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백본 안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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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서론: 보이지 않는 중추, 인터넷 백본

인터넷은 종종 구름이나 가상의 공간으로 묘사되지만, 그 실체는 전 세계를 촘촘하게 연결하는 물리적이고 논리적인 인프라의 집합체이다. 이 거대한 ’네트워크의 네트워크(a network of networks)’가 원활하게 작동할 수 있도록 하는 핵심적인 기반을 ’인터넷 백본(Internet Backbone)’이라 칭한다.1 인터넷 백본은 전 세계 대륙과 국가, 주요 도시들을 연결하는 가장 크고 빠른 네트워크들로 구성된 핵심 인프라를 지칭한다. 이는 대용량의 데이터를 빛의 속도로 전송하는 수백만 킬로미터의 해저 및 육상 광섬유 케이블과, 이 데이터의 경로를 결정하는 고성능 코어 라우터(core router)들로 이루어진다.1 인터넷 서비스 제공업체(ISP), 클라우드 서비스 제공업체, 콘텐츠 전송 네트워크(CDN) 등은 이 백본을 통해 상호 연결되며, 최종적으로 전 세계 수십억 명의 사용자와 기업에 인터넷 접속 서비스를 제공하는 근간이 된다.1

인터넷 백본의 가장 중요한 건축 원리 중 하나는 분산형 아키텍처(decentralized architecture)에 있다. 인터넷 전체를 소유하거나 통제하는 단일 주체는 존재하지 않으며, 중앙 집중적인 조정 시설이나 통제 기구 또한 없다.1 대신, 인터넷은 상업, 교육, 정부, 군사 기관 등이 각각 운영하는 수만 개의 독립적인 ’자율 시스템(Autonomous Systems, AS)’들이 상호 합의에 따라 자발적으로 연결된 거대한 메시(mesh) 구조를 이룬다.1 이러한 분산된 구조는 특정 지점의 장애가 전체 네트워크의 마비로 이어지는 것을 방지하고, 데이터가 다양한 경로를 통해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도록 하여 놀라운 수준의 복원력(resilience)을 확보하게 한다. 네트워크의 제어 기능은 가능한 한 말단(endpoint)에 위치시키고, 네트워크 자체는 데이터 전송이라는 단순한 기능에 집중하도록 설계된 이 원칙이 바로 인터넷의 안정성과 확장성을 담보하는 핵심 철학이다.2

본 보고서는 이처럼 보이지 않는 곳에서 현대 디지털 사회의 중추 신경계 역할을 하는 인터넷 백본의 다층적 구조와 작동 원리를 심도 있게 분석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제1장에서는 백본을 구성하는 물리적, 논리적 요소와 ISP들의 계층적 구조를 살펴본다. 제2장에서는 네트워크 간 상호연결을 지배하는 ’피어링’과 ’트랜싯’이라는 두 가지 핵심 경제 모델을 분석한다. 제3장에서는 데이터 패킷이 최적의 경로를 찾아가도록 안내하는 BGP 프로토콜의 작동 원리를 파헤친다. 제4장에서는 하나의 데이터 패킷이 사용자의 컴퓨터에서 출발하여 글로벌 백본을 거쳐 목적지 서버에 도달하기까지의 전 과정을 추적한다. 제5장에서는 백본의 물리적 실체인 해저 케이블을 둘러싼 지정학적 경쟁과 보안 문제를 다룬다. 제6장에서는 네트워크 성능을 측정하는 핵심 지표들을 정의하고 계산 방식을 제시한다. 마지막으로 제7장에서는 5G, 저궤도 위성 인터넷, 인공지능과 같은 미래 기술이 인터넷 백본에 가져올 변화를 전망하며, 끊임없이 진화하는 이 글로벌 신경망의 미래를 조망한다.

2. 인터넷 백본의 구조와 계층

인터넷 백본의 구조는 물리적 인프라와 이를 기반으로 작동하는 논리적 구성 요소, 그리고 이들을 운영하는 사업자들의 경제적 관계에 따른 계층으로 나누어 이해할 수 있다. 이 세 가지 요소가 유기적으로 결합하여 전 세계적인 데이터 전송 시스템을 형성한다.

2.1 백본의 구성 요소

인터넷 백본은 눈에 보이는 물리적 실체와 눈에 보이지 않는 논리적 규약의 결합체이다.

2.1.1 물리적 인프라

백본의 가장 근간을 이루는 것은 데이터를 빛의 형태로 전송하는 광섬유 케이블 네트워크다. 이는 크게 두 종류로 나뉜다.

  • 해저 광케이블(Submarine Fiber-Optic Cables): 대륙과 국가 간의 데이터 통신은 거의 전적으로 해저에 부설된 광케이블을 통해 이루어진다.2 이 케이블들은 태평양, 대서양 등 거대한 바다 밑을 가로질러 주요 대륙을 연결하며, 글로벌 인터넷 트래픽의 대동맥 역할을 수행한다.4

  • 육상 광케이블(Terrestrial Fiber-Optic Cables): 한 국가 내에서 주요 도시, 데이터 센터, 통신 거점을 연결하는 역할을 한다. 이 케이블들은 도로, 철도 등을 따라 매설되어 국내 데이터 전송의 핵심 경로를 제공한다.5

2.1.2 논리적 인프라

물리적 케이블망 위에서 데이터의 흐름을 제어하고 관리하는 논리적 인프라는 다음과 같은 요소들로 구성된다.

  • 코어 라우터(Core Routers) 및 스위치: 백본의 교차로 역할을 하는 매우 강력한 성능의 장비들이다. 이 장비들은 데이터 패킷의 목적지 주소를 초당 수십억 번씩 확인하여 가장 효율적인 다음 경로로 전달(forwarding)하는 역할을 수행한다.2

  • 인터넷 교환 지점(Internet Exchange Points, IXP): 여러 ISP와 네트워크 사업자들이 한곳에 모여 서로의 트래픽을 효율적으로 교환할 수 있도록 마련된 물리적 시설이다.7 IXP는 데이터 센터 내에 위치한 고속 스위칭 장비를 통해, 참가한 네트워크들이 하나의 연결만으로 다수의 다른 네트워크와 트래픽을 주고받을 수 있게 해준다.8 이는 과거 정부 주도로 운영되던 네트워크 접속 지점(Network Access Points, NAP)이 민영화된 형태로 발전한 것이다.2

2.2 자율 시스템(Autonomous System, AS)의 개념

인터넷은 단일 네트워크가 아니라, ’자율 시스템(AS)’이라고 불리는 수많은 개별 네트워크들의 집합체다.1 AS는 공통된 라우팅 정책을 공유하고 단일 관리 주체에 의해 운영되는 IP 주소 블록과 네트워크 하드웨어(라우터 등)의 고유한 집합으로 정의된다.1 전 세계 인터넷은 약 10만 개에 달하는 이러한 AS들이 서로 복잡하게 얽힌 메시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1

각 AS는 국제 인터넷 주소 관리 기구(IANA)와 그 산하의 지역 인터넷 레지스트리(RIR)로부터 고유한 ’자율 시스템 번호(ASN)’를 할당받는다.9 이 ASN은 인터넷 라우팅 프로토콜인 BGP에서 각 네트워크를 식별하는 고유 주소처럼 사용되며, AS들은 이 번호를 기반으로 서로 경로 정보를 교환하고 데이터 트래픽을 주고받는다.9

2.3 ISP 계층 구조(Tier Hierarchy)

모든 AS가 동등한 관계를 맺고 있는 것은 아니다. 네트워크의 규모, 지리적 커버리지, 그리고 다른 네트워크와의 상호연결 방식(특히 비용 지불 여부)에 따라 업계에서는 관행적으로 ISP를 세 개의 계층(Tier)으로 구분한다.10 이는 공식적인 분류 체계는 아니지만, 인터넷 백본의 경제적 구조를 이해하는 데 매우 유용한 개념적 틀을 제공한다.

2.3.1 Tier 1 ISP

  • 정의: Tier 1 ISP는 글로벌 인터넷의 최상위 포식자라 할 수 있다. 이들은 다른 어떤 네트워크에도 인터넷 연결을 위한 비용, 즉 ‘IP 트랜싯(IP Transit)’ 요금을 지불하지 않고, 오직 상호 호혜적인 ’무정산 피어링(settlement-free peering)’만으로 전 세계 인터넷상의 모든 네트워크에 도달할 수 있는 거대 네트워크다.1 이들은 자체적으로 방대한 글로벌 광섬유 백본(해저 케이블 포함)을 소유하고 운영한다.10

  • 역할: Tier 1 네트워크들의 집합이 곧 글로벌 인터넷 백본 그 자체를 형성한다. 이들은 하위 계층인 Tier 2, Tier 3 ISP나 대기업에 인터넷 전체로의 연결성을 판매하여 수익을 창출한다.13 이들이 인터넷 라우팅 테이블 전체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상위 트랜싯 제공업체(upstream provider)가 없기 때문에, 이들의 영역을 ’기본 경로 없는 영역(Default-Free Zone, DFZ)’이라고도 부른다.10

  • 주요 사업자: AT&T, Verizon, Lumen(구 CenturyLink/Level 3), Arelion(구 Telia Carrier), NTT Communications, GTT, Tata Communications 등이 대표적인 글로벌 Tier 1 ISP로 꼽힌다.13

2.3.2 Tier 2 ISP

  • 정의: Tier 2 ISP는 하이브리드 모델을 사용하는 중간 계층 네트워크다. 이들은 자신들과 비슷한 규모의 다른 네트워크와는 적극적으로 피어링을 맺어 비용을 절감하지만, 자신들이 피어링만으로는 도달할 수 없는 인터넷의 나머지 부분에 접근하기 위해 하나 이상의 Tier 1 ISP로부터 IP 트랜싯을 구매한다.10

  • 역할: 주로 특정 국가나 대륙 등 넓은 지역에 걸쳐 서비스를 제공하며, 글로벌 Tier 1 백본과 최종 사용자에게 서비스를 제공하는 Tier 3 ISP 사이를 잇는 중요한 다리 역할을 한다.12 이들은 비용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IXP에서 매우 활발하게 다른 네트워크들과 피어링 관계를 맺는다.10

  • 주요 사업자: Comcast, Cox Communications, China Telecom 등이 Tier 2 ISP의 예시로 자주 언급된다.14

2.3.3 Tier 3 ISP

  • 정의: Tier 3 ISP는 인터넷 연결을 전적으로 상위 계층 ISP(Tier 1 또는 Tier 2)로부터 구매하는 네트워크다.10 이들은 자체적인 백본망을 거의 소유하고 있지 않으며, 상위 ISP로부터 구매한 인터넷 회선을 최종 사용자에게 재판매하는 소매업자(reseller)의 성격이 강하다.10

  • 역할: 주로 특정 도시나 지역 사회를 대상으로 가정이나 소규모 기업에 ‘라스트 마일(last-mile)’ 인터넷 접속 서비스를 제공한다.11 이들의 서비스 품질과 성능은 전적으로 상위 트랜싯 제공업체의 네트워크 품질에 의존하는 경향이 있다.10

아래 표는 각 ISP 계층의 주요 특징을 비교하여 정리한 것이다.

구분Tier 1Tier 2Tier 3
정의다른 네트워크에 트랜싯 비용을 지불하지 않고 전 세계 인터넷에 접근 가능한 네트워크트랜싯 구매와 피어링을 혼용하는 지역/국가 단위 네트워크전적으로 상위 네트워크로부터 트랜싯을 구매하는 로컬 네트워크
기술적 속성글로벌 광섬유 백본(해저 케이블 포함) 소유 및 운영, 대규모 BGP 라우팅 테이블 관리지역/국가 단위 네트워크 운영, IXP에서 활발한 피어링 수행라스트 마일 접속망에 집중, 상위 제공업체에 기술적으로 의존
비즈니스 모델하위 계층 ISP 및 대기업에 IP 트랜싯 판매Tier 3 ISP 및 기업에 서비스 판매, 비용 효율성 중시최종 사용자에게 인터넷 접속 서비스 재판매
상호연결 방식무정산 피어링(Settlement-Free Peering)피어링 + IP 트랜싯 구매IP 트랜싯 구매
주요 사업자 예시Arelion, AT&T, Lumen, NTT, Verizon, GTT, TataComcast, Cox, China Telecom, British Telecom지역 케이블/인터넷 사업자

2.4 하이퍼스케일러의 부상과 ‘Tier 0’

전통적인 3계층 ISP 모델은 최근 몇 년간 거대한 변화의 압력에 직면해 있다. 그 중심에는 Google, Meta(Facebook), Amazon, Microsoft와 같은 대규모 콘텐츠 및 클라우드 제공업체, 즉 ’하이퍼스케일러(Hyperscalers)’가 있다.10 이들은 전 세계 국제 인터넷 대역폭의 약 75%를 소비하는 최대 트래픽 생성 주체로서, 더 이상 수동적으로 ISP의 네트워크에 의존하지 않는다.16

이들은 자신들의 막대한 데이터를 전 세계 사용자에게 가장 빠르고 효율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수십억 달러를 투자하여 자체적인 글로벌 해저 케이블 네트워크를 직접 구축하고 있다.18 이들의 네트워크 규모는 이미 많은 Tier 1 ISP들을 능가하는 수준에 도달했다. 하지만 이들의 비즈니스 모델은 트랜싯을 판매하는 전통적인 ISP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이들의 목표는 자신들의 콘텐츠(예: YouTube 영상, AWS 클라우드 서비스)를 전 세계 ISP 네트워크 내부에 최대한 가깝게 배치하여 사용자 경험을 극대화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이들은 전 세계 수많은 Tier 2, Tier 3 ISP들과 직접 피어링을 맺고, 심지어 ISP의 데이터 센터 내에 자신들의 캐시 서버(예: Netflix Open Connect, Google Global Cache)를 무상으로 설치해주기도 한다.10

이러한 변화는 기존의 계층 구조가 더 이상 인터넷 생태계를 완벽하게 설명하지 못함을 시사한다. 하이퍼스케일러들은 사실상 기존 Tier 1의 상위에 존재하는 ’Tier 0’와 같은 역할을 수행하며, 인터넷의 경제적, 기술적 중심축을 전통적인 통신 사업자로부터 콘텐츠 및 클라우드 플랫폼 사업자로 이동시키고 있다. 또한, 일부 대규모 Tier 2 네트워크가 특정 지역에서는 Tier 1처럼 행동하거나, 소규모 Tier 3 사업자들이 공동으로 광섬유를 구축하여 Tier 2와 같은 역량을 갖추는 등 계층 간의 경계는 점점 더 모호해지고 있다.10 따라서 현대 인터넷 백본은 고정된 피라미드 구조라기보다는, 다양한 플레이어들이 각자의 경제적, 기술적 이해관계에 따라 복잡하게 상호작용하는 유동적인 생태계로 이해하는 것이 더 정확하다.

3. 네트워크 상호연결의 경제학: 피어링과 트랜싯

인터넷이 ’네트워크의 네트워크’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수만 개의 자율 시스템(AS)이 서로 데이터를 교환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러한 상호연결(interconnection)은 크게 ’IP 트랜싯’과 ’피어링’이라는 두 가지 상업적 계약 모델을 통해 이루어진다. 어떤 방식을 선택하느냐는 각 네트워크의 비용 구조, 성능 목표, 비즈니스 전략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핵심적인 경제적 결정이다.

3.1 IP 트랜싯(IP Transit)

IP 트랜싯은 한 네트워크가 다른 네트워크에 비용을 지불하고 인터넷 세상 전체로 나아가는 ’관문’을 구매하는 서비스다.14 이는 일반적으로 규모가 작은 네트워크가 규모가 더 큰 상위 네트워크(upstream provider)로부터 전체 인터넷 라우팅 테이블에 대한 접근성을 확보하기 위해 사용된다.10

  • 정의: 고객 네트워크(예: Tier 2 ISP)가 제공자 네트워크(예: Tier 1 ISP)에 요금을 내고, 제공자의 네트워크 인프라를 통해 자신들이 직접 연결되어 있지 않은 인터넷상의 모든 목적지로 트래픽을 보내고 받을 수 있게 하는 상업적 계약이다.2

  • 작동 방식: 고객은 자신의 모든 외부향 트래픽을 제공자에게 전달하기만 하면 된다. 그러면 제공자는 그 트래픽을 최종 목적지까지 전달할 책임을 진다.21 트랜싯 제공자는 자신의 광범위한 피어링 및 다른 트랜싯 계약을 활용하여 고객에게 포괄적인 연결성을 보장한다. 비용은 일반적으로 사용한 대역폭에 따라 책정되며, 특정 기간(예: 한 달) 동안 5분 단위로 측정된 트래픽 양 중 상위 5%를 제외한 최고치를 기준으로 과금하는 ‘95th percentile billing’ 방식이 널리 사용된다.

3.2 피어링(Peering)

피어링은 두 네트워크가 제3자를 거치지 않고 서로의 네트워크를 직접 연결하여 각자의 고객에게 도달하는 트래픽을 상호 교환하기로 합의하는 것이다.7 이는 트랜싯과 달리, 교환하는 트래픽이 두 네트워크와 그 고객들로 한정된다는 특징이 있다.22

  • 정의: 두 네트워크가 상호 이익을 위해 트래픽을 직접 교환하는 협정이다. 교환하는 트래픽의 양이 비슷할 경우, 양측이 서로에게 비용을 청구하지 않는 ’무정산 피어링(settlement-free peering)’이 일반적이다.1 이는 “나는 당신의 고객에게 도달하는 트래픽을 무료로 전달해줄 테니, 당신도 나의 고객에게 도달하는 트래픽을 무료로 전달해달라“는 원칙에 기반한다.2

  • 공용 피어링(Public Peering): 여러 네트워크가 인터넷 교환 지점(IXP)에 모여 공용 스위칭 장비를 통해 상호 연결되는 방식이다.8 하나의 물리적 포트를 통해 다수의 파트너와 피어링을 맺을 수 있어 비용 효율적이고 간편하다. 하지만 모든 트래픽이 공용 장비를 거치므로, 특정 두 네트워크 간의 대규모 트래픽 교환에는 성능이나 보안상의 한계가 있을 수 있다.14

  • 사설 피어링(Private Peering): 두 네트워크가 데이터 센터 내에서 전용 케이블(cross-connect)을 통해 라우터를 1:1로 직접 연결하는 방식이다.8 초기 구축 비용은 더 높지만, 대규모 트래픽을 안정적으로 교환할 수 있고, 더 나은 성능과 보안, 제어권을 확보할 수 있다. 대규모 ISP나 하이퍼스케일러 간의 연결은 대부분 사설 피어링으로 이루어진다.

3.3 경제적 결정 요인

네트워크 운영자는 트랜싯과 피어링 사이에서 끊임없이 경제적인 저울질을 한다. 이 결정에 영향을 미치는 핵심 요인은 다음과 같다.

  • 비용 절감: 피어링의 가장 큰 동기는 비싼 IP 트랜싯 비용을 절감하는 것이다.21 특정 네트워크(예: 대형 CDN)로 보내거나 받는 트래픽이 많을 경우, 해당 네트워크와 직접 피어링을 맺으면 트랜싯 제공자에게 지불해야 할 비용을 크게 줄일 수 있다.

  • 성능 향상: 트래픽이 여러 중간 네트워크를 거치는 트랜싯 경로보다, 두 네트워크 간의 직접적인 피어링 경로가 일반적으로 더 짧고 예측 가능하다. 이는 데이터 전송의 지연 시간(latency)을 줄이고 패킷 손실을 감소시켜 최종 사용자 경험을 향상시킨다.8

  • 트래픽 비율의 대칭성: 무정산 피어링이 성립하기 위한 가장 중요한 전제 조건은 두 네트워크 간에 교환되는 트래픽의 양이 거의 비슷해야 한다는 것이다. 만약 한쪽 네트워크가 다른 쪽으로 훨씬 더 많은 트래픽을 보내는 비대칭적인(asymmetric) 상황이라면, 트래픽을 더 많이 받는 쪽은 연결을 유지하기 위한 비용 부담이 커지므로 무정산 피어링을 거부할 가능성이 높다.22 오늘날 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의 확산으로 인해 최종 사용자가 속한 ISP와 콘텐츠 제공업체 간의 트래픽 흐름은 극도로 비대칭적인 경향이 있으며, 이는 피어링 협상에서 중요한 변수로 작용한다.22

  • 지리적 근접성: 피어링은 물리적인 연결을 필요로 하므로, 두 네트워크가 공통으로 접속하고 있는 IXP나 데이터 센터가 있어야 가능하다. 따라서 네트워크의 지리적 확장(footprint) 범위가 피어링 대상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가 된다.

이러한 경제적 논리는 때로 시장 지배력을 유지하거나 확대하기 위한 전략적 도구로 활용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시장을 장악한 거대 Tier 1 ISP가 잠재적인 경쟁자로 부상하는 신규 네트워크와의 피어링을 의도적으로 거부하는 경우가 발생할 수 있다. 피어링을 거부당한 신규 네트워크는 거대 ISP의 방대한 고객층에 도달하기 위해 비싼 IP 트랜싯을 구매할 수밖에 없게 된다. 이는 신규 네트워크의 비용 구조를 악화시켜 시장 진입을 방해하고 경쟁을 저해하는 효과를 낳는다.23 이처럼 피어링을 맺거나 거부하는 결정은 단순히 기술적인 선택이 아니라, 인터넷 백본 시장의 경쟁 구도를 형성하는 강력한 경제적, 전략적 행위인 것이다.

3.4 인터넷 교환 지점(IXP)의 역할

인터넷 교환 지점(IXP)은 피어링 경제학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하는 중립적인 무대다. IXP는 ISP, CDN, 클라우드 제공업체, 대기업 등 다양한 네트워크들이 물리적으로 한곳에 모여 효율적으로 트래픽을 교환할 수 있도록 중립적인 인프라를 제공한다.7

IXP의 본질은 참가자들이 각자의 라우터를 IXP의 공용 이더넷 스위치에 연결하고, 이 스위치를 통해 다른 참가자들과 BGP 세션을 맺어 트래픽을 교환하는 것이다.7 이를 통해 네트워크 운영자는 수백 개의 잠재적인 피어링 파트너와 연결하기 위해 각각의 파트너에게 개별적인 물리 회선을 구축할 필요 없이, 단 하나의 IXP 연결만으로 다수의 피어링을 성사시킬 수 있다. 이는 상호연결에 드는 비용과 복잡성을 극적으로 감소시켜, 특히 규모가 작은 네트워크들이 피어링 생태계에 참여할 수 있는 문턱을 낮추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8 결과적으로 IXP는 인터넷 트래픽이 불필요하게 먼 거리의 트랜싯 링크를 경유하는 것을 막고, 지역 내에서 트래픽이 효율적으로 처리되도록 함으로써 전체 인터넷의 성능과 효율성을 높이는 데 기여한다.

4. 인터넷의 길잡이: 경계 경로 프로토콜(BGP)

인터넷이 수만 개의 독립적인 자율 시스템(AS)으로 구성된 분산 네트워크임에도 불구하고 데이터 패킷이 정확한 목적지를 찾아갈 수 있는 것은, 바로 경계 경로 프로토콜(Border Gateway Protocol, BGP) 덕분이다. BGP는 AS들 사이에서 서로의 네트워크에 도달할 수 있는 경로 정보를 교환하고, 이를 바탕으로 데이터가 나아갈 최적의 길을 결정하는, 인터넷의 핵심 라우팅 프로토콜이다.1

4.1 BGP의 작동 원리

BGP는 인터넷의 ’우편 서비스’에 비유할 수 있다.25 발신자가 편지를 보내면 우체국 시스템이 수많은 경로 중 가장 효율적인 길을 선택하여 수신자에게 배달하는 것처럼, BGP는 데이터 패킷이 출발 AS에서 목적지 AS까지 도달하기 위한 최적의 AS 경로를 결정한다.

BGP의 작동은 ’피어(peer)’라고 불리는 두 라우터 간의 관계 설정에서 시작된다. 네트워크 관리자는 통신하고자 하는 상대방 라우터와 수동으로 BGP 피어 관계를 설정한다.24 일단 설정되면, 두 라우터는 신뢰성 있는 데이터 전송을 보장하는 TCP 프로토콜을 사용하여 포트 번호 179를 통해 연결(세션)을 수립한다.9 이는 UDP를 사용하는 다른 내부 라우팅 프로토콜(IGP)들과 구별되는 BGP의 중요한 특징으로, 경로 정보 교환의 신뢰성을 높여준다. 연결이 수립된 후, 피어들은 주기적으로 (기본 30초) 짧은 ‘Keep-alive’ 메시지를 교환하여 상대방이 여전히 작동 중인지 확인하고 연결을 유지한다.24

피어링이 성립되면, 각 BGP 라우터(BGP 스피커)는 자신이 알고 있는 네트워크 경로 정보를 ‘업데이트(Update)’ 메시지를 통해 상대방에게 광고(advertise)한다. 이 정보에는 특정 IP 주소 대역(prefix)과 그곳에 도달하기 위해 거쳐야 하는 AS들의 경로(AS_PATH) 등이 포함된다.9 각 라우터는 피어들로부터 수신한 경로 정보를 자신의 라우팅 정보 베이스(RIB)에 저장하고, 이 중에서 최적의 경로를 선택하여 자신의 주 라우팅 테이블에 올린 뒤, 다시 자신의 다른 피어들에게 광고한다.26 이 과정이 인터넷 전체에 걸쳐 연쇄적으로 일어나면서, 모든 AS는 인터넷상의 다른 모든 AS로 가는 경로를 학습하게 된다.

4.2 External BGP (eBGP) vs. Internal BGP (iBGP)

BGP는 피어 관계가 맺어지는 위치에 따라 두 가지 모드로 운영된다.

  • External BGP (eBGP): 서로 다른 AS에 속한 라우터들 간에 사용되는 BGP를 말한다.24 eBGP는 AS의 경계(edge)에서 외부 세계와 경로 정보를 교환하는 역할을 한다. 즉, 다른 AS로부터 “우리 AS를 통하면 특정 네트워크로 갈 수 있다“는 정보를 학습하거나, “우리 AS로 오면 특정 네트워크로 갈 수 있다“는 정보를 외부에 알리는 데 사용된다.25

  • Internal BGP (iBGP): 동일한 AS 내부에 있는 라우터들 간에 사용되는 BGP를 말한다.24 iBGP의 주된 역할은 한 경계 라우터가 eBGP를 통해 외부에서 학습한 경로 정보를, 동일 AS 내의 다른 모든 라우터에게 일관되게 전파하는 것이다.25 이를 통해 AS 내의 모든 라우터는 외부 네트워크로 나가는 최적의 출구(exit point)가 어디인지 알 수 있게 된다.

eBGP와 iBGP는 경로 정보를 전파하는 규칙에서 결정적인 차이를 보인다. 이는 AS 내부에서 라우팅 루프(loop)가 발생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설계되었다.24

  1. eBGP를 통해 학습한 경로는 다른 모든 eBGP 및 iBGP 피어에게 다시 광고된다. (외부에서 들어온 정보는 내외부 모두에게 알린다.)

  2. iBGP를 통해 학습한 경로는 다른 iBGP 피어에게는 광고되지 않고, 오직 eBGP 피어에게만 광고된다. (내부에서 들은 정보는 내부의 다른 동료에게 또 전달하지 않고, 외부로만 알린다.)

이 두 번째 규칙 때문에, AS 내의 모든 iBGP 라우터들은 서로가 서로에게 직접 피어 관계를 맺는 ‘풀 메시(full mesh)’ 구조를 형성해야만 모든 경로 정보가 AS 전체에 일관되게 공유될 수 있다. 네트워크 규모가 커지면 풀 메시 구성이 비효율적이므로, 실제로는 특정 라우터가 중앙에서 경로를 중계해주는 ’Route Reflector’나, 하나의 큰 AS를 여러 개의 작은 하위 AS로 나누는 ‘Confederation’ 같은 기술이 사용된다.24

4.3 BGP 경로 선택 알고리즘

BGP의 진정한 힘은 단순히 경로를 교환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관리자가 설정한 ’정책(policy)’에 따라 최적의 경로를 선택하는 능력에 있다.24 만약 한 라우터가 동일한 목적지(예: Google의 DNS 서버 8.8.8.8/32)로 가는 경로를 여러 피어로부터 동시에 수신했다면, 어떤 경로를 선택할 것인가? BGP는 홉(hop) 수가 가장 적은 경로를 무조건 선택하는 대신, 다음과 같은 여러 경로 속성(Path Attributes)들을 정해진 순서에 따라 단계적으로 비교하여 가장 우선순위가 높은 경로 하나만을 최종적으로 선택한다.9

  1. Weight: 라우터 자체에서만 의미를 가지는 값으로, 가장 높은 값을 가진 경로를 우선한다. (Cisco 독점 속성)

  2. Local Preference: AS 전체에서 공유되는 값으로, 가장 높은 값을 가진 경로를 우선한다. 이를 통해 AS 관리자는 외부로 나가는 트래픽이 어떤 출구를 선호할지 결정할 수 있다.

  3. Locally Originated: 라우터 자신이 직접 생성한 경로를 우선한다.

  4. AS_PATH Length: 경로가 거쳐온 AS의 개수가 가장 적은 경로를 우선한다. 이는 인터넷에서 가장 짧은 경로를 선택하는 기본 척도가 된다.

  5. Origin Type: 경로 정보가 생성된 방식을 나타내며, IGP > EGP > Incomplete 순으로 우선한다.

  6. Multi-Exit Discriminator (MED): 인접한 두 AS가 여러 개의 연결점을 가질 때, 상대방 AS에게 “이쪽 경로를 더 선호해달라“고 알리는 값으로, 가장 낮은 값을 가진 경로를 우선한다.

이러한 복잡한 과정은 BGP 라우팅이 단순히 기술적인 최단 거리 찾기가 아님을 보여준다. 예를 들어, Local Preference 값은 대부분 경제적인 이유로 결정된다. 네트워크 관리자는 기술적으로는 약간 더 먼 경로라 할지라도, 비용을 지불해야 하는 비싼 트랜싯 링크 대신 무료인 피어링 링크를 통해 트래픽을 보내도록 Local Preference 값을 조정할 것이다. 이처럼 BGP 경로 선택 과정의 핵심은 속도가 아니라, 각 AS의 비즈니스 관계와 경제적 이해관계를 라우팅 정책으로 구현하는 데 있다. 인터넷의 글로벌 트래픽 흐름은 이처럼 수만 개 AS의 정책적 결정들이 모여 형성되는 것이다.

4.4 BGP의 보안 취약점

BGP는 인터넷 초기에 상호 신뢰를 기반으로 설계되었기 때문에, 프로토콜 자체에 경로 정보의 진위 여부를 검증하는 강력한 보안 메커니즘이 내장되어 있지 않다. 이로 인해 악의적인 공격에 매우 취약하며, 그중 가장 대표적인 것이 ’BGP 하이재킹(BGP Hijacking)’이다.25

BGP 하이재킹은 공격자가 자신이 소유하지 않은 IP 주소 대역(prefix)에 대해, 마치 자신이 그 IP 대역의 정당한 소유자인 것처럼 BGP를 통해 전 세계에 허위 경로 정보를 광고하는 행위다.25 예를 들어, 공격자가 특정 은행의 웹사이트가 사용하는 IP 대역을 자신에게로 향하도록 광고하면, 전 세계 라우터들은 이 허위 정보를 믿고 해당 은행으로 가야 할 트래픽을 공격자의 네트워크로 보내게 된다. 공격자는 이 트래픽을 중간에서 가로채 민감한 정보를 탈취하거나(On-path attack), 가짜 웹사이트로 사용자들을 유도하여 피싱 공격을 감행하거나, 혹은 트래픽을 그냥 버려서 서비스 거부(DoS) 공격을 일으킬 수 있다.25 이러한 공격을 방지하기 위해 경로 정보에 암호학적 서명을 추가하는 RPKI(Resource Public Key Infrastructure)와 같은 보안 강화 기술이 도입되고 있지만, 아직 전 세계적으로 보급이 완료되지 않아 BGP는 여전히 인터넷의 근본적인 아킬레스건으로 남아있다.

5. 데이터 패킷의 여정

사용자가 웹 브라우저 주소창에 URL을 입력하고 엔터 키를 누르는 순간, 눈에 보이지 않는 데이터의 대장정이 시작된다. 이 데이터는 하나의 덩어리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패킷(packet)’이라는 작은 조각으로 나뉘어 복잡한 인터넷 백본을 통과한 뒤, 목적지에서 다시 원래의 모습으로 재조립된다. 이 과정을 단계별로 추적하면 인터넷의 작동 방식을 구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5.1 패킷화(Packetization)

데이터 전송의 첫 단계는 원본 데이터를 관리하기 쉬운 작은 단위로 나누는 ‘패킷화’ 과정이다.6

  • 데이터 분할: 사용자가 전송하려는 웹페이지 요청, 동영상 스트림, 이메일 등의 큰 데이터는 전송 제어 프로토콜(TCP)에 의해 패킷이라는 표준화된 크기의 조각으로 분할된다.6 예를 들어, 하나의 고화질 이미지 파일은 수백, 수천 개의 패킷으로 나뉠 수 있다.27

  • 헤더 추가: 각 패킷에는 원본 데이터 조각(payload) 외에, 이 패킷을 제어하고 목적지까지 안내하기 위한 필수 정보가 담긴 ’헤더(header)’가 추가된다.29 TCP 헤더에는 출발지와 목적지 애플리케이션을 구분하는 포트 번호와 패킷의 순서를 나타내는 순서 번호(sequence number)가 포함된다. 그 위에 씌워지는 IP 헤더에는 출발지와 목적지 컴퓨터의 고유 주소인 IP 주소가 기록된다.27 이처럼 주소와 순서 정보가 담긴 패킷은 이제 독립적으로 여행할 준비를 마친 작은 편지 봉투와 같다.

5.2 로컬 네트워크에서 ISP까지

패킷은 사용자의 기기에서 출발하여 가장 가까운 게이트웨이를 통해 광대한 인터넷 세상으로 나아간다.

  • 로컬 네트워크 통과: 생성된 패킷은 먼저 사용자의 컴퓨터나 스마트폰에서 시작하여 홈 Wi-Fi나 사무실의 이더넷과 같은 로컬 네트워크를 통해 라우터로 전달된다.29

  • DNS 조회: 만약 사용자가 www.example.com과 같이 사람이 읽기 쉬운 도메인 이름을 입력했다면, 패킷을 보내기 전에 먼저 이 도메인 이름에 해당하는 서버의 실제 IP 주소(예: 93.184.216.34)를 알아내야 한다. 이 변환 과정은 전 세계에 분산된 도메인 네임 시스템(DNS) 서버에 질의하여 이루어진다.29

  • ISP로의 전송: IP 주소를 확보한 라우터는 패킷을 모뎀으로 보낸다. 모뎀은 이 디지털 패킷 신호를 통신 회선(광케이블, 동축 케이블, DSL 등)의 종류에 맞는 신호로 변환하여 인터넷 서비스 제공업체(ISP)의 네트워크로 전송한다.27 이제 패킷은 개인의 로컬 네트워크를 떠나 ISP가 관리하는 더 큰 네트워크로 진입하게 된다.

5.3 백본을 통한 전송

ISP의 네트워크에 도달한 패킷은 비로소 인터넷 백본이라는 글로벌 고속도로에 올라탄다.

  • 백본 진입: ISP는 자사의 백본망 또는 상위 ISP로부터 구매한 트랜싯 링크를 통해 패킷을 인터넷 백본으로 보낸다.27

  • 라우팅과 포워딩: 백본의 교차로에 위치한 코어 라우터들은 패킷의 IP 헤더에 기록된 목적지 IP 주소를 보고, 자신의 BGP 라우팅 테이블을 참조하여 패킷을 어느 다음 자율 시스템(AS)으로 보내야 할지 최적의 경로를 결정한다.27 이 결정에 따라 패킷은 다음 홉(next hop) 라우터로 전달(forwarding)된다.

  • AS 경유: 패킷은 최종 목적지에 도착할 때까지 여러 ISP가 운영하는 여러 개의 AS를 연달아 거치게 된다. 윈도우의 tracert나 리눅스/맥의 traceroute 명령어를 사용하면, 내 컴퓨터에서 특정 목적지까지 패킷이 어떤 라우터들을 순서대로 거쳐가는지 그 경로를 직접 확인할 수 있다.28

이 과정에서 중요한 점은, 동일한 데이터에서 분할된 모든 패킷이 반드시 같은 경로로 이동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각 패킷은 라우터에 도달하는 순간의 네트워크 상황(혼잡도, 링크 장애 등)에 따라 독립적으로 경로가 결정된다.6 따라서 일부 패킷은 아시아를 경유하고, 다른 일부는 유럽을 경유하여 미국에 있는 동일한 서버에 도착할 수도 있다. 인터넷의 견고함은 이처럼 단일 경로에 의존하지 않고, 수많은 대체 경로를 통해 통계적으로 데이터가 전달되는 능력에서 비롯된다. 이는 마치 완벽하게 통제된 하나의 파이프라인이 아니라, 수많은 물줄기가 각자의 길을 찾아 결국 하나의 호수로 모이는 것과 같다.

5.4 목적지 도착 및 재조립

기나긴 여정을 마친 패킷들은 목적지 서버에 도착하여 다시 원래의 데이터로 합쳐진다.

  • 패킷 수신: 목적지 서버의 운영체제는 도착하는 패킷들을 수신한다. 패킷들은 서로 다른 경로를 통해 왔기 때문에 도착 순서가 뒤죽박죽일 수 있다.29

  • 재조립: 서버의 TCP 계층은 각 패킷의 TCP 헤더에 있는 순서 번호를 확인하여 패킷들을 원래의 올바른 순서대로 재조립한다.6

  • 무결성 검사 및 재전송 요청: 재조립 과정에서 만약 일부 패킷이 중간에 유실되었거나 전송 중 오류가 발생한 것을 발견하면, TCP는 출발지 측에 해당 번호의 패킷을 다시 보내달라고 요청한다.27 이 과정을 통해 데이터 전송의 신뢰성과 무결성이 보장된다.

  • 애플리케이션 전달: 모든 패킷이 성공적으로 도착하여 오류 없이 재조립되면, 완성된 데이터는 웹 서버나 비디오 플레이어와 같은 상위 애플리케이션으로 전달된다. 마침내 사용자는 자신의 화면에서 요청했던 웹페이지를 보거나 동영상을 시청할 수 있게 된다.

6. 백본의 물리적 실체와 지정학

인터넷 백본은 종종 추상적인 논리적 개념으로 여겨지지만, 그 근간은 대양과 대륙을 가로지르는 물리적인 케이블 네트워크에 깊이 뿌리내리고 있다. 특히 전 세계 데이터 소통의 95% 이상을 담당하는 해저 광케이블은 글로벌 인터넷의 대동맥과도 같다.18 이 물리적 인프라는 이제 단순한 기술의 영역을 넘어, 국가 간의 힘겨루기가 벌어지는 치열한 지정학적 경쟁의 장이 되고 있다.

6.1 해저 케이블 네트워크

위성 통신 기술이 발전했음에도 불구하고, 대륙 간 데이터 전송의 압도적인 비중은 여전히 해저 케이블이 차지하고 있다. 이는 위성이 제공할 수 없는 막대한 대역폭과 낮은 지연 시간을 광섬유가 제공하기 때문이다. Submarine Cable Map과 같은 온라인 시각화 도구를 통해 우리는 전 세계 바다 밑에 거미줄처럼 깔린 140만 킬로미터가 넘는 케이블들의 복잡한 경로와 그 규모를 직접 확인할 수 있다.4 이 케이블들은 특정 지점(Landing Station)을 통해 육상 네트워크와 연결되며, 글로벌 통신과 디지털 경제의 생명선 역할을 한다.

6.2 지정학적 경쟁과 네트워크 파편화

과거 인터넷 인프라 구축은 주로 통신사 컨소시엄에 의해 이루어졌으며, 기술적 상호의존성은 국제 관계의 안정에 기여하는 요소로 여겨졌다.18 그러나 미-중 기술 패권 경쟁이 심화되면서 해저 케이블은 국가 안보와 데이터 주권의 핵심 자산으로 부상했다.30

  • 경로 및 소유권 통제: 각국 정부는 자국의 데이터가 잠재적 적성 국가의 영해나 통제 하에 있는 지역을 통과하는 것을 극도로 경계한다. 대표적으로 2020년 미국 정부는 안보상의 이유로 구글과 메타가 추진하던 미국-홍콩 간 해저 케이블 프로젝트(Pacific Light Cable Network)의 홍콩 연결을 불허하고, 대신 대만과 필리핀으로 경로를 변경하도록 압력을 가했다.18 최근 계획되는 ‘아시아 커넥트 케이블(Asia Connect Cable)’ 역시 지정학적 위험이 상존하는 남중국해를 의도적으로 우회하는 경로로 설계되었다.31

  • 기술 공급망 장악: 케이블 제조 및 부설 기술 또한 전략 자산으로 관리되고 있다. 2024년 말, 프랑스 정부는 자국의 핵심 해저 케이블 제조사인 알카텔 서브마린 네트웍스(ASN)가 외국 기업에 인수되는 것을 막고 국유화하기로 결정했다.18 이는 미국의 SubCom, 일본의 NEC와 함께 세계 3대 공급사로 꼽히는 ASN의 기술이 경쟁국의 손에 넘어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조치였다. 중국의 HMN 테크놀로지스(구 화웨이 마린) 역시 빠르게 성장하며 공급망 경쟁에 가세하고 있다.32

  • 네트워크 파편화(Splinternet): 이러한 경쟁은 궁극적으로 인터넷이 하나의 글로벌 네트워크가 아닌, 미국 중심의 서방 블록과 중국 중심의 블록으로 나뉘는 ‘네트워크 파편화’ 또는 ’스플린터넷(splinternet)’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를 낳는다.18 데이터의 흐름이 물리적, 정치적 경계에 의해 제약을 받게 되면, 인터넷의 보편성과 개방성이라는 핵심 가치가 훼손될 수 있다.

6.3 인프라 보안과 복원력

해저 케이블은 그 중요성만큼이나 다양한 위협에 노출되어 있는 취약한 인프라다.

  • 물리적 손상: 가장 흔한 손상 원인은 선박의 닻 끌림이나 저인망 어업 활동에 의한 우발적인 절단이다.32 또한, 해저 지진이나 쓰나미 같은 자연재해로 인해 케이블이 손상되기도 한다.18

  • 고의적 사보타주: 최근 가장 큰 위협으로 부상한 것은 국가 주체에 의한 고의적인 파괴 행위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발트해의 가스관과 통신 케이블이 파괴된 사건이나, 대만 해협의 긴장이 고조되면서 대만 주변 케이블이 의도적으로 절단된 것으로 의심되는 사건들이 연이어 발생했다.18 이는 전쟁 상황에서 적국의 통신망을 마비시키기 위한 회색지대 전략의 일환으로 간주된다.

  • 수리의 어려움: 해저 케이블 수리는 고도로 전문화된 기술과 장비를 요구하는 복잡한 작업이다. 수심 수천 미터 아래에 있는 케이블을 찾아 끌어올리고, 손상된 부분을 절단한 뒤 새로운 케이블을 광섬유 가닥 하나하나 정밀하게 연결해야 한다. 이 작업은 특수 케이블 부설선(cable ship)만이 수행할 수 있는데, 전 세계적으로 운영되는 선박의 수가 제한적이다. 이로 인해 케이블 손상 발생 시 수리가 완료되기까지 평균 40일 이상이 소요되며, 수리 비용도 수백만 달러에 달한다.32 분쟁 지역이나 기상 악화 시에는 접근 자체가 어려워 수리 기간이 더욱 길어질 수 있다.

6.4 주요 신규 백본 프로젝트 (2026-2027)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데이터 수요, 인공지능과 같은 신기술의 등장, 노후 케이블의 교체 시기 도래, 그리고 지정학적 위험을 회피하기 위한 경로 다양화 요구 등이 맞물리면서, 전 세계적으로 신규 해저 케이블 건설에 대한 투자가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2025년에서 2027년 사이에만 130억 달러 이상의 투자가 예상된다.33 아래 표는 2026년에서 2027년 사이에 완공될 예정인 주요 프로젝트 중 일부를 정리한 것이다.

프로젝트명주요 경로예상 완공 연도주요 특징 및 투자자
SeaMeWe-6싱가포르 - 중동 - 이집트 - 프랑스2026아시아, 중동, 유럽을 잇는 전통적인 경로의 차세대 대용량 케이블. 다수 통신사 컨소시엄 참여.
Africa-1케냐 - 남아공 - 중동 - 파키스탄 - 프랑스2026아프리카 동부 해안과 유럽, 아시아를 연결하여 아프리카 대륙의 연결성을 강화하는 프로젝트.
Humboldt칠레 - 프랑스령 폴리네시아 - 호주2026남아메리카와 아시아-태평양 지역을 직접 연결하는 최초의 케이블. 칠레 정부 주도.
Tikal과테말라 - 미국(플로리다)2026중미와 북미를 잇는 고용량 케이블. Telxius와 América Móvil 공동 프로젝트.
Apricot싱가포르 - 인도네시아 - 필리핀 - 대만 - 일본 - 괌2027동남아시아와 동북아시아, 미국을 잇는 경로. Google, Meta 등 하이퍼스케일러 주도.
Asia Connect Interlink호주 - 동남아시아 - 미국2027남중국해를 우회하여 호주, 동남아, 미국을 연결하는 지정학적 리스크 회피 경로.
CELIA아일랜드 - 프랑스 - 포르투갈 - 스페인2027아일랜드와 유럽 대륙을 직접 연결하여 데이터 허브로서의 아일랜드 위상 강화.

이러한 프로젝트들은 기존의 주요 간선망을 고도화하는 동시에, 지금까지 연결성이 부족했던 아프리카, 라틴 아메리카, 동남아시아 지역의 디지털 경제 성장을 촉진하는 중요한 인프라가 될 것이다.

7. 네트워크 성능의 측정과 최적화

인터넷 백본의 성능은 사용자가 체감하는 인터넷의 속도와 안정성을 결정하는 핵심 요소다. 네트워크 엔지니어들은 백본의 상태를 정량적으로 평가하고 최적화하기 위해 몇 가지 핵심 성능 지표(Key Performance Indicators, KPIs)를 사용한다. 그중 가장 기본적이면서도 중요한 것이 대역폭, 처리량, 그리고 지연 시간이다.

7.1 핵심 성능 지표

  • 대역폭(Bandwidth): 네트워크 링크가 이론적으로 전송할 수 있는 최대 데이터 용량을 의미한다.34 흔히 수도관의 직경에 비유되는데, 관이 넓을수록 한 번에 더 많은 물을 흘려보낼 수 있는 것과 같다.36 대역폭은 초당 비트 수(bits per second, bps) 단위로 측정되며, 오늘날 백본 네트워크는 초당 기가비트(Gbps)나 테라비트(Tbps) 수준의 대역폭을 가진다.37 대역폭은 네트워크의 잠재력을 나타낼 뿐, 실제 속도를 의미하지는 않는다.36

  • 처리량(Throughput): 네트워크 혼잡, 지연, 패킷 손실 등 실제 환경의 여러 제약 요소를 모두 고려했을 때, 특정 시간 동안 출발지에서 목적지까지 성공적으로 전송된 실제 데이터의 양을 의미한다.37 수도관 비유에서 실제로 파이프를 통해 흘러나온 물의 양과 같다. 처리량은 항상 대역폭보다 작거나 같으며, 사용자가 ’빠르다’고 느끼는 실제 성능에 더 가까운 지표다. 단위는 대역폭과 마찬가지로 bps나 초당 바이트(Bytes per second, Bps) 등을 사용한다.39

  • 지연 시간(Latency): 데이터 패킷 하나가 네트워크상의 한 지점에서 다른 지점까지 이동하는 데 걸리는 시간을 의미하며, ’지연(delay)’과 같은 의미로 사용된다.34 일반적으로 출발지에서 목적지로 신호를 보낸 후, 그에 대한 응답이 다시 출발지로 돌아오기까지 걸리는 왕복 시간(Round Trip Time, RTT)으로 측정하는 경우가 많다.37 단위는 주로 밀리초(milliseconds, ms)를 사용하며, 이 값이 낮을수록 반응 속도가 빠른 네트워크임을 의미한다.38

7.2 지연 시간의 구성 요소

네트워크에서 발생하는 총 지연 시간(Latency)은 하나의 원인이 아닌, 여러 종류의 지연이 합산된 결과다. 총 지연 시간은 다음과 같은 네 가지 주요 구성 요소로 분해할 수 있다.34

Latency = Propagation\ Time + Transmission\ Time + Queuing\ Time + Processing\ Delay

  • 전파 지연(Propagation Delay): 신호(비트)가 물리적 매체(광케이블, 구리선 등)를 통해 출발지에서 목적지까지 이동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다. 이는 물리적인 거리와 매체 내에서의 신호 전파 속도에 의해서만 결정된다.34 빛의 속도는 유한하기 때문에, 아무리 대역폭이 넓어도 물리적 거리가 멀면 전파 지연은 반드시 발생한다.

Propagation\ Time = \frac{Distance}{Propagation\ Speed}

  • 전송 지연(Transmission Delay): 라우터나 컴퓨터가 전송하려는 메시지(또는 패킷) 전체의 모든 비트를 네트워크 링크로 밀어내는 데 걸리는 시간이다.34 이는 메시지의 크기와 링크의 대역폭에 의해 결정된다. 메시지가 클수록, 대역폭이 좁을수록 전송 지연은 길어진다.

Transmission\ Time = \frac{Message\ Size}{Bandwidth}

큐잉 지연(Queuing Delay): 라우터에 패킷이 도착했을 때, 라우터가 이미 다른 패킷들을 처리하고 있어 해당 패킷이 버퍼(큐)에서 자신의 차례를 기다리는 데 소요되는 시간이다.34 큐잉 지연은 네트워크의 혼잡도에 따라 변동성이 매우 크며, 트래픽이 몰릴 경우 급격히 증가하여 패킷 손실의 주된 원인이 되기도 한다.

  • 처리 지연(Processing Delay): 라우터가 패킷의 헤더를 읽고, 오류 여부를 검사하며, 라우팅 테이블을 참조하여 이 패킷을 어느 출력 포트로 보낼지 결정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다.34 현대의 고성능 라우터에서는 이 지연이 다른 지연 요소에 비해 상대적으로 매우 짧은 편이다.

수십 년간 네트워크 기술 발전의 주된 목표는 대역폭을 늘리는 것이었다. 하지만 광섬유 기술의 발달로 이제는 막대한 대역폭을 확보하는 것이 가능해졌다. 반면, 전파 지연은 물리 법칙인 빛의 속도에 의해 제약을 받으므로 근본적으로 줄이는 데 한계가 있다. 클라우드 게임, 원격 수술, 자율 주행, 금융 거래와 같이 실시간 반응성이 극도로 중요한 현대의 애플리케이션들에게는 높은 대역폭보다 낮은 지연 시간이 더 결정적인 성능 요소가 되고 있다.37 2ms의 지연 시간 차이가 원격 수술의 성패를 가를 수 있는 시대에, 지연 시간은 네트워크 성능의 새로운 병목 지점(bottleneck)으로 부상하고 있다.40 이는 데이터를 단순히 더 많이 보내는 것(대역폭)보다, 데이터를 사용자에게 물리적으로 더 가까운 곳에서 처리하여 이동 거리를 줄이는 것(엣지 컴퓨팅)이 왜 중요해지는지를 설명해준다.

7.3 대역폭-지연 곱(Bandwidth-Delay Product)

대역폭-지연 곱(BDP)은 네트워크 링크의 성능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개념으로, 링크의 대역폭과 왕복 지연 시간(RTT)을 곱한 값이다.34

BDP\ (bits) = Bandwidth\ (bits/sec) \times RTT\ (sec)

이 값은 특정 시점에 한쪽 끝에서 데이터를 보내기 시작해서 상대방으로부터 확인 응답(ACK)을 받기 전까지, 네트워크 링크 상에 최대로 존재할 수 있는 데이터의 양을 의미한다. 즉, 네트워크 파이프를 ‘가득 채울 수 있는’ 데이터의 양이다.34

BDP는 특히 TCP와 같은 신뢰성 있는 전송 프로토콜의 성능을 최적화하는 데 매우 중요하다. TCP는 ’윈도우 크기(Window Size)’라는 메커니즘을 통해, 상대방의 확인 응답을 받지 않고도 한 번에 보낼 수 있는 데이터의 양을 조절한다. 만약 이 윈도우 크기가 BDP보다 작으면, 송신자는 파이프가 다 채워지기도 전에 전송을 멈추고 ACK를 기다리게 되어 링크의 대역폭을 완전히 활용하지 못하게 된다. 따라서 대륙 간 해저 케이블처럼 대역폭은 매우 높지만 지연 시간도 긴 네트워크(Long Fat Network, LFN)의 잠재력을 최대한 끌어내기 위해서는, TCP 윈도우 크기를 최소한 BDP 값 이상으로 설정하는 튜닝이 필수적이다.

8. 인터넷 백본의 미래

인터넷 백본은 정적인 인프라가 아니라, 새로운 기술의 등장과 변화하는 사용자 요구에 맞춰 끊임없이 진화하는 유기체다. 5G 이동통신, 저궤도(LEO) 위성 인터넷, 엣지 컴퓨팅, 그리고 인공지능(AI)과 같은 혁신 기술들은 미래 인터넷 백본의 구조, 트래픽 패턴, 운영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꾸어 놓을 것이다.

8.1 5G와 엣지 컴퓨팅의 영향

5G 이동통신은 단순히 4G보다 빠른 기술이 아니다. 5G는 세 가지 핵심 특성, 즉 초고속(enhanced Mobile Broadband, eMBB), 초저지연(Ultra-Reliable Low-Latency Communication, URLLC), 그리고 초연결(Massive Machine Type Communications, mMTC)을 통해 새로운 차원의 애플리케이션을 가능하게 한다.41

  • 새로운 요구사항: 스마트 팩토리의 산업용 로봇 제어, 원격 수술, 자율주행 자동차 간의 실시간 통신 등은 수 밀리초(ms) 수준의 극도로 낮은 지연 시간을 요구한다.40 기존처럼 모든 데이터를 멀리 떨어진 중앙 데이터 센터(클라우드)까지 보냈다가 다시 받는 방식으로는 이러한 요구사항을 충족시킬 수 없다.

  • 엣지 컴퓨팅의 부상: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데이터가 생성되는 사용자나 기기 가까이에 있는 네트워크의 ’가장자리(edge)’에 소규모 데이터 센터를 배치하여 데이터를 처리하는 ’엣지 컴퓨팅(Edge Computing)’이 부상하고 있다.42 엣지 컴퓨팅은 데이터의 이동 거리를 획기적으로 줄여 지연 시간을 최소화한다.

  • 백본 트래픽 패턴의 변화: 엣지 컴퓨팅의 확산은 인터넷 백본의 트래픽 흐름을 변화시킬 것이다. 과거에는 대부분의 트래픽이 사용자와 중앙 클라우드 간에 수직적으로 흘렀다면, 미래에는 수많은 엣지 노드들과 중앙 클라우드, 그리고 엣지 노드들 간에 데이터를 주고받는 분산형, 수평적 트래픽이 증가할 것이다. 이는 엣지 데이터 센터들을 서로 연결하고, 이들을 다시 코어 백본에 효율적으로 연결하기 위한 새로운 네트워크 아키텍처와 더 많은 광섬유 인프라를 요구하게 될 것이다.

8.2 저궤도(LEO) 위성 인터넷의 역할

스페이스X의 스타링크(Starlink)로 대표되는 저궤도(LEO) 위성 인터넷은 지상 인프라의 한계를 극복하는 새로운 연결 수단으로 주목받고 있다.

  • 저지연과 광대역 커버리지: LEO 위성은 기존의 정지궤도 위성(고도 약 35,786 km)보다 훨씬 낮은 고도(약 500-1,200 km)에 수천 개의 위성을 띄워, 지연 시간을 20-40ms 수준으로 크게 단축시켰다.44 이는 지상의 광대역 인터넷과 유사한 사용자 경험을 제공하며, 광케이블 설치가 경제적으로나 물리적으로 어려운 농어촌, 산간, 도서, 해상, 항공기 등 소외 지역에 고속 인터넷을 제공하여 디지털 격차를 해소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44

  • 복원력과 보완재: LEO 위성 인터넷은 지진, 허리케인 등으로 인해 지상의 광케이블이나 전력망이 파괴되는 재난 상황에서도 통신을 유지할 수 있는 강력한 예비 수단이 된다.47 기업들은 주요 지상 회선의 백업용으로 위성 인터넷을 도입하여 비즈니스 연속성을 확보할 수 있다.45

  • 백본 대체는 아닌 보완: 하지만 LEO 위성 인터넷이 지상의 광섬유 백본을 완전히 대체하기는 어렵다. 단일 최신 해저 광케이블 하나가 초당 수백 테라비트(Tbps)의 데이터를 전송할 수 있는 반면, 현재 스타링크 전체 위성망의 총용량은 이보다 훨씬 작다.49 위성 간 레이저 통신 기술이 발전하고 있지만, 무선 통신은 물리적으로 유선 광통신의 대역폭 밀도를 따라가기 어렵다. 따라서 LEO 위성 인터넷은 글로벌 데이터의 대부분을 실어 나르는 ’코어 백본’을 대체하기보다는, 백본의 손길이 닿지 않는 곳까지 연결을 확장하는 ‘라스트 마일’ 솔루션이자, 지상망의 취약점을 보완하는 상호보완적인 관계로 발전할 가능성이 높다.

8.3 AI/ML 기반 네트워크 운영

인터넷 백본의 규모와 복잡성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함에 따라, 더 이상 인간의 수동적인 관리 방식만으로는 최적의 성능과 안정성을 유지하기 어려워지고 있다. 인공지능(AI)과 머신러닝(ML)은 네트워크 운영을 자동화하고 지능화하는 핵심 기술로 자리 잡을 것이다.42

  • 지능형 트래픽 관리: AI는 과거와 현재의 트래픽 데이터를 학습하여 미래의 네트워크 혼잡을 예측하고, 장애가 발생하기 전에 자동으로 트래픽을 최적의 경로로 우회시킬 수 있다.42 이를 통해 서비스 중단을 최소화하고 항상 최상의 네트워크 성능을 유지한다.

  • 예측 기반 유지보수: ML 알고리즘은 네트워크 장비에서 수집되는 수많은 원격 측정(telemetry) 데이터를 분석하여 미세한 이상 징후를 감지하고, 장비가 고장 나기 전에 유지보수가 필요함을 관리자에게 알릴 수 있다.

  • 실시간 보안 위협 대응: AI 기반 보안 시스템은 정상적인 트래픽 패턴을 학습한 뒤, 이와 다른 비정상적인 행위(예: DDoS 공격, BGP 하이재킹 시도)를 실시간으로 탐지하고 자동으로 차단할 수 있다.42

8.4 AI 시대의 Tier 1 네트워크

ChatGPT와 같은 대규모 언어 모델(LLM)을 비롯한 생성형 AI의 등장은 인터넷 백본에 새로운 차원의 요구를 제기하고 있다.

  • 막대한 데이터 전송 요구: AI 모델을 훈련시키기 위해서는 전 세계에 분산된 데이터 센터에 저장된 수 페타바이트(PB)의 데이터를 한곳으로 모으거나, 데이터 센터 간에 지속적으로 데이터를 동기화해야 한다.10 또한, AI 서비스를 사용자에게 제공하기 위한 추론(inference) 과정에서도 막대한 양의 데이터가 오고 간다.

  • 저지연과 고품질의 중요성: 이러한 분산 AI 워크로드를 효율적으로 처리하기 위해서는 데이터 센터 간을 연결하는 네트워크의 지연 시간이 극도로 낮고, 대역폭이 안정적으로 보장되어야 한다. 약간의 지연이나 패킷 손실도 전체 AI 모델의 훈련 시간을 며칠씩 지연시키거나 서비스 품질을 저하시킬 수 있다.

  • Tier 1 및 하이퍼스케일러 백본의 가치 상승: 따라서 AWS, Azure, Google Cloud와 같은 주요 클라우드 플랫폼에 가장 빠르고 직접적으로 연결되는 고품질의 글로벌 백본 네트워크의 전략적 가치는 AI 시대에 더욱 커질 것이다. 자체 글로벌 백본을 보유한 Tier 1 ISP와 하이퍼스케일러들은 이러한 AI 워크로드를 위한 프리미엄 연결 서비스를 제공하며 새로운 성장 기회를 맞이할 것이다.10

9. 결론: 끊임없이 진화하는 글로벌 신경망

본 보고서는 인터넷 백본이 단순한 케이블과 라우터의 집합이 아니라, 기술적 원리, 경제적 논리, 그리고 지정학적 역학 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작동하는 다층적인 시스템임을 밝혔다. 최상위 Tier 1 네트워크부터 최종 사용자에게 연결을 제공하는 Tier 3 ISP까지의 계층 구조는 ’피어링’과 ’트랜싯’이라는 경제적 계약을 통해 형성되며, 이들 사이의 데이터 흐름은 BGP라는 정교한 정책 기반 라우팅 프로토콜에 의해 조율된다. 이 모든 논리적 구조는 결국 대양과 대륙을 가로지르는 물리적인 해저 케이블 인프라에 기반하고 있으며, 이 인프라는 이제 국가 간 기술 패권 경쟁의 새로운 각축장이 되고 있다.

결론적으로, 인터넷 백본은 고정된 실체가 아닌, 끊임없이 진화하는 유기체와 같다. 5G와 엣지 컴퓨팅은 데이터가 처리되는 장소를 중앙에서 가장자리로 이동시키며 트래픽의 지형을 바꾸고 있고, 저궤도 위성 인터넷은 지상망의 한계를 보완하며 하늘에서 새로운 연결의 길을 열고 있다. 또한, 인공지능은 인간의 개입을 최소화하며 스스로를 최적화하고 방어하는 지능형 네트워크로의 진화를 이끌고 있다.

미래의 인터넷 백본은 더욱 분산되고, 지능화되며, 지상과 우주를 아우르는 하이브리드(hybrid) 형태로 발전할 것이다. 이러한 변화는 전례 없는 연결성과 새로운 기회를 창출하는 동시에, 네트워크의 파편화, 보안 위협의 고도화, 그리고 인프라 통제권을 둘러싼 경쟁의 심화라는 새로운 도전 과제를 제기한다. 이 거대한 글로벌 신경망의 진화 방향을 이해하는 것은, 다가오는 디지털 시대의 미래를 예측하고 준비하는 데 있어 필수적인 과제가 될 것이다.

10.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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