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의 본질과 인간 욕망의 우선성: 성공적인 혁신을 위한 인본주의적 접근에 대하여
1. 서론: 기술 만능주의의 함정과 욕망의 발견
현대 산업 생태계에서 가장 빈번하게 목격되는 오해 중 하나는 “기술적 우위가 곧 시장의 성공을 담보한다“는 신념이다. 그러나 역사는 고도의 공학적 성취가 시장의 냉담한 반응 속에 사장되는 사례들로 가득 차 있다. 본 보고서의 핵심 명제는 사용자 질의에 명시된 바와 같이, **“기술은 그 자체로 목적이 아니라, 인간의 잠재된 욕망을 실현하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수단(Enabler)”**이라는 점이다. 혁신의 본질은 코드를 작성하거나 회로를 설계하는 행위 이전에, 인간의 고통(Pain Point)과 욕망(Desire)을 깊이 있게 공감하고 해석하는 인문학적 통찰에서 비롯된다.
본 보고서는 ’기술 주도(Technology Push)’와 ’시장 견인(Market Pull)’의 이론적 대립을 시작으로, 스티브 잡스의 디자인 철학, 클레이튼 크리스텐슨의 ‘해결해야 할 과제(Jobs-to-be-Done)’ 이론, 그리고 노키아의 몰락과 넷플릭스의 부상 등 다양한 사례를 통해 인간 중심 혁신의 메커니즘을 철저히 규명하고자 한다. 또한, 빅데이터의 한계를 보완하는 ’씩 데이터(Thick Data)’의 중요성과 AI 시대에 더욱 부각되는 인문학적 소양(Liberal Arts)의 가치를 심층적으로 분석한다.
2. 혁신의 두 가지 패러다임: 기술 주도(Technology Push)와 시장 견인(Market Pull)
혁신의 출발점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하나는 실험실에서의 기술적 발견에서 시작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시장의 니즈에서 시작하는 것이다. 이 두 전략의 차이를 이해하는 것은 기업의 자원 배분과 리스크 관리에 있어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2.1 기술 주도(Technology Push): 해결책이 문제를 찾아 헤매다
기술 주도 전략은 기업의 R&D 역량을 바탕으로 새로운 기술을 개발하고, 이를 시장에 밀어넣는 방식이다. 이 접근법의 기저에는 “우리가 혁신적인 기술을 만들면, 소비자는 자연스럽게 따라올 것“이라는 공급자 중심의 사고가 깔려 있다.1
- 장점: 기술 주도 혁신은 경쟁자가 모방하기 힘든 독점적인 지적 재산(IP)을 확보할 수 있게 하며, 기존 시장의 규칙을 파괴하는 급진적 혁신(Radical Innovation)을 가능하게 한다. 소비자가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제품을 선보일 때 기업은 시장 선도자의 지위를 누릴 수 있다.1
- 단점: 가장 큰 위험은 소위 “문제를 찾아 헤매는 해결책(Solution looking for a problem)“이 될 가능성이다.3 기술적으로는 완벽하지만, 정작 그 기술을 필요로 하는 사용자가 존재하지 않거나, 사용자가 느끼는 효용에 비해 비용이나 학습 장벽이 너무 높을 때 발생한다.
사례 분석: 레이저(Laser)의 초기 딜레마
레이저는 오늘날 의료, 통신, 가전 등 전 산업에 걸쳐 필수적인 기술이지만, 1960년 처음 발명되었을 당시에는 “문제를 찾아다니는 해결책“이라는 조롱을 받았다.4 과학자들은 빛을 증폭시키는 기술을 개발했지만, 이것이 바코드 스캐너나 시력 교정 수술에 쓰일 것이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레이저가 상업적 성공을 거두기까지는 기술 그 자체가 아니라, 그 기술이 해결할 수 있는 구체적인 인간의 문제(예: 데이터 저장, 정밀 절단)가 결합되는 수십 년의 시간이 필요했다. 이는 기술이 선행되더라도 결국 인간의 니즈와 만나지 못하면 미완의 발명품으로 남음을 시사한다.
2.2 시장 견인(Market Pull): 결핍에서 시작된 혁신
시장 견인 전략은 소비자의 불만, 미충족 욕구, 또는 특정 문제 상황에서 출발한다. “소비자가 무엇을 원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찾고, 그 답을 구현하기 위해 필요한 기술을 개발하거나 소싱하는 방식이다.1
- 메커니즘: 이 전략에서 기술은 철저히 도구적 위치를 점한다. 생산자는 소비자의 문제를 학습하고, 기존 방식보다 더 나은 기능을 제공하기 위해 기술을 활용한다.2
- 장점: 시장 수요가 이미 검증된 상태에서 개발이 진행되므로 실패 확률이 낮고, 수익 창출 시점이 빠르다.
- 단점: 소비자가 현재 인지하고 있는 문제에만 집중할 경우, 점진적 개선(Incremental Innovation)에 그칠 위험이 있다. 소비자는 자신이 경험해보지 못한 기술적 가능성을 요구할 수 없기 때문이다(예: “더 빠른 말“의 역설).1
| 비교 항목 | 기술 주도 (Technology Push) | 시장 견인 (Market Pull) |
|---|---|---|
| 출발점 | R&D 연구소, 기술적 발견 | 소비자 피드백, 시장 조사 |
| 핵심 가정 | “제품이 시장을 창출한다.” | “시장이 제품을 결정한다.” |
| 주요 리스크 | 시장성 부재 (아무도 원하지 않음) | 기술적 구현 불가능, 치열한 경쟁 |
| 혁신 유형 | 급진적, 파괴적 혁신 | 점진적, 개선적 혁신 |
| 성공 요인 | 잠재된 용처의 발굴 | 명확한 문제 정의와 해결 |
2.3 디자인 씽킹(Design Thinking)의 교훈: 바람직함(Desirability)의 우선성
IDEO가 주창한 디자인 씽킹 방법론은 혁신이 다음 세 가지 요소의 교집합에서 일어난다고 정의한다 7:
- 바람직함(Desirability, 인간 관점): 사람들이 이것을 원하는가?
- 실현 가능성(Feasibility, 기술 관점): 기술적으로 구현 가능한가?
- 지속 가능성(Viability, 비즈니스 관점): 경제적으로 이익이 남는가?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순서다. 많은 엔지니어링 중심 조직이 ’실현 가능성’에서 시작해 ’지속 가능성’을 따진 후, 마지막으로 마케팅을 통해 ’바람직함’을 주입하려 한다. 그러나 성공적인 제품은 반드시 ’바람직함’에서 출발해야 한다. 인간이 원하지 않는 기술은 아무리 고도화되어 있어도 시장에서 생존할 수 없다.9 기술은 인간이 바라는 경험을 구현하기 위한 ’실현 가능성’의 도구일 뿐이다.
3. ‘해결해야 할 과제(Jobs-to-be-Done)’ 이론과 소비의 심리학
소비자가 제품을 구매하는 행위의 기저에는 표면적인 기능 이상의 심리적 동기가 작동한다. 클레이튼 크리스텐슨 교수의 ‘해결해야 할 과제(Jobs-to-be-Done, JTBD)’ 이론은 이를 명쾌하게 설명한다.
3.1 제품이 아닌 ’진전(Progress)’을 구매한다
JTBD 이론의 핵심은 “사람들은 제품을 구매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삶을 진전시키기 위해 제품을 ’고용(Hire)’한다“는 것이다.11 소비자가 4분의 1인치 드릴 비트를 구매할 때, 그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드릴 비트라는 금속 덩어리가 아니라 ’4분의 1인치 구멍’이다. 더 나아가, 그 구멍을 통해 선반을 달고, 방을 정리하여 얻는 ’성취감’과 ’쾌적한 공간’이 최종적인 욕망이다.12
밀크셰이크의 사례:
크리스텐슨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패스트푸드 체인이 밀크셰이크 판매를 늘리기 위해 맛과 농도를 개선(기술적 접근)했을 때는 매출 변화가 없었다. 그러나 소비자들이 밀크셰이크를 ’고용’하는 이유를 관찰한 결과, 아침 출근길의 지루함을 달래고 점심때까지 허기를 막아주는 역할(기능적/정서적 과제)을 하고 있음을 발견했다.12 경쟁자는 다른 밀크셰이크가 아니라 바나나(너무 빨리 먹음), 도넛(금방 배고픔), 베이글(운전 중 먹기 힘듦)이었다. 이 통찰을 바탕으로 밀크셰이크를 더 걸쭉하게 만들고(오래 먹을 수 있도록) 과일 알갱이를 추가(지루함 방지)하자 매출이 급증했다. 기술적 스펙이 아니라 ’지루함 해소’라는 인간적 욕망에 기술을 맞춘 결과다.
3.2 욕망의 세 가지 차원
모든 ’과제(Job)’는 세 가지 차원을 가진다 11:
- 기능적 차원(Functional): 실질적인 작업 수행 (예: “A에서 B로 이동시켜 줘.”)
- 정서적 차원(Emotional): 사용 중 느끼는 감정 (예: “이동하는 동안 안전하다고 느끼게 해줘.”)
- 사회적 차원(Social): 타인에게 비치는 모습 (예: “나를 성공한 사람처럼 보이게 해줘.”)
기술 중심의 제품 개발은 종종 기능적 차원에만 몰두하다가 정서적, 사회적 차원을 간과하여 실패한다. 진정한 혁신은 이 세 가지 차원을 모두 충족시키는 상품을 만드는 것이다.
4. 실패 사례 분석: 기술이 인간을 압도할 때
기술적 우수성이 시장 성공을 보장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역사적인 실패 사례들을 통해 더욱 극명하게 드러난다. 이들 사례는 ’사람의 욕망’을 읽지 못하고 기술 자체에 도취되었을 때 어떤 결과가 초래되는지 보여준다.
4.1 세그웨이(Segway): 기술적 경이로움, 인문학적 재앙
2001년 출시된 세그웨이는 자이로스코프 기술의 정점이었다. 딘 카멘(Dean Kamen)과 투자자들은 이 기계가 자동차를 대체하고 도시 설계를 바꿀 것이라고 호언장담했다.14 스티브 잡스조차 초기에는 그 기술에 매료되었다. 그러나 세그웨이는 처참하게 실패했다.
실패의 원인 분석:
- 명확한 니즈의 부재: 세그웨이는 ’걷기’를 대체하려 했으나,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걷기는 고통스러운 문제가 아니었다.14 해결해야 할 고통이 없는 곳에 솔루션을 들이민 셈이다.
- 사회적 맥락(Context)의 무시: 세그웨이는 인도에서 타기에는 너무 빠르고 위협적이었으며, 차도에서 타기에는 너무 느리고 위험했다.14 기존의 도시 인프라와 사회적 규범 어디에도 속하지 못했다.
- 사회적/정서적 욕망의 불일치: 스티브 잡스는 나중에 세그웨이의 디자인이 “사람 같지 않다(not anthropomorphic)“고 비판했다.16 세그웨이를 탄 모습은 ‘게으른 사람’ 혹은 ’괴짜’처럼 보였으며, 이는 사용자의 사회적 평판(Social Job)을 떨어뜨렸다. 5,000달러라는 가격은 기술적 원가로는 타당했을지 모르나, 소비자가 느끼는 가치(Value)와는 괴리가 컸다.
반면, 최근의 전동 킥보드 공유 서비스(라임, 킥고잉 등)는 세그웨이와 유사한 기술을 사용하지만, ’소유’가 아닌 ‘공유’ 모델을 통해 “라스트 마일(Last Mile) 이동의 편의성“이라는 욕망을 저렴하게 충족시킴으로써 시장에 안착했다. 기술이 바뀐 것이 아니라, 욕망을 충족시키는 방식(비즈니스 모델)이 바뀐 것이다.
4.2 구글 글래스(Google Glass): 프라이버시와 사회적 규범의 충돌
구글 글래스는 웨어러블 컴퓨팅의 미래로 불렸다. 음성 인식, 증강 현실(AR), 초소형 카메라 기술이 집약된 기기였다. 그러나 이 제품은 대중 시장에서 퇴출되었고, 사용자들은 ’글래스홀(Glasshole, Glass+Asshole)’이라는 멸칭을 얻었다.17
실패의 원인 분석:
- 사회적 계약의 위반: 안경에 달린 카메라는 타인을 허락 없이 촬영할 수 있다는 공포를 불러일으켰다.19 인간 관계에서의 신뢰와 프라이버시라는 기본적인 욕망을 기술이 침해한 것이다.
- 효용의 부족: 일반 소비자에게 ’눈앞에 알림을 띄우는 기능’은 1,500달러의 비용과 사회적 낙인을 감수할 만큼 절박한 욕망이 아니었다.21 스마트폰으로도 충분히 해결 가능한 과제였다.
- 기술 과시형 접근: 구글은 이 기기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기능)’에 집중했지만, 사람들이 ’왜 그것을 착용해야 하는지(정서/사회)’에 대한 답을 주지 못했다.
흥미롭게도 구글 글래스는 이후 공장, 병원 등 특수 환경에서 부활했다.18 이 공간에서는 ‘두 손을 자유롭게 쓰며 정보를 확인해야 하는’ 명확한 기능적 과제가 존재하고, 사생활 침해라는 사회적 맥락이 제거되었기 때문이다. 이는 기술 자체가 나쁜 것이 아니라, 적절한 욕망과 맥락을 찾지 못한 것이 실패의 원인임을 증명한다.
5. 스티브 잡스와 애플: 공감(Empathy)의 엔지니어링
스티브 잡스는 기술자가 아니라 인문학적 기획자에 가까웠다. 그는 “고객의 경험에서 시작하여 기술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You’ve got to start with the customer experience and work backwards to the technology)“는 철학을 고수했다.22 이는 기술 우선주의에 대한 가장 강력한 반박이다.
5.1 아이폰의 탄생: 잠재된 욕망의 구체화
아이폰이 출시되기 전, 스마트폰 시장은 쿼티(QWERTY) 키보드가 달린 블랙베리가 지배하고 있었다. 기술적 관점에서는 물리 키보드가 오타가 적고 효율적이었다. 그러나 애플은 사용자의 더 깊은 욕망, 즉 ’손안의 인터넷’과 ’무한한 콘텐츠 소비’에 주목했다.
- 기술의 종속성: 잡스는 화면을 키우기 위해 물리 키보드를 없애고 싶어 했고, 이를 위해 ‘멀티터치’ 기술을 개발/채택했다.25 멀티터치 기술이 있어서 아이폰을 만든 것이 아니라, 최고의 사용자 경험(UX)을 만들기 위해 멀티터치 기술이 필요했던 것이다.
- 복잡성의 제거: 엔지니어들은 기능을 더하려 하지만, 잡스는 기능을 뺌으로써 사용 편의성이라는 욕망을 충족시켰다. 아이팟의 ‘클릭 휠’ 역시 수천 곡의 노래를 쉽게 탐색하고 싶다는 욕망을 해결하기 위한 기술적 해법이었다.25
5.2 인문학(Liberal Arts)과 기술의 교차점
잡스는 애플이 “기술과 인문학의 교차점“에 서 있다고 강조했다.26 여기서 인문학이란 인간의 본성, 심리, 미학에 대한 이해를 의미한다. 기술이 아무리 뛰어나도 사람의 마음(Heart)을 울리지 못하면 무용지물이라는 것이다.
이 철학은 오늘날 AI 시대에 더욱 유효하다. 코딩과 데이터 처리는 AI가 자동화할 수 있지만, “어떤 문제를 해결해야 인간이 행복한가?“라는 질문은 오직 인간에 대한 깊은 이해(인문학)를 가진 사람만이 던질 수 있기 때문이다.28
6. 피벗(Pivot): 시장의 속삭임에 귀 기울인 승자들
처음에는 기술적 목표를 가지고 시작했으나, 시장의 반응(욕망)을 확인하고 과감하게 방향을 튼 기업들의 사례는 “기술보다 욕망이 중요하다“는 명제를 강력하게 뒷받침한다.
6.1 슬랙(Slack): 게임에서 커뮤니케이션으로
기업용 메신저 슬랙은 원래 ’글리치(Glitch)’라는 온라인 게임을 만들던 회사였다.30 게임 개발 과정에서 팀원들끼리 소통하기 위해 내부적으로 만든 채팅 도구가 있었는데, 정작 게임은 실패했지만 이 채팅 도구에 대한 팀원들의 의존도와 만족도는 매우 높았다.
창업자 스튜어트 버터필드는 수년간 공들인 게임 기술(그래픽, 물리 엔진 등)을 과감히 버리고, 내부 소통 도구라는 ’부산물’에 집중했다. 그는 현대의 지식 노동자들이 ’이메일의 홍수에서 벗어나 투명하고 빠르게 소통하고 싶어 하는 욕망’을 발견한 것이다.32 만약 그가 자신이 개발한 게임 기술에 집착했다면 슬랙은 탄생하지 못했을 것이다.
6.2 넷플릭스(Netflix): 소유에서 접속으로, 기다림에서 즉시성으로
넷플릭스는 DVD 대여업으로 시작했다. 그러나 리드 헤이스팅스는 소비자의 욕망이 ’DVD라는 매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영화를 보는 즐거움’과 ’기다리기 싫은 조급함(Instant Gratification)’에 있음을 간파했다.
2007년, 스트리밍 기술은 아직 화질이 조악하고 끊김이 많은 불완전한 기술이었다.34 기술적 완성도를 중시하는 엔지니어라면 스트리밍 도입을 반대했을 것이다. 그러나 넷플릭스는 화질이 조금 떨어지더라도 “지금 당장 보고 싶다“는 인간의 욕망이 더 강력하다고 판단했고, 스트리밍으로 과감히 전환했다. 결과적으로 이 선택은 블록버스터를 파산시키고 엔터테인먼트 산업을 재편했다. 또한, 시리즈 전 편을 한꺼번에 공개하는 ‘빈지 워칭(Binge-watching)’ 전략 역시 기술적 결정이 아니라, 이야기에 몰입하고 싶어 하는 인간의 심리를 꿰뚫은 결과였다.35
7. 데이터의 두 얼굴: 빅데이터와 씩 데이터(Thick Data)
기술 중심 사고는 종종 정량화할 수 있는 ’빅데이터’에 매몰된다. 그러나 인간의 욕망은 숫자로 잘 드러나지 않는 복잡한 맥락 속에 숨어 있다. 이를 읽어내기 위해서는 인류학적 접근인 ’씩 데이터(Thick Data)’가 필요하다.
7.1 노키아의 몰락과 트리시아 왕(Tricia Wang)의 경고
2009년, 노키아는 전 세계 휴대폰 시장의 절대 강자였다. 당시 기술 인류학자 트리시아 왕은 중국 등 신흥 시장에서 현지 조사를 수행하며 중요한 징후를 발견했다. 저소득층 이주 노동자들조차 비싼 스마트폰을 사기 위해 기꺼이 지갑을 열 준비가 되어 있다는 사실이었다.36 그들에게 스마트폰은 단순한 기계가 아니라, 세상과 연결되는 유일한 통로이자 신분 상승의 상징(사회적/정서적 욕망)이었다.
트리시아 왕은 노키아 경영진에게 스마트폰으로의 전환을 건의했다. 그러나 경영진은 수백만 건의 판매 데이터(빅데이터)를 들이대며 이를 거절했다. “데이터상으로 우리는 여전히 잘 팔리고 있고, 저소득층은 비싼 기기를 살 여력이 없다“는 것이었다.37 노키아는 측정 가능한 과거 데이터에 의존하다가, 측정 불가능한 인간의 욕망 변화를 놓쳤고, 결국 아이폰과 안드로이드에 밀려 몰락했다. 빅데이터는 ’무엇(What)’이 일어났는지는 보여주지만, ‘왜(Why)’ 일어나는지는 설명하지 못한다. 그 ’왜’를 설명하는 것이 바로 인간에 대한 통찰이다.
7.2 센스메이킹(Sensemaking): 동물원이 아닌 사바나로 가라
크리스티안 마두스베르그는 그의 저서 센스메이킹에서 기업들이 알고리즘과 데이터에 갇혀 현실 감각을 잃고 있다고 비판한다.39 그는 이를 “동물원(실험실, 포커스 그룹, 엑셀 시트)에서 동물을 연구하는 것“에 비유하며, 야생의 “사바나(소비자의 실제 삶의 현장)“로 나가야 한다고 주장한다.41
기술은 실험실(동물원)에서 완벽할 수 있으나, 인간의 욕망은 복잡한 문화적 맥락(사바나) 속에서 형성된다. 따라서 혁신가는 코드를 짜기 전에 인문학적, 사회학적 관찰자가 되어야 한다.
8. ’더 빠른 말(Faster Horse)’의 신화와 진실
기술 우선주의자들이 흔히 인용하는 헨리 포드의 명언이 있다. “사람들에게 무엇을 원하냐고 물었다면, 그들은 더 빠른 말이라고 대답했을 것이다.” 이 말은 종종 “고객의 말은 들을 필요가 없고, 기술적 비전으로 밀어붙여야 한다“는 논거로 쓰인다.6
8.1 욕망의 해석: 수단이 아닌 목적을 읽어라
하지만 이 해석은 틀렸다. 고객이 “더 빠른 말“을 원한다고 했을 때, 그들의 **표면적 요구(Solution)**는 ’말(Horse)’이었지만, **내면의 욕망(Desire/Job)**은 ’더 빠른 이동(Faster)’이었다.6
포드의 천재성은 고객을 무시한 것이 아니라, 고객이 표현할 수 있는 한계(말)를 넘어 그들의 진짜 욕망(이동 속도)을 간파하고, 이를 ’자동차’라는 새로운 기술로 충족시켜 준 데 있다. 즉, 고객은 기술적 해결책을 모를 뿐, 자신의 욕망에 대해서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혁신가는 고객이 말하는 해결책(말)에 얽매이지 말고, 그 뒤에 숨은 욕망(속도)을 읽어내어 최적의 기술(엔진)을 매칭해야 한다.
8.2 소니 워크맨과 직관
소니의 아키오 모리타 역시 시장 조사를 반대하고 워크맨 출시를 강행했다.45 당시 시장 조사는 “녹음 기능이 없는 카세트 플레이어는 안 팔린다“고 했다. 그러나 모리타는 젊은이들이 음악을 하루 종일 듣고 싶어 하지만 거대한 붐박스를 들고 다니기 힘들어하는 모습을 관찰했다. 그는 ’언제 어디서나 나만의 음악을 즐기고 싶은 욕망’을 확신했고, 기존 기술을 조합해 워크맨을 만들었다. 이는 데이터가 아닌 인간 행동에 대한 직관적 통찰(Empathy)이 만들어낸 승리였다.
9. 기술 없이도 성공한 욕망의 산물: 펫 락(Pet Rock)
기술이 중요하지 않음을 보여주는 가장 극단적이고 흥미로운 사례는 1970년대의 ’펫 락(Pet Rock)’이다. 이것은 말 그대로 예쁜 상자에 담긴 평범한 돌멩이였다. 전자 회로도, 앱도, 기능도 없었다.47
9.1 정서적 욕망의 충족
펫 락은 수백만 개가 팔려나갔다. 왜 사람들은 돈을 주고 돌을 샀을까? 당시 미국 사회는 베트남 전쟁과 워터게이트 사건 등으로 우울했고, 사람들은 복잡한 관계나 책임감 없이 위로받고 웃을 수 있는 대상을 원했다. 펫 락은 “밥을 줄 필요도, 산책시킬 필요도 없는 완벽한 애완동물“이라는 유머와 스토리텔링을 통해 ’외로움 해소’와 ’재미’라는 정서적 욕망을 충족시켰다.47
이는 제품의 가치가 기술적 복잡성이 아니라, 그것이 건드리는 감정의 깊이에 비례한다는 것을 증명한다.
10. 우연한 기술과 욕망의 만남: 포스트잇(Post-it)
때로는 기술이 먼저 개발되기도 한다. 하지만 그 기술이 빛을 보는 순간은 반드시 인간의 니즈와 결합하는 시점이다.
3M의 연구원 스펜서 실버는 강력 접착제를 개발하려다 실수로 ’잘 떨어지는 접착제’를 만들었다.49 기술적으로 이것은 실패작이었고 5년 동안 방치되었다. “접착제는 강해야 한다“는 고정관념 속에서는 쓸모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동료 아트 프라이가 교회 성가대에서 찬송가 페이지 표시가 자꾸 떨어지는 불편함을 겪으면서 상황이 반전되었다. 그는 “종이를 찢지 않고 붙였다 뗄 수 있는 책갈피“에 대한 욕망을 느꼈고, 실패한 기술이 이 욕망을 충족시켜 줄 완벽한 솔루션임을 깨달았다.50 포스트잇의 성공은 접착제 배합 기술 때문이 아니라, ’임시 메모’라는 인간의 잠재된 행동 양식을 찾아냈기 때문에 가능했다.
11. 결론: 인공지능 시대, 인간다움이 경쟁력이다
지금까지의 논의를 종합하면, 기술은 인간의 욕망이라는 대지를 흐르는 물과 같다. 물길(욕망)을 파악하지 못하면 물(기술)은 흩어져 버리거나 엉뚱한 곳으로 흘러가 재앙이 된다.
11.1 요약 및 시사점
- 기술은 가변적이나 욕망은 불변한다: 말에서 자동차로, 편지에서 이메일로, 다시 슬랙으로 수단은 변했지만, ’더 빨리 이동하고 소통하고 싶은 욕망’은 변하지 않았다. 따라서 기업은 변하는 기술보다 변하지 않는 욕망에 투자해야 한다.
- 공감이 최고의 기술이다: 애플, 에어비앤비, 넷플릭스의 공통점은 엔지니어링 역량이 아니라, 사용자 입장에서 생각하는 공감 능력(Empathy)이 탁월했다는 점이다. 에어비앤비는 ’신뢰’를 디자인했고, 애플은 ’감성’을 코딩했다.
- 인문학적 소양의 부상: AI가 코딩과 데이터 분석을 자동화할수록, “무엇을 만들 것인가?”, “왜 만들어야 하는가?”, “이것이 인간에게 어떤 의미인가?“를 묻는 철학적, 인문학적 질문의 가치는 더욱 높아질 것이다.29
11.2 제언
사용자의 질의인 “기술이 중요한 게 아니라 사람의 욕망을 파악하고 충족시켜 주는 상품을 만들어야 한다“는 통찰은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역설적으로 더욱 중요한 경영 원칙이 되어야 한다.
- 엔지니어에게 인문학을 가르쳐라: 개발자가 코드 너머의 사람을 볼 수 있게 해야 한다.
- 데이터 뒤의 맥락을 읽어라: 빅데이터의 함정에 빠지지 말고, 소수의 고객이라도 깊이 관찰하여 씩 데이터(Thick Data)를 확보해야 한다.
- 기능(Function)이 아닌 과제(Job)를 정의하라: 우리 회사가 ’드릴’을 파는 회사인지, ’구멍’을 파는 회사인지, 아니면 ’정리된 공간의 안락함’을 파는 회사인지 재정의해야 한다.
결국 최고의 상품은 최첨단 기술로 무장한 상품이 아니라, 사용자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느끼고 있던 가려운 곳을 정확히 긁어주는 상품이다. 기술은 바로 그 ’효자손’을 만들기 위한 재료일 뿐이다.
12. 참고 자료
- Market Pull & Technology Push: How To Combine For Innovative Designs, https://innovation.world/market-pull-technology-push/
- Solution Perception 101: Technology Push vs. Market Pull | by Tomas Kindl | Air Ventures, https://medium.com/air-ventures/solution-perception-101-technology-push-vs-market-pull-618a4f52d48b
- Technology-push vs, https://www-pub.iaea.org/Mtcd/Meetings/PDFplus/2007/cn142/cn142Papers/40_J_%20Rovny.doc
- The first laser - The University of Chicago Press, https://press.uchicago.edu/Misc/Chicago/284158_townes.html
- The Laser – “A Solution Looking For a Problem”, https://www.aau.edu/sites/default/files/%40%20Files/Research%20and%20Scholarship/Why%20University%20Research%20Matters/Infographics/laser-powerpoint.pdf
- The Henry Ford Innovation Paradox – Solved | Thinking Bigger, https://ithinkbigger.com/the-henry-ford-innovation-paradox-solved/
- IDEO Design Thinking, https://designthinking.ideo.com/
- Desirability, feasibility and viability diagram: What does it mean? - UX Design Institute, https://www.uxdesigninstitute.com/blog/desirability-viability-and-feasibility/
- What is Desirability, Viability, and Feasibility? [+ Design Review Template] - UXPin, https://www.uxpin.com/studio/blog/design-review-template-balancing-desirability-viability-feasibility/
- Desirability, Feasibility, Viability: The Sweet Spot for Innovation | by Kristann Orton - Medium, https://medium.com/innovation-sweet-spot/desirability-feasibility-viability-the-sweet-spot-for-innovation-d7946de2183c
- Core Tenets of Jobs-to-be-Done (JTBD) - Learning Loop, https://learningloop.io/glossary/core-tenets-of-jobs-to-be-done
- Jobs to Be Done Theory - Christensen Institute, https://www.christenseninstitute.org/theory/jobs-to-be-d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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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he TRUE story of Post-It Notes, and how they almost failed - Idea to Value, https://www.ideatovalue.com/insp/nickskillicorn/2017/04/true-story-post-notes-almost-failed/
- Why Philosophy Majors Will Thrive in the AI Revolution | by Ibrahim Sajid Malick | Medium, https://medium.com/@IbrahimMalick/why-philosophy-majors-will-thrive-in-the-ai-revolution-e04465d6c9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