰증분율은 경매 과열을 막기 위해 조정되기도 했는데, 예를 들어 2011년 1%에서 2013년 0.75%로 낮춰진 바 있다.24
안전장치 (Safeguards):
정부는 공정한 경쟁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여러 안전장치를 마련해두고 있다. 입찰자 간의 담합 등 불공정 행위를 방지하기 위해 경매 과정에서 경고 조치를 내릴 수 있으며, 경고가 누적되면 입찰서 작성 시간을 단축하는 등의 제재를 가할 수 있다.24 또한, 특정 입찰자가 고의로 경매를 지연시키는 것을 막기 위해
연속패자(Consecutive Loser) 규정을 두었다. 이는 한 입찰자가 연속으로 패자가 될 경우, 다음 라운드에서 입찰증분을 가중(예: 2% 또는 3%로 상향)하여 성실한 입찰을 유도하는 규칙이다.24 더불어, 전파법 제10조 제4항은 특정 사업자 및 그 특수관계인에 의한 전파자원의 독과점을 방지하고 경쟁을 촉진하기 위해 정부가 할당 조건을 부가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10
주파수 할당은 정부의 공고로 시작하여 사업자의 신청, 심사, 경매, 대가 납부, 그리고 최종적인 할당 통지서 교부로 이어지는 체계적인 절차를 따른다.11
할당 공고 (Public Notice): 과기정통부가 할당 대상 주파수, 대역폭, 기술 방식, 할당 방법(심사/경매), 이용 기간, 망 구축 의무 등 할당 조건, 신청 기간 등을 담은 ‘주파수할당 공고’를 발표하며 절차가 시작된다.
할당 신청 (Application): 주파수 할당을 받으려는 법인은 할당신청서, 법인 정관, 주주 구성에 관한 서류, 상세한 주파수이용계획서(요약문, 기본사항, 영업계획서, 기술계획서 포함), 그리고 최저경쟁가격의 일정 비율에 해당하는 보증금(Security Deposit) 납부 증빙서류 등을 구비하여 과기정통부에 제출해야 한다.11
적격 심사 (Qualification Review): 과기정통부는 제출된 서류를 바탕으로 신청 법인이 할당 공고에서 정한 자격 요건을 충족하는지, 그리고 전파법 제13조 등에서 규정하는 결격사유(예: 기간통신사업 허가 결격사유)에 해당하는지를 심사한다.7 이 단계를 통과한 법인만이 경매에 참여할 자격을 얻는다.
경매 시행 (Auction Execution): 적격으로 판정된 법인들을 대상으로 사전에 공지된 경매 방식과 규칙에 따라 경매를 진행한다.11
할당대상법인 선정 (Selection of Prospective Assignee): 경매를 통해 최고가 입찰자가 결정되면(낙찰자), 과기정통부는 해당 법인을 ‘할당대상법인’으로 선정하고 그 결과를 통보한다.11 이 단계는 최종 할당을 약속하는 것이 아니라, 대가 납부 등 후속 의무 이행을 조건으로 하는 예비 선정 단계이다.27
할당대가 납부 (Fee Payment): 할당대상법인은 낙찰받은 금액(주파수 할당대가)을 정해진 기한 내에 정부에 납부해야 한다. 만약 기한 내에 대가를 납부하지 않거나 기타 필요 서류를 제출하지 않으면 할당대상법인 선정이 취소될 수 있으며, 이 경우 미리 납부한 보증금은 국고(기금)로 귀속된다.11
최종 할당 (Final Assignment): 할당대상법인이 할당대가 납부를 포함한 모든 필요사항을 이행하면, 과기정통부는 최종적으로 ‘주파수할당통지서’를 교부한다.11 이 통지서의 교부로써 해당 법인은 명시된 기간(대가 할당의 경우 최대 20년) 동안 해당 주파수를 배타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법적 권리, 즉
주파수이용권을 취득하게 된다.10
이처럼 다단계의 정교한 절차는 주파수 할당 과정의 투명성과 공정성을 확보하는 동시에, 자격 미달 업체를 걸러내고 국가 자원인 주파수에 대한 정당한 대가를 확보하는 강력한 필터링 메커니즘으로 작동한다.
주파수 할당의 대가는 사업자에게 가장 큰 재무적 부담이자, 정부에게는 중요한 재정 수입원이다. 대가 산정 방식은 할당 방식에 따라 구분된다.
경매를 통하지 않는 심사 할당의 경우, 전파법 시행령 [별표 3]에 따라 복잡한 산식으로 대가가 산정된다.30 이 산식은 크게 ‘예상매출액 기준 납부금’, ‘실제매출액 기준 납부금’, 그리고 ‘매출액 외 경제적 가치 기준 납부금’으로 구성된다. 특히 예상 및 실제 매출액에 기반한 납부금은
(매출액 × 계수 × 기타 변수)의 형태로 계산되며, 이동통신의 경우 예상매출액에 곱하는 계수 x는 1.4%, 실제매출액에 곱하는 계수 y는 1.6%로 정해져 있다.30
반면, 가격경쟁을 통한 할당, 즉 경매의 경우 최종 낙찰가가 곧 주파수 할당대가가 된다.11 이 대가는 그 규모가 수천억 원에서 조 단위를 넘나드는 막대한 금액이다. 예를 들어 2011년 최초 LTE 경매에서 SK텔레콤은 1.8GHz 대역을 9,950억 원에 낙찰받았다.12 이렇게 징수된 할당대가는 전파법 제10조 제7항에 따라
방송통신발전기금 및 정보통신진흥기금의 수입으로 편입되어, ICT 산업 진흥 및 기술 개발 등 다양한 정책 사업의 재원으로 활용된다.5
그러나 이러한 높은 수준의 할당대가는 통신 시장에 중요한 함의를 가진다. 사업자 입장에서는 막대한 초기 투자 비용으로 작용하여, 네트워크 고도화나 신규 서비스 개발에 투입될 재원을 잠식할 수 있다는 비판이 꾸준히 제기된다.17 결국 이러한 비용 부담이 소비자 요금 인상으로 전가될 수 있다는 우려도 존재한다. 실제로 한국의 주파수 할당대가는 국제적으로도 높은 수준으로 평가받고 있으며, 이는 프랑스, 영국 등 주요국과 비교했을 때도 마찬가지다.22
이러한 경매 시스템은 주파수라는 희소자원을 가장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사업자에게 배분한다는 명백한 장점을 가지지만,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천문학적인 비용은 통신사의 후속 투자 전략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수조 원의 비용을 지불하고 주파수 ‘접근권’을 확보한 사업자가, 또 다른 막대한 투자가 요구되지만 투자수익률(ROI)이 불확실한 신규 사업(예: 5G 28GHz 망 구축)에 대해 보수적인 입장을 취하게 되는 것은 합리적인 경영 판단의 결과로 볼 수 있다. 즉, 주파수 ‘접근’ 비용과 ‘활용’ 비용 간의 상충 관계가 발생하는 것이다. 이는 대한민국 통신 시장의 투자 사이클을 이해하는 데 있어 핵심적인 동학이다.
본 파트는 지난 수십 년간 대한민국 이동통신 주파수가 어떻게 배분되어 왔는지 연대기적으로 조망한다. 정부 주도의 지정 방식에서부터 현대적인 경매 시대에 이르기까지, 기술의 변혁과 정책의 변화가 어떻게 경쟁 구도를 형성해왔는지 추적한다.
대한민국 이동통신 주파수 할당의 역사는 정부가 시장의 형성과 기술 방식을 직접 결정하던 ‘통제와 관리(Command-and-Control)’의 시대로부터 시작되었다. 1984년, 한국이동통신서비스(현 SK텔레콤)가 800MHz 대역을 이용하여 아날로그(1G) 이동전화 서비스를 시작한 것이 그 서막이었다.12
본격적인 디지털 이동통신 시대는 1996년에 열렸다. 정부는 한국이동통신에게 800MHz 대역을 이용하여 세계 최초로 코드분할다중접속(CDMA) 방식의 2G 디지털 서비스를 상용화하도록 허가했으며, 같은 해 신세기통신도 동일 대역에서 서비스를 개시했다.12 이 시기 주파수는 특정 사업자에게 특정 기술을 사용하도록 정부가 직접 ‘지정’해주는 방식, 즉 ‘뷰티 콘테스트(beauty contest)’ 방식으로 배분되었다.
1997년에는 개인휴대통신(PCS) 서비스 도입을 위해 한국통신프리텔(현 KT), 한솔PCS(현 KT), LG텔레콤(현 LG유플러스) 등 3개 사업자를 신규로 선정하고, 이들에게 1.8GHz 대역 주파수를 할당했다.12 이로써 SK텔레콤-신세기통신의 800MHz CDMA 진영과 PCS 3사의 1.8GHz 진영 간의 본격적인 경쟁 구도가 형성되었다.
2000년대 초반, 3세대(3G) 이동통신인 IMT-2000 사업자 선정 과정에서도 이러한 정부 주도 방식은 계속되었다. 2000년 12월, 정부는 SK텔레콤과 한국통신(현 KT)을 비동기식(WCDMA) 사업자로, 2001년 8월에는 LG텔레콤을 동기식 사업자로 선정했다.12 이후 2001년 11월, 이들 사업자에게 2.1GHz 대역 주파수를 할당했다. 그러나 이후 LG텔레콤이 동기식 사업을 포기하면서 해당 주파수는 2006년 정부에 의해 회수되는 등, 사업자의 사업 전략과 정부의 정책 결정이 시장의 부침을 좌우했다.12 이 시대의 주파수 할당은 경매가 아닌 정부의 심사를 통해 이루어졌으며, 기술 표준 선택과 시장 진입자 결정에 정부의 재량이 절대적인 영향을 미쳤다.
2010년은 대한민국 주파수 정책의 역사적인 분기점이었다. 스마트폰 보급 확산으로 데이터 트래픽이 폭발적으로 증가하자, 보다 효율적이고 투명한 주파수 공급 방식의 필요성이 대두되었다. 이에 2010년 7월, 주파수 할당에 가격경쟁, 즉 경매 제도를 도입하는 내용의 전파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했다.12 이로써 주파수는 행정적으로 배분되는 자원에서 시장 가격에 의해 가치가 결정되는 경제재로 그 성격이 근본적으로 바뀌게 되었다.
이 새로운 패러다임이 처음으로 적용된 것은 2011년 8월에 시행된 4세대(4G) LTE 서비스용 주파수 경매였다.12 이 경매는 대한민국 통신 시장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특히 ‘황금 주파수’로 불리던 1.8GHz 대역 20MHz 폭을 놓고 SK텔레콤과 KT가 치열한 경쟁을 벌였다. 무려 83라운드에 걸친 접전 끝에 SK텔레콤이 9,950억 원이라는 거액에 해당 대역을 낙찰받았다.12 한편, LG유플러스는 2.1GHz 대역을 4,455억 원에 확보했다.
이 첫 경매는 여러 가지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첫째, 주파수의 천문학적인 경제적 가치를 시장에 명확히 각인시켰다. 둘째, 사업자들이 향후 네트워크 품질과 커버리지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해 주파수 확보에 사활을 걸게 되는 ‘주파수 전쟁’의 서막을 열었다. 셋째, 경매를 통해 확보한 주파수는 사업자의 가장 중요한 자산이자 핵심 경쟁력의 원천이 되었으며, 이는 이후의 모든 경영 전략과 투자 결정에 결정적인 변수로 작용하게 되었다.
2011년 첫 경매 이후, 대한민국 이동통신 시장은 기술 세대가 바뀔 때마다 주기적으로 반복되는 대규모 주파수 경매를 통해 경쟁 구도가 재편되는 양상을 보여왔다.
2013년에는 1.8GHz와 2.6GHz 대역에서 추가적인 LTE 주파수 경매가 열렸다. 이 경매를 통해 KT와 LG유플러스는 기존 주파수와 인접한 대역을 확보하여 ‘광대역 LTE’ 서비스를 국내 최초로 상용화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으며, SK텔레콤 역시 추가 대역을 확보하며 경쟁에 대응했다.23 이처럼 주파수 경매 결과는 통신 3사의 서비스 품질과 마케팅 전략에 직접적으로 연결되며 경쟁의 양상을 결정지었다.
이러한 ‘주파수 전쟁’의 정점은 2018년 6월에 열린 5G 주파수 경매였다. 차세대 이동통신 시대의 개막을 앞두고 열린 이 경매에서는 전국망 구축의 핵심인 3.5GHz 대역과 초고속/초저지연 서비스의 기반이 될 28GHz 대역이 매물로 나왔다.14 이 경매에서 통신 3사는 총 3조 6,183억 원에 달하는 막대한 자금을 투입하여 5G 시대를 위한 주파수를 확보했다. 이 경매의 결과로 현재의 5G 서비스 지형이 결정되었으며, 동시에 훗날 큰 논란을 야기한 28GHz 대역의 비극적인 서사가 시작되었다.
한편, 새로운 주파수를 할당하는 신규 할당 못지않게 중요한 과정이 바로 재할당(Re-allocation)이다. 이는 이용 기간이 만료되는 기존 주파수(예: 2G, 3G, LTE 대역)를 기존 사업자에게 다시 할당하는 절차이다.5 재할당은 서비스의 연속성을 보장한다는 점에서 필수적이지만, 그 대가를 산정하는 방식을 둘러싸고 정부와 사업자 간의 첨예한 갈등이 반복적으로 발생해왔다.19 정부는 과거 경매가를 반영하여 주파수의 현재 가치를 높게 평가하려는 경향이 있는 반면, 사업자들은 신규 경쟁이 없는 재할당의 특성을 고려하여 낮은 대가를 주장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대한민국 이동통신 주파수 할당의 역사는 기술 발전이라는 거대한 흐름에 맞춰, 정부의 정책적 판단과 시장의 경쟁 논리가 상호작용하며 전개되어 왔다. 특히 2011년 경매제 도입은 정부의 역할을 ‘시장 설계자’로, 사업자를 ‘고액 입찰자’로 변화시키며, 주파수를 둘러싼 경쟁을 더욱 치열하고 값비싼 전쟁으로 만들었다.
표 2: 대한민국 주요 이동통신 주파수 할당 연혁 (1996-2018)
| 연도 | 기술 세대 | 주요 주파수 대역 | 할당 방식 | 주요 내용 및 결과 | 총 할당 대가 (해당 경매) |
|---|---|---|---|---|---|
| 1996 | 2G CDMA | 800 MHz | 정부 심사/지정 | 한국이동통신(현 SKT), 신세기통신에 세계 최초 CDMA 서비스용 주파수 배분.12 | 해당 없음 |
| 1997 | 2G PCS | 1.8 GHz | 정부 심사/지정 | KTF, 한솔PCS, LGT 등 PCS 3사에 신규 주파수 할당.12 | 해당 없음 |
| 2001 | 3G WCDMA | 2.1 GHz | 정부 심사/지정 | SKT, KT, LGT에 IMT-2000(3G) 서비스용 주파수 할당 (LGT는 이후 반납).12 | 약 1조 3천억 원/사업자 |
| 2011 | 4G LTE | 800 MHz, 1.8 GHz, 2.1 GHz | 가격경쟁(경매) | 국내 최초 주파수 경매. SKT가 1.8GHz 대역을 9,950억 원에 낙찰.12 | 1조 7,015억 원 |
| 2013 | 4G LTE | 1.8 GHz, 2.6 GHz | 가격경쟁(경매) | 광대역 LTE 경쟁의 기폭제가 된 경매. KT와 LGU+가 각각 광대역 가능한 대역 확보.23 | 2조 4,298억 원 |
| 2016 | 4G LTE | 700 MHz, 1.8 GHz, 2.1 GHz, 2.6 GHz | 가격경쟁(경매) | 5개 대역 동시 경매. SKT가 2.6GHz 광대역을 확보하며 최대 승자로 평가.23 | 2조 1,106억 원 |
| 2018 | 5G NR | 3.5 GHz, 28 GHz | 가격경쟁(경매) | 5G 시대 개막을 위한 핵심 주파수 할당. 3.5GHz 대역에 3조 4,183억 원이 집중됨.23 | 3조 6,183억 원 |
본 파트는 현재 대한민국의 경쟁 구도를 결정짓는 가장 핵심적인 자산, 즉 주파수 보유 현황을 상세히 분석한다. 각 이동통신 사업자가 어떤 대역을 얼마나 보유하고 있는지 지도를 그리고, 미래 할당을 둘러싼 현재 진행형인 논쟁들을 다룬다.
현재 국내 이동통신 3사(SK텔레콤, KT, LG유플러스)의 경쟁력은 이들이 보유한 LTE 및 5G 주파수 자산에 의해 크게 좌우된다. 각 사의 주파수 포트폴리오는 수차례에 걸친 경매와 재할당을 통해 형성되었으며, 대역별 특성에 따라 커버리지, 용량, 서비스 품질 등에서 각기 다른 강점과 약점을 지닌다.23
아래 표는 2024년 기준 이동통신 3사의 주요 LTE 및 5G 주파수 보유 현황을 종합한 것이다.
표 3: 이동통신 3사 5G 및 LTE 주요 주파수 보유 현황 (MHz)
| 주파수 대역 | 구분 | SK텔레콤 (SKT) | KT | LG유플러스 (LGU+) | 주요 특징 |
|---|---|---|---|---|---|
| 800 MHz (Band 5) | LTE | 20 MHz 폭 | - | 20 MHz 폭 | 광범위한 커버리지에 유리한 저대역 |
| 900 MHz (Band 8) | LTE | - | 20 MHz 폭 | - | KT의 LTE 커버리지 보조 대역 |
| 1.8 GHz (Band 3) | LTE | 35 MHz 폭 | 30 MHz 폭 | 20 MHz 폭 | LTE 핵심 주력 대역, 속도 및 용량 확보 |
| 2.1 GHz (Band 1) | LTE | 30 MHz 폭 | 30 MHz 폭 | 40 MHz 폭 | 3G에서 전환된 LTE 주요 대역 |
| 2.6 GHz (Band 7) | LTE | 50 MHz 폭 | - | 40 MHz 폭 | 광대역 LTE를 통한 고속 데이터 서비스 |
| 3.5 GHz (n78) | 5G | 100 MHz 폭 (3600~3700) | 100 MHz 폭 (3500~3600) | 100 MHz 폭 (3400~3420, 3420~3500) | 현 5G 전국망 서비스의 핵심 주파수 |
주: 위 표는 주요 대역을 중심으로 정리한 것이며, 세부 할당 내역 및 이용 기간은 변동될 수 있음. LGU+의 3.5GHz 대역은 2018년 80MHz(3420~3500) 할당 후, 2022년 20MHz(3400~3420)를 추가 할당받아 총 100MHz가 됨.23
3.5GHz 대역은 현재 대한민국 5G 경쟁의 핵심 전장이다. 2018년 최초 할당 당시, SKT와 KT는 각각 100MHz 폭을, LG유플러스는 80MHz 폭을 할당받아 출발선에서부터 미세한 격차가 존재했다.23 더 넓은 대역폭은 곧 더 높은 최대 속도와 용량을 의미하기에, 이는 LG유플러스에게 잠재적인 경쟁 열위 요소로 작용했다.
이러한 불균형을 해소하기 위해 LG유플러스는 지속적으로 인접 대역 20MHz 폭의 추가 할당을 정부에 요구했고, 결국 2022년 11월, 경매를 통해 3.40~3.42GHz 대역 20MHz 폭을 추가로 확보하는 데 성공했다.23 이로써 LG유플러스는 SKT, KT와 동일한 100MHz의 총 대역폭을 확보하며 경쟁의 발판을 동등하게 맞추는 중요한 전략적 승리를 거두었다.
이 사건은 새로운 논쟁의 불씨를 지폈다. 경쟁사가 대역폭을 확장하자, 이번에는 SK텔레콤이 자사 5G 가입자 수가 가장 많아 품질 유지를 위해 추가 주파수가 필요하다는 논리를 내세우며, 자사가 사용하는 3.7GHz 상단에 인접한 20~40MHz 폭의 추가 할당을 강력하게 요구하기 시작했다.20
그러나 정부(과기정통부)는 SK텔레콤의 요구에 신중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 특정 사업자에게 인접 대역을 수의계약에 가까운 ‘추가 할당’ 방식으로 제공하는 것은 다른 사업자와의 형평성 문제를 야기하고 경쟁을 저해할 수 있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대신 정부는 3.7GHz 이상 대역의 미할당 주파수 300MHz 폭을 하나의 큰 덩어리로 묶어, 모든 사업자가 경쟁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광대역 할당 방식으로 공급하는 것을 선호하고 있다.35 이는 특정 사업자에게 파편적으로 주파수를 공급하기보다, 시장 원리에 기반한 대규모 경쟁 경매를 통해 자원 배분의 효율성과 공정성을 담보하려는 정부의 정책 기조를 명확히 보여준다. 이처럼 3.5GHz 인접 대역을 둘러싼 논쟁은, 주파수 지도가 결코 정적이지 않으며 통신 3사의 끊임없는 전략적 경쟁과 정부의 시장 관리 역할이 상호작용하는 역동적인 전장임을 보여준다.
5G가 통신의 중심축으로 자리 잡았지만, 여전히 방대한 양의 3G 및 LTE 주파수는 전국적인 통신 서비스의 근간을 이루고 있다. 이들 주파수는 대부분 10년의 이용 기간이 설정되어 있어, 순차적으로 기간 만료가 도래하고 있다. 이에 따라 이 ‘레거시(legacy)’ 대역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가 중요한 정책 과제로 부상했다.
핵심적인 정책 수단은 재할당(Re-allocation)이다. 재할당은 이용 기간이 만료된 주파수를 기존 이용자에게 계속 사용할 수 있도록 다시 할당해주는 절차로, 서비스의 안정성과 연속성을 위해 필수적이다.20 정부는 2027년까지 이용 기간이 만료되는 3G 및 LTE 서비스용 주파수 총 370MHz 폭 전체를 기존 사업자에게 재할당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33 이는 신규 사업자의 진입 가능성이 낮은 상황에서 기존 3사 체제를 유지하며 안정적인 서비스 제공을 유도하려는 현실적인 판단으로 풀이된다.
재할당과 더불어 주목받는 개념은 주파수 공동사용(Spectrum Sharing)이다.21 이는 특정 주파수를 여러 이용자가 시간적, 공간적으로 나누어 사용하는 방식으로, 한정된 주파수 자원의 이용 효율을 극대화하기 위한 대안으로 논의되고 있다. 전파법 제6조의3은 정부가 주파수 공동사용을 명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마련하고 있으며 10, 이는 향후 특정 지역이나 시간대에 트래픽이 몰리는 문제를 해결하거나, 신규 서비스(예: 사물인터넷)를 위해 기존 대역을 유연하게 활용하는 데 사용될 수 있다. 또한, 정부는 미이용 주파수 대역(예: 1.4GHz)을 타 산업 분야에 시범적으로 개방하는 등 주파수 자원의 활용도를 높이기 위한 다각적인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3
본 파트는 최근 대한민국 주파수 정책 역사상 가장 중요하고 논쟁적인 사건인 5G 28GHz 주파수 할당 및 취소 사태를 심층 분석한다. 야심 찬 시작부터 전례 없는 실패에 이르기까지, 28GHz 할당의 전 생애주기를 추적하여 대한민국 통신 시장과 정책에 대한 핵심적인 교훈을 도출한다.
2018년, 대한민국 정부는 5G 시대를 선도하겠다는 야심 찬 목표 아래 3.5GHz 대역과 함께 28GHz 초고주파 대역을 할당했다. 당시 28GHz 대역은 LTE보다 최대 20배 빠른 속도를 구현할 수 있는 ‘진정한 5G(True 5G)’의 핵심 기술로 홍보되었으며, 자율주행, 실감형 미디어 등 미래 신산업의 기폭제가 될 것으로 기대를 모았다.14
2018년 6월 주파수 경매를 통해 이동통신 3사는 각각 28GHz 대역에서 800MHz라는 광대역 주파수 폭을 할당받았다.34 정부는 ‘세계 최초 5G 상용화’라는 타이틀을 현실화하기 위해, 이 주파수 할당에 매우 엄격하고 구체적인 조건을 부과했다. 핵심 조건은 할당 후 3년 차인 2021년 말까지 각 사업자가 28GHz 대역 기지국 장치를 15,000개씩 구축해야 한다는 의무였다.14 정부는 이행점검을 통해 의무를 이행하지 못할 경우, 기납부한 할당대가(총 6,223억 원)를 반환하지 않음은 물론, 이용 기간 단축이나 최종적인 할당 취소까지 단행할 수 있음을 명백히 했다.16 이는 정책 목표 달성을 위해 규제적 수단을 총동원하겠다는 정부의 강력한 의지를 보여주는 것이었다.
정부의 야심 찬 계획에도 불구하고, 28GHz 망 구축은 시작부터 난관에 부딪혔다. 이는 정책적 ‘밀어붙이기(Policy Push)’가 시장의 현실과 정면으로 충돌한 결과였다. 실패의 원인은 복합적이었으나, 크게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경제적 사업성 부재(Economic Unviability)가 가장 근본적인 문제였다. 28GHz 주파수는 직진성이 강하고 장애물 투과율이 낮은 물리적 특성 때문에 전파 도달 거리가 매우 짧다.14 이는 3.5GHz 대역보다 훨씬 더 촘촘하게 기지국을 설치해야만 서비스 품질을 유지할 수 있음을 의미하며, 이는 천문학적인 투자 비용을 요구했다.37 이미 3.5GHz 대역 주파수 확보와 전국망 구축에 수조 원을 투입한 통신사 입장에서, 막대한 추가 비용이 들지만 수익 모델은 불투명한 28GHz 망 구축은 투자 우선순위에서 밀릴 수밖에 없었다.
둘째, 수요 및 생태계의 부재(Lack of a Business Case)였다. 28GHz의 빠른 속도를 체감할 수 있는 B2C(소비자 대상) 서비스 모델이 부재했으며, 더 결정적으로 국내 시장에 28GHz 대역을 지원하는 스마트폰 단말기가 단 한 종도 출시되지 않았다.14 최종 사용자가 없는 네트워크에 막대한 돈을 투자할 유인이 없었던 것이다. B2B(기업 대상) 시장 역시 초기 단계에 머물러 뚜렷한 수요를 창출하지 못했다.
셋째, 기술적 장벽(Technical Hurdles)도 존재했다. 28GHz와 같은 초고주파 대역에서는 신호 손실을 최소화하기 위해 기존의 폴리이미드(PI) 소재가 아닌, 저손실 특성을 가진 폴리테트라플루오로에틸렌(PTFE)과 같은 신소재를 사용한 연성인쇄회로기판(FPCB) 등 고가의 특수 부품이 필요했다.37 이는 장비의 생산 단가를 높이고 기술적 구현을 더 어렵게 만드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결국 통신사들은 명확한 수익이 보장되는 3.5GHz 전국망 구축에 자원을 집중하고, 28GHz는 최소한의 투자만 집행하는 합리적이지만 소극적인 선택을 하게 되었다. 이는 정부의 정책 목표와 통신사의 상업적 현실 간의 깊은 괴리를 드러낸 결과였다.
2022년 말, 과기정통부는 할당 후 3년 차 이행 실적에 대한 점검을 실시했다. 그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통신 3사 모두 의무 구축 수량 15,000대의 약 10% 수준인 1,600~1,800여 대를 구축하는 데 그쳤다.16 정부는 사전에 공표한 원칙에 따라 엄정한 후속 조치에 착수했다.
KT와 LG유플러스: 두 회사는 망 구축 실적과 평가 점수가 할당 취소 기준선(30점)에 미달했다.16 이에 따라 과기정통부는 2022년 12월, 두 회사의 28GHz 주파수 할당을 최종적으로 취소했다.39 이는 대한민국 헌정 사상, 정부가 경쟁을 통해 할당한 주파수를 사업자의 의무 불이행을 이유로 회수한 최초의 사례로 기록되었다.15
SK텔레콤: SK텔레콤은 평가 점수 30.5점으로 간신히 할당 취소 기준을 넘겼다.16 이에 정부는 즉각적인 취소 대신, 이용 기간을 6개월 단축하고 2023년 5월 31일까지 15,000대 구축 의무를 이행하라는 유예 기간을 부여했다.16 그러나 유예 기간 종료 시점까지 SK텔레콤이 추가 구축 계획이 없음을 확인하자 42, 과기정통부는 2023년 5월 31일부로 SK텔레콤의 28GHz 주파수 할당 역시 최종 취소했다.43 이로써 통신 3사 모두 28GHz 시장에서 퇴출되었다.
이 과정에서 열린 청문회에서 통신 3사는 의무 불이행 사실 자체를 부인하지는 않았다. 다만, 국민 편익을 고려하여 이미 28GHz를 백홀(backhaul)로 사용하여 구축한 지하철 공공 와이파이 서비스는 계속 운영할 수 있도록 선처를 요청했다.16 정부는 이 요청을 일부 수용하여, 공익적 측면을 고려해 지하철 와이파이에 한해서는 기존 할당 기간 만료 시점까지 주파수 사용을 예외적으로 허용하는 조치를 내렸다.16
28GHz 사태는 대한민국 통신 시장에 깊고 다양한 상처를 남겼다.
무엇보다 이 사건은 시장에 새로운 규제 리스크(Regulatory Risk)를 각인시켰다. 정부가 사업자의 ‘약속 불이행’에 대해 전례 없는 최고 수준의 제재인 ‘할당 취소’를 실제로 단행함으로써, ‘설마 취소까지 하겠는가’라는 시장의 안일한 기대를 무너뜨렸다. 이는 향후 통신사들이 정부의 할당 조건을 훨씬 더 신중하고 보수적으로 검토하게 만들 것이며, 정부와 사업자 간의 신뢰 관계에도 장기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28GHz의 몰락은 정책적 야망이 시장의 현실을 외면했을 때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지를 보여주는 값비싼 교훈이 되었다.
표 4: 5G 28GHz 주파수 할당 및 취소 주요 연혁 (2018-2023)
| 날짜/기간 | 주요 사건 | 정부(과기정통부) 조치 | 이동통신 3사 상태/대응 | 결과 및 의의 |
|---|---|---|---|---|
| 2018.06 | 5G 주파수 경매 | 3.5GHz 및 28GHz 대역 할당. 3년 내 15,000개 장치 구축 의무 부과.34 | 3사 모두 28GHz 대역(각 800MHz 폭) 낙찰. 총 할당대가 약 6,223억 원.34 | ‘진정한 5G’ 시대에 대한 기대감 속에서 28GHz 망 구축 의무화. |
| 2018-2021 | 3년간의 의무 이행 기간 | - | 3.5GHz 망 구축에 집중. 28GHz 망 구축은 지지부진.16 | 사업성 부재와 기술적 어려움으로 의무 이행에 대한 우려 증폭. |
| 2022.11 | 3년 차 이행 실적 점검 | 점검 결과 발표. 3사 모두 의무수량의 약 10%만 구축 확인. 할당 취소 사전 통지.41 | KT, LGU+는 취소 기준 미달. SKT는 30.5점으로 턱걸이 통과.16 | 정부의 강력한 제재 의지 표명. 사상 최초의 주파수 할당 취소 예고. |
| 2022.12 | KT/LGU+ 할당 취소 확정 | 청문 절차 후 KT, LGU+의 28GHz 주파수 할당 취소 최종 확정.16 | 지하철 와이파이 서비스 지속 운영 희망 의사 표명.47 | 대한민국 역사상 최초로 할당된 주파수가 의무 불이행으로 취소됨. |
| 2023.05 | SKT 할당 취소 확정 | SKT의 유예 기간 내 의무 불이행 확인 후, 5월 31일부로 할당 취소 최종 확정.42 | 추가 구축 계획 없음을 공식화. | 통신 3사 모두 28GHz 시장에서 완전히 철수. |
본 파트는 5G 경험에서 얻은 교훈이 어떻게 대한민국의 차세대 이동통신 기술 전략을 형성하고 있는지 조망한다. 6G를 향한 정부의 선제적이고 포괄적인 계획에 초점을 맞춘다.
정부는 28GHz 사태의 교훈을 바탕으로 미래 통신 전략을 근본적으로 재설계하고 있다. 그 청사진이 바로 2024년부터 2028년까지의 5개년 로드맵인 ‘제4차 전파진흥기본계획’이다.3 이 계획은 ‘전파로 확장하는 디지털 번영 대한민국’이라는 비전 아래, 단순히 빠른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것을 넘어 전파 기술 자체의 한계를 극복하고 관련 산업 생태계를 육성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51
계획의 4대 전략 목표는 []전파산업 글로벌 선도 국가 도약 []미래 전파자원 확보 및 효율적 이용 []국민이 안심하는 전파이용 환경 구축 []디지털 심화시대 전파 정책기반 강화로 구성된다.3 특히 주목할 부분은 ‘전파한계 극복’이라는 개념을 전면에 내세운 점이다. 이는 위성통신, 비지상망 통신(NTN), 극한 환경에서의 전파 활용 등 기존 지상 통신의 공간적, 물리적 한계를 뛰어넘는 차세대 기술을 5대 전략 분야, 10대 중점기술로 선정하여 집중 육성하겠다는 의지를 담고 있다.3 이는 6G 시대를 맞아 기술 패러다임의 근본적인 전환을 준비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성공적인 6G 시대를 열기 위한 가장 중요한 첫걸음은 바로 ‘주파수 확보’이다. 정부는 28GHz 사태에서 얻은 ‘생태계 없는 주파수는 무용지물’이라는 교훈에 따라, 국제 표준화 단계부터 선제적으로 움직이고 있다. 핵심 무대는 국제전기통신연합(ITU)이 주관하는 세계전파통신회의(World Radiocommunication Conference, WRC)이다.52
2023년에 열린 WRC-23에서 대한민국은 6G 후보 주파수 대역에 대한 논의를 주도하며 상당한 외교적 성과를 거두었다. 우리나라가 제안한 4개 대역 중 3개 대역이 6G 연구를 위한 후보 대역으로 최종 채택된 것이다. 이들 대역은 []4.4-4.8GHz []7.125-8.4GHz []14.8-15.35GHz로, 총 2.2GHz에 달하는 폭이다.52
특히 이 중에서 어퍼-미드 밴드(Upper-Mid Band, 7~24GHz), 그중에서도 7.125~8.4GHz 대역이 6G 시대의 핵심 주파수로 부상하고 있다.54 이 대역은 3.5GHz와 같은 기존 미드-밴드보다 훨씬 넓은 대역폭을 확보할 수 있어 초광대역 서비스 구현이 가능하면서도, 28GHz와 같은 밀리미터파(mmWave) 대역보다는 전파 특성이 우수하여 보다 현실적인 커버리지 구축이 가능할 것으로 기대되기 때문이다. 현재 이 대역은 고정 M/W 중계, 해상교통관제 등 다른 용도로 사용되고 있어 55, 향후 6G 도입을 위해서는 기존 서비스와의 주파수 공유 또는 재배치(re-farming)가 중요한 과제가 될 것이다. 6G용 주파수의 최종적인 분배는 2027년 열릴 WRC-27에서 결정될 전망이며, 대한민국 정부는 그때까지 자국 산업에 유리한 대역이 국제 표준으로 채택되도록 총력을 기울일 계획이다.56
정부의 6G 전략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변화는 ‘네트워크 우선’에서 ‘생태계 우선(Ecosystem-first)’ 접근법으로의 전환이다. 이는 28GHz 실패의 핵심 원인이었던 단말기, 부품, 서비스 등 관련 생태계의 부재를 반복하지 않겠다는 강력한 의지의 표현이다.
이를 위해 정부는 구체적인 지원책을 마련하고 있다. 첫째, 재정적 지원을 위해 가칭 ‘K-스펙트럼 펀드’ 조성을 추진한다.3 이 펀드는 6G 관련 신소재, 고성능 RF 부품, 안테나 등 핵심 기술을 개발하는 국내 중소/벤처기업에 투자하여 기술 자립도를 높이고 산업 기반을 강화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둘째, 법적 지원을 위해 기존 전파법에서 ‘진흥’ 기능을 분리하여 ‘전파산업진흥법’ 제정을 추진한다.3 이 법은 전파 산업의 체계적인 육성, 기업 지원, 인력 양성 등에 대한 명확한 법적 근거를 마련하여 보다 일관되고 집중적인 산업 지원 정책을 펼치기 위함이다.
셋째, R&D 및 인프라 지원도 강화한다. 차세대 위성통신 기술로 주목받는 저궤도(LEO) 위성통신 기술 개발에 대한 대규모 R&D 투자를 시작했으며 51, 기업들이 개발한 기술과 제품을 자유롭게 시험하고 인증받을 수 있는 ‘전파 플레이그라운드’와 같은 실증 인프라를 전국적으로 확대할 계획이다.51
이러한 다각적인 접근은 6G 시대에는 정부가 단순히 사업자에게 망 구축을 강요하는 규제자의 역할을 넘어, 기술 개발부터 산업 육성, 국제 표준화까지 전 과정을 지원하고 조율하는 ‘생태계 조성자(Ecosystem Builder)’로서의 역할을 수행하겠다는 정책 방향의 근본적인 변화를 보여준다. 이는 28GHz의 실패를 값비싼 수업료로 지불하고 얻은, 보다 현실적이고 성숙한 전략이라 평가할 수 있다.
본 보고서는 대한민국 주파수 할당 체계의 법적 구조, 운영 메커니즘, 역사적 변천, 그리고 현재와 미래의 전략을 다각도로 분석했다. 마지막으로, 분석을 통해 도출된 핵심 결론을 종합하고 정책 입안자와 시장 참여자들을 위한 전략적 제언을 제시한다.
대한민국 주파수 정책의 역사는 ‘정책적 야망’과 ‘시장 현실성’ 사이의 끊임없는 긴장 관계로 요약될 수 있다. 정부는 세계 최초, 세계 최고라는 기술 선도 국가의 위상을 확보하려는 강력한 정책적 목표를 가지고 주파수 할당을 추진해왔다. 이러한 야망은 CDMA 세계 최초 상용화, 5G 세계 최초 상용화 등 괄목할 만한 성과를 이끌어낸 원동력이었다.
그러나 5G 28GHz 사태는 이러한 정책 주도형 발전 모델의 한계를 명확히 드러냈다. 정부의 기술적 야망이 단말기, 서비스, 수익 모델 등 시장의 실질적인 생태계 성숙도를 앞질러 나갈 때, 상업적 주체인 통신 사업자들은 합리적인 투자 결정을 내리기 어렵다. 결국, 막대한 비용이 수반되는 망 구축 의무는 공허한 약속으로 남았고, 이는 전례 없는 주파수 할당 취소라는 파국으로 이어졌다.
이 과정에서 드러난 핵심적인 동학은 다음과 같다.
결론적으로, 대한민국의 주파수 정책은 강력한 정부 주도 하에 빠른 기술 발전을 이룩했지만, 시장의 자생적인 동력을 충분히 고려하지 못했을 때 발생하는 리스크를 안고 있다. 28GHz의 실패는 이 리스크가 현실화된 사례이며, 미래 6G 전략은 이러한 과거의 교훈을 깊이 성찰한 결과물이라 할 수 있다.
제언 1: 할당대가 산정의 예측 가능성 제고
주파수, 특히 이용 기간이 만료되어 돌아오는 재할당 대가의 산정 방식을 보다 투명하고 예측 가능하게 개선해야 한다.19 정부의 재량적 판단 요소를 최소화하고, 과거 경매가, 예상 매출액, 투자 기여도 등을 반영하는 명확하고 일관된 산식을 사전에 공개함으로써 사업자들이 장기적인 재무 계획을 안정적으로 수립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 이는 규제 불확실성을 줄여 안정적인 투자를 유도하는 효과를 낳을 것이다.
제언 2: 시장 현실을 반영한 할당 조건 설계
향후 주파수 할당 시 부과하는 조건(예: 망 구축 의무)은 기술적 이상향이나 국제 순위 경쟁보다는, 해당 기술의 생태계 성숙도와 실질적인 사업 모델의 존재 여부를 면밀히 검토하여 설계해야 한다.19 단순히 기지국 수를 기준으로 하는 획일적인 의무 부과에서 벗어나, 특정 인구 커버리지 달성, 서비스 속도 보장, 농어촌 지역 투자 인센티브 제공 등 보다 세분화되고 유연한 조건을 도입하는 방안을 고려해야 한다. 이는 사업자의 자발적인 투자를 이끌어내고 정책 목표의 실현 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
제언 3: 선제적 생태계 조성 노력의 지속 및 강화
6G 전략에서 나타난 ‘생태계 우선’ 접근법은 매우 바람직한 방향이다. ‘K-스펙트럼 펀드’와 ‘전파산업진흥법’ 제정 계획을 차질 없이 추진하여, 차세대 통신에 필요한 핵심 부품과 소재, 소프트웨어 기술을 개발하는 국내 기업들이 성장할 수 있는 토양을 만들어야 한다.3 이는 네트워크 장비의 해외 의존도를 낮추고, 6G 시대의 기술 주도권을 확보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할 것이다.
기존 이동통신 사업자를 위하여:
정부의 6G 계획 수립 단계부터 기술적, 경제적 타당성에 대한 데이터를 기반으로 적극적으로 소통하여, 향후 할당 조건이 시장 현실에 부합하도록 목소리를 내야 한다. 동시에, 차세대 기술 전환에 따른 대규모 주파수 경매가 주기적으로 반복된다는 점을 인지하고, 이를 감안한 장기적인 스펙트럼 전략 및 자본 관리 계획을 수립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신규 진입 사업자를 위하여:
28GHz 대역을 기반으로 한 제4 이동통신사 선정 과정의 어려움은 시장 진입의 높은 장벽을 여실히 보여준다. 신규 사업자의 성공은 기존 3사와 동일한 전국망 커버리지 경쟁을 피하고, B2B 전용망, 특정 산업(제조, 물류, 의료) 특화 서비스, 사물인터넷(IoT) 등 명확하고 차별화된 틈새시장을 공략하는 데 달려있다. 또한, 사업 초기 막대한 투자 비용을 감당할 수 있는 안정적이고 확실한 자금 조달 계획이 성공의 전제 조건이다.
관련 산업계(장비/부품 제조사)를 위하여:
정부가 6G 후보 대역으로 선정한 주파수, 특히 7~24GHz의 어퍼-미드 밴드에 R&D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 정부의 ‘K-스펙트럼 펀드’와 같은 지원 프로그램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초기 기술 개발 자금을 확보하고, 글로벌 표준화 동향에 발맞춰 기술을 개발함으로써 차세대 통신 시장에서의 초기 선점 우위를 확보하는 전략이 필요하다.
| 전파법 | 국가법령정보센터 | 법령 > 본문, accessed July 6, 2025, https://www.law.go.kr/lsInfoP.do?lsiSeq=176695 |
| 전파법 | 국가법령정보센터 | 법령 > 본문, accessed July 6, 2025, https://law.go.kr/LSW/lsInfoP.do?lsiSeq=76637 |
| 주파수할당 신청 절차 및 방법 등 세부사항 | 국가법령정보센터 | 행정규칙, accessed July 6, 2025, https://www.law.go.kr/LSW/admRulInfoP.do?admRulSeq=2000000015653 |
| KT/LGU+, 오늘부로 5G 28GHz 서비스 중단…정부 최종 결정(종합) | 연합뉴스, accessed July 6, 2025, https://www.yna.co.kr/view/AKR202212230648510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