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한국 노동자와 전근대 노비의 처우에 대한 비교
1. 서론: ’현대판 노비’라는 도발적 주장에 대한 분석적 고찰
1.1 문제 제기
현대 한국 사회의 노동 담론에서 일부 노동자들이 자신들의 처지를 전근대 시대의 ’노비(奴婢)’에 비유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이는 단순한 수사적 과장을 넘어, 한국 노동 시장이 내포한 특정 병리 현상에 대한 심각한 문제의식을 담고 있는 사회적 현상으로 보아야 한다.1 특히 불안정 노동, 이주노동, 직장 내 권력 남용 등의 맥락에서 이러한 주장은 더욱 빈번하게 제기되며, 노동의 가치와 인간의 존엄성이 위협받는 현실에 대한 강력한 고발로 기능한다.3 본 보고서는 “현대 한국인 노동자들은 조선 이전의 노비보다 더 나쁜 대우를 받는다“는 도발적 주장의 법적, 역사적, 사회경제적 타당성을 엄밀히 검증하고, 그 주장이 함의하는 사회적 의미를 심층적으로 분석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이를 통해 현대 노동 문제의 본질을 보다 명확히 규명하고, 더 인간적인 노동 환경을 위한 정책적 방향성을 모색하고자 한다.
1.2 분석의 틀
’대우’라는 개념은 다차원적이고 모호하여 직접적인 비교가 어렵다. 따라서 본 보고서는 이를 객관적으로 비교 가능한 구체적 지표로 세분화하여 분석의 틀을 설정한다. 분석의 핵심 지표는 다음과 같은 다섯 가지 영역으로 구성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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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적 지위와 인격성: 법률이 개인을 독립된 인격체로 인정하는가, 아니면 타인의 소유물로 규정하는가. 기본적 인권의 보장 여부를 중심으로 비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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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체의 자유와 이동권: 개인이 자신의 신체를 온전히 통제하고, 거주 및 직업 선택의 자유를 누리는가. 강제 노동과 이동의 제약 여부를 검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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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적 조건과 재산권: 노동의 대가를 정당하게 받고, 그를 통해 축적한 재산을 독립적으로 소유 및 처분할 수 있는 권리가 보장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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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이동 가능성: 개인의 노력과 능력에 따라 사회적 지위가 상승할 수 있는 기회가 열려 있는가. 신분 세습과 계층 고착화의 정도를 비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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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 환경과 정신적 안녕: 노동 과정에서 인격적 존중을 받고, 신체적·정신적 건강을 보호받을 수 있는가. 폭력, 괴롭힘, 착취의 수준을 분석한다.
이 다섯 가지 지표를 기준으로, 문헌과 사료에 나타난 전근대(특히 고려 및 신라 시대) 노비의 실체와 현대 한국 노동자의 법적·현실적 조건을 체계적으로 비교 평가함으로써, 문제의 주장에 대한 타당성을 종합적으로 판단할 것이다.
2. 재산으로서의 인간, 노비 제도의 실체
2.1 법과 제도 속의 노비
2.1.1 소유와 예속의 법제화
전근대 사회에서 노비의 법적 지위는 명백했다. 그들은 권리의 주체인 ’인간’이 아니라 소유의 객체인 ’재산(chattel)’이었다. 이러한 지위는 국가의 법률에 의해 공인되고 보호받았다. 고려 시대인 986년(성종 5년), 노비의 가격을 남자는 포(布) 100필, 여자는 120필로 정한 법률이 제정되었는데, 이는 노비가 주인의 재산임을 국가가 최초로 명시한 노예법이었다.4 노비는 토지, 가축과 마찬가지로 매매, 상속, 증여의 대상이 되었다.6
조선 시대의 기록은 이러한 현실을 더욱 생생하게 보여준다. 퇴계 이황은 1586년 다섯 자녀에게 총 367명의 노비를 토지와 함께 상속하였으며 7, 율곡 이이 가문이 1566년에 작성한 재산 분배 문서인 화회문기(和會文記)에도 제사를 지내기 위한 ’봉사노비(奉祀奴婢)’를 포함한 수많은 노비가 전답과 함께 자녀들에게 분배되는 내용이 상세히 기록되어 있다.8 이 문서들은 노비가 당시 사회의 핵심적인 부의 형태이자 자산이었음을 명백히 증명한다. 심지어 양반들은 직접 거래에 나서는 것을 꺼려하여 노비의 이름을 빌려 토지를 매매하는 계약서를 작성하기도 했는데 9, 이는 노비가 법적 행위의 주체가 아니라 주인의 편의를 위한 도구로 취급되었음을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다. 이처럼 노비는 법적으로 인격이 거세된 채, 온전히 주인의 소유권 아래 놓인 존재였다.
2.1.2 신분 세습의 굴레
노비의 예속은 일대에 그치지 않고 대대로 이어지는 굴레였다. 신분 세습의 핵심 원리는 ’천자수모법(賤者隨母法)’이었다. 이는 자식의 신분이 어머니의 신분을 따른다는 원칙으로, 고려 시대인 1039년(정종 5년)에 법제화되었다.5 이 법에 따라 노비 부부 사이에서 태어난 자식은 물론, 양인 남성과 여성 노비(婢) 사이에서 태어난 자식 역시 어머니를 따라 노비가 되었고, 그 소유권은 어머니의 주인에게 귀속되었다.10 조선 시대에는 주인이 자신의 여성 노비를 첩으로 삼아 자식을 낳아도 그 자식은 노비 신분을 면할 수 없었다.11
이러한 세습 제도는 한번 노비의 굴레에 속하게 되면 개인의 의지나 능력과는 무관하게 그 후손들까지 영원히 예속 상태에 머물러야 함을 의미했다. 이는 개인의 운명이 출생과 동시에 결정되는 폐쇄적인 신분제의 가장 잔혹한 측면이었다. 국가와 지배층은 이 제도를 통해 안정적으로 노동력을 확보하고 사회 질서를 유지했다. 조선 성종 때 완성된 『경국대전(經國大典)』에서는 부모 중 한쪽만 노비여도 그 자식은 노비가 되는 ‘일천즉천(一賤卽賤)’ 원칙이 법으로 명문화되면서 노비의 수는 급격히 팽창했다.12 이처럼 노비제는 개인과 그 가족의 미래를 영구히 속박하는 제도적 장치였다.
2.1.3 주인의 권력과 국가의 통제
노비에 대한 주인의 권력은 거의 절대적이었다. 특히 신체에 대한 통제권은 생사여탈권에 가까웠다. 1136년(인종 14년) 고려에서 제정된 법은 “노비가 주인을 배반하다가 스스로 목을 맨 경우 주인의 죄를 묻지 않는다“고 규정했다. 이는 주인이 노비를 처벌하는 과정에서 노비가 고통을 이기지 못하고 자살하더라도 주인을 처벌하지 않는다는 의미로 해석되며, 사실상 주인의 사적인 형벌권을 폭넓게 인정한 것이다.4 조선 시대에 들어와서는 주인이 노비를 사사로이 죽이는 행위(私殺)는 법으로 금지되었으나 13, 실제로는 국가의 공권력이 노비의 생명을 온전히 보호하지 못하는 무권리 상태에 가까웠다.13 권세가의 노비가 주인을 믿고 일반 백성에게 행패를 부리는 일이 비일비재했던 반면 14, 노비가 주인을 고발하거나 구타하는 행위는 강상죄(綱常罪)로 다스려져 극형을 면하기 어려웠다.15
국가는 이러한 노비 소유주의 이익을 보호하고 노비 제도를 유지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개입했다. 국가는 노비의 신분 판정, 매매, 혼인, 신공(身貢), 형벌 및 재산 귀속에 이르기까지 세세한 법률을 만들어 노비 제도를 체계적으로 관리했다.15 조선 시대에는 노비 관련 소송이 급증하자 이를 전담하는 기관인 장례원(掌隷院)을 설치하기도 했다.16 이는 노비 제도가 단순히 주인과 노비 사이의 사적인 관계가 아니라, 국가의 통치 기반과 직결된 공적 제도였음을 보여준다. 즉, 국가는 노비 소유주들의 공동 이익을 실현하는 기구로서, 노비에 대한 억압과 착취 구조를 법과 제도로 뒷받침하는 궁극적인 보증인이었던 것이다.
2.2 노비의 삶과 노동의 현실
2.2.1 노동의 형태와 강도
노비의 노동은 그 소유 주체와 거주 형태에 따라 다양하게 나타났다. 국가가 소유한 공노비(公奴婢)는 관청에 소속되어 잡역에 동원되거나, 정해진 양의 물품을 생산하여 바치는 신공(身貢)의 의무를 졌다.11 개인 소유의 사노비(私奴婢)는 다시 주인과 한 집에서 거주하며 가사 노동과 농사 등 온갖 잡역을 도맡는 솔거노비(率居奴婢)와, 주인과 따로 떨어져 살면서 독립된 가정을 꾸리고 자신의 경작지를 가지되 주인에게 신공을 바치는 외거노비(外居奴婢)로 구분되었다.11
특히 주인의 직접적인 지휘·감독 아래 놓인 솔거노비의 삶은 고달팠다. 그들은 주인의 모든 필요에 따라 24시간 동원될 수 있는 존재였으며, 노동의 강도나 종류에 대한 선택권이 전혀 없었다. 주인의 친척 집에 문안 인사를 대신 가거나, 주인의 묘를 지키는 시묘살이, 심지어 초상이 났을 때 대신 곡소리를 내는 일까지 도맡아야 했다.16 반면 외거노비는 상대적으로 자율성을 누렸지만, 이들 역시 주인에게 정기적으로 노동력이나 현물을 제공해야 하는 예속 관계에서 벗어날 수는 없었다. 사노비의 부역은 공노비보다 훨씬 고되고 가혹한 것으로 인식되었다.16 이들의 노동은 인격적 교환이 아닌, 재산으로서의 의무 이행에 불과했다.
2.2.2 생활 조건과 가족 관계
노비의 생활 수준은 최하층 신분에 걸맞게 극히 열악했다.14 의식주는 주인의 처분에 따라 결정되었으며, 반복되는 고된 노동으로 인해 기본적인 생존과 가계의 재생산마저 위협받는 경우가 많았다.17 주인은 노비의 수를 늘리기 위해, 즉 자신의 재산을 증식시키기 위해 노비들의 혼인을 강제하거나 주선하기도 했다.11 그러나 노비에게 ’결혼’이라는 말보다는 ’동거’라는 표현이 더 적합할 정도로 11, 이들의 결합은 인격적인 관계로 존중받지 못했다.
더욱 비극적인 것은 노비 가족의 극단적인 불안정성이었다. 노비는 재산으로 취급되었기에, 주인의 재산 분배나 매매 결정에 따라 언제든지 가족이 뿔뿔이 흩어질 수 있었다.11 부모와 자식이, 부부가 서로 다른 주인에게 팔려나가는 일은 드물지 않았다. 이는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단위인 가족을 형성하고 유지할 권리조차 박탈당했음을 의미한다. 노비는 성(姓)과 본관을 갖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으며 17, 이는 그들이 완전한 사회적 인격체로 인정받지 못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이처럼 노비의 삶은 노동 착취뿐만 아니라, 가장 기본적인 인간 관계마저 파괴될 수 있는 항시적인 위협 속에 놓여 있었다.
2.3 저항과 이동의 가능성: 시대적 특수성
2.3.1 고려 시대 노비의 상대적 자율성
’노비’라는 범주는 시대에 따라 그 성격과 처우가 동일하지 않았다. 특히 조선 이전, 고려 시대의 노비는 이후 조선 시대의 노비에 비해 상대적으로 ’사회적 인격’이 살아있는 존재였다는 평가가 존재한다.5 이는 ’노비’라는 단일한 개념으로 전근대 전체를 재단할 수 없음을 시사한다.
고려 시대 노비의 이름은 만적(萬積)이나 덕적(德積)처럼 불교적 의미를 담은 경우가 많아, 조선 시대 노비에게 강요되었던 천한 이름과는 대조를 이룬다.4 또한 귀천 간의 복식 차별이 엄격하지 않았다는 기록도 존재한다.5 법 적용에 있어서도 차이가 있었다. 처의 주인을 살해한 노비가 사형이 아닌 유배형에 처해지거나, 주인의 범죄를 고발하여 처벌받게 한 노비의 사례는 조선 시대라면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었다.5 이는 고려가 조선에 비해 유교적 삼강오륜에 입각한 신분 질서를 덜 엄격하게 적용했음을 보여준다.
더 나아가 고려의 노비는 해방의 가능성을 전제한 ’기한부 채무노예’와 같은 성격을 일부 가졌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고려 왕조는 빚 때문에 자식을 노비로 파는 행위를 공식적으로 승인하지 않았으며, 채무로 인한 인신 예속은 3~6년의 기한을 두는 것이 일반적이었다.5 물론 이러한 특징들이 노비의 본질적인 예속 상태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조선 시대에 비해 신분 관계가 상대적으로 유연했고, 사회적 인격이 완전히 말살되지는 않았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지점이다. 이러한 시대적 차이를 무시하고 ’노비’를 하나의 고정된 실체로 간주하는 것은 역사적 현실을 왜곡할 수 있다.
2.3.2 해방을 향한 몸부림
노비들은 억압적인 현실에 수동적으로 순응하기만 한 존재는 아니었다. 그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저항하며 신분 해방을 향한 몸부림을 쳤다. 가장 보편적이고 직접적인 저항 방식은 도망(逃亡)이었다.11 도망간 노비들은 변방의 섬이나 깊은 산속으로 숨어들거나, 임노동자나 행상 등으로 생계를 유지하며 새로운 삶을 모색하기도 했다.18 때로는 1198년 만적의 난처럼 “왕후장상(王侯將相)이 어찌 씨가 따로 있으랴!“를 외치며 조직적인 반란을 꾀하기도 했다.4
합법적인 신분 상승의 길도 극히 제한적이지만 존재했다. 특히 독립적인 생계를 꾸리던 외거노비 중 일부는 부를 축적할 수 있었는데, 이들은 자신의 재산을 바탕으로 신분 상승을 도모했다.17 국가 재정이 어려워졌을 때 시행된 ’납속면천(納粟免賤)’은 부유한 노비가 국가에 곡식이나 돈을 바치고 양인 신분을 얻는 제도였다.17 또한 전쟁 시기에는 군공(軍功)을 세워 노비 신분에서 벗어나는 길도 열렸다.16 그러나 이러한 사례들은 전체 노비 인구에 비하면 극소수에 불과했다. 대부분의 노비에게 신분 해방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꿈이었으며 11, 그들의 저항은 대부분 실패로 돌아가거나 더 큰 억압을 불러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끊임없는 저항은 노비제가 결코 안정적이거나 완전한 제도가 아니었음을 증명한다.
3. 권리의 주체, 현대 노동자의 조건
3.1 헌법과 노동법이 보장하는 권리
3.1.1 인간 존엄성과 노동 3권
현대 한국의 노동자는 전근대 노비와 근본적으로 다른 법적 지위를 갖는다. 그 출발점은 대한민국 헌법이다. 헌법 제10조는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고 선언하며,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고 규정한다. 이러한 인간 존엄성의 원칙은 노동 관계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헌법 제32조 제3항은 “근로조건의 기준은 인간의 존엄성을 보장하도록 법률로 정한다“고 명시하여 20, 노동이 단순히 생계 수단을 넘어 인격 실현의 과정임을 천명한다.
더 나아가 헌법 제33조 제1항은 “근로자는 근로조건의 향상을 위하여 자주적인 단결권·단체교섭권 및 단체행동권을 가진다“고 규정하여 노동 3권을 보장한다.22 이는 노동자가 더 이상 사용자의 일방적인 지시에 복종하는 존재가 아니라, 사용자와 대등한 위치에서 교섭하고 자신의 권익을 위해 집단적으로 행동할 수 있는 주체임을 인정한 것이다. 노비에게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이러한 기본권들은, 현대 노동자가 재산의 ’객체’가 아닌 권리의 ’주체’임을 명확히 하며, 양자를 가르는 가장 근본적인 차이점을 구성한다.
3.1.2 근로기준법의 보호망
헌법이 선언한 노동자의 권리는 근로기준법을 통해 구체적으로 실현된다. 근로기준법은 “근로자의 기본적 생활을 보장, 향상시키며 균형 있는 국민경제의 발전을 꾀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며, 모든 근로조건의 최저기준을 설정한다.23 이 법은 사용자가 노동자의 자유의사에 어긋나는 근로를 강요하는 행위(강제근로 금지, 제7조), 근로자에게 폭행을 가하는 행위(폭행 금지, 제8조), 그리고 제3자가 개입하여 이익을 취하는 행위(중간착취 배제, 제9조)를 엄격히 금지한다.24
또한 근로기준법은 노동자의 기본적인 생활을 보장하기 위한 구체적인 기준들을 제시한다. 국가가 정한 최저 수준 이상의 임금을 보장하는 최저임금제, 1주간의 근로시간을 40시간, 1일의 근로시간을 8시간으로 제한하는 법정근로시간 제도, 그리고 이를 초과하는 연장·야간·휴일근로에 대해서는 통상임금의 50% 이상을 가산하여 지급하도록 한 규정(제56조)이 대표적이다.24 이 외에도 유급휴가(제60조), 정당한 이유 없는 해고의 제한(제23조) 등 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한 포괄적인 장치들이 마련되어 있다. 근로기준법이 정한 기준에 미달하는 근로계약을 체결할 경우, 그 부분에 한하여 무효가 되고 무효로 된 부분은 근로기준법에서 정한 기준에 따르게 된다.24 이는 노동 관계가 더 이상 사적인 힘의 논리에 의해 좌우되는 것이 아니라, 국가가 정한 공적인 규범에 의해 보호받음을 의미한다.
3.2 통계로 본 노동의 현주소
3.2.1 장시간 노동의 굴레
법적인 보호 장치에도 불구하고, 현대 한국 노동자들이 처한 현실은 여전히 녹록지 않다. 특히 장시간 노동 문제는 한국 사회의 고질적인 병폐로 지적된다. 통계에 따르면 한국의 연간 노동시간은 2013년 2,071.2시간에서 2023년 1,874시간으로 지난 10년간 꾸준히 감소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27 이는 주 52시간 근무제 도입 등 제도적 노력의 성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감소세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노동시간은 국제적으로 비교했을 때 여전히 최상위권에 속한다. 2022년 기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의 평균 연간 근로시간은 1,719시간으로, 2023년 한국의 근로시간은 이보다 155시간이나 더 길다.27 이는 월평균 약 13시간을 더 일하는 셈이다. 2022년 기준으로 한국보다 연간 근로시간이 많은 OECD 국가는 콜롬비아, 멕시코, 코스타리카, 칠레 등 중남미 4개국과 이스라엘뿐이다.27 법정 근로시간이 명시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상당수의 노동자들이 여전히 과로에 시달리고 있으며, ’저녁이 있는 삶’은 요원한 현실임을 통계는 명확히 보여준다.
3.2.2 임금 구조와 소득 불평등
노동의 대가인 임금 역시 심각한 불평등 구조를 드러낸다. 2024년 8월 통계청 경제활동인구조사에 따르면, 임금근로자의 월평균 임금은 정규직이 379.6만원인 반면, 비정규직은 204.8만원에 그쳐 큰 격차를 보였다.28 고용노동부의 2024년 고용형태별근로실태조사에서도 정규직 대비 비정규직의 시간당 임금 수준은 66.4%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나 29, 동일한 노동을 하더라도 고용 형태에 따라 현저한 차별이 존재함을 시사한다.
산업별 임금 격차도 상당하다. 2025년 통계에 따르면, 전기·가스·증기 및 공기조절 공급업의 월평균 임금총액은 8,876천원에 달하는 반면, 숙박 및 음식점업은 그에 훨씬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다.30 또한, 300인 이상 대규모 사업체 노동자의 월평균 임금은 5,680천원인 데 비해, 300인 미만 사업체는 3,616천원으로 사업장 규모에 따른 격차도 뚜렷하다.30 이러한 통계들은 한국 노동 시장이 고용 형태, 산업, 사업장 규모에 따라 다층적인 불평등 구조 위에 놓여 있음을 보여주며, 많은 노동자들이 법적 권리에도 불구하고 경제적 어려움과 상대적 박탈감에 시달리고 있음을 방증한다.
3.3 법의 그림자: 보호받지 못하는 노동
3.3.1 인 미만 사업장: 법적 사각지대
현대 노동법 체계의 가장 큰 모순은 그 보호망이 모든 노동자에게 동등하게 적용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 중심에는 ’상시 근로자 5인 미만 사업장’에 대한 적용 제외 규정이 있다. 근로기준법 제11조는 상시 5명 이상의 근로자를 사용하는 사업장에 법을 전면 적용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면서, 4명 이하 사업장에 대해서는 일부 규정만을 적용하도록 하고 있다.31
이로 인해 5인 미만 사업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근로기준법의 핵심적인 보호 조항들로부터 배제된다. 정당한 이유 없는 해고를 금지하는 규정(제23조), 사용자의 귀책사유로 휴업할 경우 지급되는 휴업수당(제46조), 1주 40시간·1일 8시간의 법정근로시간 제한(제50조), 연장·야간·휴일근로에 대한 50% 가산수당(제56조), 연차유급휴가(제60조), 그리고 직장 내 괴롭힘 금지(제76조의2) 조항 등이 모두 적용되지 않는다.31 2023년 기준 국내 전체 사업체의 86%, 전체 근로자의 약 30%가 5인 미만 사업장에 해당한다는 통계 35는, 수백만 명의 노동자가 사실상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2등 시민’으로 전락했음을 보여준다. 이들은 부당하게 해고당해도, 초과근로에 대한 정당한 보상을 받지 못해도, 직장에서 괴롭힘을 당해도 법에 호소하기 어려운 현실에 놓여 있다. 이는 법이 스스로 보호의 경계를 설정함으로써 체계적인 차별과 취약성을 만들어내는 역설적인 상황이다.
3.3.2 불안정 노동의 확산
고용 형태의 다변화는 파견직, 기간제, 단시간 근로 등 다양한 형태의 불안정 노동을 양산했다. 이러한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상시적인 고용 불안에 시달릴 뿐만 아니라, 낮은 소득, 미흡한 사회보험 적용, 차별적인 대우 등 다중의 어려움에 직면한다. 특히 파견근로자의 경우, 사용사업주와 고용관계가 직접적으로 연결되지 않아 책임 소재가 불분명하고, 이로 인해 부당한 처우에 더욱 쉽게 노출된다. 일부 현장에서는 ’파견직’이라는 이유만으로 인간적인 차별이 정당화되기도 하는데, 이는 파견직이 현대 사회의 새로운 신분제처럼 작동하고 있음을 보여준다.2 이들은 언제든지 대체될 수 있다는 불안감 속에서 부당한 요구에도 저항하기 어려우며, 이는 사용자의 통제력을 극대화하는 기제로 작용한다.
3.3.3 ’현대판 노예’의 최전선: 이주노동자
’현대판 노비’라는 비판이 가장 강력하게 제기되는 영역은 바로 고용허가제(EPS) 하의 이주노동자 문제이다. 고용허가제의 핵심 문제점은 ’사업장 이동의 제한’에 있다. 현행 ‘외국인고용법’ 제25조에 따르면, 이주노동자는 최초 고용된 사업장에서 계속 근무하는 것이 원칙이며 사업장 변경이 원칙적으로 금지된다.36 임금 체불, 폭행, 휴·폐업 등 사용자의 명백한 귀책사유가 있는 극히 예외적인 경우에만 사업장 변경이 허용되지만, 그 입증 책임이 노동자에게 있어 현실적으로 권리를 행사하기가 매우 어렵다.37
이러한 제도는 이주노동자를 특정 사업주에게 법적으로 예속시키는 결과를 낳는다. 노동자들은 열악하고 위험한 노동 환경, 장시간 노동, 폭언과 폭력, 비인간적인 대우에 노출되어도 사업장을 이탈하면 불법체류자 신세가 될 것을 우려해 쉽게 벗어나지 못한다.3 이는 사용자가 노동자의 생사여탈권을 쥔 것과 같은 강력한 통제력을 부여하며, 이주노동자를 구조적인 착취와 인권 침해의 위험에 방치하게 만든다. 전근대 노비의 주인이 신체의 소유권을 가졌다면, 현대의 일부 사용주는 고용허가제라는 법적 제도를 통해 노동자의 생계와 체류 자격을 통제함으로써 그에 준하는 예속 관계를 형성하는 것이다. 이 지점에서 ’현대판 노예’라는 은유는 단순한 수사를 넘어, 끔찍한 현실을 반영하는 언어가 된다.
4. 비교 분석과 최종 판단
4.1 ’대우’에 대한 다차원적 비교
전근대 노비와 현대 취약 노동자의 ’대우’를 앞서 제시한 다섯 가지 분석의 틀에 따라 종합적으로 비교하면, 근본적인 차이점과 함께 일부 구조적 유사성이 드러난다.
4.1.1 법적 인격과 인간의 존엄성
가장 결정적인 차이는 법적 지위와 인격성에서 나타난다. 노비는 법적으로 매매와 상속이 가능한 ’물건’이었으며, 독립된 인격체로 인정받지 못했다. 반면, 현대 노동자는 5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나 이주노동자라 할지라도 헌법상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보장받는 명백한 ’권리의 주체’이다. 이 차이는 어떠한 유사성으로도 메울 수 없는 근본적인 단절이며, 두 집단을 동일선상에서 비교하는 것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핵심 요소이다.
4.1.2 신체의 자유와 이동의 권리
노비는 주인에게 신체적으로 예속되어 거주 이전의 자유가 없었으며, 도망은 범죄 행위로 간주되었다. 현대 노동자는 원칙적으로 신체의 자유와 직업 선택의 자유를 누린다. 그러나 고용허가제 하의 이주노동자는 사업장 이동이 법적으로 엄격히 제한된다는 점에서 36, 특정 집단에 한해 이동의 권리가 심각하게 제약되는 유사성이 발견된다. 이는 물리적 속박이 아닌 법적·제도적 통제를 통해 예속 상태를 구현한다는 점에서 구조적 유사성을 갖는다.
4.1.3 경제적 조건과 재산권
일부 외거노비는 상당한 사유재산을 형성하기도 했으나 17, 그 재산은 법적으로 온전히 보장되지 않았으며 주인의 의사에 따라 언제든 귀속될 수 있었다.17 현대 노동자는 노동의 대가로 받은 임금을 통해 형성한 재산을 온전히 소유할 권리가 있다. 하지만 청년들의 노동력을 ’경험’이나 ’열정’이라는 명목으로 착취하는 ‘열정페이’ 현상 40은 노동의 대가를 정당하게 지불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노동력을 무상 또는 헐값에 취하던 노비 제도의 경제적 착취 구조와 본질적인 유사성을 보인다.
4.1.4 사회적 이동성과 기회
노비의 신분은 세습되는 것이 원칙이었기에 사회적 이동은 극히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거의 불가능했다. 현대 사회는 원칙적으로 능력에 따른 계층 이동이 가능한 열린 사회를 지향한다. 그러나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이 어렵고 소득 격차가 고착화되는 등 실질적인 계층 사다리가 약화되면서, ’수저 계급론’과 같은 신(新)신분제 담론이 등장하고 있다. 이는 법적 신분제는 아닐지라도, 경제적·사회적 지위가 대물림되는 경향이 강화되고 있음을 시사한다.
4.1.5 노동 환경과 정신적 안녕
주인은 노비에게 사적인 형벌을 가할 수 있었으며, 노비의 인격은 상시적인 무시와 폭력의 위협에 노출되었다. 현대 노동자는 법적으로 폭행과 괴롭힘으로부터 보호받는다. 그러나 ’직장 내 괴롭힘’은 폭언, 모욕, 따돌림 등의 형태로 노동자의 인격을 파괴하고 정신적 고통을 가한다는 점에서 42, 주인이 노비에게 가했던 인격적 억압과 유사한 심리적 예속 상태를 만들어낸다.
이를 종합하여 표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 지표 | 전근대 노비 | 현대 정규직 노동자 | 현대 취약 노동자 (5인 미만, 비정규직, 이주노동자 등) |
|---|---|---|---|
| 법적 지위 | 재산(chattel), 매매/상속/증여의 대상 4 | 권리의 주체, 헌법 및 노동법의 완전한 보호 대상 20 | 권리의 주체이나, 법적 보호의 예외 및 사각지대 존재 31 |
| 인격성 | 법적으로 부인됨, 주인의 소유물 | 헌법상 인간의 존엄과 가치 보장 20 | 법적으로 보장되나, 직장 내 괴롭힘 등으로 현실에서 훼손 42 |
| 신체적 자유 | 주인에게 예속, 사적 형벌 가능 4 | 완전한 자유 보장, 강제근로 및 폭행 금지 24 | 원칙적 자유 보장, 그러나 경제적 강제 및 통제에 취약 |
| 거주이전의 자유 | 원칙적 불가, 도망은 범죄 11 | 완전한 자유 보장 | 원칙적 보장, 단 이주노동자는 사업장 이동 제한으로 심각하게 제약 36 |
| 재산 소유권 | 제한적 허용, 궁극적으로 주인에게 귀속될 수 있음 17 | 완전한 소유권 보장 | 완전한 소유권 보장 |
| 노동 대가 | 의식주 제공, 대가 없음 (착취) | 임금 (법적 보장) | 임금 (법적 보장), 단 ‘열정페이’ 등 착취 사례 발생 41 |
| 가족 형성/유지권 | 주인의 필요에 따라 해체 가능 11 | 완전한 자유 보장 | 완전한 자유 보장 |
| 사회적 이동성 | 세습 원칙, 이동 거의 불가능 10 | 원칙적 개방, 기회 보장 | 형식적 개방, 실질적 계층 고착화 심화 |
| 국가의 역할 | 노비제도의 유지 및 보증 15 | 노동자 권리 보호 및 증진 20 | 원칙적 보호, 그러나 법적 사각지대 방치 및 특정 집단 통제 35 |
4.2 은유의 타당성: 왜 ’노비’라 부르는가
4.2.1 심리적 예속과 권력 관계: 직장 내 괴롭힘
법적 신분의 명백한 차이에도 불구하고 ’현대판 노비’라는 은유가 설득력을 얻는 이유는, 일부 노동 현장에서 경험하는 심리적 예속 상태와 절대적인 권력 관계 때문이다. 그 대표적인 현상이 바로 ‘직장 내 괴롭힘’, 즉 ’갑질’이다. 상사가 직장에서의 지위나 관계의 우위를 이용하여 부하 직원에게 가하는 폭언, 모욕, 비하, 따돌림, 부당한 업무지시 등은 노동자의 인격을 심각하게 훼손한다.43 “월급에는 팀장에게 욕먹는 것도 포함되어 있다“는 발언이나 44, 동료들 앞에서 “나이트 죽순이 같이 생겼다“고 비하하는 행위 44 등은 피해자에게 깊은 정신적 고통과 무력감을 안겨준다.
직장인 3명 중 1명이 지난 1년간 직장 내 괴롭힘을 경험했다는 통계 42는 이것이 일부 비정상적인 조직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 사회에 만연한 현상임을 보여준다. 이러한 지속적인 인격 모독과 부당한 통제는 법적 신분은 자유인일지라도, 심리적으로는 주인에게 예속된 노비와 유사한 상태를 만들어낸다. 해고의 위협과 생계에 대한 불안감 속에서 노동자는 부당한 처우에 저항하지 못하고 순응하게 되며, 이는 개인의 자율성과 존엄성을 파괴하는 결과를 낳는다.
4.2.2 노동력 착취의 현대적 형태: 열정페이
’열정페이’는 노동력 착취라는 노비 제도의 경제적 본질이 현대적으로 변용된 형태라고 볼 수 있다. ’일 배우는 것이 어디냐’는 논리를 앞세워 청년들의 열정과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빌미로, 무급 또는 최저임금에도 미치지 못하는 저임금 노동을 강요하는 행태가 바로 열정페이다.40 패션, 디자인, 방송 등 소위 ’도제식 노동’이 만연한 분야에서 이러한 착취는 더욱 심각하게 나타난다.49 견습에게 월 10만원, 인턴에게 30만원을 지급한 디자이너의 사례 49나, 계약서도 없이 월평균 36만원(시급 환산 2000원)을 지급한 유튜버의 사례 45는 노동의 가치를 정면으로 부정하는 행위이다.
이는 노동력을 무상 또는 헐값에 취하여 이윤을 극대화했던 노비 제도의 착취 구조와 경제적 메커니즘 면에서 유사점을 찾을 수 있다. 노동의 대가를 정당하게 지불하지 않고 노동력의 과실만을 취한다는 점에서, 열정페이는 인격적 관계를 기반으로 한 ’고용’이 아닌, 일방적인 ’착취’에 가깝다. 이러한 경험은 청년 노동자들에게 사회에 대한 깊은 불신과 냉소를 안겨주며, 자신을 ’노비’와 다를 바 없는 존재로 인식하게 만드는 중요한 원인이 된다.
4.2.3 구조적 억압과 통제의 경험
’현대판 노비’라는 은유를 소환하는 가장 핵심적인 기제는 ’벗어날 수 없음’이라는 구조적 억압과 통제에 대한 경험이다. 근로기준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5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들은 부당한 처우를 당해도 법적으로 구제받을 길이 막막하다. 특히, 사업장 이동이 원칙적으로 금지된 이주노동자들이 경험하는 무력감과 통제는 ’자유로운 계약’이라는 현대 노동의 대원칙을 무색하게 만든다. 폭력과 착취가 만연한 사업장에서도 생계와 체류 자격을 유지하기 위해 참고 견뎌야 하는 현실은, 그들을 사실상의 예속 상태로 내몬다.
이처럼 법과 제도가 오히려 특정 집단의 취약성을 강화하고 사용자의 통제력을 극대화하는 현실 속에서, 노동자들은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결정할 수 없다는 깊은 무력감에 빠진다. 전근대 노비가 신분이라는 족쇄에 묶여 있었다면, 현대의 일부 취약 노동자들은 법의 사각지대와 생계의 위협이라는 보이지 않는 족쇄에 묶여 있는 것이다. 이들이 느끼는 ’선택권 없음’과 ’탈출 불가능성’의 감각이 바로 ’노비’라는 극단적인 은유를 통해 분출되는 것이다.
5. 결론: 잘못된 등치, 그러나 정당한 분노
5.1 최종 판결
5.1.1 주장의 기각
본 보고서의 다차원적 비교 분석 결과, “현대 한국인 노동자들이 조선 이전의 노비보다 더 나쁜 대우를 받는다“는 주장은 사실적, 법적으로 타당하지 않다. 양자 사이에는 결코 동일시할 수 없는 근본적인 차이가 존재한다.
첫째, 법적 지위에서 노비는 재산이었으나 현대 노동자는 인격체이자 권리의 주체이다. 이는 인간의 존엄성에 관한 가장 핵심적인 차이로, 다른 어떤 유사성보다 우선한다. 둘째, 현대 노동자는 헌법과 노동법에 의해 신체의 자유, 단결권, 단체교섭권 등 노비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기본적 인권을 보장받는다. 셋째, 노비의 신분은 세습되었으나 현대 사회는 원칙적으로 사회적 이동이 열려 있다. 비록 현실에서 많은 제약이 따를지라도, 제도적으로 운명이 결정되는 노비제와는 본질적으로 다르다. 따라서 두 집단의 ’대우’를 등치시키거나, 현대 노동자의 처우가 더 열악하다고 주장하는 것은 역사적 사실과 법적 현실을 심각하게 왜곡하는 것이다.
5.1.2 주장의 사회적 의미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대판 노비’라는 은유가 가지는 사회적 함의를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된다. 이 주장은 단순한 무지나 과장의 산물이 아니라, 현대 한국 노동 시장에 만연한 구조적 폭력과 인권 침해, 극심한 인간 소외 현상에 대한 가장 강력한 형태의 사회적 고발이다.
이 은유는 법이 보장하는 권리와 노동 현장의 현실 사이에 존재하는 깊은 괴리를 폭로한다. 5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 이주노동자, 비정규직 노동자 등 법적 보호의 사각지대에 놓인 이들이 경험하는 무력감, 직장 내 괴롭힘 피해자들이 겪는 인격적 모독, ’열정페이’에 시달리는 청년들이 느끼는 노동력 착취의 경험은, 그들이 법적으로는 ’자유인’일지라도 실질적으로는 예속된 상태와 다르지 않다는 절망감을 반영한다. 즉, ’현대판 노비’는 법적 지위에 대한 분석적 진술이 아니라, 통제와 착취, 인간 존엄성 훼손의 경험에 대한 상징적이고 정치적인 언어이다. 이는 우리 사회가 당면한 노동 문제의 심각성을 일깨우고, 모든 노동자의 인간다운 삶을 보장해야 한다는 사회적 책무를 환기시키는 정당한 분노의 표현으로서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5.2 더 인간적인 노동을 위한 제언
’현대판 노비’라는 고발이 더 이상 등장하지 않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법과 현실의 괴리를 좁히고 모든 노동자의 인권을 보편적으로 보장하기 위한 제도적 노력이 시급하다.
5.2.1 노동법 사각지대 해소
노동인권은 사업장의 규모에 따라 차등적으로 적용되어서는 안 되는 보편적 권리이다. 따라서 현행 근로기준법의 가장 큰 맹점으로 지적되는 5인 미만 사업장에 대한 적용 제외 조항들을 단계적으로 폐지하고, 법의 보호망을 모든 노동자에게 전면적으로 확대 적용해야 한다.51 이는 부당해고, 임금체불, 장시간 노동으로부터 가장 취약한 노동자들을 보호하기 위한 최소한의 조치이다.
5.2.2 인격적 노동 환경 조성
직장 내 괴롭힘은 노동자의 정신 건강을 파괴하고 생산성을 저해하는 심각한 범죄 행위라는 사회적 인식이 확산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 직장 내 괴롭힘 방지법의 실효성을 강화해야 한다. 가해자에 대한 징계 및 처벌 수위를 현실화하고, 사업주의 예방 및 조치 의무를 강화하며, 모든 사업장에 실질적인 예방 교육을 의무화하여 상호 존중의 조직 문화를 정착시켜야 한다.
5.2.3 가장 취약한 이들을 위한 보호
이주노동자의 인권을 심각하게 침해하고 ’현대판 노예제’라는 비판의 핵심 원인이 되는 고용허가제의 사업장 이동 제한 조항은 전면 재검토되어야 한다. 노동자의 자유로운 사업장 선택권을 보장하는 방향으로 제도를 개혁하고 52, 이주노동자 역시 동등한 노동 주체로서 자신의 권리를 온전히 행사할 수 있도록 지원 체계를 강화해야 한다. 가장 취약한 이들의 인권이 보장될 때, 비로소 전체 사회의 노동 환경은 한 단계 더 성숙해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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