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3 ’0달러 시장(Zero-Billion-Dollar Market)’에 도전하는 DNA
세상 대부분의 거대 기업들은 안전을 추구한다. 유명한 컨설팅 회사(맥킨지나 보스턴컨설팅)를 고용하여 시장 보고서를 뒤적인 뒤, “내년에 100억 달러짜리 시장이 열린다“는 확실한 재무적 데이터(TAM)가 나와야만 비로소 거북이처럼 투자를 결심한다.
하지만 엔비디아(NVIDIA) 젠슨 황(Jensen Huang)에게 그런 숫자적 확신 위에서 벌이는 경쟁은 이미 누군가가 선점한, 먹다 남은 뼈다귀를 빼앗는 ’패배자들의 게임’에 불과하다.
“위대한 회사를 만들려면, 현재 장부가치가 완벽한 ’0달러’인 곳, 즉 아직 세상에 존재하지도 않는 허허벌판을 찾아 우리가 직접 그 우주를 창조해야 한다.”
이 14.3장에서는 젠슨 황이 주입시킨 가장 파괴적인 야성, ‘0달러 시장(Zero-Billion-Dollar Market)’ 개척의 DNA를 추적한다.
어차피 누군가 해낼 수 있는 쉬운 수익 모델은 쳐다보지도 않고, 99% 실패할 것이 뻔한 절대적 ’난제(The Hardest Problem)’만을 전략적으로 골라 베팅하는 기괴한 의사 결정의 기준점과, 주주들의 융단폭격 같은 적자 압박 속에서도 10년을 버티며 결국 그 0달러의 빙판을 수조 달러의 황금 제국으로 연성해 낸 미친 인내심(Patience)의 근원을 분석해 본다.
14.3.1 현재 존재하지 않는 시장에 베팅하는 개척자 정신
엔비디아(NVIDIA)가 2006년 쿠다(CUDA) 생태계에 수억 달러를 퍼붓겠다고 선언했을 때, 모든 월스트리트의 애널리스트들은 젠슨 황(Jensen Huang)을 향해 조롱을 퍼부었다. “게임 그래픽 칩(GPU)으로 수학 연산을 하려는 고객이 세상에 단 한 명이라도 존재하는가? 이 시장의 가치는 완벽한 0달러다!”
실제로 쿠다 칩을 사줄 거대 고객은 당시 지구상에 존재하지 않았다. 하지만 젠슨 황의 논리는 달랐다.
“고객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우리가 이 기술을 뿌려 고객을 ’창조’해 낼 수 있다.”
그는 당장 돈이 되지 않더라도 대학교 연구실과 괴짜 해커들에게 쿠다 칩과 소프트웨어를 무료로 살포하며, 인공지능(AI)이라는 씨앗이 발아하기 위한 거대한 비옥한 흙을 스스로 깔아주었다.
이 ’0달러 시장에 베팅하는 개척자 정신’은 단순히 무모한 도박이 아니다. 세상이 그 기술의 가치를 알아보고 지갑을 열기 시작할 타이밍, 즉 ’0달러’가 ’100억 달러’로 폭발하는 특이점(Singularity)이 도래했을 때, 그 시장에는 오직 10년 전부터 그곳에 텐트를 치고 기다리던 엔비디아만의 독점적 인프라가 깔려있게 된다. 경쟁사(인텔, AMD)들이 뒤늦게 부랴부랴 칩을 깎아 쫓아올 때면, 이미 생태계의 소프트웨어 표준권(Lock-in)은 모조리 젠슨 황의 손아귀에 떨어져 있는, 가장 피도 눈물도 없는 ’가두리 양식장 전략’의 완성인 것이다.
14.3.2 실패 확률이 높은 불가능한 난제를 선택하는 기준
엔비디아(NVIDIA) 내부에서 새로운 신사업 아이디어를 결재받을 때, 젠슨 황(Jensen Huang)이 가장 먼저 묻는 질문은 “이게 얼마짜리 시장이 될 것인가?“가 아니다.
그가 묻는 첫 번째 질문은 “이것이 세상에서 가장 풀기 어려운 난제(Hardest Problem)인가? 그리고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가 우리 엔비디아뿐인가?“이다.
만약 어떤 사업이 “조금만 잘 만들면 우리가 시장 점유율 10% 정도를 뺏어올 수 있습니다“라는 식의 흔한 경쟁 논리라면, 그는 즉석에서 그 보고서를 찢어버린다. 왜냐하면 그렇게 ’만만한 문제’는 구글(Google)이나 마이크로소프트(MS) 같은 자본의 괴물들이 금방 돈으로 베껴 덤벼들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graph TD
A[NVIDIA의 프로젝트 선택 기준 3가지 필터]
A --> B{필터 1: 세상에서 가장 풀기 어려운 난제인가?}
B -->|No| C[폐기: 쉬운 문제는경쟁사가 금방 쫓아옴]
B -->|Yes| D{필터 2: 오직 우리의 가속 컴퓨팅으로만 풀 수 있는가?}
D -->|No| E[폐기: 대체 가능한 기성 기술]
D -->|Yes| F{필터 3: 실패 확률이 가장 높은가?}
F -->|Yes| G[최종 승인 및 무제한의 R&D 자금 투하]
G --> H((경쟁자들은 감히 엄두조차 내지 못하는<br>미지의 0달러 개척지에 10년간 독점 요새를 구축함))
style C fill:#333,stroke:#fff,stroke-width:2px,color:#fff
style G fill:#f55,stroke:#333,stroke-width:2px,color:#fff
엔비디아는 의도적으로 ‘실패할 확률이 극단적으로 높은’ 불가능에 가까운 프로젝트만을 탐식한다. 기후 변화를 입자 단위로 시뮬레이션하는 ’어스-2(Earth-2)’나, 자동차의 모든 인지 세포를 가상으로 재현하는 ‘옴니버스 자율주행(Omniverse)’ 같은 미친 짓거리가 그것이다.
이러한 초고난도 난제는 초기 진입 장벽이 소름 돋게 높아서 경쟁사들이 감히 예산을 태울 엄두조차 내지 못한다. 엔비디아는 바로 그 ’경쟁자들의 공포’를 방패 삼아 실패의 확률 속에서 나홀로 깊은 해자를 파내려 가는 역발상의 탐험가들이다.
14.3.3 단기적 재무 성과보다 장기적 비전을 우선하는 인내심
0달러 시장에 깃발을 꽂고 “세상이 변할 때까지 기다리자“라고 말하는 것은 실리콘밸리 스타트업들의 흔한 레퍼토리다. 하지만 엔비디아(NVIDIA)처럼 주식 시장에 상장된 거대 기업이 10년이 넘도록 주주들의 살인적인 배당 압박과 적자의 공포를 견뎌내며 버틴다는 것은, CEO가 미치지 않고서야 불가능한 기적에 가깝다.
실제로 2010년대 초반, 엔비디아가 모바일 스마트폰 칩(테그라) 시장에서 퀄컴(Qualcomm)과 애플(Apple)에 처참하게 얻어맞고 주가가 반토막 났을 때, 월스트리트의 헤지펀드들은 젠슨 황(Jensen Huang)을 당장 해고하고 돈 안 먹는 인공지능(AI) 연구를 전면 중단하라고 핏대를 세웠다. 하지만 젠슨 황은 주주들의 아우성을 철저하게 무시하며 한 치의 흔들림 없이 수조 원의 돈을 단기적 실적이 전혀 나지 않는 자율주행 보드와 AI 슈퍼컴퓨터 R&D에 쏟아부었다.
그의 이 폭력적인 ’인내심(Patience)’의 근저에는 단기적 재무제표(분기 실적)로 회사의 운명을 재단하는 자본주의의 얄팍성을 향한 강한 멸시가 깔려 있다.
“올해 100억을 더 벌었느냐는 나에게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10년 뒤에 인류의 연산을 통째로 집어삼킬 인프라를 바닥에 조용히 깔고 있느냐는 사실 하나뿐이다.”
위기 속에서도 월스트리트의 시끌벅적한 주가표를 닫아버리고 장기적 비전(Vision)의 렌즈만을 고집했던 이 지독한 배짱이 결국, 챗GPT(ChatGPT)라는 빅뱅이 터졌을 때 전 세계 AI 칩 독점률 90%라는 말도 안 되는 잭팟으로 젠슨 황의 뚝심을 증명해 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