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향력 기준 위대한 연구
1. 서론: 연구 연대기 속 ’영향력’의 해부
1.1 서론의 목표 및 접근법
본 보고서는 두 가지 핵심 렌즈를 통해 연구의 영향력을 다각적으로 조명한다. 첫째는 계량서지학(scientometrics)의 정량적 지표이며, 둘째는 과학철학자 토머스 쿤(Thomas Kuhn)이 제시한 패러다임 전환(paradigm shift)이라는 정성적 프레임워크다. 이 이중적 접근법은 연구가 과학 발전에 기여하는 두 가지 주요 방식을 구분하여 분석하기 위함이다. 하나는 특정 학문 분야 내에서 후속 연구를 가능하게 하는 도구적 역할이며, 다른 하나는 학문 분야의 근간을 뒤흔들고 새로운 세계관을 제시하는 혁명적 역할이다. 전자는 인용 횟수와 같은 지표로 어느 정도 포착될 수 있지만, 후자는 과학사의 흐름을 이해하는 질적 분석을 통해서만 그 진정한 가치를 평가할 수 있다.
1.2 보고서의 구조 개관
보고서는 총 3부로 구성된다. 제1부에서는 연구의 발자취를 측정하는 다양한 정량적 지표들을 비판적으로 검토한다. 인용 횟수, 저널 임팩트 팩터(Journal Impact Factor), h-index 등 현대 연구 평가 시스템의 근간을 이루는 지표들의 작동 방식과 그 본질적 한계를 심층적으로 분석한다. 제2부에서는 과학사의 흐름을 근본적으로 바꾼 혁명적 연구들을 토머스 쿤의 패러다임 전환 개념을 통해 분석한다. 물리학, 생명과학, 정보과학, 사회과학 등 각 분야에서 세계에 대한 이해를 재구성한 지적 혁명들을 추적한다. 마지막 제3부에서는 이 두 가지 분석을 종합하여, 사용자의 요구에 부응하는 체계적이고 맥락화된 ’영향력 있는 연구 목록’을 다양한 범주로 나누어 제시한다. 이는 단일한 순위가 아닌, 영향력의 다면적 특성을 반영하는 큐레이션된 목록이 될 것이다.
2. 정량적 렌즈 – 연구의 발자취 측정
2.1 영향력의 계량 지표들
2.1.1 계량서지학의 정의와 역할
계량서지학(Bibliometrics)은 출판된 학술 저작물을 인용, 참조 및 기타 사용 지표 분석을 통해 연구하는 학문 분야다.1 현대 학계에서 계량서지학적 지표들은 연구의 질과 영향력을 평가하는 핵심적인 대리 지표(proxy)로 기능한다. 연구자의 연간 활동 보고서, 연구비 지원 심사, 그리고 교수 임용 및 승진 과정에서 논문 수나 인용 횟수와 같은 정량적 데이터는 빠르고 이해하기 쉬우며 객관적인 측정치로 간주되어 널리 사용된다.2 이러한 지표들은 연구 성과를 가시적인 숫자로 변환하여 비교와 평가를 용이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그 효용성을 인정받는다.3
2.1.2 주요 저널 수준 지표 분석
저널 수준의 지표는 개별 논문이 아닌, 그 논문이 게재된 학술지의 영향력을 평가하는 데 중점을 둔다.
2.1.2.1 저널 임팩트 팩터 (Journal Impact Factor, JIF)
저널 임팩트 팩터(JIF 또는 IF)는 아마도 가장 널리 알려진 저널 평가 지표일 것이다.4 1955년 유진 가필드(Eugene Garfield)에 의해 처음 제안된 이 지표는 본래 도서관 사서들이 어떤 저널을 구독할지 결정하는 데 도움을 주기 위해 고안되었다.5 JIF는 특정 저널에 게재된 논문들이 특정 연도에 평균적으로 얼마나 많이 인용되었는지를 나타낸다. 구체적으로, 특정 연도의 JIF는 해당 저널에 이전 2년간 게재된 논문들이 그 해에 받은 총 인용 횟수를 이전 2년간 게재된 총 논문 수로 나누어 계산한다.5 예를 들어, 어떤 저널의 2024년 JIF가 3.0이라면, 2022년과 2023년에 그 저널에 실린 논문들이 2024년 한 해 동안 평균 3회 인용되었다는 의미다.4
그러나 JIF는 그 단순성과 명료함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비판에 직면해 있다. 첫째, JIF는 산술 평균값이기 때문에 분포의 왜곡에 취약하다. 단 하나의 논문이 폭발적으로 많이 인용될 경우, 저널 전체의 JIF가 크게 부풀려질 수 있다.6 둘째, 2년이라는 인용 집계 기간은 학문 분야에 따라 매우 짧을 수 있다. 인문학이나 일부 사회과학 분야처럼 연구 결과가 학계에 수용되고 인용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는 분야에서는 JIF가 연구의 장기적인 영향력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6 셋째, 저널들은 사설(editorial)이나 논평(commentary)처럼 JIF 계산 시 분모(총 논문 수)에는 포함되지 않지만 인용은 될 수 있는 콘텐츠를 통해 JIF를 인위적으로 높이려는 경향이 있다.6 마지막으로, JIF는 본래 저널 평가를 위한 지표였음에도 불구하고, 개별 논문의 질이나 연구자 개인의 역량을 평가하는 대리 지표로 오용되는 경우가 많다. 이는 JIF의 본래 목적을 완전히 벗어난 것이다.5
2.1.2.2 CiteScore
CiteScore는 세계 최대의 학술 데이터베이스 중 하나인 스코퍼스(SCOPUS)를 기반으로 하며, JIF의 단점을 보완하고자 고안되었다.4 가장 큰 차이점은 인용 집계 기간을 4년으로 확장했다는 점이다. 이는 연구 결과가 인용되기까지 시간이 더 오래 걸리는 학문 분야의 특성을 반영하려는 시도다.4 CiteScore는 특정 연도를 포함한 과거 4년간의 총 인용 횟수를 같은 기간에 출판된 논문 수로 나누어 계산한다.6
2.1.2.3 Eigenfactor 및 Article Influence Score
Eigenfactor와 Article Influence Score는 인용의 ’양’뿐만 아니라 ’질’을 측정하려는 시도에서 탄생한 지표다.5 이 지표들은 네트워크 이론에 기반하며, 영향력이 높은 저널로부터 받은 인용에 더 높은 가중치를 부여한다. 즉, Nature나 Science와 같은 최상위 저널에서의 인용이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저널에서의 인용보다 더 큰 가치를 지니는 것으로 평가된다.8 Eigenfactor는 5년의 인용 기간을 사용하며, 저널의 총체적인 영향력을 나타낸다. 반면, Article Influence Score는 Eigenfactor 점수를 저널의 논문 수로 나누어 논문당 평균 영향력을 측정하므로 JIF와 직접적인 비교가 가능하다.5
2.1.3 주요 저자 수준 지표 분석
저자 수준 지표는 특정 연구자 개인의 학문적 생산성과 영향력을 평가하기 위해 사용된다.
2.1.3.1 h-index
h-index는 2005년 물리학자 호르헤 허쉬(Jorge Hirsch)에 의해 제안된 지표로, 연구자의 연구 생산성(양)과 피인용 영향력(질)을 동시에 측정하고자 한다.4 h-index의 정의는 ’어떤 연구자가 발표한 전체 논문 중, h개의 논문이 각각 최소 h회 이상 인용되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h-index가 10인 연구자는 최소 10회 이상 인용된 논문을 10편 이상 보유하고 있다는 의미다.9 이 지표는 계산이 간단하고 직관적이어서 널리 사용되지만, 몇 가지 뚜렷한 한계를 가진다. 경력이 짧은 신진 연구자는 우수한 논문을 발표했더라도 인용이 축적될 시간이 부족하여 h-index가 낮게 나올 수밖에 없다.9 또한, 학문 분야별로 평균 인용 횟수가 크게 다르기 때문에 다른 분야 연구자 간의 h-index를 직접 비교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2.1.3.2 g-index 및 i10-index
h-index의 한계를 보완하기 위해 여러 대안 지표가 제안되었다. g-index는 인용 횟수가 매우 높은 소수의 논문에 더 큰 가중치를 부여하는 방식으로 h-index를 보완한다. 계산 방식은 다소 복잡하지만, 연구자의 전체 논문 목록 중 상위 g개의 논문이 받은 총 인용 횟수가 g2 이상이 되는 가장 큰 수 g를 찾는 것이다.9 i10-index는 구글 스칼라(Google Scholar)에서 사용하는 단순한 지표로, 인용 횟수가 10회 이상인 논문의 수를 의미한다.9 이는 계산이 매우 쉽다는 장점이 있지만, 구글 스칼라에서만 사용된다는 한계가 있다.
2.1.4 인사이트 1: 계량 지표의 본질적 한계와 오용의 위험성
연구 자료 전반을 분석한 결과, 모든 계량 지표는 ’연구의 영향력을 나타내는 완벽하거나 올바른 단 하나의 숫자’가 아니라는 점이 일관되게 강조된다.9 각 지표는 특정 데이터베이스(Web of Science, Scopus, Google Scholar 등)에 의존하기 때문에 측정 범위가 제한적이며, 결과가 달라질 수 있다.9 또한, 대부분의 지표는 학문 분야별로 상이한 출판 및 인용 관행을 고려하지 않아 분야 간 직접 비교가 어렵다.7
이러한 지표의 가장 심각한 문제는 그 오용 가능성에 있다. 영국의 경제학자 찰스 굿하트(Charles Goodhart)가 제시한 ’굿하트의 법칙’은 “어떤 측정치가 목표가 되는 순간, 그것은 더 이상 좋은 측정치가 아니게 된다“고 경고한다.2 JIF가 연구자 평가의 핵심 목표가 되면서, 연구자들은 연구 내용의 적합성보다 JIF가 높은 저널에 논문을 게재하는 데 더 많은 노력을 기울이게 되었다. 이는 학문적 유인을 왜곡하고, 심지어 동료의 연구를 인용하는 방식에도 영향을 미쳐 건강한 학문 생태계를 저해할 수 있다.2
더욱이, 높은 인용 횟수가 반드시 연구의 질이나 타당성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실제로, 심각한 결함으로 인해 철회된 논문 중 상당수가 수천 회 이상 인용된 사례들이 존재한다.10 이는 인용이 동의나 긍정적 평가뿐만 아니라 비판이나 반박을 위해서도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량적 지표에만 의존하여 ’위대한 연구’의 순위를 매기는 것은 근본적으로 결함이 있는 접근법이다. 전문가적 관점에서 영향력의 진정한 의미를 탐구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지표들을 맹목적으로 사용하는 대신, 지표 자체를 비판적으로 분석하고 그 한계를 명확히 인식하는 것이 선행되어야 한다.
표 1: 주요 계량서지학 지표 비교 분석
| 지표 (Metric) | 평가 대상 | 계산 방식 요약 | 강점 | 한계 |
|---|---|---|---|---|
| 저널 임팩트 팩터 (JIF) | 저널 | 이전 2년간 출판된 논문의 평균 피인용 횟수.6 | 널리 알려져 있고 이해하기 쉬움. | 짧은 평가 기간, 분야 간 비교 어려움, 평균값 왜곡 가능성, 오용 위험.5 |
| CiteScore | 저널 | 이전 4년간 출판된 논문의 평균 피인용 횟수 (SCOPUS 기반).4 | JIF보다 긴 평가 기간, 투명한 데이터. | SCOPUS 데이터베이스에 의존, JIF만큼 널리 통용되지는 않음. |
| Eigenfactor | 저널 | 5년간의 인용 네트워크 분석. 영향력 있는 저널의 인용에 가중치 부여.5 | 인용의 ’질’을 반영, 자기 인용 배제. | 계산이 복잡하고, 저널 규모가 큰 경우 유리할 수 있음.8 |
| h-index | 저자 | h편의 논문이 각각 h회 이상 인용됨.9 | 생산성(양)과 영향력(질)을 동시에 고려. | 신진 연구자에게 불리, 분야 간 비교 부적절, 동명이인 문제.9 |
| g-index | 저자 | 상위 g개 논문의 총 인용 횟수가 g2 이상이 되는 최대 g값.9 | 고인용 논문에 더 큰 가중치를 부여하여 h-index 보완. | 계산이 복잡하고 널리 알려지지 않음.9 |
2.2 ’고인용 논문’의 해부
2.2.1 최다 인용 논문 목록 분석
과학 문헌에서 가장 많이 인용된 연구는 과연 어떤 것들일까? 2014년 Nature 지가 발표한 분석에 따르면, 역사상 가장 많이 인용된 논문은 1951년 올리버 로리(Oliver H. Lowry) 등이 발표한 단백질 정량 분석법에 관한 논문이다.11 이 논문은 30만 회 이상 인용되었으며, 이는 과학계에서 전무후무한 기록이다. 그 뒤를 잇는 논문들 역시 대부분 생물학 및 화학 분야의 실험 방법론에 관한 것들이다.11
2.2.2 방법론 논문의 지배적 현상
최다 인용 논문 상위 100위 목록을 살펴보면 한 가지 뚜렷한 경향이 나타난다. 바로 특정 이론이나 발견에 관한 논문이 아니라, 연구를 수행하는 데 필요한 ’방법(method)’이나 ’기술(technique)’을 제시하는 논문이 압도적인 다수를 차지한다는 점이다.11 상위 10위권 논문들은 단백질 정량법(Lowry, 1951; Bradford, 1976), 단백질 전기영동법(Laemmli, 1970), DNA 염기서열 분석법(Sanger, 1977), RNA 추출법(Chomczynski & Sacchi, 1987) 등 생명과학 실험실에서 매일같이 사용되는 기본적인 실험 기법들을 소개한 논문들이다.11 물리화학 분야에서는 밀도범함수이론(DFT) 계산에 사용되는 특정 함수를 제안한 논문들이 높은 순위를 차지하고 있다.11
이러한 방법론 논문들은 해당 분야의 연구자들이 실험이나 분석을 수행할 때마다 거의 의무적으로 인용해야 하는 ’필수 도구’와 같다. 따라서 이 논문들의 높은 인용 횟수는 그들이 제시한 방법이 얼마나 근본적이고 널리 사용되는지를 반영하는 지표라고 할 수 있다.
표 2: 역대 최다 인용 연구 논문 상위 10선 (2014년 기준)
| 순위 | 인용 횟수 | 논문 제목 | 분야 | 발표 연도 | 저널 |
|---|---|---|---|---|---|
| 1 | 305,148 | Protein measurement with the folin phenol reagent. | 생물학 실험 기법 | 1951 | J. Biol. Chem. |
| 2 | 213,005 | Cleavage of structural proteins during the assembly of the head of bacteriophage T4. | 생물학 실험 기법 | 1970 | Nature |
| 3 | 155,530 | A rapid and sensitive method for the quantitation of microgram quantities of protein utilizing the principle of protein-dye binding. | 생물학 실험 기법 | 1976 | Anal. Biochem. |
| 4 | 65,335 | DNA sequencing with chain-terminating inhibitors. | 생물학 실험 기법 | 1977 | Proc. Natl Acad. Sci. USA |
| 5 | 60,397 | Single-step method of RNA isolation by acid guanidinium thiocyanate-phenol-chloroform extraction. | 생물학 실험 기법 | 1987 | Anal. Biochem. |
| 6 | 53,349 | Electrophoretic transfer of proteins from polyacrylamide gels to nitrocellulose sheets: procedure and some applications. | 생물학 실험 기법 | 1979 | Proc. Natl Acad. Sci. USA |
| 7 | 46,702 | Development of the Colle-Salvetti correlation-energy formula into a functional of the electron density. | 물리화학 | 1988 | Phys. Rev. B |
| 8 | 46,145 | Density-functional thermochemistry. III. The role of exact exchange. | 물리화학 | 1993 | J. Chem. Phys. |
| 9 | 45,131 | A simple method for the isolation and purification of total lipides from animal tissues. | 생물학 실험 기법 | 1957 | J. Biol. Chem. |
| 10 | 40,289 | Clustal W: improving the sensitivity of progressive multiple sequence alignment through sequence weighting, position-specific gap penalties and weight matrix choice. | 생물정보학 | 1994 | Nucleic Acids Res. |
주: 인용 횟수는 2014년 10월 Nature 지의 분석 기준임.11
2.2.3 인사이트 2: 영향력의 이중성 - ‘혁명적 사상’ 대 ‘필수적 도구’
최다 인용 논문 목록을 분석하면서 ’영향력’의 본질에 대한 중요한 통찰을 얻을 수 있다. 그것은 바로 영향력에는 두 가지 다른 종류가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하나는 과학 공동체에 필수적인 ’도구’를 제공함으로써 얻는 **‘도구적 영향력(Instrumental Influence)’**이고, 다른 하나는 세계관을 바꾸는 **‘개념적 영향력(Conceptual Influence)’**이다.
최다 인용 논문 목록은 ’도구적 영향력’을 명확하게 보여준다. 이 목록에 오른 논문들은 수많은 후속 연구의 기반이 되는 기술적 토대를 제공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우리가 ’가장 위대한 연구’라고 생각하는 연구들, 예를 들어 다윈의 『종의 기원』,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 왓슨과 크릭의 DNA 구조 발견과 같은 연구들은 이 목록의 최상위권에서 찾아보기 어렵다.11 이러한 연구들은 특정 방법론을 제시하기보다는, 자연과 세계를 이해하는 근본적인 틀, 즉 패러다임을 바꾸었다. 그들의 영향력은 너무나 근본적이어서 후대의 모든 교과서와 연구에 스며들어 있으며, 때로는 직접 인용되지 않더라도 그 사상적 기반 위에서 모든 논의가 이루어진다.
이러한 불일치는 인용 횟수라는 단일 지표가 ’영향력’의 전체 그림을 포착하는 데 실패한다는 것을 명백히 보여준다. 인용 횟수는 연구의 ’유용성’이나 ’적용성’을 측정하는 데는 탁월한 지표일 수 있지만, 학문적 사고의 지형 자체를 바꾼 ’개념적 돌파구’의 중요성을 평가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따라서 진정으로 위대한 연구를 식별하기 위해서는 정량적 지표를 넘어서는 질적 평가, 즉 과학사적 맥락에서의 중요성을 평가하는 작업이 반드시 필요하다.
2.3 지표의 책임 있는 사용
2.3.1 연구 평가의 현대적 도전
계량 지표에 대한 과도한 의존은 학문 생태계에 여러 가지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연구자들은 장기적이고 혁신적인 연구보다는 단기간에 높은 인용을 받을 수 있는 연구, 혹은 특정 고임팩트 저널이 선호하는 주제에 집중하게 될 유인이 생긴다.2 이는 연구의 다양성을 저해하고, 위험 부담이 크지만 잠재적으로 더 큰 돌파구를 가져올 수 있는 창의적인 연구를 위축시킬 수 있다. 또한, 연구 평가가 특정 지표에 고정되면, 연구자들은 해당 지표를 인위적으로 높이려는 시도를 할 수 있으며, 이는 연구의 진실성을 훼손할 위험을 내포한다.
2.3.2 개혁을 위한 선언들
이러한 문제점을 인식하고 연구 평가 문화를 개선하기 위한 국제적인 움직임이 활발하게 일어나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2012년에 발표된 **DORA(연구 평가에 관한 샌프란시스코 선언)**와 2015년에 발표된 **라이덴 선언문(Leiden Manifesto)**이다.2
DORA는 저널 기반 지표, 특히 JIF를 연구자 개인의 연구 성과를 평가하는 데 사용하지 말 것을 핵심 원칙으로 내세운다. 대신, 연구 내용 자체의 과학적 가치를 평가하고, 다양한 형태의 연구 성과(데이터셋, 소프트웨어, 특허 등)를 인정할 것을 촉구한다.2 라이덴 선언문은 연구 평가가 정량적 지표와 정성적 전문가 평가를 결합해야 한다는 점을 포함하여, 책임 있는 지표 사용을 위한 10가지 원칙을 제시한다. 여기에는 연구 분야의 특성을 고려한 평가, 개인 연구자에 대한 평가는 신중할 것, 데이터의 투명성과 접근성을 보장할 것 등의 내용이 포함된다.2
이러한 선언들은 계량 지표를 완전히 폐기하자는 것이 아니라, 그 한계를 명확히 인식하고 ‘책임 있게’ 사용해야 함을 강조한다. 이는 본 보고서가 단순한 순위 목록 제시를 지양하고, 다차원적인 분석 틀을 통해 영향력을 평가하려는 접근법과 그 궤를 같이한다. 정량적 지표는 연구의 특정 측면을 이해하는 데 유용한 도구일 수 있지만, 그것이 연구의 가치를 결정하는 유일한 잣대가 되어서는 안 된다.
3. 정성적 렌즈 – 과학 혁명과 현실의 재구성
3.1 과학 혁명의 구조
3.1.1 토머스 쿤과 패러다임의 개념
과학의 진보를 이해하는 데 있어 가장 심오한 통찰 중 하나는 과학철학자 토머스 쿤(Thomas Kuhn)이 그의 저서 『과학 혁명의 구조』(1962)에서 제시한 ’패러다임 전환(paradigm shift)’이라는 개념이다.16 쿤은 과학이 단순히 새로운 사실들이 선형적으로 축적되는 과정이 아니라, 기존의 과학적 세계관이 근본적으로 뒤바뀌는 주기적인 ’혁명’을 통해 발전한다고 주장했다.18
쿤이 말하는 ’패러다임’이란 특정 시기의 과학 공동체가 공유하는 이론, 법칙, 실험 도구, 가치, 그리고 형이상학적 가정들의 총체를 의미한다.19 패러다임은 과학자들이 어떤 질문을 던져야 하고, 어떤 현상을 관찰해야 하며, 그 관찰 결과를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지에 대한 틀을 제공한다.16 즉, 패러다임은 과학적 활동의 ’규칙’을 정하는 역할을 한다.
3.1.2 과학 발전의 4단계
쿤은 과학 발전이 다음과 같은 4단계를 거친다고 설명했다.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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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 과학 (Normal Science): 이 단계에서 과학자들은 지배적인 패러다임의 틀 안에서 연구를 수행한다. 그들의 주된 목표는 패러다임을 반증하는 것이 아니라, 패러다임이 제공하는 개념적 상자를 이용해 자연이라는 ’퍼즐’을 푸는 것이다.16 이 시기에는 패러다임의 적용 범위를 넓히고 정밀도를 높이는 작업이 이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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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칙 (Anomaly)의 축적: 정상 과학 활동을 하다 보면 기존 패러다임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현상, 즉 ’변칙’들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처음에는 이러한 변칙들이 연구자의 실수로 치부되거나 무시되지만, 중요하고 지속적인 변칙들이 계속해서 축적되면 기존 패러다임에 대한 신뢰가 흔들리기 시작한다.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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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 (Crisis)와 비상 과학 (Extraordinary Science): 변칙들이 충분히 쌓이면 과학 공동체는 ‘위기’ 상태에 빠진다. 기존 패러다임의 근본적인 가정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대담하고 새로운 이론들이 경쟁적으로 등장한다. 이 시기를 쿤은 ’비상 과학’이라 불렀으며, 근본적인 문제에 대한 철학적 논쟁이 활발해진다.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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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 혁명 (Scientific Revolution)과 새로운 패러다임: 여러 경쟁 이론 중 하나가 기존 패러다임의 문제점들을 해결하고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는 데 성공하면, 과학 공동체는 점차 이 새로운 이론을 받아들이게 된다. 이 과정이 바로 ’패러다임 전환’이며, 이는 과학 혁명의 완수를 의미한다. 새로운 패러다임이 확립되면, 과학계는 다시 새로운 ’정상 과학’의 시대로 진입하여 새로운 퍼즐을 풀기 시작한다.16
3.1.3 인사이트 3: 패러다임 전환이야말로 ’영향력’의 최고 형태
쿤의 이론은 ’위대한 연구’를 식별하는 데 매우 강력한 정성적 기준을 제공한다. 제1부에서 논의했듯이, 인용 횟수와 같은 정량적 지표는 학문의 방향 자체를 바꾼 개념적 돌파구의 중요성을 제대로 평가하지 못한다. 쿤의 관점에서 볼 때, 진정으로 위대한 연구는 기존 패러다임 안에서 퍼즐을 잘 푸는 연구가 아니라, 퍼즐의 규칙과 판 자체를 바꾸는 연구다.
뉴턴 역학, 다윈의 진화론,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과 같은 연구들은 단순히 새로운 지식을 추가한 것이 아니다. 이들은 과학자들이 세상을 보고, 질문하고, 연구하는 방식 자체를 근본적으로 바꾸어 놓았다.16 이러한 연구의 영향력은 너무나 근본적이어서, 후대의 모든 과학 활동이 그 위에서 이루어지는 ’공리(axiom)’와 같은 역할을 하게 된다. 그 결과, 이러한 연구들은 모든 후속 논문에서 일일이 인용되지 않을 수도 있지만, 그 어떤 고인용 방법론 논문보다도 더 깊고 지속적인 영향력을 행사한다. 따라서 ‘가장 영향력 있는 연구’ 목록의 최상위에는 바로 이러한 패러다임 전환을 촉발한 연구들이 위치해야 한다. 이는 단순한 발견을 넘어 한 시대의 과학적 세계관을 통째로 재구성하는, 가장 심오한 형태의 영향력이라 할 수 있다.
3.2 물리 과학의 패러다임 전환
3.2.1 고전 역학의 탄생
17세기 이전까지 서구의 자연관은 아리스토텔레스의 목적론적 물리학에 깊이 뿌리내리고 있었다. 이 세계관에서 모든 물체는 자신의 ‘자연스러운’ 위치로 돌아가려는 내재적 경향을 가지며, 천상계와 지상계는 서로 다른 법칙에 의해 지배되었다. 그러나 1687년, 아이작 뉴턴(Isaac Newton)이 출판한 『자연철학의 수학적 원리(Philosophiæ Naturalis Principia Mathematica)』는 이 모든 것을 바꾸어 놓았다.18
뉴턴은 운동의 세 가지 법칙과 만유인력의 법칙을 통해 지상에서 사과가 떨어지는 현상과 천상에서 행성이 태양 주위를 도는 현상이 동일한 수학적 법칙으로 설명될 수 있음을 보였다. 이는 천상계와 지상계를 통합한 최초의 보편적 물리 법칙이었으며, 우주가 예측 가능하고 수학적으로 기술될 수 있는 거대한 기계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했다. 뉴턴 역학은 이후 200년 이상 물리학의 절대적인 토대로 군림하며 산업 혁명의 이론적 기반을 제공했다.
3.2.2 상대성 이론과 시공간의 혁명
뉴턴의 패러다임은 20세기 초, 알베르트 아인슈타인(Albert Einstein)에 의해 두 차례의 혁명을 겪게 된다. 1905년 발표된 특수 상대성 이론은 시간과 공간이 관찰자의 운동 상태에 따라 상대적으로 변할 수 있다는 충격적인 개념을 도입했다. 이는 뉴턴이 가정했던 절대적인 시간과 공간의 개념을 폐기하는 것이었다.15 또한, 이 이론은 질량과 에너지가 등가(E=mc2)라는 사실을 밝혀내 핵에너지 시대의 문을 열었다.
1916년 발표된 일반 상대성 이론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중력을 시공간의 기하학적 휘어짐으로 재해석했다.15 뉴턴이 설명하지 못했던 ’원격 작용’으로서의 중력은, 이제 질량을 가진 물체가 시공간을 휘게 하고 다른 물체는 그 휘어진 시공간을 따라 움직이는 것으로 이해되었다. 이 이론은 빛이 중력에 의해 휠 수 있다는 예측을 내놓았고, 이는 1919년 개기일식 관측을 통해 증명되면서 아인슈타인의 이론은 뉴턴의 패러다임을 대체하는 새로운 중력 이론으로 자리 잡았다.18
3.2.3 양자 혁명
상대성 이론이 거시 세계에 대한 이해를 바꾸었다면, 양자역학은 미시 세계에 대한 인간의 이해를 근본적으로 뒤흔들었다. 20세기 초, 막스 플랑크(Max Planck)가 흑체 복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에너지가 연속적이지 않고 불연속적인 덩어리, 즉 ’양자(quantum)’로 존재한다는 가설을 제기하면서 양자 혁명의 서막이 올랐다.
이후 닐스 보어(Niels Bohr)의 원자 모형, 루이 드 브로이(Louis de Broglie)의 물질파 이론, 그리고 베르너 하이젠베르크(Werner Heisenberg)의 불확정성 원리와 에르빈 슈뢰딩거(Erwin Schrödinger)의 파동 방정식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발견들은 고전 물리학의 결정론적 세계관을 완전히 붕괴시켰다.18 미시 세계에서 입자의 위치와 운동량은 동시에 정확하게 측정될 수 없으며, 오직 확률적으로만 기술될 수 있다는 것이 밝혀졌다. 이러한 양자역학의 원리들은 반도체, 레이저, 핵에너지 등 현대 기술의 근간을 이루며, 20세기 문명을 형성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3.3 생명 과학의 패러다임 전환
3.3.1 진화론과 생명의 통일성
19세기 중반까지 생명의 기원과 다양성은 신의 창조에 의한 것이라는 창조론적 세계관이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1859년, 찰스 다윈(Charles Darwin)이 출판한 『종의 기원(On the Origin of Species)』은 생명에 대한 인간의 이해를 송두리째 바꾸는 혁명을 일으켰다.15
다윈은 방대한 관찰과 증거를 바탕으로, 모든 생명체가 공통의 조상으로부터 유래했으며, ’자연선택(natural selection)’이라는 과정을 통해 점진적으로 변화해왔다는 진화론을 제시했다. 이는 생명의 다양성이 목적이나 설계에 의한 것이 아니라, 우연한 변이와 환경에 대한 적응의 결과물임을 의미했다.18 진화론은 모든 생명체를 하나의 거대한 생명의 나무로 묶어주었으며, 생물학을 통합하는 핵심적인 패러다임으로 자리 잡았다.
3.3.2 유전학의 탄생
다윈의 진화론은 ’변이가 어떻게 자손에게 전달되는가’라는 중요한 질문에 답하지 못했다. 이 해답은 다윈과 동시대를 살았던 오스트리아의 수도사 그레고어 멘델(Gregor Mendel)의 연구에서 나왔다. 멘델은 1866년에 발표한 완두콩 교배 실험 연구를 통해, 유전 형질이 부모로부터 섞이는 것이 아니라 불연속적인 ’단위(unit)’를 통해 전달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15
그의 연구는 당시에는 주목받지 못했지만, 20세기 초에 재발견되면서 현대 유전학의 기초를 닦았다. 멘델의 법칙은 유전 현상에 수학적 규칙성을 부여했으며, ’유전자(gene)’라는 개념의 토대를 마련했다. 이는 생명의 정보가 어떻게 세대를 거쳐 전달되는지에 대한 최초의 과학적 설명을 제공한 패러다임 전환이었다.
3.3.3 분자생물학의 중심 원리
20세기 중반, 생명의 비밀은 분자 수준에서 해독되기 시작했다. 그 결정적인 순간은 1953년, 제임스 왓슨(James Watson)과 프랜시스 크릭(Francis Crick)이 DNA의 이중나선 구조를 규명한 연구를 Nature 지에 발표하면서 찾아왔다.15
그들의 모델은 DNA가 어떻게 유전 정보를 저장하고, 어떻게 스스로를 복제하여 자손에게 전달하는지를 명확하게 설명해주었다. 이 발견은 생명 현상을 물리와 화학의 법칙으로 설명할 수 있다는 환원주의적 접근의 위대한 승리였다. 이후 DNA의 유전 정보가 RNA를 거쳐 단백질로 전달된다는 ’분자생물학의 중심 원리(Central Dogma of Molecular Biology)’가 확립되었고, 이는 유전공학과 생명공학 시대의 문을 활짝 열었다.22 이 연구는 생명과학의 패러다임을 ’관찰’의 학문에서 ’조작’과 ’설계’의 학문으로 바꾸어 놓았다.
3.4 형식 과학 및 정보 과학의 패러다임 전환
3.4.1 계산 가능성의 정의와 컴퓨터의 탄생
오늘날 우리가 당연하게 사용하는 컴퓨터와 디지털 기술의 이론적 뿌리는 1936년, 앨런 튜링(Alan Turing)이라는 젊은 수학자가 발표한 한 편의 논문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계산 가능한 수에 관하여, 그리고 결정 문제에 대한 응용(On Computable Numbers, with an Application to the Entscheidungsproblem)“이라는 제목의 이 논문은 인류의 지성사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연구 중 하나로 꼽힌다.25
당시 수학계의 거장 다비트 힐베르트(David Hilbert)는 모든 수학적 명제가 참인지 거짓인지 기계적으로 판별할 수 있는 ’결정 문제(Entscheidungsproblem)’를 해결할 알고리즘이 존재하는지를 물었다.27 이 문제에 답하기 위해, 튜링은 먼저 ‘알고리즘’ 또는 ’기계적 계산’이라는 모호한 개념을 수학적으로 엄밀하게 정의해야 했다. 그는 이를 위해 ’튜링 기계(Turing Machine)’라는 가상의 기계를 고안했다.26 튜링 기계는 무한한 길이의 테이프와 기호들을 읽고 쓰는 헤드, 그리고 유한한 내부 상태로 구성된 극도로 단순한 장치다. 튜링은 이 단순한 기계가 인간이 ’계산’이라고 부르는 모든 종류의 절차를 수행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27
더 나아가 그는 다른 모든 튜링 기계의 동작을 흉내 낼 수 있는 ’보편 튜링 기계(Universal Turing Machine)’의 존재를 증명했다.26 이는 테이프에 적절한 ’프로그램’을 입력하기만 하면 어떤 종류의 계산이든 수행할 수 있는, 즉 현대적인 의미의 ‘소프트웨어’ 개념을 최초로 제시한 것이었다. 이 이론적 모델은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모든 범용 컴퓨터의 청사진이 되었다. 튜링은 이 모델을 사용하여, 튜링 기계가 스스로의 정지 여부를 판단할 수 없다는 ’정지 문제(Halting Problem)’를 증명했고, 이를 통해 힐베르트의 결정 문제가 해결 불가능하다는 것을 보였다.27 이 연구는 계산의 본질과 한계를 규명하며 컴퓨터 과학이라는 새로운 학문 분야의 패러다임을 창조했다.
3.4.2 정보 이론의 창시
튜링이 계산의 이론적 토대를 마련했다면, 1948년 벨 연구소의 수학자 클로드 섀넌(Claude Shannon)이 발표한 “통신의 수학적 이론(A Mathematical Theory of Communication)“은 정보 자체의 본질을 규명하고 디지털 시대의 문을 열었다.29
섀넌 이전까지 ’정보’는 의미론적이고 철학적인 개념에 가까웠다. 섀넌은 정보에서 ’의미’를 분리하고, 정보를 순수하게 확률적인 양으로 측정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했다. 그는 정보의 불확실성을 측정하는 척도로 열역학의 개념을 차용한 ’엔트로피(entropy)’를 도입했다.31 또한, 그는 정보의 가장 기본적인 단위를 ’비트(bit, binary digit)’로 정의했으며, 이는 존 튜키(John Tukey)의 제안을 따른 것이었다.30
섀넌의 가장 위대한 업적 중 하나는 ’채널 코딩 정리(Noisy-channel coding theorem)’다. 이 정리는 아무리 잡음(noise)이 심한 통신 채널이라도, 채널 용량(channel capacity) 한계 이하의 속도로 정보를 전송한다면, 오류 정정 부호(error-correcting code)를 사용하여 오류를 거의 없이(arbitrarily low) 정보를 전송할 수 있음을 수학적으로 증명한 것이다.29 이는 디지털 통신, 데이터 저장, 압축 기술 등 오늘날 정보 기술의 모든 측면에 이론적 기반을 제공했다. 섀넌의 연구는 정보를 과학적 분석의 대상으로 만들었고, 정보 시대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탄생시켰다.33
3.5 사회 과학의 패러다임 전환
3.5.1 거시경제학과 정부의 역할
1930년대 세계 대공황은 기존 경제학 이론의 무력함을 드러냈다. 당시 주류였던 고전 경제학은 시장이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항상 완전 고용 상태의 균형을 찾아간다고 보았다. 이 관점에서 대규모 실업은 일시적인 마찰에 불과했다. 그러나 현실의 장기적인 불황은 이 이론으로는 설명될 수 없었다.
이러한 위기 속에서 1936년, 영국의 경제학자 존 메이너드 케인스(John Maynard Keynes)는 『고용, 이자 및 화폐에 관한 일반이론(The General Theory of Employment, Interest and Money)』을 출판하며 경제학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했다.34 케인스는 ’공급이 스스로 수요를 창출한다’는 세이의 법칙(Say’s Law)을 정면으로 반박했다.34 그는 경제 전체의 총수요(소비, 투자, 정부 지출의 합)가 생산 수준과 고용을 결정하는 핵심 요인이라고 주장했다. 불황기에는 비관적인 미래 전망으로 인해 민간 소비와 투자가 위축되어 총수요가 부족해지고, 이로 인해 대규모 비자발적 실업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36
케인스는 시장이 스스로 불황에서 벗어날 능력이 없으며, 이 ’수요 부족’을 메우기 위해 정부가 재정 지출을 늘리거나 세금을 감면하는 등 적극적으로 시장에 개입해야 한다고 역설했다.37 그의 이론은 경제를 개별 시장의 합이 아닌, 총량 변수들(aggregate variables)로 분석하는 ’거시경제학(macroeconomics)’이라는 새로운 분야를 탄생시켰고,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서구 자본주의 국가들의 경제 정책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쳤다.35
3.5.2 행동경제학의 등장
오랫동안 경제학의 인간 모델은 ‘호모 이코노미쿠스(Homo economicus)’, 즉 완벽하게 합리적이고 이기적이며 자신의 효용을 극대화하기 위해 행동하는 존재였다. 그러나 1979년, 심리학자 대니얼 카너먼(Daniel Kahneman)과 아모스 트버스키(Amos Tversky)는 “전망 이론: 위험 하에서의 결정 분석(Prospect Theory: An Analysis of Decision under Risk)“이라는 논문을 통해 이 근본적인 가정에 도전했다.
그들은 일련의 실험을 통해 사람들이 이익과 손실을 평가할 때 비대칭적으로 반응한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사람들은 100달러를 얻었을 때 느끼는 기쁨보다 100달러를 잃었을 때 느끼는 고통을 훨씬 더 크게 느낀다. 이를 ’손실 회피(loss aversion)’라고 명명했다.38 또한, 사람들은 결정을 내릴 때 절대적인 부의 수준이 아니라, 특정 ’기준점(reference point)’으로부터의 변화, 즉 이익과 손실을 기준으로 판단하는 경향이 있음을 밝혔다.
전망 이론은 인간의 의사결정이 체계적인 인지 편향(cognitive bias)에 의해 영향을 받으며, 종종 비합리적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이 연구는 심리학의 통찰을 경제학에 접목하여 ’행동경제학(behavioral economics)’이라는 새로운 분야를 개척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38 이로써 경제학은 인간 행동의 복잡하고 비합리적인 측면을 설명하는 더욱 현실적인 학문으로 발전할 수 있었다. 이 공로로 대니얼 카너먼은 2002년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했다 (아모스 트버스키는 1996년 작고).
4. 영향력 있는 연구 큐레이션 목록
4.1 서문: 단일 순위의 불가능성과 다차원적 목록의 필요성
제1부와 제2부의 논의를 통해 명확해졌듯이, 과학 연구의 ’영향력’을 단일한 기준으로 측정하여 1위부터 1000위까지 줄을 세우는 것은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무의미하다. 인용 횟수는 연구의 ‘도구적’ 유용성을 반영할 수는 있지만, 학문의 근간을 바꾼 ‘개념적’ 혁명의 무게를 담아내지 못한다. 반대로, 패러다임을 전환시킨 연구는 그 영향력이 너무나 근본적이어서 단순한 인용 지표로는 포착되지 않는다.
따라서 본 보고서는 단일 순위 목록을 제시하는 대신, ’영향력’의 다양한 측면을 반영하는 여러 범주의 목록을 제시함으로써 사용자의 요구에 대한 보다 정교하고 유용한 답변을 제공하고자 한다. 이 다차원적 접근법은 위대한 연구가 남긴 다양한 형태의 발자취를 존중하고, 독자에게 과학 발전의 풍부한 맥락을 제공할 것이다.
4.2 과학의 초석이 된 연구들
이 장에서는 제2부에서 논의된 ’패러다임 전환’을 일으킨 연구들을 중심으로, 각 학문 분야의 근간을 형성하고 인류의 지적 지평을 넓힌 가장 중요한 연구들을 선정한다. 이 목록은 인용 횟수와 무관하게, 인류의 지적 역사에서 가장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온 연구들로 구성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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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작 뉴턴 (Isaac Newton), 『자연철학의 수학적 원리』 (1687): 고전 역학의 패러다임을 확립하고, 지상계와 천상계를 통합하는 보편적인 운동 법칙과 만유인력의 법칙을 제시했다.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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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투안 라부아지에 (Antoine Lavoisier), 『화학의 기초』 (1789): 연소에 대한 플로지스톤 이론을 폐기하고, 질량 보존의 법칙을 확립하며 현대 화학의 기초를 닦았다.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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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스 다윈 (Charles Darwin), 『종의 기원』 (1859): 자연선택에 의한 진화론을 통해 생명의 다양성과 통일성을 설명하고, 생물학의 통합적 패러다임을 구축했다.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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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고어 멘델 (Gregor Mendel), “식물 잡종에 관한 실험” (1866): 유전의 기본 법칙을 발견하여 현대 유전학의 문을 열었다.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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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베르트 아인슈타인 (Albert Einstein), “움직이는 물체의 전기역학에 관하여” (1905) & “일반 상대성 이론의 기초” (1916): 특수 상대성 이론과 일반 상대성 이론을 통해 뉴턴의 절대 시공간 개념을 폐기하고, 중력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제시했다.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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닐스 보어 (Niels Bohr), “원자와 분자의 구조에 관하여” (1913): 양자 가설을 원자 구조에 적용하여, 원자 내 전자의 궤도가 양자화되어 있음을 보이고 양자역학의 발전에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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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메이너드 케인스 (John Maynard Keynes), 『고용, 이자 및 화폐에 관한 일반이론』 (1936): 총수요의 개념을 통해 대공황을 설명하고, 정부의 적극적 시장 개입을 옹호하며 거시경제학이라는 새로운 분야를 창시했다.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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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런 튜링 (Alan Turing), “계산 가능한 수에 관하여, 그리고 결정 문제에 대한 응용” (1936): ’튜링 기계’라는 개념을 통해 계산 가능성을 정의하고, 현대 컴퓨터 과학의 이론적 토대를 마련했다.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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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로드 섀넌 (Claude Shannon), “통신의 수학적 이론” (1948): 정보의 양을 수학적으로 정량화하고 ’비트’라는 단위를 도입하여 정보 이론을 창시하고 디지털 시대를 열었다.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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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임스 왓슨 (James D. Watson) & 프랜시스 크릭 (Francis H. C. Crick), “핵산의 분자 구조: 디옥시리보핵산의 구조” (1953): DNA의 이중나선 구조를 규명하여 유전 정보의 저장과 복제 메커니즘을 밝히고 분자생물학 시대를 열었다.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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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니얼 카너먼 (Daniel Kahneman) & 아모스 트버스키 (Amos Tversky), “전망 이론: 위험 하에서의 결정 분석” (1979): 인간의 비합리적 의사결정, 특히 손실 회피 경향을 설명하며 행동경제학의 기틀을 마련했다.38
4.3 발견의 엔진이 된 연구들
이 장에서는 제1부에서 분석한 ’도구적 영향력’이 큰 연구들을 중심으로, 수많은 후속 연구를 가능하게 한 핵심적인 방법론 및 기술 논문들을 선정한다. 이 연구들은 높은 인용 횟수를 통해 그 가치가 입증되었으며, 각 분야의 ’발견 엔진’으로서 과학 발전을 가속화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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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리버 로리 (Oliver H. Lowry) 외, “포린 페놀 시약을 이용한 단백질 측정” (1951): 역사상 가장 많이 인용된 논문으로, 생화학 및 분자생물학 연구의 기본이 되는 단백질 정량법을 제시했다.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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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리히 램리 (Ulrich K. Laemmli), “박테리오파지 T4의 머리 조립 과정 중 구조 단백질의 절단” (1970): 단백질을 크기별로 분리하는 표준 기술인 SDS-PAGE 전기영동법을 확립하여, 단백질 연구의 필수적인 도구가 되었다.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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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리언 브래드퍼드 (Marion M. Bradford), “단백질-염료 결합 원리를 이용한 마이크로그램 단위 단백질의 신속하고 민감한 정량법” (1976): 로리 방법보다 간편하고 빠른 단백질 정량법을 제시하여 널리 사용되었다.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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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더릭 생어 (Frederick Sanger) 외, “사슬 종결 저해제를 이용한 DNA 염기서열 분석” (1977): DNA의 염기서열을 정확하게 읽어내는 ‘생어 시퀀싱’ 방법을 개발하여 유전체학 시대를 열었다. 이 공로로 생어는 두 번째 노벨 화학상을 수상했다.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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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비드 럼멜하트 (David E. Rumelhart), 제프리 힌튼 (Geoffrey E. Hinton) 외, “오차 역전파를 통한 표현 학습” (1986): 다층 신경망을 효과적으로 훈련시킬 수 있는 ‘역전파(backpropagation)’ 알고리즘을 대중화하여, 딥러닝 혁명의 기술적 토대를 마련했다.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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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프 호흐라이터 (Sepp Hochreiter) & 위르겐 슈미트후버 (Jürgen Schmidhuber), “장단기 기억” (1997): 순차적 데이터 처리에 탁월한 성능을 보이는 순환 신경망(RNN) 구조인 LSTM(Long Short-Term Memory)을 제안하여, 자연어 처리와 음성 인식 분야에 큰 발전을 가져왔다.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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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스 크리제브스키 (Alex Krizhevsky), 일리야 수츠케버 (Ilya Sutskever), 제프리 힌튼 (Geoffrey E. Hinton), “심층 합성곱 신경망을 이용한 ImageNet 분류” (2012): ’AlexNet’이라는 심층 신경망 모델로 이미지 인식 대회에서 압도적인 성능을 보여주며 딥러닝의 폭발적인 성장을 촉발했다.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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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슈시 바스와니 (Ashish Vaswani) 외, “Attention Is All You Need” (2017): 기존의 순환적 구조를 완전히 배제하고 ’어텐션 메커니즘’만으로 구성된 ‘트랜스포머(Transformer)’ 모델을 제안했다. 이 모델은 병렬 처리에 용이하여 대규모 데이터 학습이 가능해졌고, ChatGPT와 같은 현대 대규모 언어 모델(LLM)의 기반이 되었다.41
4.4 현대 과학의 이정표들
단일하고 완벽한 영향력 측정 기준은 없지만, 노벨상, 필즈상, 그리고 Science 저널의 ’올해의 돌파구’와 같은 권위 있는 상과 평가는 동시대 전문가 집단이 인정한 중요한 연구를 식별하는 신뢰도 높은 대리 지표 역할을 한다. 이 장에서는 이러한 평가를 통해 현대 과학의 주요 흐름을 형성한 연구들을 조명한다.
4.4.1 노벨상 및 필즈상 수상 연구
노벨상은 알프레드 노벨의 유언에 따라 “인류에게 가장 큰 공헌을 한 사람들“에게 수여되며, 필즈상은 40세 이하의 수학자에게 “탁월한 수학적 발견“을 기리기 위해 수여된다. 이 상들은 각 분야에서 시대를 대표하는 가장 중요한 성취를 인정하는 지표다. 최근 5년간의 주요 수상 연구는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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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노벨 생리의학상 (카탈린 커리코, 드루 와이스먼): 뉴클레오사이드 염기 변형에 관한 발견을 통해 COVID-19에 대항하는 효과적인 mRNA 백신 개발을 가능하게 했다.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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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노벨 물리학상 (알랭 아스페, 존 클라우저, 안톤 차일링거): 얽힌 광자를 이용한 실험을 통해 벨 부등식의 위배를 증명하고 양자 정보 과학을 개척했다.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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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필즈상 (마리나 비아조우스카): 8차원 공간에서 동일한 구를 가장 조밀하게 채우는 방법이 E8 격자임을 증명했다.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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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노벨 화학상 (베냐민 리스트, 데이비드 맥밀런): 비대칭 유기촉매 반응을 개발하여, 보다 효율적이고 친환경적인 분자 합성의 길을 열었다.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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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노벨 화학상 (에마뉘엘 샤르팡티에, 제니퍼 다우드나): CRISPR/Cas9 유전자 가위를 개발하여, 생명체의 DNA를 매우 정밀하게 수정할 수 있는 길을 열었다.45
4.4.2 Science 저널 ‘올해의 돌파구’ (Breakthrough of the Year)
미국과학진흥협회(AAAS)가 발행하는 저명한 학술지 Science는 매년 그 해에 가장 중요하고 영향력 있었던 과학적 성과를 ’올해의 돌파구’로 선정한다. 이는 과학계의 최신 동향과 미래 방향을 가늠할 수 있는 중요한 지표다. 최근의 주요 선정 목록은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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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GLP-1 작용제: 본래 당뇨병 치료제로 개발되었으나, 체중 감량에 탁월한 효과가 입증되면서 비만 치료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열었다.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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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제임스 웹 우주망원경: 인류 역사상 가장 강력한 우주망원경으로, 초기 우주의 모습을 전례 없는 선명도로 관측하며 천문학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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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인공지능에 의한 단백질 구조 예측: 딥마인드의 알파폴드2(AlphaFold2)가 단백질의 3차원 구조를 매우 높은 정확도로 예측하는 데 성공하여, 생명과학 연구의 난제 중 하나를 해결했다.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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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COVID-19 백신: 전례 없는 속도로 개발 및 시험된 COVID-19 백신은 팬데믹에 맞서는 인류의 과학적 역량을 보여주었다.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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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블랙홀 최초 관측: 사건의 지평선 망원경(EHT) 프로젝트가 인류 최초로 M87 은하 중심의 초거대 블랙홀 그림자를 촬영하는 데 성공했다.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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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중력파 검출: LIGO 연구진이 아인슈타인이 100년 전에 예측했던 중력파를 최초로 직접 검출하여, 우주를 관측하는 새로운 창을 열었다.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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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CRISPR 유전자 편집 기술: 생명체의 유전자를 쉽고 정확하게 편집할 수 있는 CRISPR 기술이 생명과학 및 의학 연구에 혁명을 가져왔다.47
이처럼 역사적 패러다임 전환, 높은 인용 횟수를 기록한 방법론, 그리고 현대의 주요 학술상 수상 연구를 종합적으로 제시함으로써, 단일 랭킹의 함정을 피하면서도 영향력 있는 연구에 대한 다차원적이고 풍부한 목록을 구성할 수 있다.
4.5 분야별 주요 연구 참고 목록
사용자의 ’1000개’라는 양적 요구에 부응하고, 독자들이 각자의 관심 분야에서 더 깊이 탐구할 수 있는 길잡이를 제공하기 위해, 본 장에서는 순위 없이 학문 분야별로 추가적인 중요 연구들을 나열한다. 이 목록은 역사적 중요성, 주요 교과서에서의 언급 빈도, 새로운 산업 창출에 대한 기여도 등 다양한 기준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작성되었다.
4.5.1 물리학 및 천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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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콜라우스 코페르니쿠스, 『천구의 회전에 관하여』 (1543): 지동설을 체계적으로 제시하여 프톨레마이오스의 천동설 패러다임에 도전했다.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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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패러데이, 전자기 유도 법칙 발견 (1831): 전기와 자기의 관계를 규명하여 전자기학의 기초를 마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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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임스 클러크 맥스웰, 맥스웰 방정식 (1865): 전기, 자기, 빛을 하나의 현상으로 통합하는 전자기학의 완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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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 퀴리 & 피에르 퀴리, 방사능 연구 (1898): 라듐과 폴로늄을 발견하고 방사능 현상을 규명하여 핵물리학의 시대를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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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니스트 러더퍼드, 원자핵 발견 (1911): 금박 실험을 통해 원자의 중심에 작고 밀도가 높은 핵이 존재함을 증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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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윈 허블, 우주 팽창 발견 (1929): 외부 은하들의 적색편이를 관측하여 우주가 팽창하고 있음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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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바딘, 월터 브래튼, 윌리엄 쇼클리, 트랜지스터 발명 (1947): 반도체 소자인 트랜지스터를 발명하여 전자공학 혁명과 실리콘 밸리의 탄생을 이끌었다.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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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처드 파인만, 줄리언 슈윙거, 도모나가 신이치로, 양자전기역학(QED) 정립 (1940년대): 양자역학과 특수상대성이론을 결합하여 전자기 상호작용을 완벽하게 기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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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 겔만, 조지 츠바이크, 쿼크 모델 제안 (1964): 양성자와 중성자 등 강입자들이 더 기본적인 입자인 쿼크로 이루어져 있음을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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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런 구스, 인플레이션 우주론 제안 (1981): 빅뱅 초기에 우주가 기하급수적으로 팽창했다는 이론을 통해 대폭발 이론의 문제점들을 해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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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울 펄무터, 브라이언 슈밋, 애덤 리스, 우주 가속 팽창 발견 (1998): 초신성 관측을 통해 우주의 팽창이 가속되고 있음을 발견하고 암흑 에너지의 존재를 시사했다.47
4.5.2 화학 및 재료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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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돌턴, 원자설 (1808): 모든 물질이 원자로 이루어져 있다는 현대적 원자론을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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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데오 아보가드로, 아보가드로의 법칙 (1811): 같은 온도와 압력에서 모든 기체는 같은 부피 속에 같은 수의 분자를 포함한다는 법칙을 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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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미트리 멘델레예프, 주기율표 (1869): 원소들을 원자량 순으로 배열하여 화학적 성질의 주기성을 발견하고, 미발견 원소의 존재를 예측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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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버트 루이스, 공유 결합 이론 (1916): 원자들이 전자를 공유함으로써 화학 결합을 형성한다는 개념을 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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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너스 폴링, 『화학 결합의 본질』 (1939): 양자역학을 화학 결합에 적용하여 현대 화학의 이론적 토대를 마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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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버트 우드워드, 복잡한 유기 분자 합성 (1940-70년대): 퀴닌, 콜레스테롤, 비타민 B12 등 복잡한 천연물의 전합성에 성공하며 유기 합성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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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 지글러 & 줄리오 나타, 지글러-나타 촉매 개발 (1950년대): 폴리에틸렌, 폴리프로필렌 등 고분자 플라스틱의 대량 생산을 가능하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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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럴드 크로토, 리처드 스몰리, 로버트 컬, 풀러렌 발견 (1985): 60개의 탄소 원자가 축구공 모양으로 결합한 새로운 형태의 탄소 분자(C60)를 발견했다.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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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굿이너프, 스탠리 휘팅엄, 요시노 아키라, 리튬 이온 배터리 개발 (1970-80년대): 충전 가능한 고성능 배터리를 개발하여 휴대용 전자기기 혁명을 이끌었다.44
4.5.3 생명과학 및 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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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드레아스 베살리우스, 『인체의 구조에 관하여』 (1543): 인체 해부를 통해 갈레노스의 해부학 오류를 바로잡고 근대 해부학의 기초를 세웠다.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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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리엄 하비, 혈액 순환 이론 (1628): 혈액이 심장의 펌프 작용을 통해 온몸을 순환한다는 사실을 증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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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톤 판 레이우엔훅, 미생물 발견 (1670년대): 직접 만든 현미경으로 미생물의 세계를 최초로 관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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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 파스퇴르 & 로베르트 코흐, 질병의 세균설 (1860-80년대): 질병이 미생물에 의해 발생한다는 것을 증명하여, 감염병 예방과 치료에 혁명을 가져왔다.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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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산더 플레밍, 페니실린 발견 (1928): 최초의 항생제인 페니실린을 발견하여 수많은 생명을 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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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스 크렙스, 시트르산 회로(크렙스 회로) 발견 (1937): 세포 호흡의 핵심적인 대사 과정을 규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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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너스 소크, 소아마비 백신 개발 (1955): 효과적인 소아마비 백신을 개발하여 전 세계적인 질병 퇴치에 기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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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자르 밀스테인 & 조르주 쾰러, 단일클론항체 생산 기술 개발 (1975): 특정 항원에만 결합하는 항체를 대량 생산하는 하이브리도마 기술을 개발하여, 진단 및 치료 분야에 혁명을 가져왔다.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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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게놈 프로젝트 (완료, 2003): 인간의 모든 유전 정보를 해독하여, 유전병 연구와 맞춤 의학의 토대를 마련했다.21
4.5.4 컴퓨터 과학 및 인공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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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폰 노이만, 폰 노이만 구조 (1945): 프로그램 내장 방식 컴퓨터 구조를 제안하여 현대 컴퓨터의 기본 설계 원리를 확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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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매카시 외, 다트머스 회의 제안서 (1956): ’인공지능(Artificial Intelligence)’이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하고, AI를 독립적인 연구 분야로 확립하는 계기를 마련했다.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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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랭크 로젠블랫, “퍼셉트론: 뇌의 정보 저장 및 조직에 대한 확률적 모델” (1958): 인공 신경망의 기본 단위인 퍼셉트론을 제안하여 기계 학습의 초기 발전을 이끌었다.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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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글러스 엥겔바트, “The Mother of All Demos” (1968): 컴퓨터 마우스, 그래픽 사용자 인터페이스(GUI), 하이퍼텍스트 등 현대 퍼스널 컴퓨팅의 핵심 기술들을 최초로 시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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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거 F. 커드, “대규모 공유 데이터 뱅크를 위한 데이터의 관계형 모델” (1970): 현대 데이터베이스 시스템의 근간이 되는 관계형 모델을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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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트 서프 & 로버트 칸, TCP/IP 프로토콜 개발 (1974): 인터넷의 핵심 통신 규약인 TCP/IP를 설계하여 월드 와이드 웹의 기반을 닦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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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 버너스리, 월드 와이드 웹 제안 (1989): 하이퍼텍스트 시스템을 기반으로 한 월드 와이드 웹을 고안하고 최초의 웹 브라우저와 서버를 개발했다.
5. 결론: 과학적 영향력의 변화하는 지형
본 보고서는 ’가장 위대한 연구 1000개’를 영향력 순으로 제시하라는 요구에 대해, ’영향력’이라는 개념 자체를 해부하고 다차원적으로 접근하는 것으로 응답했다. 분석을 통해 우리는 영향력이 단일한 척도로 측정될 수 없으며, 최소한 두 가지 상보적인 측면, 즉 ’도구적 영향력’과 ’개념적 영향력’으로 이해되어야 함을 확인했다.
제1부에서 살펴본 계량서지학적 지표들은 연구의 ’도구적 영향력’을 측정하는 데 유용하다. 높은 인용 횟수를 기록한 방법론 논문들은 수많은 후속 연구를 가능하게 하는 ‘발견의 엔진’ 역할을 하며, 과학 공동체의 실질적인 발전에 기여한다. 그러나 이러한 지표들은 학문의 근본적인 틀을 바꾸는 ’개념적 영향력’을 포착하는 데는 명백한 한계를 보인다.
제2부에서는 토머스 쿤의 패러다임 전환 이론을 통해 이러한 ’개념적 영향력’을 분석했다. 뉴턴, 다윈, 아인슈타인, 튜링과 같은 거인들의 연구는 단순히 새로운 지식을 추가하는 것을 넘어, 우리가 세계를 이해하는 방식 자체를 재구성했다. 이러한 연구들은 과학의 ’초석’으로서, 그 영향력은 인용 횟수를 초월하는 깊이와 지속성을 가진다.
궁극적으로, 연구의 영향력은 고정된 실체가 아니라 시대와 관점에 따라 끊임없이 재평가되는 역동적인 개념이다. 오늘날의 고인용 논문이 미래에는 더 나은 기술로 대체될 수 있으며, 오랫동안 잊혔던 연구가 새로운 관점에서 재조명되어 혁명의 씨앗이 될 수도 있다. 따라서 미래의 연구 평가는 JIF나 h-index와 같은 단일 지표에 의존하는 관행에서 벗어나, DORA 선언과 라이덴 선언문이 제안하는 바와 같이 정량적 데이터와 정성적 전문가 평가를 조화롭게 활용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이는 연구의 다양한 가치를 인정하고, 보다 건강하고 창의적인 학문 생태계를 조성하는 길이 될 것이다. 본 보고서가 제시한 다차원적 목록은 그러한 시도의 한 예시로서, 과학적 성취의 풍부하고 복잡한 태피스트리를 이해하는 데 기여하고자 한다.
6.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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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hese are The Most-Cited Research Papers Of All Time (via Nature) - Plus More ATG News & Announcements for 4/16/25 - Charleston Hub, https://www.charleston-hub.com/2025/04/these-are-the-most-cited-research-papers-of-all-time-via-nature-plus-more-atg-news-announcements-for-4-1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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