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5.1.2 지식 창출 업무(Knowledge Work)에서의 강제 할당(Forced Distribution)이 유발하는 성과 왜곡
전통적인 생산 라인과 달리, 엔지니어들이 수행하는 하드웨어 설계, 소프트웨어 아키텍처링, 그리고 알고리즘 개발 등은 본질적으로 **지식 창출 업무(Knowledge Work)**에 해당한다. 지식 근로자의 성과(Output)는 투입된 노동 시간에 비례하여 선형적으로 증가하지 않는다. 단 하루 만에 작성된 단 한 줄의 코드가 회사의 서버 비용을 절반으로 줄일 수도 있고, 수개월 동안 고생하여 만든 수만 줄의 코드가 막대한 기술 부채(Technical Debt)만을 남긴 채 상용화에 실패할 수도 있다.
이러한 지식 창출 업무의 특수성을 무시한 채, 상위 10%, 중위 80%, 하위 10% 등의 비율을 미리 정해두고 직원들을 평가하는 강제 할당(Forced Distribution) 평가 제도를 도입하면 조직 전반에 치명적인 ’성과 왜곡 현상’이 발생한다.
1. 정량적 지표의 함정과 체리피킹(Cherry-picking) 현상
경영자(CEO)나 인사 부서(HR)는 공정성(Fairness)을 확보한다는 명목 아래, 지식 근로자의 성과를 계량화하기 쉬운 정량적 지표(예: 커밋 횟수, 해결한 지라(Jira) 티켓 수, 작성한 코드의 라인 수(LOC) 등)로 묶으려는 유혹에 빠진다. 그러나 강제 할당 체제 아래에서 등급이 깎이지 않으려는 엔지니어들은 이러한 지표를 역이용하는 왜곡된 행동을 보이게 된다.
- 쉬운 과제의 선점: 스크럼 마스터(Scrum Master)가 스프린트 백로그(Sprint Backlog)를 배분할 때, 엔지니어들은 해결하기 까다롭지만 제품의 근본적인 경쟁력을 높이는 어려운 과제(예: 코어 엔진의 메모리 누수 해결)를 기피한다. 대신, 화면의 UI를 살짝 수정하거나, 즉각적으로 눈에 띄고 해결하기 쉬운 자잘한 버그 티켓만을 먼저 골라잡는 체리피킹(Cherry-picking) 현상이 극심해진다.
- 오버 엔지니어링(Over-Engineering): 평가자(Manager)나 과제 관리자(PM)에게 자신이 대단한 작업을 하고 있음을 과시하기 위해, 주니어(쪼렙) 엔지니어들은 간단한 라이브러리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를 굳이 복잡한 패턴을 적용해 처음부터 새로 개발하려 든다. 이는 지식의 부족함, 즉 더닝-크루거 현상(Dunning-Kruger Effect)과 결합되어 시스템 복잡도를 쓸데없이 폭증시킨다.
2. ’보이지 않는 가치’의 방치와 장기적 신뢰성 하락
지식 창출 업무에서 진정으로 중요한 성과는 당장 성과급을 결정하는 이번 분기의 영업 이익이 아니라, 3년 뒤 유지보수 비용을 낮추고 제품의 안정성을 담보하는 ’보이지 않는 아키텍처적 완성도’다. 그러나 제로섬에 기반한 강제 할당 시스템은 이러한 활동을 철저히 배격한다.
- 보이 스카우트 규칙(Boy Scout Rule)의 실종: “코드를 처음 발견했을 때보다 더 깨끗하게 만들어 놓고 떠나라“는 애자일의 기본 철학은 강제 할당 체제에서는 ’초과 근무를 야기하는 바보 같은 짓’으로 전락한다. 자신의 티켓과 무관한 남의 코드를 리팩토링해 봐야 본인의 KPI가 올라가지는 않기 때문이다.
- 크로스 코드 리뷰(Cross Code Review)의 형식화: 최고기술책임자(CTO)가 품질 관리를 위해 코드 리뷰를 강제하더라도, 엔지니어들은 동료의 코드에 신경을 쓸 여유가 없다. “Looks Good To Me (LGTM)“이라는 기계적인 승인 스탬프만 남발되며, 실제 논리적 결함은 아무도 짚어내지 못한다.
3. 타 부서와의 협업 붕괴와 지식 사일로(Silo) 구축
융합 R&D에서는 기구 설계자가 보드의 발열을 이해해야 하고, 펌웨어 엔지니어가 클라우드 통신의 지연 시간(Latency)을 고려해야 한다. 그러나 상대평가 하에서 다른 팀 혹은 동료를 돕는 행위는 자신의 시간을 빼앗아 잠재적인 나의 경쟁자의 성과를 높여주는 이적 행위가 된다.
- 결과적으로 조직 내 지식은 개개인의 머릿속(암묵지)이나 특정 부서에 갇혀버리는 지식 사일로(Knowledge Silo) 현상이 돌이킬 수 없이 심화된다.
- 이는 프러덕트 오너(PO)가 부서(예: 하드웨어팀과 소프트웨어팀) 간의 통합 일정 관리(CPM, Gantt 등)를 조율할 때 극심한 사내 정치(Office Politics)와 병목(Bottleneck)을 유발하게 만들며, PM은 기술적 논의보다 팀 간의 감정싸움을 중재하는 데 에너지를 소진하게 된다.
4. 결론: 지식 근로자에 대한 평가의 대전환
경영진은 기계 공학, 소프트웨어, 전자 제어가 집약된 첨단 기술을 만들어내는 조직에 과거의 조립 공장 라인과 같은 잣대를 들이대서는 안 된다. 최고경영진(CEO 및 CTO)은 지식 창출 업무의 특수성을 철저히 인정하고, 아래와 같은 방향으로 평가 철학을 재정립해야 한다.
- 목표 달성 여부에 기반한 절대평가: 직원이 합의된 목표 성과 지표(OKR)를 달성했다면, 하위 10%의 티오(T/O)에 맞추어 억지로 등급을 내리는 관행을 철폐해야 한다. 전원이 목표를 초과 달성했다면 전원에게 보상하는 것이 지식 근로를 동인하는 올바른 방향이다.
- 질적 피드백의 강화: 코드의 라인 수나 커밋 횟수가 아니라, 해당 엔지니어가 얼마나 어려운 구조적 문제를 해결했고, 팀 동료가 기술적 난제를 겪을 때 어떻게 멘토링했는지에 대한 정성적 판단을 다면 평가(360-degree Feedback)로 반영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