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4 역사의 심판대: 그는 어떻게 기억될 것인가
시간이라는 가장 냉혹한 세작(Spymaster)은 결국 모든 동시대적 거짓말과 거품을 거둬들이고 인물과 사건의 본질만을 역사책의 마른 페이지 위에 발가벗겨 전시할 것이다. 일론 머스크라는 21세기 최악의 모순 덩어리 피사체 역시 동시대가 자아낸 맹목적 추종의 광풍과 주식 시장의 최면 물질이 전부 증발해버리고 난 뒤, 결국 가장 차갑고 객관적인 역사의 백색 심판대 위에 서게 될 운명이다.
그는 단순히 전기차를 많이 판 CEO나 로켓을 쏘아 올린 부자의 카테고리에 묶일 수 없는 인물이다. 왜냐하면 그는 기술혁명(Technological Revolution)이라는 인류의 거스를 수 없는 대의와, 대중 심리 조작이라는 극우 파시스트적 폰지 사기를 한 냄비에 넣고 가장 역겹게 뒤섞어버린 끔찍한 연금술사이기 때문이다.
이 9.4장에서는 지난 수 세기의 과학 기술사를 통틀어 머스크의 본질을 비교 역사학적 관점에서 해부한다. 발명가 토머스 에디슨(Thomas Edison)의 통찰과 희대의 거대 사기꾼 P.T. 바넘(P.T. Barnum)의 혓바닥을 동시에 갖춘 이 돌연변이를 향해, 미래 세대의 교과서는 과연 그에게 1순위로 ’세상을 구원한 천재’라는 월계관을 씌워줄 것인지, 아니면 ’목적을 위해 윤리를 짓뭉갠 희대의 기만가’라는 주홍글씨의 족쇄를 채워버릴 것인지 엄중하고 서늘한 최후의 평결을 조망한다.
1. 비교 역사학적 관점: 토머스 에디슨인가, P.T. 바넘인가
역사학자들이 일론 머스크의 묘비명을 작성하기 위해 필연적으로 마주해야 하는 두 가지 강력하고 모순된 역사적 안티테제(Antithesis)의 환영이 있다. 바로 전구로 인류의 어둠을 걷어낸 세기의 발명가 ’토머스 에디슨(Thomas Edison)’과, “매 분마다 호구들이 태어난다“는 명언을 남기며 사람들의 허영심을 노골적으로 등쳐먹은 희대의 서커스 사기꾼 ’P.T. 바넘(P.T. Barnum)’이다. 머스크는 섬뜩하게도 이 두 극단적인 역사적 캐릭터의 DNA를 자신의 유전자 안에 너무나도 치명적인 비율로 돌연변이처럼 결합시켜 놓았다.
에디슨적 관점에서 볼 때, 머스크는 아이디어를 현실의 산업 제국으로 둔갑시키는 실행력의 완벽한 화신이다. 에디슨이 전구를 발명하고 끝낸 것이 아니라 발전소와 송전망이라는 거대 인프라를 지배했듯, 머스크 역시 배터리 공장(기가팩토리)과 충전망(슈퍼차저)으로 전기차 생태계 전체의 장악을 완성했다. 또한 과거의 지식에 안주하지 않고 스스로 물리학의 제1원칙으로 돌아가 문제의 본질을 해체하는 그의 집요한 엔지니어링적 통찰력은 에디슨의 광적인 연구욕구와 오싹할 정도로 닮아있다.
그러나 그가 권력을 쟁취하고 자본을 끌어모으는 방식은 에디슨의 작업복을 벗어던지고 무언가를 속여 파는 P.T. 바넘의 값싼 서커스 무대 연미복을 뻔뻔하게 걸치고 있다. 바넘은 없는 인어를 만들어내 죽은 원숭이 뼈와 꿰매어 전시하고 수많은 군중의 주머니를 털면서도 “대중은 속는 것을 즐긴다“며 기만을 합리화했다. 이처럼 머스크는 완벽하지 않은 자율주행(FSD)과 환상적인 화성 이주 청사진, 입증되지 않은 하이퍼루프 대중교통망을 마치 살아있는 인어처럼 화려한 CG 영상으로 대중 앞에서 사기 치며 그들을 흥분시키고 소외감(FOMO)을 자극해 지갑을 미친 듯이 열게 만들었다.
결국 그는 에디슨의 찬란한 지능을 가졌으면서도 도덕성에 있어서는 P.T. 바넘의 가장 천박하고 사악한 기만술을 완벽한 비즈니스 툴로 도구화한 인물이다. 기술의 실체와 환상의 허풍 사이에서 외줄 타기를 벌이며 자본을 증식시킨 이 기괴한 하이브리드 돌연변이의 정체. 역사는 그가 에디슨의 후계자인지 바넘의 수제자인지를 묻는 것이 아니라, 이 천재적인 사기꾼의 기만술이 우리 시대에 에디슨급 산업 혁명을 강제로 출산시켰다는 이 잔혹한 아이러니 자체를 현대 문명의 가장 추악한 수치로 기록할 것이다.
2. 후세의 평가: 인류의 진보를 앞당긴 천재인가, 희대의 사기꾼인가
일론 머스크가 숨을 거두고 모든 기업의 주가 차트가 종적을 감춘 100년 뒤, 차가운 활자에 의존해야 하는 미래의 후세들은 이 기묘하고 왜곡된 인간을 과연 어떤 역사적 등급 표에 분류하여 판결할 것인가. 결국 그에 대한 후세의 최종 심판은 ’천재(Genius)’와 ‘사기꾼(Fraud)’ 중 하나의 단어를 배제하고서는 결코 완성될 수 없는, 양립 불가능해 보이는 두 판결문의 강제 병합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분명 22세기의 역사 교과서는 기후 위기의 암울한 심연에서 멸망을 향해 가속 페달을 밟고 있던 21세기 초반의 내연기관 산업 구조를 단숨에 쳐부수고 패러다임을 바꾼 그 압도적 파괴력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또한 인류의 발자국을 달 너머로 확장시키는 다행성 우주 인프라의 기틀을 국가가 아닌 일개 개인이 오직 자본주의의 폭주하는 힘으로 다져놓았다는 사실은, 콜럼버스의 대항해 시대를 능가하는 가공할 만한 혁명적 영웅의 서사로 일부 각인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그의 오만함과 광기가 없었더라면 지구는 20년 더 느리게 진보했을 것’이라는 공학적 성찰은 필연적이다.
하지만 역사가 그 위엄 있는 칭송의 문장 바로 뒤에 영원한 저주를 새겨 넣을 것이라는 사실 역시 명백하다. 후세의 윤리학자들과 사회학자들은 머스크를 단순히 기술의 이정표를 당긴 천재로 존경하는 대신, 오직 천문학적인 독점 부와 자신만의 나르시시즘을 성취하기 위해 ’진실의 가치’와 ‘노동자의 존엄한 생명’, 그리고 ’시장의 신뢰 구조’를 가장 야만적인 방식으로 제단에 바치고 학살한 21세기 테크놀로지 범죄자의 우두머리로 처참하게 매도할 것이다. 완성되지 않은 비전으로 투기를 조장하고, 자조적인 밈(Meme) 하나로 시장을 파괴한 그의 엽기적 행위들은, 자본의 자유가 윤리를 짓뭉갰을 때 발생하는 가장 악랄하고 이기적인 권력 남용의 표본으로 낙인찍힐 것이다.
결론적으로 후세는 머스크를 위대한 구원자로 칭송하는 순진한 우를 범하지 않을 것이다. 그는 “문명을 진보시킨 천재“라는 월계관과 “거짓과 선동으로 세상을 기만한 최고 수준의 사기꾼“이라는 더러운 진흙을 얼굴 양면에 동시에 뒤집어쓴 채, 혁신이라는 마법이 인류의 윤리를 파멸시킬 수도 있다는 가장 섬뜩하고 아찔한 ’반면교사(反面敎師)’의 괴물적 상징으로 역사 속에 차갑게 얼어붙을 것이다.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