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 스페이스X의 탄생과 초기 도전

3.1 스페이스X의 탄생과 초기 도전

2001년, 페이팔(PayPal) 이사회에서 쫓겨나면서도 수천억 원의 거대한 현금 엑시트(Exit)를 눈앞에 두게 된 일론 머스크는 안락한 은퇴 대신 자신의 오랜 공상과학적 몽상을 현실로 끄집어내기 시작했다. 그는 인류가 언젠가 멸종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화성에 자급자족이 가능한 식민지를 건설하여 ’다행성 종족(Multi-planetary species)’으로 진화해야 한다는 강박적인 사명감에 사로잡혀 있었다. 이 원대한 계획의 첫걸음으로 화성에 온실을 짓겠다는 이른바 ‘화성 오아시스(Mars Oasis)’ 프로젝트를 기획한 그는, 실험용 쥐와 식물을 실어 나를 저렴한 대륙간 탄도 미사일(ICBM)을 직접 구매하기 위해 모스크바행 비행기에 오르는 기행을 서슴지 않았다.

하지만 부패가 만연한 러시아 항공우주국 관리들의 조롱 섞인 태도와 터무니없이 비싼 로켓 가격의 장벽에 부딪힌 머스크는 귀국하는 비행기 안에서 세계 우주 산업의 판도를 뒤바꿀 거대한 결단을 내린다. 스프레드시트를 열고 로켓 제조에 필요한 원자재 가격과 부품 비용을 일일이 역산해 본 그는, 기존 항공우주 산업의 엄청난 발사 비용이 재료비가 아닌 고착화된 하청 구조의 중간 마진과 관료주의적 비효율에서 기인한다는 본질적인 모순을 발견했다. “남의 로켓을 비싸게 사느니, 원자재부터 시작해 처음부터 직접, 그리고 훨씬 싸게 로켓을 만들겠다.” 이것이 바로 2002년 3월, 캘리포니아의 버려진 격납고에서 시작된 우주 탐사 기업 ’스페이스X(Space Exploration Technologies Corp.)’의 도발적인 출발점이었다.

그러나 소프트웨어 세계에서만 굴러먹던 30대 벼락부자의 이러한 선언은, 당시 우주 산업을 장악하고 있던 록히드마틴(Lockheed Martin)이나 보잉(Boeing)과 같은 노련한 거대 방위산업체들에게는 그저 돈 많은 괴짜의 철없는 장난처럼 여겨졌다. 수성하기 힘든 가혹한 물리 법칙과 중력을 직면해야 하는 하드웨어 제조업은 소프트웨어의 컴파일 오류를 수정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절망적인 난도였다. 스페이스X의 초창기 여정은 막대한 예산 낭비라는 비웃음과 차가운 중력의 법칙 사이에서 숱한 폭발과 절망을 마주해야만 했던, 실리콘밸리 기술 벤처 역사상 가장 무모하고도 가혹한 생존 투쟁의 서막이었다.

1. 우주 산업의 독점 체제와 높은 진입 장벽

스페이스X가 처음 출사표를 던졌던 2000년대 초반, 전 세계의 우주 항공 산업은 한마디로 거대하고 견고한 성채와도 같았다. 우주라는 미지의 공간은 오직 냉전 시대부터 수십 년간 천문학적인 세금을 쏟아부은 미국 항공우주국(NASA), 러시아 연방 우주국(Roscosmos), 유럽우주국(ESA) 같은 소수의 막강한 국가 기관들만이 점유할 수 있는 신성한 독점 영역이자 국력의 상징이었다. 특히 미국 내에서는 ULA(United Launch Alliance)라는 이름으로 연합한 록히드 마틴(Lockheed Martin)과 보잉(Boeing)이라는 두 초거대 방위산업 카르텔이 군사 위성과 상업 위성의 로켓 발사 권한을 완벽하게 독과점하며 막대한 이익을 쓸어 담고 있었다.

이러한 레거시(Legacy) 우주 기업들이 수십 년간 만들어 놓은 생태계는 지독한 관료주의와 극단적인 비효율로 점철되어 있었다. 이들은 로켓의 안전성을 담보한다는 명목 아래 하청에 재하청을 거듭하는 복잡한 공급망 구조를 고수했고, 발사체 하나를 완성하기 위해 수천 개의 분업화된 공정을 외주로 떠넘겼다. 정부가 발사 비용은 물론이고 기업의 수익까지 넉넉하게 보장해 주는 ‘비용 가산(Cost-Plus)’ 계약 관행 속에서, 이 거대한 군산복합체들은 원가를 절감하거나 기술적 한계에 도전하여 로켓을 저렴하게 고도화할 하등의 동기 부여가 없었다. 그 결과, 1파운드의 화물을 지구 저궤도에 올리는 데 수만 달러에 달하는 엄청난 고비용 구조가 고착화되었고, 이는 곧 스타트업 같은 민간 기업이 감히 발을 들일 수 없는 카르텔적 진입 장벽으로 작용했다.

일론 머스크의 스페이스X는 이 무너질 것 같지 않은 독점 생태계의 비효율성을 가장 날카롭게 파고들었다. 머스크는 ’수직 계열화(Vertical Integration)’라는 파괴적인 해결책을 꺼내 들었다. 수백 개의 하청 업체를 거쳐야 하는 부품 조달 방식을 전면 폐기하고, 로켓의 동체가 되는 금속 합금 주조부터 메인 엔진의 세밀한 밸브, 비행을 제어하는 핵심 소프트웨어까지 우주선 제작에 필요한 구성 요소의 80% 이상을 자신들의 공장 지붕 아래에서 직접 쓸어 담아 자체 설계하고 생산하기 시작했다. 비싼 항공우주 전용 부품 대신 성능이 입증된 상용 기성품(COTS)을 공격적으로 과감하게 도입하여 제조 단가를 상상 이상으로 극단적으로 깎아내렸다.

국가 주도의 거대 자본과 기득권이 결탁하여 만들어 놓은 ’천문학적인 진입 비용’이라는 거대한 장벽 앞에서, 머스크는 IT 소프트웨어 업계 특유의 ’애자일(Agile)’한 접근 방식과 철저한 원가 회계, 그리고 수직 계열화를 무기로 우주 산업이라는 철옹성에 전례 없는 파열음을 내기 위해 돌진하고 있었다.

2. 팰컨 1(Falcon 1)의 거듭된 실패와 파산 위기

기존 우주 산업의 비효율적인 모순을 타파하겠다는 당찬 포부를 안고 출발했지만, 무중력과 대기권의 가혹한 물리학은 실리콘밸리의 벤처 정신만으로는 결코 극복할 수 없는 무자비한 심판자였다. 스페이스X의 초기 엔지니어들은 컴퓨터 시뮬레이션 화면 밖으로 나와, 맨바닥에서부터 용접 토치를 들고 자신들의 첫 번째 궤도 발사체인 ’팰컨 1(Falcon 1)’을 제작했다. 태평양 한가운데 위치한 콰잘레인 환초(Kwajalein Atoll)의 작고 습한 열대 섬에 초라한 발사대를 세운 스페이스X의 첫 번째 도전은, 곧장 뼈아픈 실패와 절망의 연속으로 이어졌다.

2006년 3월, 4년의 뼈를 깎는 개발 끝에 맞이한 팰컨 1의 첫 번째 발사 실험. 로켓은 굉음을 내며 하늘로 솟아올랐지만, 불과 이륙 33초 만에 알루미늄 너트 하나가 부식되어 끊어지며 엔진에 불이 붙었고 그대로 바다로 추락해 산산조각이 났다. 1년 뒤인 2007년 3월의 두 번째 발사 역시 1단 로켓은 성공적으로 연소했지만 2단 로켓의 추진제가 흔들리는 구슬 운동(Slosh) 현상을 제어하지 못해 궤도 진입에 비참하게 실패했다. 심기일전하여 2008년 8월에 시도한 세 번째 발사마저, 분리된 1단 로켓이 2단 로켓과 충돌하는 어처구니없는 타이밍 오류로 인해 NASA가 위탁한 중요한 인공위성과 머스크의 사비로 실은 기념비적인 우주재(Ashes) 캡슐까지 모조리 산화시켜 버렸다.

세 번의 거듭된 발사 실패는 벤처 기업 스페이스X에게 단순한 기술적 오류가 아닌, 완벽한 사형 선고나 다름없는 참사였다. 페이팔(PayPal)을 매각하여 얻은 일론 머스크의 1억 달러가 넘는 개인 자산은 이 세 번의 공중 폭발과 동시에 연기처럼 증발해 버렸다. 심지어 같은 시기 그가 함께 이끌던 전기차 기업 테슬라(Tesla)마저 최초의 차량 로드스터의 양산 지연과 막대한 개발비 초과로 심각한 파산 위기에 직면해 있었다. 직원들의 급여를 지급하기 위해 억만장자였던 CEO가 친구들에게 빚을 내어 생활해야 할 정도로 회사의 금고는 바닥을 드러냈고, 언론은 일제히 실리콘밸리 출신 몽상가의 처참한 실패를 조롱하는 기사를 쏟아냈다.

단 한 번의 추가 폭발이라도 발생한다면 즉각적인 파산 절차를 밟을 수밖에 없는 극단적인 벼랑 끝의 벼랑. 팰컨 1호의 부서진 잔해와 함께 일론 머스크의 ’다행성 종족’이라는 원대한 몽상도 그렇게 태평양의 깊은 바닷속으로 영원히 매장되는 듯 보였다. 스페이스X의 공장 내부는 침통한 절망감에 휩싸였고, 2008년의 혹독한 가을, 머스크는 남은 영혼과 남은 자금을 모두 구멍 난 깡통에 털어 넣어 남태평양의 작은 섬에서 운명을 건 네 번째이자 마지막 도박을 준비해야만 했다.

3. 극적인 네 번째 발사 성공이 부여한 전환점

세 번의 참담한 연쇄 폭발로 일론 머스크의 개인 자산과 회사의 금고가 완벽하게 말라붙은 2008년 가을, 스페이스X는 그야말로 문자 그대로 존폐의 갈림길에 섰다. 만약 한 번 더 로켓이 공중에서 산화한다면 스페이스X는 물론이고 동시에 파산의 위기를 겪고 있던 테슬라까지 연쇄적으로 붕괴할 것이 자명했다. 머스크와 몇 남지 않은 핵심 엔지니어들은 수주 동안 바닥에서 쪽잠을 자며 필사적으로 부서진 잔해에서 데이터를 수집했고, 세 번째 실패의 원인이었던 단 분리 타이밍의 찰나의 소프트웨어 오류를 미친 듯이 수정했다. 외부의 투자 유치는 완전히 끊겼고, 그들은 군용 수송기를 빌려 불과 두 달 만에 새로운 로켓 부품을 태평양의 작고 습한 콰잘레인 환초로 긴급히 공수해 냈다. 기체 결함의 공포 속에서 조립된 스페이스X의 진정한 ’마지막 탄환’이었다.

2008년 9월 28일, 숨 막히는 침묵 속에서 네 번째 팰컨 1(Falcon 1) 엔진에 점화가 이루어졌다. 로켓은 굉음을 뿜어내며 태평양의 밤하늘을 찢고 솟아올랐다. 모든 직원들이 숨을 죽이고 비행 데이터를 지켜보는 가운데, 이륙 165초 후 마의 구간이었던 1단과 2단 로켓의 분리가 기적처럼 매끄럽게 이루어졌다. 고도 500km. 팰컨 1호의 상단부에 부착된 모형 적재물이 완벽한 속도로 지구 저궤도에 진입하는 순간, 스페이스X 통제실은 그야말로 광란의 눈물과 환호성으로 터져 나갔다. 민간 기업이 순수하게 자체 개발한 액체 추진 로켓이, 레거시 국가 기관의 수천억 원짜리 보조금을 일절 받지 않은 상태에서 우주 궤도에 도달한 인류 역사상 최초의 기념비적인 순간이었다.

이 극적인 9월의 기적은 벼랑 끝에서 죽어가던 스페이스X를, 아니 일론 머스크라는 파괴적 혁신가의 운명 전체를 극적으로 소생시킨 가장 찬란한 생명줄이 되었다. 민간 로켓의 기술적 가능성을 두 눈으로 보게 된 가장 보수적인 집단, 미국 항공우주국(NASA)은 즉각적으로 움직였다. 네 번째 발사가 성공한 지 불과 채 3개월도 지나지 않은 12월, NASA는 파산 직전이었던 스페이스X에게 국제우주정거장(ISS)으로 12번의 화물을 수송하는 대가로 자그마치 16억 달러(약 2조 원) 규모의 상업용 궤도 운송 서비스(COTS) 계약을 전격적으로 체결했다.

실리콘밸리의 미치광이라고 비웃음을 사던 머스크는 이 거대한 16억 달러의 보증 수표를 쥐자마자 기적처럼 살아났다. 그는 이 막대한 계약 자금을 동력 삼아 더 거대한 엔진을 설계하고, 더 커다란 로켓인 ’팰컨 9(Falcon 9)’의 개발을 즉시 수면 위로 끌어올렸다. 네 번째 로켓 발사의 극적인 성공은 구시대 우주 카르텔의 굳게 닫혀있던 거대한 성문을 맨주먹으로 부수어 낸 위대한 상징이자, 지구 궤도를 넘어 심우주를 향한 수백억 달러 규모의 거대한 상업 우주 비행(Commercial Spaceflight) 제국의 토대를 세운 가장 완벽하고 결정적인 전환점이었다.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