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4.3.2 정부 과제용 연구와 상용화 연구의 분리(Silo) 발생 원인
초기 딥테크(Deep Tech) 벤처가 겪는 가장 흔하면서도 치명적인 조직 병리 현상 중 하나는, 회사 내부에 ’정부 과제(Grant)를 따기 위한 데모(Demo)용 코드’와 ’실제 고객에게 팔기 위한 상용화 코드’가 철저히 분리되어 돌아가는 지식 사일로(Silo)의 형성이다. 겉으로는 수십억 원의 R&D 지원금을 수주하며 승승장구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내부의 소프트웨어 아키텍처는 두 갈래로 찢어져 기술 부채(Technical Debt)를 무한대로 증식시키고 있다. 본 절에서는 국책 과제와 상용화 트랙이 왜 분리될 수밖에 없는지, 그 구조적 원인과 최고기술책임자(CTO)의 기술 리딩 실패 요인을 분석한다.
1. 목적 함수(Objective Function)의 불일치
정부 과제를 평가하는 심사위원의 요구사항과 B2B 시장에서 딥테크 제품을 구매하는 고객의 요구사항은 완전히 상충하는 목적 함수를 가진다.
1.1 ‘보여주기식 엣지(Edge)’ vs ‘안정성과 예외 처리’
정부 과제의 제안서(RFP)를 통과하려면 “세계 최초”, “최고 성능”, “당대 유행하는 최신 알고리즘(예: Transformer 적용)“과 같은 도전적인 키워드가 필수적이다. 연구원들은 이 스펙을 맞추기 위해 극히 통제된 랩(Lab) 환경에서 단 한 번만 성공하면 되는 과적합(Overfitting)된 데모 시스템을 구축한다.
반면 프러덕트 오너(PO)가 들고 오는 고객의 요구사항은 “구형 브라우저에서도 돌아가는가?”, “오프라인 상태의 기계에서도 끊김이 없는가?”, “비정상적인 입력값이 들어왔을 때 프로그램이 죽지 않는가(Exception Handling)?” 등 철저한 무결성과 신뢰성에 맞춰져 있다. 이 두 가지 목적을 하나의 코드베이스(Codebase)에 담는 것은 공학적으로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조직 내에 ’과제용 레포지토리(Repository)’와 ’상용화 레포지토리’가 두 집 살림을 시작하게 된다.
1.2 타임라인과 애자일(Agile) 사이클의 붕괴
정부 과제는 철저한 폭포수 모델(Waterfall)을 따른다. 연초에 계획된 예산과 마일스톤에 따라 1년 뒤의 결과물을 평가받는다. 그러나 현실 시장은 1주일 단위로 고객의 불만이 터져 나오고 경쟁사가 신기능을 출시하는 격동의 전장이며, 애자일 V 모델에 입각한 기민한 피벗(Pivot)을 요구한다. 과제 관리자(PM)가 정부 보고서 마감일에 맞춰 엔지니어를 쪼는 동안, 고객의 버그 리포트(Bug Report)는 방치된다.
2. 조직적 사일로(Silo)와 엔지니어 계급의 분화
코드가 두 갈래로 나뉘면, 조직의 사람들도 두 부류로 찢어지며 심각한 갈등 관리(Conflict Management)의 문제를 야기한다.
graph TD
A[정부 지원금 수주 및<br>과제 스펙 요건] --> B{목적 함수 불일치}
C[시장/고객의 상용화 요건] --> B
B --> D[과제 전담 연구 조직<br>선행 논문, 스펙 달성 위주]
B --> E[상용화 전담 개발 조직<br>버그 픽스, 예외 처리, QA 중심]
D --> F[과시용 데모 코드(Spaghetti)<br>재사용 불가]
E --> G[구형 아키텍처 기반의<br>상용 서비스 유지보수]
F --> H((기술 자산의 단절<br>지식 사일로 형성))
G --> H
H --> I[기술 역량 분산 및<br>전사적 자본/시간의 극심한 낭비]
style A fill:#dae8fc,stroke:#6c8ebf,stroke-width:2px;
style C fill:#f8cecc,stroke:#b85450,stroke-width:2px;
style B fill:#ffe6cc,stroke:#d79b00,stroke-width:2px;
style H fill:#e1d5e7,stroke:#9673a6,stroke-width:2px;
style I fill:#000000,stroke:#fff,stroke-width:2px,color:#fff;
그림 1. 과제용 연구와 상용화 연구의 목적 불일치로 인한 사일로 현상
2.1 ’프론티어(Frontier) 부서’와 ’뒤치다꺼리(Maintenance) 부서’의 갈등
일반적으로 정부 과제에는 머신러닝, AI 코어 알고리즘을 다루는 이른바 ’엘리트 연구원’들이 투입되어 최신 논문을 구현하는 쿨(Cool)한 작업을 수행한다. 반면, 이 알고리즘을 실제 클라이언트 서버에 연동해야 하는 백엔드/프론트엔드 개발자들은 부족한 문서화(Documentation)와 최적화되지 않은 스파게티 코드(Spaghetti Code)를 넘겨받아 ’구조 조립과 버그 픽스’라는 뒤치다꺼리를 도맡게 된다. “우리가 최신 기술을 다 만드는데 너희는 왜 이식을 못하냐“는 연구 조직과, “이딴 쓰레기 코드를 어떻게 상용 서비스에 올리냐“는 개발 조직 사이의 극심한 혐오와 갈등이 발생한다.
2.2 암묵지(Tacit Knowledge)의 무덤
정부 과제가 끝난 후 결과물 보고서가 통과되면, 해당 과제를 수행했던 엔지니어들은 다음 신규 과제로 투입된다. 이전 과제에서 만들어진 수만 줄의 코드는 주석 한 줄 제대로 달려있지 않은 채 GitHub 구석에 방치되며(암묵지의 블랙홀), 회사는 수십억 원의 R&D 지원금을 썼음에도 불구하고 다음 상용화 라운드에서 완전히 바닥부터 코드를 다시 짜야 하는(Rewrite) 제로 베이스의 저주에 빠지게 된다.
3. 결론
“연구를 위한 연구는 대학원 랩실에 남아있어야 한다.” 수익 창출을 목적으로 하는 벤처 기업에서 과제용 코드와 상용화 코드가 따로 존재한다는 것은, CTO가 기술 아키텍처를 하나로 강제 병합(Merge)시키는 강력한 기술 리더십을 상실했다는 증거다. 경영진과 CTO는 아무리 정부 스펙 달성이 급하더라도, 과제를 통해 개발된 모듈이 회사의 메인 상용화 브랜치(Branch)에 어떠한 형태로든 재사용(Reusable) 및 통합(Integration)될 수 있도록 초기부터 CI/CD(지속적 통합/배포) 파이프라인과 코드 리뷰(Code Review) 규정을 폭력적일 만큼 무자비하게 강제해야 한다. 분열된 코드는 결국 기업을 파산시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