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실리콘밸리의 예비 창업가로 성장하다

1.2 실리콘밸리의 예비 창업가로 성장하다

지독한 가난과 폭력적인 켄터키 기숙학교의 유년 생활을 강인한 승부욕으로 견뎌내고 이겨낸 젠슨 황은, 고등학교 과정을 훌륭한 성적으로 조기 졸업하며 본격적으로 ’공학도(Engineering Student)’라는 새로운 목적지를 향해 발걸음을 내디뎠다. 탁구대 위에서 시속 100km로 날아오는 공을 쳐내며 발휘되던 그의 미친듯한 집중력과 투지는, 이제 잿빛 개인용 컴퓨터(PC)의 본체와 얽히고설킨 반도체 회로(Semiconductor Circuit)라는 완전히 새로운 전장으로 빠르게 옮겨붙었다.

그가 고등학교를 마치고 대학에 진학하여, 이내 실리콘밸리라는 사회에 첫발을 내디딘 1980년대 초중반의 미국은 그야말로 기술 혁명의 용광로와도 같았다. ’마이크로프로세서(Microprocessor, 초소형 연산 처리 장치)’라는 아주 작은 모래알 크기의 융합 칩 하나가 거대한 아날로그 세상을 집어삼키고 집집마다 놓이게 되는 마법을 부리기 시작하던, 이른바 실리콘밸리의 르네상스(Renaissance)이자 격동의 황금기였다. 애플(Apple)이 혁신적인 매킨토시(Macintosh)로 개인용 컴퓨터의 시대를 화려하게 열어젖혔고, 반도체의 두 거인인 인텔(Intel)과 AMD가 반도체 칩 시장의 절대 패권을 두고 피 터지는 혈투를 벌이고 있었다.

1.2장에서는 젠슨 황이 오리건 주립대(Oregon State University)와 스탠퍼드 대학교(Stanford University)를 거치며 어떻게 차세대 컴퓨팅의 핵심 지식과 원리를 스펀지처럼 흡수했는지 살펴본다. 나아가, 당대 최고의 기술 기업이었던 AMD와 주문형 반도체의 설계 강자였던 LSI 로직(LSI Logic)에서 실무 엔지니어로 근무하며 배운 뼈저린 현장의 경험들이, 어떻게 그를 평범하고 수동적인 회로 설계자를 넘어 훗날 전 세계를 호령하는 거대한 ’엔비디아 제국(NVIDIA Empire)’을 건설할 빈틈없는 ’창업가적 시야(Entrepreneurial Vision)’를 다듬도록 이끌었는지 추적한다.

1.2.1 오리건 주립대와 스탠퍼드에서의 컴퓨팅 훈련

탁월한 성적으로 미 서부의 오리건 주립대학교(Oregon State University)에 진학한 젠슨 황은 전기공학과 컴퓨터 공학을 함께 수학하며 처음으로 반도체 설계와 운영체제의 심오한 세계에 깊이 매료되었다. 당시 1980년대 초반의 대학 캠퍼스는 값비싼 대형 메인프레임(Mainframe)에서 벗어나 막 대중에게 보급되기 시작한 ’개인용 컴퓨터(PC)’에 대한 막연하지만 뜨거운 열기와 상상력으로 가득 차 있었다.

동기생들이 교내 잔디밭이나 기숙사에서 여흥을 즐기는 동안, 젠슨 황은 허름한 학교 전산 실습실(Computer Lab) 한구석에 틀어박혀 무거운 장비들과 두꺼운 전공서적을 씨름 파트너 삼아 밤을 새우는 날이 부지기수였다. 복잡하게 얽힌 회로판(Circuit Board)을 직접 납땜하고 초기 버전의 어셈블리어(Assembly Language)와 C언어를 능숙하게 다루며, 그는 단순한 사용자 차원을 넘어선 하드웨어 심연의 원리를 스크린 너머로 체득해 갔다. (또한 이 전산실에서 젠슨 황은 그의 첫사랑이자 당시 유일한 여성 전기공학도였으며 훗날 평생의 반려자가 된 아내 로리 밀스(Lori Mills)를 실습 파트너로 만나는 운명적인 경험을 하기도 했다.)

오리건 주립대에서 하드웨어와 프로그래밍에 관한 엔지니어링의 기초를 가장 단단하게 닦은 그는, 만족하지 않고 더 큰 지적 갈증을 채우기 위해 동부 명문 아이비리그(Ivy League) 대신 첨단 기술의 펄떡이는 심장부인 서부 스탠퍼드 대학교(Stanford University)로 향하여 전자공학 석사 과정(MS Degree)에 입학한다.

스탠퍼드는 당시 실리콘밸리(Silicon Valley)의 탄생을 주도하고 있던 거대 기술 요람이자 세계적 벤처 기업 창업의 전초기지였다. 그곳에서 젠슨 황은 기업 현장을 주름잡는 당대 0.1%의 천재 교수진들로부터, 전기공학의 정수와 마이크로프로세서 컴퓨터 아키텍처(Computer Architecture)에 관한 가장 진보적이고 급진적인 최신 이론을 압도적인 속도로 흡수했다. 이 시기야말로 ’어떻게 기계를 올바르게 조립할 것인가’를 넘어, ’어떻게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어 기계가 연산하는 속도를 기하급수적으로 끌어올릴 수 있는가’에 대한 평생의 학문적 해답과 영감을 채운 그의 가장 든든한 기술의 요람이었다.

1.2.2 마이크로프로세서의 태동기를 경험하다: AMD 시절

대학에서 학부를 갓 졸업한 직후 청년 엔지니어로 성장한 젠슨 황은, 1984년 미국의 떠오르는 반도체 기업 AMD(Advanced Micro Devices)에 입사하며 실리콘밸리 산업의 한가운데로 뛰어들었다. 그의 첫 공식적인 직함은 마이크로프로세서(Microprocessor)의 가장 핵심인 논리 칩 설계(Chip Design) 엔지니어였다.

당시의 실리콘밸리 반도체 산업계는 고요한 학문의 전당이 아니라 살이 찢기고 피가 튀는 냉혹한 야생(Wilderness)이자 피 튀기는 전쟁터와 같았다. 초기 AMD는 이미 압도적인 자본과 시장 지배력을 확보한 중앙처리장치(CPU) 시장의 절대적 강자인 인텔(Intel)의 그림자를 쫓아 필사적인 맹추격을 벌이고 있는 최전선(Frontline)의 기업이었다. 이 치열하고도 신경질적인 시기에 젠슨 황은 초기 CPU의 세밀한 아키텍처 설계부터 거대한 실리콘 웨이퍼 공정 라인에서 그 칩이 어떤 물리적인 열과 오류를 견디며 구워지는지까지, 설계와 제조의 험난한 양방향 실무 프로세스를 자신의 온몸으로 속속들이 체득했다.

학교 책상 앞의 깔끔하고 고상한 책 속 이론이 아니라, 보이지도 않는 나노미터(nm) 단위의 미세한 트랜지스터(Transistor) 회로 오류 단 하나가 회사의 사활과 수백억 수천억 원의 거대한 재무적인 손실로 직결되는지 그 냉혹한 무게감을 뼈저리게 배운 것이다. 당시 AMD에서의 체류는 불과 1년 남짓한 짧은 경험에 그쳤지만, 이 피를 말리는 현장 경험은 반도체 산업이라는 거대한 사이클이 얼마나 지독한 시간과의 속도전(Speed War)이자, 단 한 톨의 낭비도 허용되지 않는 극소수의 천재들만이 살아남는 피 말리는 자본 집약적 생존 게임인지를 젠슨 황의 뇌리에 깊숙하게, 그리고 지울 수 없게 새겨넣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이 거대한 벽 앞에서 평범한 설계자로 머물렀던 젠슨 황은 아주 묘한 직감적 각성에 이르게 된다. 거상 인텔(Intel)이 이미 무적의 군대로 지키고 있는 거대하고 광활한 정규 도로 위를 그들과 똑같은 자동차로 똑같이 달리려 해서는 100년을 쫓아가도 절대 살아남거나 승리할 수 없다는 비극적인 결론이었다. 대신 그는 완전히 패러다임이 다른 속도의 우회로(Detour), 즉 남들이 통제하지 않는 아예 완벽히 새롭고 낯선 컴퓨팅의 틈새 지도를 스스로 그려내야만 시장의 지배자가 될 수 있음을 어렴풋이 예감하게 되었다.

1.2.3 칩 설계와 비즈니스의 교차점을 배우다: LSI 로직 시절

AMD에서 기술의 매끄러운 톱니바퀴만을 그려오던 젠슨 황은 1985년, 당시 실리콘밸리를 강력하게 휩쓸고 있던 ASIC(주문형 반도체, Application-Specific Integrated Circuit) 분야의 숨은 강자이자 전문 제조 설계 기업인 LSI 로직(LSI Logic)으로 전격적인 이직을 결심한다. 이 과감한 환경의 변화와 결단은, 공학적 고립을 즐기던 한 전형적인 엔지니어 젠슨 황을 위대한 시장(Market)의 ’비즈니스맨(Businessman)’으로 통째로 탈바꿈시킨 인생의 가장 거대한 신의 한 수(Turning Point)가 되었다.

LSI 로직에 합류한 초기 무렵, 그는 처음에는 여느 엔지니어들과 다를 바 없이 폐쇄된 연구실 내에서만 반도체의 물리적 회로 선을 그리는 업무에 주로 머물렀다. 그러나 특유의 탐구욕과 승부사적 기질(Competitive Spirit)이 가만히 놔두지 않았다. 칩이 과연 이 사무실 담장을 넘어가 고객에게 도달한 뒤 어떤 가치를 발휘하는지가 미친 듯이 궁금해진 것이다. 마침내 그는 스스로 회사의 최고 경영진에게 직접 자원하여 기술 영업(Technical Sales) 부서와 마케팅 전략 부서로 직무 파트를 과감히 옮겨 달라는 파격적인 요청을 던진다.

최전선의 현장으로 자리를 옮긴 그는 하루에도 수십 번씩 비행기를 타며 미국 전역에 흩어져 있는 다양하고 거대한 여러 IT 제품 고객사들의 본사를 수시로 찾았다. 그리고 설계 회의실에 앉아, 그들이 도대체 제품군에서 어떤 성능의 특별한 칩(Chip)을 간절하게 필요로 하고 있는지, 왜 불만을 표하는지 원초적이고 거친 ’시장 수요(Market Demand)’의 정제되지 않은 목소리를 가장 밑바닥에서 생생하게 청취했다.

이 일련의 지난한 과정을 통해 젠슨 황은 매우 특별한 번역과 설계의 통찰력(Insight)을 동시에 획득했다. 그것은 사무실 안쪽의 괴짜 엔지니어들이 쓰는 복잡하고 난해한 기술의 언어들을 시장에 있는 구매자 고객의 알아듣기 쉬운 비즈니스 상업 언어로 매끄럽게 번역하는 능력, 그리고 거꾸로 고객사들이 느끼는 피로감과 불만 사항을 정교한 다음 세대 차기 칩 설계의 창의적인 공학적 아이디어로 즉각 연결시키는 능력이었다.

대부분의 평범한 엔지니어들과 달랐던 젠슨 황은 이 LSI 로직 시절 거의 8년에 가까운 가장 길었던 현업 경험을 거치면서 실리콘밸리 제1의 법칙이자, 가장 강력한 훗날 CEO로서의 핵심 자질인 냉혹한 철학을 온전히 심어 받게 되었다. ’공학적으로 기술적으로 아무리 세계에서 제일 완벽하고 가장 아름답기까지 한 칩을 그려내더라도, 누군가 기꺼이 지갑을 열어 고객의 현실 세계에 있는 불편한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없다면, 그 따위 제품은 비싼 쓰레기에 불과하다(Product-Market Fit)’는 극적인 실리콘밸리의 진리(Truth)를 체화한 것이다.

이를 통해 젠슨 황은 비로소 곧 도래할 거대한 창업의 세계를 위해, 훌륭한 최전선의 공학적 엔지니어링 감각에 뛰어난 언변의 세일즈(Sales, 판매) 능력을 빈틈없이 동시에 장착한, 세상에 존재하기 가장 힘든 완벽한 ’투 트랙 플레이어(Two-track Player)’이자 예비 파운더(Founder)로 완벽하게 벼려지고 진화해 있었다.